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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65화 (365/740)

365화 2왕자

73층에 진입하며 생겨난 기억. 시스템적으로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이 머리에 새겨졌다.

72층에서 있던 일들도 꽤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지 출장이 끝나고 2년이 지난 시점.

기간이 긴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멤버들에 대한 것도 있었다. 그중 유독 핥짝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됐는데.

-웅성웅성

“곧 결혼식이 시작됩니다.”

일단 여긴 결혼식장이다. 그것도 하얀 나무에 있는 연회장을 이용한 결혼식.

어지간한 신분으로는 이용할 수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왕의 허가가 떨어져야 하니까.

“일단 들어가자.”

“으응.”

바로 쭈그리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식장 내부, 냥펀이 보였다. 평소와 같이 장신구가 많기는 하지만 황금색은 줄었다. 어디까지나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니까. 나름 절제를 한 모양.

사회자로 나선 냥펀과 눈이 마주쳤다. 핥짝이의 차림을 보고는 살짝 놀란 기색.

“우리는 이쪽이야.”

“사람 많네.”

“많겠지. 누구 결혼식인데.”

적당한 자리를 찾아 핥짝이와 함께 앉았다.

처음 서로의 옷차림을 보고 이곳이 결혼식장이란 걸 깨달았을 때, 설마 우리 둘이 주인공인가 싶었으나…….

“이 자리를 찾아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 파아아앙!

종이 폭죽과 함께 마법구가 홀로그램을 뿜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벨브레그와 왕국의 둘째 공주.

우린 아니었다. 벨브레그가 나이가 있어서 미혼인지는 몰랐다. 하기야 최전방에서 몬스터랑 싸우느라 정신이 없던 만큼 누군가를 만날 시간이 없었겠지.

- 꾸우욱

“읍!”

옆에 앉은 핥짝이가 허벅지를 꼬집는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럴 수는 없었다.

바들거리며 옆을 보자 싱긋 웃고 있는 핥짝이가 보인다. 왤까, 웃는데 왜 무서울까.

왜긴 왜냐.

“야, 네가 날 어떻게. 어? 죽을래?”

“아, 아니. 내가 진짜 한 것도 아닌데. 시스템이…….”

“쓰읍!”

“미안.”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신랑 측 좌석. 그중에서도 벨브레그가 이끄는 군부대 장성과 간부가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 핥짝이 입대했다. 내 추천으로.

72층에 있을 때 핥짝이를 탐내 하길래 군인을 하는 건 어떻겠냐 물어본다고 지나가듯 말하기는 했다.

‘설마 진짜 그렇게 될 줄 몰랐지만.’

유독 핥짝이와의 기억이 많았던 이유.

입대한 핥짝이와 함께 벨브레그를 도와 게이트 이곳저곳을 부수고 다닌 덕이다.

아무래도 하녀라는 신분이 움직이는 데 제약도 있고 해서 신분 상승을 노린 건데.

“아, 이거. 핥짝이 아닌가. 타격대장 핥짝이!”

“저번 게이트도 그냥 박살을 내 버렸다지.”

“하하하하! 몬스터 분쇄기라 불릴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차려입으니 아름다운 레이디가 따로 없군!”

“드레스 사이로도 보이는 장대한 기골과 패기가, 어흑! 잠깐만 자네, 내가 그래도 상관인데 멱살은 좀.”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공을 많이 세웠다.

하녀였을 때의 신분은 사라진 지 오래. 지금은 무려 중령이다.

2년 만에 올랐다기에는 너무 빠르지 않나 싶기도 하다만.

‘내 추천과 벨브레그 배려 덕에 대위로 시작하기도 했고 업적도 말도 안 되니까, 뭐.’

여러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납득할 만한 상항이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혼란스러울 때는 승진이 빠른 법이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많이 죽어 나가니까.

나이, 신분, 성별.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 오로지 능력과 생존만이 중요할 뿐.

군대 내에서는 최연소 장군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라인도 확실치 않던가. 동부전선 최고 책임자 벨브레그 장군의 직속 라인이니까.

그야말로 엘리트 군인! 짬밥이 탄탄대로!

- 콱

“웃어?”

“웃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표정 관리해야지.

과감하게 상관의 멱살을 잡던 녀석이 타깃을 나로 바꾸었다.

“허허. 둘이 사이좋아 보이는군. 좋을 때야.”

“여기선 좀 참아 주게. 오늘 주인공은 따로 있으니.”

진지하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장군들의 눈에는 장난으로 보이는지 허허 웃어 댄다.

이땐가, 지금이 장난칠 절호의 기회인가.

- 꼬옥

살포시 녀석의 손을 잡으며 촉촉한 눈빛을 보냈다.

“그래, 모두가 보는데 부끄럽게. 조금만 참아 주련?”

“너, 이……!”

목에 핏대가 선 핥짝이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지만 끝내 휘두르지는 못했다.

“신랑, 신부 입장합니다!”

-퍼엉!

-빰빠라라밤!

냥펀의 힘찬 외침과 함께 벨브레그와 공주가 걸어 나왔으니까.

중앙에 깔린 레드카펫.

왕도에서 레드카펫을 밟을 수 있는 건 왕가뿐이다.

벨브레그 장군이 왕가의 일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 * *

“잘못, 했습니다. 까, 까불지 않겠, 습니다.”

“어림없다. 똑바로 안 있어?”

“무겁… 아니, 너무 가벼워서 균형이 안 잡힙니다.”

“자꾸 그러면 중량 더 늘린다.”

“그에에.”

결혼식이 끝난 후 냥펀의 집무실.

머리를 박은 날 의자 삼아 핥짝이가 앉아 있다. 내 중량 팔찌까지 강탈해서 무게를 늘리니 이마가 깨질 것 같은 기분.

냉큼 주인을 버리고 핥짝이의 품에 들어간 덕춘이가 혀를 내두른다.

덕춘이 네 이놈, 당분간 간식은 없다.

아, 군대 트라우마 오네. 맞다. 핥짝이도 그것 때문이구나. 하여간 군대가 만악의 근원이다.

“쯧쯧. 그러게 말을 잘했어야징.”

폭신한 소파에 앉아 냥펀이 홍차를 음미하며 혀를 찬다.

바로 녀석에게 시선을 돌리는 핥짝이.

“너, 경고. 벨브레그한테 바로 넘겨 버린 사람이 누구지?”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에잇! 에잇! 공블아이가 문제네!”

도도도 달려와 내 머리를 찰싹 때리는 녀석.

이게 정치인가. 태세 변환이 보통이 아니다.

그렇게 10분 정도 더 있었을까. 핥짝이가 일어선다.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사진도 찍었고 하니 슬슬 이야기 좀 나눠 볼까.”

“핥짝앙, 나도 사진 보내 주라. 내 것도 보내 줌.”

“오? 이거 괜찮다. 하얀 나무에 이런 곳이 있었어?”

“흠흠! 다른 사람들도 잘 모르는 포토존이라구!”

차려입은 게 아쉽다고 사진을 찍어 댈 때만 해도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우득. 뻣뻣한 목을 풀며 소파에 앉았다.

본의 아니게 내 사진도 제법 찍혔다. 인간 의자 할 때도 찍히고.

“탈모맨 이 녀석 바로 댓글 다네.”

“들어가면 항상 있다구. 공블아이도 들어와.”

탈모맨한테도 보내 줬는지 웃기 바쁘다.

커뮤니티 고인물 탈모맨이 알려 준 기능 중 하나.

[Tip. 상위 채널에서는 비공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Tip. 비공개 글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진입할 수 있습니다.]

팁 메시지로도 떠오른 건데, 상위층으로 올라오면서 커뮤니티 기능이 추가됐다.

비공개글. 대충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우리끼리 떠들 수 있다는 것.

그동안 상위층에 적응하느라 있는지도 몰랐다.

‘어쩐지 상위층에는 글이 많이 없다 했지.’

할 거라고는 커뮤니티밖에 없는 사람들이 왜 이리 조용하나 했더니만 비공개글로 떠들고 있던 모양이다.

루키 그룹에서 관심을 보인다는 오지혁도 커뮤니티에서 모습이 잘 안 보였던 게 이 때문이었다.

루키 그룹의 비공개 방에서 말을 하고 있는 거 같다.

아무튼 멤버들이 만든 비공개글의 비밀번호가…….

[비밀번호를 입력하십시오]

[쁘띠공듀 빵야빵야]

나쁜 놈들.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열심히 떠들고 있다.

아무래도 이쪽에서는 남들 의식 안 하고 대화할 수 있어서.

정체를 숨기고 있는 만큼 공개된 글에서는 내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말을 아껴야 했다.

[니머리 탈모]: ㅋㅋㅋㅋㅋㅋㅋ 업계 포상ㅋㅋㅋㅋ.

[냥냥펀치]: ㄲㅂ 탈모맨이 먼저 당할 줄 알았는데.

[니머리 탈모]: 어리석도다. 물리적으로 안전할 때 까불었어야지!

[정수리 핥짝]: …? 너도 그리 안전하지 않아.

[니머리 탈모]: 넴?

[쁘띠공듀]: 속보) 탈모좌 조만간 잡힐 예정.

[정수리 핥짝]: 경고) 넌 이미 잡힌 상황.

슬프다. 난 왜 잡혀 있는가.

작게 탄식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케이. 노는 건 여기까지 하고.

“상황은 좀 어때? 나한테 들어온 기억으로는 나쁘지 않은데. 전장에 계속 있어서 잘 몰라.”

“나도. 훈련소에 있다가 게이트만 뺑뺑이 돌아서 다른 상황을 모르겠네.”

73층에 들어온 만큼 정보 공유는 필수다.

특히나 나와 핥짝이는 벨브레그와 함께 게이트를 처리하고 다닌 기억이 대부분.

제2 천계 전반적인 흐름이나 분위기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아까, 결혼식 직후 진행된 뒤풀이에서 여러 이야기를 주워듣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그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이제 중앙 귀족이라면서. 얼른 뭔가 들은 게 있을 거 아니야.”

“후후후. 벌써 눈치챘나. 중앙 귀족쯤 되면 후광은 어쩔 수 없군!”

우쭐해진 냥펀의 콧대가 올라간다.

워워, 덕춘아. 콧구멍 찌르면 안 돼.

슬쩍 덕춘이를 어깨에 올리고 대답을 기다렸다.

“이 몸이 귀족 서열 톱 20에 들었노라!”

“오오, 대단해.”

“와아아아.”

일단 호응해 줬다. 핥짝이도 대충 박수를 쳐 준다.

톱 20이면 높은 건가. 이쪽으로는 아는 게 없어서 감이 안 온다.

“후후. 보통 공작이랑 후작이 차지하는 위치라구. 백작은 나 포함해서 3명뿐이야.”

“이게 다 나랑 핥짝이가 열심히 해 준 덕이니 감사하도록.”

“오냐. 그대의 공을 치하하노라.”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냥펀이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여튼 간에.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고 있어. 레지스탕스랑 무력적인 마찰은 거의 없다 보면 되고. 아, 그거 만들어짐.”

책상으로 간 냥펀이 뭔가를 꺼낸다.

“빛의 성소 만들어졌어.”

“엥? 그거 원래 안 만드는 거 아니었나?”

저거 막으려고 그 난리를 쳤는데.

핥짝이도 의아한 눈치였으나 냥펀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쁜 상황은 아닌 거 같다.

“그때랑은 다르지. 이번에는 강제로 지은 게 아니거든.”

냥펀이 대략적인 정보를 알려 줬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존의 성소가 하층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들었다면 이번 거는…….

‘범죄자랑 사망자, 돈을 주고 판 사람들 걸로 만들어졌다는 거네.’

모두가 납득할 만한 방식. 미래가 바뀌었다.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뿔이 잘리지 않았다.

비록 73층에서의 일이지만 확실히 다르다.

게다가 몇 가지 더 다른 점이 있었으니.

“레지스탕스랑 협력?”

“지방에서는 그래. 영주에게 더 나은 처우를 약속받고 토벌에 도움을 주는 거지.”

“군대도 비슷하잖아. 능력만 있으면 신분 신경 안 쓰니까.”

각 지방 영지가 요새화되면서 군대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귀족과 동등한 정도는 아니지만 하층민과 중상층의 격차는 비교적 좁혀졌다는 게 냥펀의 설명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딱 좋은데.

“이상하네.”

“으음, 묘하게 불편하지?”

정말 완전히 멸망에서 벗어났다면 우리가 73층에 있을까?

챕터가 사라지거나, 간단하게 일이 진행되다 클리어되는 게 맞아 보인다.

상위층은 처음인 만큼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었어, 챕터Ⅲ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스템도 말하지 않았던가. 더 나은 미래로 향하고 있다고, 멸망을 피한 게 아니라.

냥펀 역시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입을 다물었고.

- 똑똑

“안으로 들어가겠다.”

냥펀의 집무실로 의외의 인물이 들어왔다.

중앙 귀족이 된 냥펀의 집무실을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존재.

“모두 예를 표하도록.”

“무장한 자는 잠시 무기를 반납하라.”

우르르 몰려온 왕실 기사들이 문을 봉쇄하고 우리를 감쌌다.

그 뒤에 선 이는.

“제2 천계의 2왕자, 가멘 크롬벨이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군.”

국왕 가디 크롬벨의 둘째, 가멘 크롬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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