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기절로 끝나지 않는다
이제 누가 불리한 상황인가.
자그마치 반역을 시도했다. 극단적인 방법이었고 그렇기에 허를 찌를 수 있었으나 이쪽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어서.
“움직일 수 있겠어요?”
“그리 좋지는 않군.”
옆으로 다가온 벨브레그에게 묻자 고개를 젓는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기는 한다.
홀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곳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죽었다는 것. 가디슈도 1차 매복조가 올 것처럼 말했으니 상당한 인원을 배치해 뒀을 거다.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기적.
‘벨브레그는 전투 불능이라 보는 게 맞겠고.’
슬쩍 그의 앞으로 나섰다.
“전하를 지켜 주십시오.”
“나도 싸우지.”
“이쪽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회복 먼저 하세요.”
몸 상태는 본인이 더 잘 알터.
회복 포션과 생명수를 꺼내 건넸다. 상처가 깊어 이걸로 충분할지는 알 수 없으나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벨브레그는 이미 제 몫을 했다. 남은 건 우리들의 몫.
나 혼자였다면 살짝 부담될지도 몰랐으나 지금은 멤버들과 하얀뿔까지 있으니까.
빠르게 이쪽으로 오는 무리.
선두에는 탈모맨이 있었고, 그 뒤로 익숙한 레지스탕스 대원 3명이 보였다.
“국왕을 시해하려 들다니. 이런 못된 놈들을 봤나!”
“뭐야? 왕? 진짜?”
“그래, 무식한 녀석아. 형님! 저희만 믿으십쇼. 전부 쓸어버리겠습니다!”
- 콰아아아앙!
- 차가가가각!
각각 하얀뿔의 암습조장, 타격대장, 전투조장이다.
탈모맨을 보좌하기 위해 함께 온 레지스탕스 대원은 대략 30명 정도. 다르게 말하면 저 세 명이 이끄는 팀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였다.
레지스탕 내부에서도 전투를 담당하는 이들. 실력자라 불러도 손색없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크하아악!”
“뒈져, 하층민 새끼들아!”
“기어오르지 말라고!”
뒷골목에서 군림하는 깡패와 해결사, 불법 조직은 레지스탕스가 자리를 잡고 가장 먼저 소탕하는 것들이었다.
“너희 같은 놈들은 내가 잘 알지!”
타격대장 카뮤가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를 따라 몸으로 밀어붙이면서 진형을 깨 버리는 타격대 대원들.
거칠지만 확실하게. 난폭하기에 오히려 깔끔한 일격. 뒤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들이 균열을 만들면.
- 사각
- 촤아아아아악!
“형님, 이놈들이 숭배자 맞습니까? 이참에 싹을 말립시다.”
게네티가 이끄는 전투조가 확실히 놈들을 제압했다.
“웬일로 형님 말이 맞았습니다? 숭배자 놈들이 자꾸 우리랑 하얀 나무랑 이간질시키려 한다 해서 구란 줄 알았는데.”
- 푹
그들이 미쳐 확인 사살 하지 못한 놈들이나 사격지대에서 덤비는 이는 암습조장 테루와 그의 부하들이 맡았다.
정규군과 같이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는 못했으나 날것 그대로 경험으로 채워 올린 실력.
하얀뿔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자들의 능력이 보여지는 순간이었고.
“대단, 하군.”
“낮잡아 보고 있었는데 이 정도 실력일 줄이야.”
“지방의 뜨내기들이가 아니었어.”
그 모습을 지켜본 귀족들이 떠듬거리며 감탄했다.
2왕자 역시 마찬가지. 하얀뿔의 진가를 알아봤다고 해야 하나.
경계심도 섞여 있기는 했지만 도움을 받는 입장. 불안감보다는 든든함이 클 거다.
그것을 증명하듯 직접 싸우고 있는 기사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얀뿔이 가세했다. 우리도 반격에 나선다!”
“목숨을 바쳐 전하를 보호하라!”
짧은 시간이지만 숨을 돌린 기사들 또한 힘을 끌어모아 진격했다.
원래의 세계였다면 하얀뿔과 하얀 나무의 관계는 최악이었을 거고, 이렇게 돕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바뀐 미래의 두 집단은 껄끄럽고 낯선 관계일지언정 적대적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했으니까.
기사들이 용맹하게 싸운다. 불굴의 의지라 말해도 손색이 없었으나 필사적인 건 가디슈 역시 마찬가지.
“어떻게든 찍어 눌러!”
“밀리면 개죽음이야! 어차피 도망쳐도 답이 없다고!”
“제길, 어쩐지 일을 하면서도 찝찝하더라니.”
“입 털 시간에 칼질이나 더 해!”
반역의 실패는 죽음이니까. 괴한들도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죽거나. 죽이거나. 다른 선택지는 없었고.
- 콰아아아아앙!
궁지에 몰린 만큼 과격하고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전원이 탑 숭배자인 건 아니었으나 거사를 치르기 위해 긁어모은 음지의 실력자들이다.
무장 상태와 마인드는 어떨지 몰라도 개개인의 무력만 본다면 얕잡아볼 수 없는 이들.
뒷골목에서 활동한 만큼 사용하는 무기와 아이템도 다양했으니.
- 치이이이익!
시커먼 구슬이 땅에 떨어지자 보랏빛 연기가 피어오른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따가울 지경.
“독가스다! 숨 쉬지 마!”
“비겁한 놈들, 이딴 식으로 나온다는 거냐!”
독을 이용하는 건 기본이고.
- 촤아악!
“크하아아악!”
팔과 다리에서 옷에 숨어 있던 칼날이 튀어나와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경우도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 쓰기 위해 아껴 두었던 아이템을 망설임 없이 사용하는 것.
몸을 비틀며 나를 향해 뻗은 지팡이를 피했다.
- 파아악!
“으아아! 내 얼굴!”
섬광과 함께 지팡이 끝에서 나온 저주 마법이 엉뚱한 놈을 덮쳤다.
한순간 얼굴이 물고기의 그것을 바뀐 괴한이 버둥거리다 쓰러진다.
아가미로는 육지에서 숨을 쉴 수가 없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못 피했으면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어이가 없어 권능으로 아이템 정보를 살폈고.
[어인 저주 지팡이 (S)]
-상대방의 머리를 물고기로 만듭니다.
-인어는 못돼도 어인은 될 수 있죠!
-주어진 기회를 모두 사용하면 아이템이 파괴됩니다.
-사용 가능 횟수- 4/5
“워. 진짜 별 아티팩트가 다 있네.”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5번 사용하면 끝이기는 하다만 S급 아이템을 볼 줄이야.
음지에서 구르던 놈들이라 그런가 하나같이 괴상한 것 투성이다.
뒷골목 출신만 해도 이 정도인데 탑 숭배자들은 어떨까.
[공동 책임의 팬던트 (S)]
-대가를 함께 치릅니다.
-본인의 상처를 잘게 나누어 함께 부담합니다.
-종속된 대상에게만 사용 가능.
빠각!
탈모맨이 내지른 주먹에 정면으로 맞은 숭배자의 목이 뒤로 꺾인다.
그와 동시에 코피를 쏟으며 비틀거리는 인원이 삼십여 명.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숭배자가 실실 웃으며 탈모맨의 복부를 걷어찼다.
“죽일 거면 다 죽이라고, 빌어먹을 등반가 자식들.”
뒤로 주른 밀려난 탈모맨.
이런 식으로 데미지를 경감시키는 아이템이라.
하여간 별의별 아이템이 다 있다.
그래 봤자지만.
민첩한 움직임으로 놈의 뒤에 나타나는 녀석.
“꼭 말 많은 애들이 먼저 죽더라.”
“어, 언제!”
핥짝이.
녀석의 손이 펜던트에 닿았다.
[압축 (S) Lv.10]
- 콰드드득!
그대로 쇳덩이가 되어 버린 아티팩트.
이걸로 데미지를 줄일 방법은 사라졌고 놈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때.
- 철썩!
핥짝이의 손바닥이 녀석의 뺨을 때렸다.
목이 돌아가며 핑그르르 날아간다. 보나 마나 즉사.
“그에에에.”
뺨치기의 선구자 덕춘이마저 인정하는 뺨 때리기니 확실하다.
이걸로 숭배자 하나는 끝. 나도 질 수는 없지.
파악!
안으로 파고들다 힘차게 발을 박차 방향을 틀었다.
- 콰과과과광!
나를 노리고 휘두른 도끼가 애꿎은 바닥을 내리친다.
잔챙이는 관심 없다.
[오로라 빔 (S) Lv.10]
- 찌우우우우웅!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광선을 쏴 버렸다.
맞았을까? 워낙 가까이에 있었으니 맞았을 거다. 살 타는 냄새도 나고.
안 맞았어도 괜찮다. 레지스탕스도 있고 멤버들도 있으니까.
내가 노리는 건…….
“가디슈, 이제 슬슬 정면으로 싸워볼 때가 되지 않았어?”
“네놈, 네이노오오옴!”
가디슈.
뭐가 됐든 이 녀석이 놈들의 수장이다.
73층에 남은 마지막 실버 등급. 사실상 이 녀석만 정리하면 제2 천계의 숭배자는 무너진다.
남아 있는 건 브론즈 등급뿐이고, 브론즈 등급은 계급의 격차 때문에 골드 등급과 직접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다.
전에 잡았던 에이든을 통해 얻은 정보니까 확실할 터.
실버 정도만 돼도 위험하지만 브론즈쯤이야, 하얀 나무와 하얀뿔이 협력하기만 해도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 할 것이다.
수도는 하얀 나무가, 지방은 하얀뿔이 관리를 하면 되니까.
사실 일이 이렇게까지 온 것도 가디슈가 왕족이었던 탓이 크다.
본색을 드러낸 이상 그것도 끝이지만.
- 화르르르륵!
- 콰하아아아악!
“죽어어어어!”
가디슈가 내게 신성의 불길을 쏟아냈다.
몸을 바짝 숙여 피해 냈다.
[화기 내성 (S) Lv.10]
치이이익.
직접 닿지 않았음에도 갑옷이 그슬린다.
화기 내성이 발동되었음에도 피부가 타는 기분.
분노로 리미트가 나가 버린 건지 신성력을 연료 삼아 타오르는 불길은 강렬했다.
아니, 차라리 분노로 정신이 나가 버린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네, 놈만큼은, 반드시 데, 려가겠다.”
차갑게 식은 눈을 보자니 그건 아닌 거 같았다.
놈의 상태가 이상하다. 새하얀 불길이 몸에 번지고 있다.
마치 본인의 몸 자체를 집어 삼키는 듯한 모습.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 츠즈즈즈즈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권능으로 놈의 정보를 살폈고.
“이런.”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쭉 이어지던 놈의 정보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
‘강해지고 있어.’
똑같은 경우를 이미 봤었다. 빛의 성소에서 만났던 등반가 탑 숭배자.
녀석에게 데이본드가 빙의했을 때도 일어났던 현상이다.
빙의? 설마 NPC한테도 가능한 거였나?
아니다. 놈이 강해지는 이유는 이게 아니다.
유독 하얗게 빛나는 놈의 목. 그곳에 빛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있었다.
[유헤다의 인장]
-탑 숭배자, 골드 등급 유헤다의 인장.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에게 힘을 나눠 줍니다.
-대가는 무엇일까요?
유헤다!
대가를 치르고 힘을 빌려오는 것인가.
대가가 뭔지는 보기만 해도 알겠다.
[NPC, 가디슈 크롬벨에게 유헤다의 가호가 내려집니다!]
[분신성자焚身聖者 (SS)]
-스스로를 불태워 신성력을 끌어올립니다.
-본인보다 신성력이 낮은 대상의 공격 무시.
-마기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깎아 먹는 것이지.
SS등급의 가호.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자그마치 무적 효과가 달려 있다.
“신성에 불타올라라!”
기어이 온몸이 하얗게 불타오르는 녀석이 손을 내뻗었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불기둥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
한순간에 공기 중의 수증기까지 날아가 숨이 턱 막힐 지경.
“네놈은 위로 올라갈 수 없다. 추락하라!”
“눈 뒤집혀서 그런가 말투는 왜 바뀐 거야.”
추락이고 나발이고 녀석 뜻대로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놈한테 당할 생각도 없고.
무적 효과라. 대단하기는 한데.
‘아예 못 뚫는 것도 아니잖아?’
어디까지나 조건부니까.
나라면 충분히 뚫을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무지개다리 (S)]
- 촤아아아아악!
사람들 눈에서 벗어나야겠지만 말이야.
모두가 싸우느라 정신없는 타이밍. 무지개다리를 만든 난 가디슈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대로 무지개다리에 탑승.
“크읍!”
놈의 열기에 몸이 익을 것 같았지만 참았다.
대신에…….
[칭호, 밤을 부르는 자가 발휘됩니다.]
[밤이 찾아옵니다.]
칭호를 사용해 버프를 둘렀고.
“곱게 죽어라!”
- 콰아아아아앙!
[안개 질주 (S) Lv.10]
[망자귀환 (S) Lv.10]
놈의 공격을 회피하며 또 다시 버프를 둘렀고.
[러브 앤 피스 (S) Lv.10]
[칭호, 부활한 교단의 성자가 빛을 내뿜습니다!]
신성력을 몸에 깃들게 했으며.
[신성력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 (SSS)를 착용합니다!]
- 파하아아아앗!
상승한 신성력으로 날개를 착용했다.
어두운 밤. 하얗게 빛나는 놈과 내가 세상을 밝게 비추었다.
점점 커지는 녀석의 눈.
그의 시선이 날개에 고정된다. 믿을 수 없다며 초점이 떨렸고.
“네, 네놈이 어떻게 그걸! 아버지만 가지고 있는 것인데!”
“왜? 부럽냐, 사생아 자식아?”
“이익! 이 개 같은──!”
- 콰아아아아앙!
난 놈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파이어 밤을 터트려 추진력을 더했다.
무지개다리를 타고 빠르게 나아가는 놈과 나.
놈이 발악하며 불길을 내뿜어 댄다. 피부가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무시한 채 놈의 가슴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저번에는 기절하는 것으로 끝냈지만.
[아스트랄 레인보우 (S)]
[오로라 빔 (S) Lv.10]
[파이어 밤 (S) Lv.10]
[영혼 찢기 (S) Lv.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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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 스피어 (S) Lv.10]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