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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63화 (363/740)

363화 지부장 탈모맨

타이밍 좋게 달려오는 벨브레그와 병사들. 왕자가 공격받았기 때문일까 엉덩이 무거운 귀족들까지 합세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대기하던 개인 가드들까지 왔으니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기동성을 위해 정예들을 이끌고 왔는지 그 외의 병력들은 보이지 않았다.

본대에 있는 수행원들과 물자도 지켜야 하니 당연한 선택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왕자님의 상태는? 출혈이 꽤 나는데.”

“비켜 보시오. 내가 엘릭서를 가지고 있소이다.”

병사들을 밀치고 들어온 귀족들이 부산을 떨었고, 내게 가디슈를 받은 벨브레그가 조심스럽게 그를 바닥에 눕혔다.

이름이 기억 안 나는 귀족 하나가 복부 상처에 엘릭서를 붓는다.

포션 정도만 써도 될 것을 저 귀한 걸 쓰냐. 하긴 뭐, 괜히 탈이 났다가는 같이 출장에 참여한 이들에게도 불똥이 튈 게 뻔하니 과하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게 맞긴 하다.

“이건 설마… 장군, 상처에서 마기가 느껴집니다.”

“설마 악마 놈들이?”

“그건 아닐 걸세. 마계와 연결된 곳이 있다는 보고는 들은 적 없어.”

“하지만 마기가 분명하지 않소, 토파 남작. 최근에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역시나, 내가 사용한 스킬의 마기를 눈치챘다.

신성력을 쓰는 이들인 만큼 바로 느낄 수 있었겠지. 역시 데몬 스피어를 사용하길 잘했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왕자님의 안정이 먼저입니다.”

벨브레그가 귀족들을 말린다.

“마계에서 수작을 부린 건 아닐 겁니다. 정장에서 보고된 것도 없거니와 출장 루트를 계획했을 때 했던 사전 답사에서도 이상은 없었습니다.”

“정찰대와 길잡이도 마기를 느낀 적은 없었죠?”

나도 슬쩍 거들었다.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벨브레그.

다른 귀족들 역시 입을 다물었다. 비록 직접 싸우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귀족은 귀족.

일반인보다 월등히 강력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 마계로 통하는 통로가 생성됐다면 그들이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어떻게 된 건지 상세하게 말하게, 이블아이.”

“습격을 당했습니다.”

결국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건 나.

왕자를 부축하고 있던 사람이자, 유일하게 현장을 목격한 인물이니까.

‘내가 한 거지만 말이지.’

속으로 웃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히몬이 도주한 곳을 가리켰다.

“행진 동안 이어진 몬스터의 공격도 습격자의 짓입니다. 그자가 몬스터를 부리는 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죠. 제가 이쪽으로 달려간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피리 소리라… 자네, 들었나?”

“크흠. 전투가 한창이라 잘 모르겠군.”

“희미하게 들었던 것도 같고. 워낙 정신이 없지 않은가.”

“확실히 들은 게 맞소?”

“놈을 잡으면 나올 겁니다.”

벨브레그가 바로 지시를 내린다.

“습격자를 쫓아라.”

“예!”

병사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간다.

움직임이 날랜 것이 발이 빠른 자들을 이끌고 온 모양.

히몬 그 녀석도 급하게 도망쳤으니 흔적이 남아 있을 거다. 잡히는 건 시간문제.

중요한 건 이제부터.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보나 마나 레지스탕스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귀족들을 습격한 것도 놈들이니 분명합니다.”

“감히 왕족을 노리다니. 이건 결코 좌시할 수 없군요.”

이럴 줄 알았다. 바로 화살이 하얀뿔로 향한다.

대외적으로는 놈들이 귀족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가뜩이나 근처 영지에는 진짜로 레지스탕스 지부가 있다.

굳이 레지스탕스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가디슈는 애초에 레지스탕스로 위장한 이들을 이용해 귀족들을 공격하려 했으니까.

어쩌면 진짜 레지스탕스 일원을 포섭해 움직일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귀족이 몇 명이 사망하는 게 가디슈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빛의 성소를 만드는 명분을 만드는 것.

하얀 나무와 하얀뿔이 완전히 갈라서게 되는 계기.

우연이 아니다. 모두 계획된 거지.

탑 숭배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몰랐다면 모를까 지금은 안 되지.’

바닥에 엎어진 녀석을 바라봤다.

굳이 죽이지 않고 기절시킨 이유.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거니와 현 상태에서 죽어 버렸다가는 그 영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옆에 놔두고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편이 낫지. 통제 가능한 위협은 위협이 아니다, 기회지.

저마다 추측을 해 대는 귀족들 앞에 섰다.

“레지스탕스가 아니었습니다.”

“하면?”

“탑 숭배자입니다.”

슬쩍. 인벤토리에서 탑 숭배자들한테서 뺏어온 증명패를 꺼내 들었다.

뭐라 할지는 이미 정해 놨다.

“전 냥펀 백작의 지시로 탑 숭배자들을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최근 몬스터 세력이 확장되며 복귀했지만 성과는 있었죠.”

자연스럽게 냥펀을 팔아먹었다.

이런 지시는 내린 적도 없으며 나 역시 성과 하나 없었지만.

“오오오오! 냥펀 백작이 그랬단 말이오?”

“과연 능력이 출중한 자입니다. 탑 숭배자, 그 간악한 것들을 쫓고 있었다니.”

“이건 실버 등급이로군. 내가 알기로 실버 등급만 돼도 꽤 강하다고 들었는데.”

“어허. 이블아이는 벨브레그 장군과 함께 긱센에서 승전보를 올린 용사 아니오. 난 진작 알고 있었으외다.”

귀족들은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알긴 뭘 알아, 아저씨야.

저마다 냥펀과 나에 대해 칭찬 한마디씩을 한다.

그들도 탑 숭배자에 대해 알고 있다. 모를 리가 없겠지. 탑의 역사는 길고, 탑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세력은 항상 있었을 테니.

덕분에 말하기 편해졌다.

“습격자 역시 숭배자인 만큼 이번 일을 꾸민 건 그들이라고 볼 수 있죠. 모든 일은 레지스탕스가 한 것처럼 유도할 겁니다.”

“그게 무슨 이득이 된다고.”

“숭배자들은 애초에 혼란을 뿌립니다. 탑이 영원히 있길 바라죠.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가 멸망해야 합니다.”

놈들에 대해 많은 걸 알지는 못했지만 목적 정도는 알고 있다.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 주욱 이어진다. 벨브레그와 귀족들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즉, 진짜로 잡아내야 할 대상은 숭배자라는 것이군.”

“레지스탕스를 부추긴 것도 그들일 가능성이 높소.”

“이 역시 확실한 건 아니지만…….”

바로 그때.

“생포했습니다!”

“이거 놔라! 제기랄!”

히몬을 잡은 병사들이 돌아왔다.

포박된 상태. 그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빼앗은 이들이 벨브레그에게 건네준다.

내가 말했던 피리와 숭배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명패.

모두 내 의견을 뒷받침해 주는 것들이었고.

“진짜였군.”

흐름이 바뀌었다.

하얀 나무와 하얀뿔의 대립에서 하얀 나무와 숭배자로.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출장은 계속해서 진행됐다.

여러 일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는 법.

물자를 보급하고, 영주들을 만나 영지를 제대로 관리하는지 확인했으며, 영주민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민가로 나가 반응을 살폈다.

생포된 히몬은 하얀 나무로 이송된 상황.

뒤늦게 깨어난 가디슈가 내가 공격했다며 날뛰었으나 제대로 들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정신이 살짝 나갔다고 여길 뿐.

습격자도 잡혔고, 정황과 증거도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때문일까 제법 평화롭게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그럼 그렇지.”

출장 막바지, 괴한들이 기습을 해 왔다.

그래. 이럴 거 같았다. 가디슈의 입장에서는 뭐라도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억지로라도 일을 터트린 뒤 귀족이 다치도록 만들 거다.

-구구구구구구

마지막 영지를 지나고 왕성으로 복귀하는 길, 산을 통과해야 했고 적들이 매복하기 딱 좋은 형태였다.

양쪽 언덕에서 일단의 무리가 덤벼들었다. 대놓고 햐안뿔의 상징을 두른 놈들. 저 정도면 제발 봐 달라고 광고하는 수준 아닌가.

어떤 멍청이가 저런 모습으로 기습을 해. 다른 놈들이 레지스탕스인 척하는 게 뻔하다.

노골적이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나.

“다들 전투 준비!”

“왕자님은 마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집중해!”

기습은 진짜였기에 우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귀족들의 마차와 가드가 가디슈를 감싸며 보호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녀석. 답답하겠지. 상황이 안 되면 직접 나서서라도 부상을 입어야 하는데 이렇게 철통 보안을 해 버리면 그럴 수가 없다.

놈의 눈이 빠르게 굴러간다.

-카앙!

적의 검을 쳐 내면서도 가디슈를 감시했다.

아무리 급하다지만 놈이 이렇게 단순한 수를 사용했을 리가 없다.

진짜 노리는 게 뭘까.

“뒤다! 후열을 노리고 있어!”

답은 간단했다.

귀족을 직접 노리는 건 힘들다. 그렇다면 다른 쪽을 공략한다.

규모에 비해 시종의 비율이 높은 상황. 병력은 전방과 귀족들에 몰려 있는 만큼 후열은 비교적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는…….

“에잇! 비켜! 수레 밑이라도 들어가! 머리 내밀지 말고!”

“언니는요!”

“들어가 빨리!”

핥짝이가 있었다.

타깃을 바꾼 거다. 이렇게 된 이상 핥짝이라도 처리하겠다는 심산.

앞에서 덤빈 놈들은 미끼다. 진짜는 이쪽.

-카아아앙!

“어딜 보나! 이쪽에 집중해야지!”

“흐흐흐흐! 아직 여유가 있나 봐?”

문제는 도우러 가기에는 놈들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

애초에 호위 역할을 맡은 만큼 자리에서 이탈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짜증 나게 구네. 진짜.”

파악! 앞으로 파고들며 도끼를 쥔 녀석의 팔뚝을 잘라 냈다.

굳이 목이나 심장을 노릴 필요 있나. 무장 해제면 되지. 전장에서 무기를 쥘 수 없다는 건 죽는 것과 마찬가지.

놈이 급히 뒤로 빠지고 옆에 있던 놈이 앞으로 나선다.

제법 깔끔한 포지션 교체.

바로 발끝으로 땅을 걷어찼다.

-촤아아아악!

“큽! 이 자식이!”

흙이 튀어 오르며 시야를 잃은 녀석이 욕설을 내뱉는다.

이게 참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효과가 좋단 말이지. 스킬과 마법이 난무하는 세계라 그런가, 의외로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건 내성이 없다.

나야 땡큐지만.

반사적으로 머리와 가슴을 보호하는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절삭 (S) Lv.10]

-푸화아악!

허벅지가 그어진 녀석이 비명과 함께 바닥에 엎어졌다.

기동성만 없애 놔도 충분하다.

“죽여! 죽여!”

“확인 사살 제대로 해!”

나머지는 병사들이 알아서 해 주거든.

뒤쪽을 바라보니 핥짝이 역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미 후방에 배치된 병사들은 대부분 당한 상황. 핥짝이와 덕춘이가 활약했으나.

“지켜야 할 곳이 너무 넓어.”

혼자서 전체를 지키는 건 어렵다.

그럼에도 걱정은 들지 않았다. 핥짝이 역시 표정 자체는 어둡지 않았으니.

“슬슬 올 거 같은데.”

게다가 믿고 있는 게 있었다.

가디슈의 계략으로 행진 경로는 하얀뿔 지부가 있는 영지를 중심으로 짜였고, 딱 한 명 그곳의 지부장으로 녀석이 있었으니까.

때마침 마지막으로 들른 영지가 그 녀석이 있는 곳이었다.

가디슈의 목적은 이미 말해 둔 상황. 혹시 모를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녀석.

“내가 왔다!”

탈모맨.

“사칭범들 다 쓸어버려!”

“예! 지부장님!”

“어딜 하얀뿔인 척 구는 거냐, 이놈들아!”

갑작스레 난입한 이들이 괴한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상황, 우리 쪽 병사들이 당황했으나.

“새, 새로운 적인가?”

“아니, 우릴 돕고 있는데?”

곧 적대적인 세력이 아닌 걸 파악하고는 기세를 올렸다.

“하얀뿔 루멘 지부장 탈모맨이 도우러 왔다!”

당당히 본인의 정체를 밝히는 녀석.

우선순위로 후방을 보호한다. 핥짝이에 이어 탈모맨 무리까지 합세하니 놈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가디슈의 표정이 구겨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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