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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68화 (368/740)

368화 도와줄 곳이 있어

왕위 계승자가 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2왕자와 가디슈. 공주 역시 파가 나뉘어 서로를 견제했으며, 중앙 귀족들 또한 눈치를 보기 바빴다.

지지하는 왕자가 왕위에 오른다면 막대한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겠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대대적인 물갈이가 벌어질 터.

직위만 박탈당하면 차라리 낫다. 숙청당하는 게 기본이었으니, 하이 리스트 하이 리턴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 뻔한 만큼, 한 발 떨어져 관망하거나 중립을 지키는 이들 역시 있었으나.

“넬 공작,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양쪽 모두 지원했다가 얻는 것도 없이 낭패를 보기 십상 아닙니니까.”

“파이는 정해져 있고 나눌 사람은 많습니다. 적당한 명분을 세워 쳐 내려는 자도 있을 테지요.”

“모렌 후작도 생각 잘해야 할 거요. 따로 노리는 게 있다 들었소만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소.”

주변에 있는 귀족들 역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위험을 부담한 이상 어떻게든 유리한 위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개인적으로 찾아와 선물 공세를 하든, 협박 비슷한 걸 하든, 인맥으로 꼬드기든 자신의 파로 끌어들이기 위한 물밑 작업이 계속되는 상황.

가디슈뿐만이 아니다. 2왕자와 냥펀 역시 활발하게 움직였다.

“벨브레그는 정치에는 그리 강하지 않아. 계속 전장에만 있어서.”

“대신 인망이 있고 군권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전쟁 사업에 관련된 귀족들은 끌어들일 수있어.”

“아, 골 아프네. 왜 이러는 거야.”

왕성, 2왕자가 편의를 봐준 덕에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개인 별장을 냥펀의 집무실로 개조한 것. 말이 집무실이지 건물 하나를 다 쓰고 있었다.

그만큼 냥펀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뜻이었고.

“짜잔! 일단 이만큼은 합류하기로 했다구!”

“오오오! 너, 실력 좋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꽤 많은 귀족을 영입할 수 있었다.

군과 관련된 이들은 거의 다 2왕자를 지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귀족가의 위세를 떠나 군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압박감을 준다.

진짜 정면으로 들이박으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 물론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다 죽자는 것도 아니고 지금 상황에서 병력을 뺄 수는 없으니까.’

하얀 나무와 하얀뿔이 그나마 대립하고 있지는 않다지만 여전히 몬스터는 넘쳐나고 수복하지 못한 지역은 많다.

간혹 강력한 괴수나 재앙이 나타날 경우 멀쩡한 영지가 한순간에 박살나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왕이 가만히 가만히 있지 않겠지.’

특히나 벨브레그는 군인 그 자체다. 충직한 건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을 버리는 선택도 하지 않는다. 최고 책임자인 그가 긱센에 들어온 것만 봐도 안다.

툭툭. 손가락을 두들겼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왕은 왜 가만히 있지? 본인이 나서면 금방 끝나잖아. 아니, 서열대로 갈 거면 가디슈가 이렇게 나오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고.”

1왕자가 죽은 거야 그럴 수 있다. 암살이다 뭐다 말이 많지만 확인된 건 없으니까.

하지만 후계자 자리를 계속 비워 두는 건 다른 이야기다. 후계자는 왕만 정할 수 있다.

왕자 중 한 명이 계승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암투가 벌어질 건 뻔한 일. 왕이 그 사실을 모를까?

핥짝이와 냥펀도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을 터.

가만히 소파에 누워 팝콘을 뜯던 냥펀이 입술을 모은다.

“나도 그게 이상해서 살펴봤거든? 2왕자한테도 물어보고. 이게 확실한 건 아닌데.”

가까이 모이라고 손짓한다.

핥짝이도 궁금한지 몸을 숙였고.

“왕국을 나누려 한다는 말이 있어.”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멀쩡한 왕국을 나눈다니. 애초에 이곳은 제2 천계. 하나의 왕조가 세계 전부를 통치하는 곳이다.

단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말.

머리를 긁적인 냥펀이 지도를 꺼내 펼친다. 제2 천계 전부를 보여 주는 지도. 각 지역마다 색이 칠해져 있다.

“보면 알겠지만 그나마 멀쩡하게 돌아가는 곳이 몇 곳 있거든?”

수도를 포함해 일부 지방은 초록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성공적으로 몬스터의 침공을 막아 내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곳.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벨브레그가 지키고 있던 동부에도 거점지가 몇 개 있지. 영주가 도망가서 주인이 없는 곳들. 군사 지역이라 봐도 무방해.”

동부 전선이 밀리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던 이유 중 하나다.

물자를 비축하고 군사들이 쉴 수 있는 곳. 영주가 없지만 모든 인원이 군인들이라 전력이 막강한 곳.

보급로를 제외한다면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주변은 마경이니까.

냥펀이 군사 거점을 잇는다. 그와 함께 토벌 가능한 마경을 체크하며 나아가니.

“거미줄처럼 엮어서 이어 나가면 동부 지역은 커다란 땅덩이가 되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점지 2개가 이어지며 그 사이에 있는 영토를 확보한다. 이어서 다음 영지와 병합하길 반복.

그런 식으로 뻗어 나간다면 결과론적으로 동부 지역을 수복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고 여러 문제를 감안하지 않은 단순 계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시도할 가치는 충분했다.

문제는…….

“이러면 결국에는 수도가 있는 곳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돼.”

거점은 그나마 몬스터가 덜 날뛰는 곳들에 위치했다. 오로지 생존만을 생각해 만들어진 곳. 가면 갈수록 수도와는 멀어진다.

냥펀이 수도와 거점 사이를 가리켰다. 시커멓게 죽은 땅덩이.

재앙과 혼돈의 파편, 에이션트 몬스터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역.

그것들이 수도와 거점을 가로막고 있었다. 최소한의 물자 이동은 가능할지라도 활발한 교류는 불가능하다.

지금 사용 중인 보급로도 언제 끊길지 모른다. 전쟁물자를 관리하는 것이 냥펀이니 그 부분은 확실히 안다.

‘크게 우회하여 돌아가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만 쉽지는 않겠지.’

보급을 위해 새로운 거점을 확보해 나간다? 사실상 못한다고 보는 게 맞다. 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했지.

결국에는 거점지로 이루어진 영토는 수도와 독립해 자급자족을 해야 한다.

“길게 보면 동부 거점지와 수도는 단절된다구. 수도가 있는 대륙 중앙에 하나, 동부 끄트머리에 하나. 이렇게 사람이 살 수 있는 구역이 만들어진다는 거지.”

“그곳에 새로운 왕국을 세운다?”

“웅. 거의 지금 왕국에 종속된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초기에는 수도의 지원 없이는 못 사니까.”

냥펀이 말에 턱을 쓸어내렸다.

“굳이 왕국을 세울 필요가 있나. 귀족들을 보내도 될 거 같은데. 저쪽에서 세를 불린 다음 합치는 방법도 있고.”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에는 할 수 있을 텐데.

“그 시간이 문제징. 100년 단위로 걸려. 어쩌면 그 이상. 최악은 돈과 시간만 들다가 실패. 리스크가 크다는 거고. 귀족을 보내지 않는 이유는 분열이지.”

“귀족이 그곳의 왕을 자처할 수도 있으니까? 그럴 바에는 명분도 가지면서 왕족이 들어가는 게 낫고.”

“정답.”

여러 정치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가 복합적으로 엮여 있다.

머리가 아파 올 지경. 결론만 말하자면 이거다.

“후계자 자리에서 패한 이들은 동부로 간다.”

“가다가 죽으면 어쩔 수 없는 거구. 성공해도 고생 꽤 할 거야. 시간이 지나면 후계자한테 머리 숙이면서 빌빌 기는 건 덤.”

이 말이 맞다면 왕이 가만히 있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왕자 중 누구 한 명은 보내야 한다. 그냥 보내면 쫓아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당연하지만 동부로 향하는 왕자와 함께 갈 귀족도 없을 거고.

하지만 계승 싸움에서 진다면?

‘숙청당하는 것보다는 동부로 향하는 게 낫지.’

패배한 왕자에게 붙었던 귀족들이 함께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과 병력도 같이 움직일 테니 거점지를 왕국화 시키는 것도 성공 가능성이 커지겠지.

이걸 영악하다고 해야 할지 똑똑하다고 해야 할지.

정치하는 놈들의 무서움이 느껴진다.

여기서 더 짜증나는 건.

‘가디슈가 이기면 사실상 제2 천계는 탑 숭배자들이 먹는 거나 다를 바 없지.’

물론 우리가 위로 올라가면 리셋 되겠지만 73층 보상이 박살 날 건 불 보듯 뻔하다.

그사이 숭배자들이 다른 수작질을 벌일 수도 있고.

결국에는 2왕자를 후계자로 만드는 게 정답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얘들아, 가디슈를 없애야겠어. 정체 밝히자.”

놈을 조지는 게 가장 빠를 거 같다.

이미 탑 숭배자는 공적. 가디슈의 정체를 만천하에 알릴 수만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쉽지는 않을 거다. 그를 보좌하는 세력도 있고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녀석이 가지고 있을 숭배자 패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명확한게 필요하지.

“한번 가 봐야겠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마침 도움을 받을 곳이 있다.

* * *

수도 외곽 위성 도시.

몬스터의 침공을 받아 몰락한 영지의 난민들과 부랑자, 하층민, 범죄자가 뒤섞인 골목은 할렘가를 이루었다.

번화한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볼 수 있는 풍경.

같은 영지에 위치했으나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고,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사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얼씬도 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 끼이이익

로브를 뒤집어 쓴 사내가 주위를 살피고는 폐가 안으로 들어간다.

녹슨 경첩이 날카로운 소음을 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비명 소리가 들려도 무덤덤한 이들이 태반이었으니까.

썩은 음식물 쓰레기와 어디에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굴러다닌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것도 잠시.

“달이 빛나면 잉어가 물 위로 오른다.”

알 수 없는 말을 외쳤다.

텅 빈 폐가, 듣는 이 하나 없었으나.

“왕성에서 왔나?”

“그렇다.”

그늘진 천장에서 한 인형이 쑥하고 튀어나왔다.

인기척 하나 없는 움직임. 보고 있음에도 허상을 보는 것만 같다.

그만큼 희미한 존재감이었으나 사내는 알고 있었다. 결코 만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가디슈 님의 심부름으로 왔다.”

고작해야 브론즈 등급이었으나 남자가 모시는 이는 가디슈. 실질적으로 73층의 권력자였다.

눈앞에 선 이가 이를 보이며 웃는다.

서늘한 눈빛에 침을 삼켰다.

‘실버 등급, 에이든.’

73층에 몇 없는 실버 등급의 숭배자였다.

왕성에서 활동하는 가디슈와 달리 음지에서 활약하는 인물.

1왕자를 없애기 위해 공수한 독극물도 에이든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가디슈가 또 일을 꾸미는 모양이군. 하여간 혼자서 하는 게 없단 말이지. 모자란 녀석 같으니.”

자신을 모시는 이를 모욕하는 발언에 사내가 발끈했지만 직접 표현하지는 못했다.

무방비하게 서 있는 에이든이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본인 정도는 가볍게 죽일 수 있는 실력자였으니까.

그저 말을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등히 싸웠다고 위안을 할 뿐이었다.

사내가 넘긴 쪽지를 읽은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유헤다 님에게 도움을 청한다라. 이게 맞나 싶은데. 워낙 바쁘신 분이라.”

“가디슈 님의 요청이다. 넌 명에 따라 움직이면 그만……!”

- 콰직!

“크하아악!”

소름끼치는 파육음과 함께 사내의 팔이 뜯겨져 나갔다.

인지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 무엇에 당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를 악문 사내가 팔을 움켜잡으며 지혈했다.

그런 그를 향해 다가오는 에이든. 번들거리는 눈에 살기가 깃든다.

“나, 나를 공격하고도 가디슈 님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열심히 가디슈의 이름을 외쳐 보지만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입가를 비트는 것이 열이 오르는 모양.

“이 새끼가 근데. 아까부터 말이 짧네!”

쪽지를 아무렇게나 쑤셔 넣은 에이든이 품에서 단검을 빼 들었고.

“어, 넌 명이 짧은 거 같고.”

녀석의 뒤, 이블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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