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직접하겠네?
폐가 바깥, 구석진 곳에서 은신해 있던 난 덕춘이의 신호를 듣고 안으로 난입했다.
먼저 들어가 있으면 들킬 거 같아 덕춘이 먼저 진입시켰던 것.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가자, 팔 한 짝이 날아간 남자와 척 보기에도 암살자같이 생긴 놈이 서 있었다.
하여간 숭배자 놈들. 같은 팀끼리 싸우고 개판이야 개판.
“네놈, 뭐냐.”
“알면서 물어봐. 입 아프게.”
“그에에.”
가디슈가 멍청이도 아니고 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을 리가 있나.
다 떠나서 73층에 머물고 있는 녀석이면 나에 대해 건너 건너 들었어야 정상이다.
제2 천계에서 한 일이 많기도 하고, 갑옷이 워낙 눈에 띄어서 다른 사람이랑 헷갈릴 일도 없다.
“이블아이가 왜 여길… 가디슈가 배신을 한 건가.”
팔이 날아간 녀석을 노려본 녀석이 이를 간다.
“아, 아니다! 너야말로 접선지를 들키다니. 따로 속셈이 있는 건 아니겠지?”
불신하는 거 봐라. 하는 일이 떳떳지 못하니 이러지.
굳이 의심을 해소시켜 줄 생각은 없고.
어디 보자.
[바오]
-제2 천계의 천족.
-탑 숭배자. 브론즈 등급입니다!
-가디슈의 심복 아니, 심부름꾼 중 하나.
저쪽, 외팔이 된 녀석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등급도 낮고 심부름꾼이라도 불릴 정도면 전투보다는 잡다한 일을 주로 하는 놈일 테니까.
그나마 눈이 가는 건 거리를 벌리며 단검을 쥔 녀석인데.
[에이든]
-은밀하게 쓱싹! 제2 천계의 해결사입니다.
-탑 숭배자. 실버 등급입니다.
-유헤다를 따르는 자.
-강아지를 좋아하죠!
가디슈와 같은 실버 등급이다. 해결사라고 하는 걸 보니 전투 인력인 게 분명하고.
대략적인 정보는 알고 있었는데 자세한 건 몰라서 한 번 확인해 봤다.
그보다 유헤다라고 하면…….
‘61층에서 잡은 놈에게 명령을 내렸던 녀석인데.’
이전에 싸웠던 데이본드와 함께 골드 등급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아직까지 골드 등급을 직접 마주친 적은 없다. 데이본드도 빙의를 통해 힘 일부가 봉인된 상태였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골드 등급의 수준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어쩌기 힘든 놈들이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80층 너머에 있는 놈들은 스킬과 권능이 더 높아.’
진정한 초인은 80층 이후부터라고 했던가.
권능을 한 단계 더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킬도 초월시킬 수 있다.
스펙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
- 차앙
검을 뽑아 돌렸다.
어디까지나 골드 등급이 그렇다는 말이고, 여기 있는 놈들은 실버 한 명에 브론즈 한 명이니 해당 사항이 없다.
‘실버면 좀 빡빡하기는 한데 어떻게든 되겠지.’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자신 있다.
초월하지 못했다 뿐이지 스킬 대부분을 최대 등급으로 올린 상황.
짐작하기로는 실버라는 놈들도 기껏해야 70층대 중후반까지 오른 놈들이다. 진짜 넓게 잡으면 80층 초입일 수도 있기는 한데…….
‘저놈은 아니지.’
강아지를 좋아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질구레한 정보들이 보이는 걸 보니 나보다 월등히 강하지는 않다.
- 스스스슥
“여길 어떻게 알았지?”
유리한 위치를 잡으려는 걸까, 아니면 도망칠 기회를 엿보는 걸까.
천천히 원을 그리며 날 관찰하던 에이든이 질문을 던졌다.
“알 곳이 다 있지. 다른 애들과 달리 정석 루트를 타지 않았거든.”
원래라면 하얀 나무와 하얀뿔, 둘 중 한 곳을 선택해 공략을 시작하지만 난 다르다.
둘 다 고르지 않았으며, 그 덕분에 수도 위성 도시에서 외부인 신분으로 스타트.
빈민가에서 활동하며 추천장도 얻고, 음지의 세력에도 접선했었다.
‘지하 상인’
처음 이곳으로 와 정보를 모을 때 만났던 이들.
돈만 준다면 어지간한 정보는 전부 가져와 줬지. 귀족과도 거래를 하는 이들이다.
제대로 활동하지도 않던 레지스탕스에 대한 정보도 물어온 만큼 숭배자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결과는 보다시피 성공적이었다.
“너희 찾느라 돈 꽤나 썼다.”
“헛수고했군!”
- 파아아아악!
에이든이 엇박자로 몸을 날렸다.
수 미터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각성자에게 이 정도 거리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
한순간에 코앞까지 도달한 녀석이 단검을 휘두른다.
사이하게 빛나는 눈.
[S급 권능, 뱀의 눈이 당신을 노려봅니다!]
놈의 동공이 세로로 찢어지며 차갑고 끈적한 기운이 파고든다.
온몸을 훑으며 목을 조르는 압박감이 느껴졌으나.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대상을 노려봅니다!]
[정신 보호 (SSS) Lv.3가 S급 권능, 뱀의 눈을 막아 냅니다!]
나를 어떻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눈에 띄게 당황한 녀석의 손이 흔들린다.
“뭐, 뭐라!”
“넌 나랑 상성이 안 맞는다, 그치?”
날카로움을 잃은 공격은 반격의 기회.
턱.
놈의 팔을 왼손으로 잡아끌었다.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숨 쉬듯 자연스러운 동장.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 반응하는 것마저 어색할 지경이었으나.
“흡!”
[꼬리 자르기 (S) Lv.10]
- 찌이이익
놈이 옷을 찢으며 빠져나갔다.
와. 이걸 얼마나 썼길래 등급이 S급이냐. 절대 태생 S급인 스킬은 아닌데.
하기야 뭐. 성능만 괜찮으면 쓰는 거지.
이렇게.
[어스 월 (B) Lv.2]
- 쿠르르르릉!
손가락을 위로 까딱이자 굉음과 함께 바닥이 솟아오른다.
놈의 퇴로를 가로막는 벽.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달렸다.
“이놈!”
- 푸화아아아악!
놈이 냅다 바닥에 병을 집어 던졌다.
유리가 깨지며 피어오르는 독무. 꽤 강한 독인지 목이 따끔거릴 지경이었지만.
[독 내성 (S) Lv.10]
독 내성 역시 최대 레벨까지 올려 둔 상태.
신성력까지 있으니 독에 대한 저항력은 상식 수준을 벗어난 지 오래였고.
- 콰아아아앙!
달려간 속도 그대로 놈의 얼굴을 붙잡고 벽에 박아 넣었다.
솟아올랐던 벽이 무너지며 놈이 뒤로 구른다.
코피가 터져 얼굴은 엉망진창.
제대로 뒤통수를 꽂았는데 기절은 하지 않았다. 괜히 실버 등급이 아니라는 거겠지.
‘확실히 가디슈랑은 다르네.’
화력 자체는 가디슈 쪽이 강한 거 같은데 실전 경험은 이 녀석이 더 많다.
당연하겠지. 한 놈은 왕성에 박혀 있고 이놈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놈인데.
에이든이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거리를 벌린다.
“네놈은 반드시 죽여 주마!”
[숨겨진 자 (SS) Lv.10]
- 사아아아아!
순간 에이든의 모습이 사라졌다.
암살자는 말 그대로 기습에 특화된 존재. 내게 모습을 들킨 것부터가 페널티를 안고 시작하는 거였다.
“오. 확실히 괜찮네, 이거.”
내가 사용하는 외톨이의 길은 비교하기도 민망한 정도.
기척뿐만 아니라 발소리, 하다못해 냄새까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환경에 그대로 녹아든 느낌.
“어디부터 잘라 줄까. 팔? 다리? 귀나 코도 좋겠군.”
마치 동굴에서 말하는 것처럼 울리는 목소리.
이 정도면 소리로 방향을 유추하는 것도 힘들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에이든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쳐 흘렀고.
- 카가가가각!
뭔가가 갑옷을 긁고 지나갔다.
긁히는 순간 몸을 틀며 검을 휘둘렀으나 허공을 벨 뿐 검에 걸리는 감각은 없었다.
낄낄거리며 웃음소리가 울린다.
장난치고 있는 거다. 심리적으로 압박하면서 언제든 목을 그을 수 있다고 메시지를 남기는 것.
까다롭네. 작정하고 덤벼들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죽겠는걸.
이런 식으로…….
“몇 명이나 죽였지?”
휙!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마주친 눈.
- 흠칫!
기습하기 위해 달려든 녀석이 기겁하며 몸을 비튼다.
우연이라고 생각한 걸까?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놈이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검을 내질렀다.
빠르게. 녀석이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허공에 발이 뜬 상황. 검이 오는 것을 보고도 녀석은 피할 방법이 없었고.
[절삭 (S) Lv.10]
- 카가각!
- 푹!
놈이 고육지책으로 내민 단검을 갈아 버리며 녀석의 허벅지를 베어 버렸다.
푸슉.
뿜어져 나오는 피까지 숨길 수 없는지 붉은 선혈이 바닥을 적신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난 속일 수 없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번뜩입니다.]
“난 암살자들이 좋더라.”
역으로 기습할 수 있으니까.
씨익 웃으며 은신이 풀린 녀석을 바라봤다.
“제기랄.”
에이든이 입술을 깨물었다.
* * *
빈민촌에 위치한 폐가.
나와 에이든의 전투로 난장판이 됐음에도 찾아오는 병사나 자경대는 없었다.
사실상 치외법권. 빈민가의 주민들은 싸움에 휘말릴까 몸을 피하기 바빴고, 뒷골목 불량배들과 음지에서 활동하는 이들만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을 알짱거렸다.
그들 역시 목숨이 최우선인지라 일정 거리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하여간 이쪽 동네는 뭐가 없어. 양아치들만 가득하고.”
판자로 막아 놓은 창문 사이로 바깥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다.
내게 제압당한 에이든이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다.
생포하려고 치명적인 공격은 가능한 피하고 두들겼더니만 얼굴이 난리가 났다.
그러게 곱게 쓰러질 것이지 자꾸 도망가고 난리야.
워낙 상성이 좋아서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에에.”
“잘했어, 덕춘아.”
에이든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던 때, 덕춘이가 한 남자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싸우는 동안 눈치를 보던 외팔 남자가 도망갔었다. 덕춘이가 바로 쫓아가서 잡아 왔지만.
역시 영물. 팔 한 짝이 날아갔어도 브론즈 등급인데 상대가 안 되네.
아무튼 있던 놈들은 다 잡았다.
“성과가 괜찮네.”
한 명 정도 잡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하 상인을 통해 숭배자가 쓰는 것으로 추측되는 접선지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언제, 누가, 몇 명이나 모이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실버 등급이면 이곳에서는 제일 높은 등급일 터. 알아낼 수 있는 건 많을 거다.
뭘 알아낼지는 지금부터 고민해 봐야지.
일단 숭배자를 털어 보자는 생각으로 일을 벌인 거라.
놈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부터 확인했다. 증명패야 기본이니 패스하고.
“이건 은신처를 표시해 둔 건가.”
‘X’ 표시가 되어 있는 할렘가 지도. 통신 아티팩트. 자질구레한 물건들도 좀 있고.
금화가 든 주머니는 따로 챙겼다. 정보 사려고 돈을 많이 써서 이렇게라도 충당할 예정.
여기까지는 대단한 건 없고 쓸 만해 보이는 건 2개 정도.
“제2 천계에 있는 숭배자 계급도.”
완벽한 건 아니다. 그저 본인 위치를 확인해 보려고 끄적인 것 같은데 대략적으로 이곳에 숭배자가 몇 명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열댓 명 정도 될까. 그 이상일 수도 있기는 한데 당장 보이는 건 그 정도.
눈여겨볼 거라면 실버 등급은 가디슈랑 에이든 2명뿐이라는 거다.
다음으로는 이거.
“치사한 새끼, 다른 놈을 끌어들이려 하다니.”
가디슈의 이름이 적힌 지원 요청서.
골드 등급인 유헤다에게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간략하게 현 상황에 대해 적혀 있는 것이 지원을 하더라도 물건은 유헤다가 직접 골라서 주는 모양.
이건 나름 중요한 증거가 될 거다. 가디슈의 직인이 찍혀 있으니까. 필체도 비교해 보면 진짜라는 걸 알 수 있을 거고.
툭. 요청서를 튕겼다.
좋은 생각이 났다.
“요청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급이 돼야 하는 거지, 아마?”
“그에에.”
내가 느끼기에 숭배자라는 놈들도 꽤 수직적인 관계다.
실버쯤 되니까 요청이라도 가능한 거겠지. 다르게 말하면.
“에이든이 잡혔으니 가디슈가 직접 요청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