375화 73층 클리어
버프를 두르고 내지른 일격.
가지고 있는 스킬들을 한 번에 폭발시키는 일이었고, 한 번에 마력이 쭉 빠져나가며 온몸이 부하가 밀려왔다.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 한계에 도전하는 일.
어쩔 수 없다. 일정 신성력을 넘어서지 못하면 가디슈에게 제대로 된 대미지를 줄 수 없으니까.
- 콰르르르르릉!
- 콰아아아아앙!
밤하늘이 밝게 빛난다.
폭음이 하늘을 울려 천둥이 일고, 놈의 저항에 하얀 불길이 유성처럼 떨어진다.
[상대보다 신성력이 미세하게 높습니다!]
[유헤다의 인장이 저항합니다!]
“크하아아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가디슈가 비명을 질렀다.
확실히 대미지가 박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괜찮다. 그러기 위해 이 스킬을 사용한 거니까.
[데몬 스피어 (S) Lv.10]
- 콰가가가가가각!
마기로 이루어진 악마의 창이 놈의 방어를 뚫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신성력을 상대로는 막대한 방어력을 지니지만 마기에는 통하지 않으니까.
“쿨럭.”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가슴에 꽂힌 창을 바라본 녀석이 피를 내뿜었다.
“이제 뭐로 막을 거지?”
“네, 네놈은 모른다. 이렇게 해 봤자 유헤다 님께는……!”
뭐.
궁금하지도 않다.
- 우우우우우웅!
아스트랄 레인보우의 적용 시간은 10초.
이후에는 전투력이 급감한다.
지금 끝내지 않으면 위험해지는 건 나라는 뜻이었고.
“네 다음에는 유헤다다, 멍청아.”
[절삭 (S) Lv.10]
[되갚기 (S) Lv.10]
- 서걱
- 쿠구구과아아아앙!
방호력을 잃은 녀석에게 검을 꽂아 그은 후 폭발을 일으켰다.
그동안 얻어터진 게 많아서 그런지 파괴력 좋네.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은 충격파와 굉음.
일시적으로 밤에 낮이 찾아왔고, 태양은 나였다.
되갚기가 끝나며 사그라지는 불빛.
어둑해지는 세상에서 무지개다리를 해제했다.
땅으로 떨어진 놈과 나.
권능을 사용했다.
[가디슈 크롬벨]
-제2의 천계의 NPC.
-사망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확인해 봤지만 가디슈는 확실히 죽었다.
하긴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죽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아스트랄 레인보우 (S)’가 종료됩니다.]
[사용 스킬에 일시적으로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버프도 끝났다.
힘이 쫙 빠진다. 마력을 한 번에 쏟아붓는 게 워낙 몸에 부담을 많이 줘서.
그것도 버프를 중첩해 출력을 높였으니 손이 다 떨릴 지경이다.
“아, 죽겠다.”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 클리어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가디슈가 죽기는 했지만 잔당은 남아 있었으니까.
시체도 건네줘야 하고, 아직 할 일이 좀 있다.
그건 그거고.
스킬 목록을 살폈다.
[데몬 스피어 (S) Lv.10]
“많이 올랐네.”
“그에에.”
무려 레벨 10.
원래 이러지 않았다. 72층에서 가디슈를 처음 공격할 때만 해도 레벨 3에 불과했으니까.
이것뿐만이 아니다. 주로 사용하는 스킬들의 레벨이 만렙이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다른 몇 개의 스킬들도 레벨이 올랐다.
프로즌 브레이크도 최대 레벨에 도달했으며, 달라붙기는 아예 등급이 올라갔다.
이유는 하나.
‘72층에서 73층으로 넘어갈 때 흘러간 시간은 2년.’
진짜 그 기간 동안 제2의 천계에서 산 건 아니지만 시스템 개입으로 그렇게 살았던 것으로 설정되었다.
층이 넘어갈 때 기억들이 생성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중요한 건…….
“그 기간 동안 올라간 스킬 레벨이 실제로 적용된다는 거지.”
냥펀의 직속 부하이자 벨브레그의 동료. 전장에서 활동한 것으로 설정되었으니 72층에서 73층으로 넘어간 2년 동안 수많은 전투를 겪는 건 당연.
그때 올랐던 스킬 등급과 레벨이 유지됐다.
이곳이 상위층.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질 수 있다는 것.
‘가만히 있었다면 절대 그럴 일이 없겠지만 말이야.’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다음 층으로 넘어가기만을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어떻게 되기는, 다음 층으로 넘어갈 때 1년이 지났든 10년이 지났든 스킬 레벨이 올라갈 일이 없었겠지. 있어 봐야 소폭 올랐을 거고.
전장을 피해 농부로 살았다면 전투 관련 스킬이 오를 수 있었을까? 그저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 지나가 다음 층으로 넘어가기만을 기다렸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도전하고 성과를 이룬 자,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으리라.
이게 기본적인 탑의 성질이다.
헌터의 수준이 명확하기 갈리는 구간이 상위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커뮤니티에 올려놔야지.
혼돈 수치를 얻기 위해서도, 스펙업을 하기 위해서도 쉽게 층을 클리어하려 해서는 안 된다.
- 사아아아아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던 때, 가디슈의 몸에서 변화가 생겨났다.
하얗게 불타올랐던 몸이 가라앉고 목에 생겨났던 인장이 빛을 내뿜는다.
시체 위로 올라오는 연기.
“에이, 설마 이제 와서 2페이즈니 뭐니 하는 건 아니겠지?”
“그에에엑.”
경계심을 올렸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닌 거 같았다.
연기가 뭉치더니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여성의 모습이었고.
[NPC, 유헤다가 당신을 인식했습니다.]
[유헤다는 당신이 한 짓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연기로 이루어진 여인이 입을 벙긋이자.
【만날 때를 기다리지, 왕족의 날개를 지닌 자여.】
머리로 직접 목소리가 울렸다.
몇 번 겪은 적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그래, 나중에 보자고.”
손을 내저으며 피식 웃었다.
살짝 눈을 찌푸린 유헤다의 형상이 사라졌다.
하여간 이상한 애들한테는 인기가 많아.
“숭배자들한테 제대로 찍힌 거 같은데.”
“궤엑.”
살짝 신경 쓰이기는 하다만 어차피 마찰은 생기고 있다.
탑이 계속 있길 바라는 놈들인 만큼 친하게 지낼 수도 없는 것들이고, 이미 악연이다.
좋아, 휴식은 어느 정도 취했고.
“어디 쓸 만한 게 있나.”
난 가디슈의 물건을 살폈다.
워낙 개판이라 멀쩡한 게 있을까 싶기는 했지만 뒤져보니 몇 개 나오기는 했다.
숭배자 증명패랑 반지 하나.
[광휘의 반지 (A)]
-탑 숭배자 골드 등급, 유헤다를 따르는 이들의 반지.
-빛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튼튼합니다.
유헤다를 따르는 이들의 반지라.
탑 숭배자들도 하나로 뭉쳐 있지는 않은 거 같다.
굳이 유헤다를 따른다고 적혀 있는 걸 보니까.
숭배자 안에서도 파가 여러 개로 나뉘는 건가?
내가 잡았던 에이든도 유헤다를 따른다고 했었는데.
그렇게 따지면 다른 골드 등급인 데이본드도 자신만의 무리를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느낀 것만 정리하자면…….
“브론즈 이하는 쩌리. 실버는 중간 관리자. 골드부터는 우두머리 비슷하게 되는 건가.”
골드가 이 정도면 그 위에 있는 다이아 등급은 어느 정도지? 아무리 생각해도 다단계 구조인데 이거.
그 위에 비어 있는 칸에는 뭐가 있는 걸까.
머리를 긁적였다. 나 혼자 생각한다고 결론이 나지 않는 질문이다.
직접 겪으면서 생각해야겠지.
터벅터벅, 가디슈를 끌고 애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남은 잔당을 처리하는 것도 도와야 하고 가장 중요한…….
“왕관도 챙겨야지.”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가디슈의 반역!
하얀 나무를 넘어 제2 천계를 뒤흔든 희대의 사건이었다.
녀석을 따르던 귀족들의 재산이 압류되고 일가가 감옥에 처박힌 것도 잠시.
“결국에는 이렇게 되네.”
“그러겡.”
죄를 면하기 위해 가디슈파 귀족들이 동부전선을 개척하기 위해 보내졌다.
냥펀이 말한 게 맞았다.
동부에 있는 거점지를 연결해 또 다른 왕국을 세우는 것. 원래라면 후계자 싸움에서 진 왕자의 무리가 갔어야 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동부전선은 왕국이 되지도 못한다. 하얀 나무 아래에 존재하는 공국에 불과하지.
그것도 개척에 성공했을 때나 가능한 거지만.
“그래서 기분이 어떠시나요, 냥펀 공작님?”
“아주 좋도다!”
“출세했네, 출세했어.”
중앙 귀족이 대거 물갈이되면서 냥펀의 서열도 수직 상승.
현재는 중앙 귀족 서열 4위에 자리 잡았다. 백작에서 공작으로 신분이 상승한 건 덤.
핥짝이도 남작의 자리에 올랐다.
“넌 왜 귀족 거부했냐? 이럴 때 아님 언제 해 본다고.”
“너 같으면 하겠냐? 어?”
“칫, 암살 실패.”
옆구리를 찌르던 핥짝이가 혀를 찬다.
나한테도 귀족 자리를 주겠다고 국왕과 2왕자가 말했지만 거절했다.
냥펀 백작이라 부를 때부터 알아차렸는데, 이 망할 시스템에 따르면 귀족이 될 때 이름이 닉네임으로 설정되었다.
쁘띠 백작? 미쳤다고 그걸 받아들일까.
“하얀뿔이랑도 사이 괜찮아졌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거 아닌가?”
“엄청 괜찮은 거지. 근데 이 자식은 왜 안 보이냐.”
“…저거 아냥?”
우리가 있는 곳은 왕성.
중요한 날이었기에 우리 모두 옷을 갖춰 입었다.
새롭게 중앙 귀족으로 편입한 이들이 안면을 트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곳.
유독 눈에 띄는 놈이 있었으니.
“얘들아!”
“야야, 보지 마. 모른 척해.”
“저 미친놈이 왕성에 쫄쫄이를 입고 왔네.”
“공블아이, 어서 가서 처리행. 난 부끄러워.”
슬쩍 날 밀어내는 냥펀.
나도 부끄럽다. 아니, 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지?
그러거나 말거나. 보타이를 한 번 튕긴 녀석이 보무도 당당하게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이야! 너희 이런 곳에서 산 거야? 나만 쏙 빼고?”
“누, 누구시져? 사람 잘못 보신 거 같은뎅.”
“어라? 누가 있나?”
바로 모르는 척하는 냥펀과 핥짝이.
탈모맨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고.
“더, 덕춘아. 덥지?”
“그에?”
난 덕춘이에게 손부채질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아하하하하! 장난치기는!”
“으아악!”
“안지 말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를 끌어안은 탈모맨이 호탕하게 웃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수군거린다.
“저자가 그자군요? 하얀뿔에서 대표로 온.”
“어휴, 말도 마십시오. 국왕님과 왕족분들을 지킨 대단한 자입니다.”
“과연 풍채가 당당합니다. 하하하!”
“보아하니 냥펀 공작과도 친분이 있는 듯한데요? 냥펀 공작 인재를 보는 눈이 탁월합니다.”
“저기 핥짝 남작과 이블아이 공은 말할 것도 없지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 아니면 위치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걸까.
의외로 반응이 좋다.
다들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하다.
조금은 소란스러운 인사가 끝나고.
“곧 후계자 임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떠들었냐는 듯 입을 다물고 각자의 자리에 섰다.
당당한 걸음으로 왕좌에 앉은 국왕.
가디슈의 반역 때 잃어버린 왕관 대신 새롭게 제작한 왕관을 쓰고 있었다.
원래 쓰던 건 내 인벤토리에 있다.
이어 다른 왕족들이 착석했고 마지막으로 2왕자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2왕자의 후계자 임명식을 거행하겠습니다.”
2왕자가 공식적으로 왕위 계승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난 멤버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들 같은 생각인지 웃으며 마주 봤다.
이어 벨브레그와 다른 NPC와도 눈을 마주쳤고.
[73층 클리어]
역시나. 클리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서서히 암전되는 세상.
어느새 난 검게 물든 곳에서 후계자 임명식 화면을 보고 있었다.
[챕터Ⅲ- 왕자의 난 종료]
[혼돈 수치 +15점]
“챕터 이름이 저거였구만.”
혼돈 수치도 많이 얻었다.
꽤 만족스러운 상황,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다.
[제2 천계가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희망의 빛이 보입니다.]
[놀라운 업적!]
[혼돈 수치를 추가 획득합니다.]
[혼돈 수치 +15점]
“오?”
“그에엑.”
모든 챕터가 끝나고 미래가 어떻게 되었냐에 따라 추가 점수를 주는 것 같다.
이거 괜찮네. 제2 천계에서 얻은 혼돈 수치가 얼마야.
멤버들도 상당히 많이 모았을 거다.
[시나리오, 하얀 나무와 하얀뿔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기본 보상- ‘어둠 내성 (C)’ 스킬북]
그러고 보니 여기서는 그걸 못 얻었다. 첫 번째 층에서 얻었던 내성 스킬북.
이런 식으로 주는 거였구나.
고개를 까딱이며 스킬을 익히던 때.
[멸망한 세계의 의지가 발휘됩니다.]
[제2 천계가 보상을 지급합니다.]
“어?”
새로운 뭔가가 하늘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