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72화 (372/740)

372화 왜 돌아봐요, 어색하게

10년에 한 번 돌아오는 제2 천계 최대 축제, 신성일.

축제가 길게 이어지는 것은 그게 누구든 하루는 휴식을 취하며 오래도록 기억할 추억을 쌓으라는 뜻.

모든 이들이 기다려 마지않는 행사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 콰아아앙!

- 쿠구구구구궁!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불기둥. 갑작스러운 폭발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거리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일상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었으며, 모두의 마음에 불안감이 싹트는 시발점이었으니.

“이게 무슨 일이냐고!”

“도망쳐! 달리란 말이야!”

“멈춰 봐요! 앞에 넘어진 사람 있어요!”

“문 열어! 안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너나 할 것 없이 안전한 곳을 찾아 발버둥 쳤다.

놀란 시민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노점상이 엎어진다.

화로와 횃불이 사람에 치여 바닥에 쏟아졌으며, 날아오른 불티는 도망치는 이들처럼 어지럽게 휘날렸다.

“부상자 챙겨! 경비는 뭐 해! 사람들 인도해!”

“멍청한 놈아! 네가 중심을 잡고 대피를 시켜야 할 거 아니야!”

“노약자를 우선으로 해라! 잠긴 건물은 문을 부숴! 보상은 왕성에서 해 줄 것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상급자의 지시를 받고 시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떼가 되어 움직이는 이들을 컨트롤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방패병! 팔에 힘 빡 줘!”

“한 번에 몰려가면 그게 더 늦어요!”

전장에서 구르던 이들의 단합력은 대단했고, 체계적으로 대피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성과라고 볼 수도 있었으나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인파가 너무 많은 상황.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어떻게 위험한 곳은 다 처리했나?”

“물론이지, 내 탐지 아티팩트는 세계 제일! 비싸다구!”

핥짝이와 냥펀의 활약으로 시가지에 있던 폭탄은 대부분 처리되었다는 점. 이블아이를 통해 병사들이 수색에 나선 덕분이기도 했다.

모든 폭탄을 제거한 건 아니었으나 사람이 몰린 곳은 제거할 수 있었다.

요란한 것과는 달리 폭발에 휘말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탈모맨은 레지스탕스 모은다고 했고, 이블아이는?”

“나도 몰랑. 2왕자 옆에 붙어 있으라고 하던데.”

“서둘러야겠네.”

핥짝이가 시선을 돌렸다.

테러가 일어난 직후 가장 빠르게 움직인 건 왕족을 수호하는 기사들.

반쯤은 밀어 버리다시피 행사 구역을 뚫고 외성 밖으로 이동했다.

왕성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고, 그 루트는 냥펀과 핥짝이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밖으로 나간 만큼 보이지는 않았으나 빠르게 쫓는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행사장은 병사들에게 맡기고 움직일 타이밍.

왕자 옆에 붙으라고 한 걸 보면 테러를 가한 집단이 노리는 건 왕족인 게 분명했다.

“하여간 녀석도 눈치가 빨라.”

“그니까. 폭탄은 언제 알아봤댕. 마약탐지견 같은 건가. 좋잖아, 그거!”

“…어, 개 같은 면이 좀 있긴 하지.”

파아앙!

핥짝이와 냥펀이 내달렸다. 사람들로 혼잡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사람이 많아서 문제라면 없는 쪽으로 이동하면 그만.

상가 간판을 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몇 번의 도약만으로 건물 위에 도달할 수 있었고, 이후부터는 옥상을 이용해 전진.

“어엇? 저기 거동 수상자!”

“냥펀 백작님이시다. 통과하게 둬!”

몇몇 기사와 병사들이 테러범으로 착각하고 무기를 겨누려 했으나, 중앙 귀족이 된 만큼 냥펀의 얼굴을 알아보는 선임 기사들이 있었다.

외곽을 지나 밖으로 나오자 왕족이 움직인 흔적이 보였다.

속도에 중점을 둔 만큼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고.

“냥펀 백작!”

“저희 왔다구요!”

오래지 않아 왕족 무리에 합류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리 중 일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투가 한창.

- 차아아앙!

- 콰지직!

괴한들과 병사들의 시체가 뒤엉켜 바닥을 구르고 있다.

핏물이 번졌고, 주인을 잃은 병장기가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 티잉

냥펀이 금화를 던졌다.

뭔가 싶어 금화를 노려보는 괴한.

그게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골드 익스플로젼 (S) Lv.10]

- 콰아아아앙!

황금빛 광채와 함께 일어난 폭발이 그를 집어삼켰으니까.

핥짝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바닥을 가볍게 쓸어내리는 듯싶더니.

[압축 (S) Lv.10]

- 콰드드득!

땅 일대가 압축되어 구슬로 변했다.

구슬을 위로 던지며 점프.

이어 완벽한 타이밍에 스파이크를 날렸고.

[해제 (S) Lv.10]

- 콰과과과과광!

“크하아아악!”

“제기랄, 피해!”

“뭐 이딴!”

급격히 팽창하며 터져 버린 구슬의 파편에 괴한들이 우수수 나가떨어졌다.

정면으로 맞은 이는 즉사, 못해도 중상. 거리가 떨어져 있던 이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괴한들의 움직임이 세밀해진다.

고작해야 2명이었으나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으니까.

여유가 생긴 만큼 벨브레그를 비롯한 병력들이 반격을 해야 옳았으나.

“빌어먹을. 기습에 너무 많이 당했군.”

그러기에는 놈들에게 당한 병사가 너무 많았다.

시체에 귀족들까지 섞여 있었으니 얼마나 치열한 공방이 오갔는지 알기란 어렵지 않았다.

벨브레그가 얼굴을 구겼다. 그 역시 몸에 상처가 쌓이는 중. 그나마 지금까지 버틴 것도 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있었으니.

“전하랑 왕자님들은 어디에 있어요? 설마 당한 건?”

“그건 아닐세. 기습을 받고 발 빠른 자들을 필두로 왕성으로 가고 있어!”

- 콰직!

달려드는 괴한을 두 동강 낸 벨브레그가 냥펀과 핥짝이를 바라봤다.

피로 붉게 변한 얼굴은 흉악살귀나 다를 바 없었으나 눈빛은 맑았다.

“이쪽은 우리가 어떻게 할 테니 전하를 지켜 주게나!”

그 말을 마치고 벨브레그가 몸을 던졌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공격. 하늘에서 수많은 낙뢰가 떨어진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

괴한들마저 기겁하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견제를 해 댔지만 벨브레그가 원한 건 단 하나.

“앞으로 가게!”

냥펀과 핥짝이가 지나갈 틈을 만드는 것.

이미 체력과 마력을 소모한 자신보다는 두 사람이 가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의 뜻을 알아들은 둘이 지체 앞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어딜!”

“어딜은 자식아!”

- 뿌극!

“카흑!”

괴한 몇 명이 가로막기 위해 나섰으나 작정하고 진형을 뚫는 둘을 막는 건 불가능했고.

“나중에 한 소리 듣겠군. 별수 없지. 보내 줘라. 우리는 벨브레그를 사냥한다.”

“예!”

“알겠습니다!”

괴한의 조장으로 보이는 자의 지시에 두건을 쓴 자들이 포위망을 좁혀 나갔다.

그들의 어깨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냥펀과 핥짝이를 응시하던 벨브레그가 작게 숨을 내뱉었고.

“후우. 신혼도 제대로 못 즐기게 구는군.”

곧 사납게 웃으며 놈들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 * *

“그에에.”

“쉿. 덕춘아, 조금만 참아.”

괴한으로 변장을 한 채 왕성 대피로로 이동한 지 시간이 제법 흘렀다.

아니나 다를까 행사장에서 폭발이 들려왔고, 난 인기척을 지운 채 포복했다.

적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른다.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고. 그래서 선택한 전략.

빙 돌아서 접근하기.

덕분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기는 했지만 무사히 놈들의 꽁무니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자세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대략적으로 확인된 인원은 50명가량.

실력은 편차가 커서 예측이 안 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르고 들어오면 무조건 당한다는 거지.’

이 정도 인원이 작정하고 기습을 가한다면 그게 누구라도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벨브레그라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왕족과 귀족 모두를 지키면서 탈출하는 건 힘들 거 같고.

어떻게 하려 하더라도 막힐 거다. 내부에 적이 있으니까.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 츠즈즈즈즈

[라만]

-탑 숭배자.

-브론즈 등급입니다.

-100년 정도 더 실적을 쌓으면 실버 등급에 오를지도?

[트리카]

-탑 숭배자.

-브론즈 등급입니다.

-백병전의 달인.

모든 인원이 그런 건 아니지만 탑 숭배자들이 섞여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이번 일을 주도한 자는 가디슈라는 것. 아직 왕도 사람들은 그가 숭배자인 걸 모른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으면 무리해서라도 2왕자와 벨브레그한테 가디슈가 숭배자인 걸 말해 줄 걸 그랬다.

뭐, 말했어도 들었을 거 같지는 않지만. 오히려 모함으로 잡혀갔겠지.

“쯧. 기껏 증거도 좀 모았구만.”

“그에에.”

음지를 돌아다니며 숭배자에 대한 조사를 했고, 나름 신빙성 있는 증거들도 얻을 수 있었다.

에이든을 붙잡으면서 알게 된 정보도 있고.

아쉽게도 에이든과 외팔 두 녀석 모두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죽어 있었다.

다른 숭배자가 죽인 건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 스스스스

기척을 줄인 채 앞으로 기어갔다.

아까부터 굉음이 울리고 있다. 하늘에 벼락이 치는 것이 벨브레그가 날뛰는 게 분명하다.

저 정도 뇌전은 몬스터 웨이브 이후 처음 보는 거 같은데.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거겠지.

아무래도 빙 돌아오면서 초입에 매복해 있는 녀석들을 건너뛴 모양.

이중 함정이라. 작정을 했네.

- 두두두두두두

땅이 울린다.

바닥에 귀를 갖다 대고 집중했다.

연달아 울리는 발소리. 뭔가가 덜컹거리는 듯 빠르면서도 잦은 진동과 사람의 것으로 추측되는 울림이 불규칙적으로 이어진다.

진동의 세기로 봤을 때 못해도 열댓 명. 거기에 마차가 있다고 보면 되겠지.

그렇다는 건…….

‘벨브레그가 시간을 끌고 나머지 왕족과 귀족 무리가 오고 있다는 거야.’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여기, 본대가 있지만 않았다면.

- 히이이잉!

기어코 말의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살짝 고개를 들었다. 60명 정도 되는 무리가 돌진해 오고 있다.

하얗게 거품을 문 말이 미친 듯이 달리고, 뒤에 연결된 마차가 흔들리며 따라왔다.

양옆으로 달리는 기사들까지.

숫자만 보면 괴한보다 많았지만 내실은 다르다.

저쪽은 절반이 왕족과 귀족이니까. 실제 전투 인력은 절반뿐이다.

“왕성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

“벨브레그 장군이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 임무를 마쳐……!”

- 파악!

- 빠가가가각!

선두에서 지휘를 하던 기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날아온 화살이 말의 목을 꿰뚫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말.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기사는 낙법으로 충격을 줄인 뒤 검을 뽑았다.

“기습이다!”

“전투 준비!”

발 빠른 동작. 다른 기사들 역시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귀족들이 한데 뭉쳐 몸을 숨겼고, 가드들이 앞으로 마차와 귀족들을 감싸듯 나섰다.

“전하와 왕자님들의 안전을 최우, 선?”

- 푸욱!

진형을 짜는 것을 확인한 선임 기사가 자신의 복부를 뚫고 들어온 검을 내려다봤다.

흔들리는 동공.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검이 뽑혀 나갔다. 울컥, 피가 쏟아졌고.

“네, 네놈.”

“미안하게 됐소.”

까드득.

옆에 서 있던 동료 기사가 그의 목을 내리쳤다.

갑옷이 찢어지며 나뒹구는 머리.

그게 시작이었다.

매수된 기사들이 근처에 있는 동료를 공격했다.

“이런 개자식들이!”

“배신하는 것이냐, 컥!”

고작 5명이었지만 그로 인해 퍼지는 불신과 혼란은 컸고.

- 스스스스슥!

때를 기다리던 괴한들이 일제히 무기를 쥔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귀족들의 눈에 절망이 깃든다. 배신자와 적 사이에 낀 기사들이 이를 악물었고, 지붕이 날아간 마차에 탄 왕과 왕비를 보호하듯 2왕자가 검을 뽑았다.

“저들을 죽여라!”

“한 명도 살려두지 마!”

“지원군이 오기 전에 끝내야 돼!”

저마다 소리를 내지르며 내달리는 괴한들.

지금이 타이밍인가.

“그래! 가자고 친구들!”

나 역시 어색하지 않게 소리를 질렀고.

“어?”

“뭐, 뭐야. 저 새끼?”

달려가던 놈들이 일제히 나를 뒤돌아봤다.

…이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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