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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62화 (362/740)

362화 무슨 소리지?

숲 안으로 달려갔다. 지휘자 입장에서는 돌발 행동이나 마찬가지.

벨브레그 역시 당황하며 내 이름을 불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안쪽을 맡기지!”

실력은 검증되었으며 몬스터가 들이닥치기 전, 선재 공격을 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으니까.

뭐, 그러려고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가디슈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움직이는 거다.

“여기서 꼬리를 잡아야 돼.”

그동안 덤벼든 몬스터들이 가디슈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심증. 물증이 없다.

굳이 숲 안으로 들어온 이유. 놈에게 내 스킬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도 있지만 놈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는 의도도 있다.

분명 미약하지만 피리 소리를 들었다. 신경 쓰지 않고 넘길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난 아니었다.

- 파앙!

바닥을 박차며 방향을 틀었다. 대충 이쪽 방향에서 소리가 들렸던 거 같은데.

“키햐아아악!”

“케르르륵!”

몬스터 무리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제대로 온 모양.

빠르게 종류를 살폈다. 프로그맨, 빅마우스 하운드, 팔각귀. 그 외 기존에 덤벼들던 놈들이 섞여 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단 말이야.”

- 뻐어어억!

정면으로 달려드는 팔각귀의 얼굴을 뭉개 주며 생각했다.

검은 몸통에 8개의 뿔이 팔다리 대신 달린 녀석이 그대로 땅에 처박힌다. 몸통에 위치한 얼굴이 찌그러진 게 즉사가 분명하다.

이어 프로그맨의 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케르르륵!”

점액과 피가 튀어오른다. 한순간 시력을 잃은 녀석의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피거품을 뱉으며 바닥에 엎어지는 프로그맨을 걷어차며 아가리를 들이미는 하운드턱을 올려 찼다.

충격에 이빨이 부서지며 눈이 돌아간다. 놈의 목을 움켜 잡고 시한 폭탄을 설치했다.

“폭탄 받아라!”

투포환을 던지듯 몬스터 무리 한가운데 놈을 날렸고.

[시한폭탄 (S) Lv.2]

- 콰아아아앙!

그대로 폭파시켰다. 폭발에 휘말려 나가떨어지는 놈들.

좋네. 한 마리로 여러 마리 잡을 수도 있고.

그건 그거고.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세계가 개판이 되었다지만 이놈들은 사는 환경이 다른 놈들이다. 몰려다니는 게 가능할까?

프로그맨은 습지. 팔각귀는 무덤. 하운드야 아무 데서나 사니 그렇다 쳐도 메두사는 암석 지대에서 사는 놈이다. 여긴 숲이고.

물론 게이트가 터지면서 무작위로 튀어나왔을 가능성도 있기는 한데.

“그래도 이렇게 사이좋게 돌아다니는 건 말이 안 되거든!”

[파이어 밤 (S) Lv.10]

- 콰아아아앙!

포위하듯 둘러싼 녀석들에게 화끈한 불맛을 보여 줬다.

강력한 폭발에 몬스터의 몸이 터져 나간다. 화상을 입은 채 뒤로 빠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털이 그슬린 녀석이 포악한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공격성은 여전했으니…….

“하여간 몬스터들은 얌전한 맛이 없어.”

휘릭.

몸을 회전하며 앞에 있는 녀석의 몸통을 그었다.

가죽을 뚫고 척추를 지나 빠져나오는 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하운드가 바닥에 엎어지고.

“빵야.”

[오로라 빔 (S) Lv.10]

- 콰지지직!

손끝으로 쏜 광선이 팔각귀와 메두사의 몸을 뚫고 지나간다.

신체 일부가 사라진 놈들이 마구잡이로 팔다리를 휘두른다.

죽기 전 마지막 발악. 흘낏 놈들을 바라봤다. 마음 같아서는 확인 사살을 하고 싶은데 당장은 피리 소리의 원인을 찾는 게 급하다.

그냥 내버려 둬도 과다 출혈로 죽긴 하겠지만 혹시 모르니.

쿵. 발을 굴렀다.

[디그 (B) Lv.9]

- 쿠르르르릉

한순간 꺼진 대지. 어디 한군데씩 맛이 간 괴물들이 구덩이로 떨어진다.

이어 다시 바닥을 강하게 내려찍자.

“키하아아악!”

“크하아아아!”

충격을 이기지 못한 땅이 무너지며 놈들을 뒤덮었다.

대충 생매장해 두면 쫓아오지는 않겠지. 이쪽은 이 정도로 하고.

[외톨이의 길 (A) Lv.5]

- 스르르륵

은신을 몸에 두른 뒤 움직였다. 가능한 인기척이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숲 안으로 파고들었다.

역시나.

“사람의 흔적이 있어.”

흔적을 지우려 한 거 같지만 나한테는 안 통한다.

[히몬의 발자국]

-NPC 히몬의 발자국입니다.

-감쪽같이 지웠네요!

권능이 있는 이상 무슨 짓을 하든 들키게 되어 있다.

우리를 따라온 건가. 뭐든 찾아가면 알겠지.

발자국을 따라 달렸다. 갈수록 발자국이 선명해진다.

이 정도면 쫓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내가 오는 걸 알아차리고 급하게 도망치고 있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왜냐…….

“후욱, 후!”

저기 열심히 도주하고 있는 NPC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쫓아 오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으나 은신을 간파하지는 못했다.

그의 손에 들린 한 뼘 크기의 피리.

[나각의 피리 (AAA)]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전설을 아나요?

-제압한 몬스터를 부추겨 움직일 수 있습니다.

-강력한 몬스터일 경우 실패할 수 있으니 주의!

저걸로 몬스터들을 끌고 온 모양.

특수한 목적이 있지 않다면 그다지 쓸모없어 보인다. 제압을 한 후에야 쓸 수 있는 아이템이니까.

성능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몬스터를 끌고 왔다는 증거라는 것이 중요하지.

- 파앗!

발을 박차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이어 나뭇가지를 밟으며 질주.

놈의 머리로 뛰어내렸다.

빠극!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히몬이 앞으로 엎어진다.

“크학!”

무릎으로 놈의 어깨를 짓누르며 품에서 단검을 꺼내 목에 댔다.

“가디슈의 명을 받은 게 너냐?”

“누, 누구냐!”

콰악!

놈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대로 머리를 붙잡고 땅에 박았다.

얼굴을 보여 줄 필요는 없지. 단검을 좀 더 안으로 집어넣었다. 가느다란 혈선이 생긴다.

“동작 그만. 괜히 싸워서 피 볼 필요는 없잖아, 히몬.”

움찔. 히몬이 움직임을 멈춘다. 설마 본인의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거겠지.

지금쯤 머리가 복잡할 거다.

“가디슈의 목적이 뭐지?”

“네놈, 등반가구나.”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놈이 말했다.

오호라. 제법 머리가 굴러가는 녀석인가.

“다른 놈들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 가디슈 님의 사람이면 날 공격할 이유가 없고. 그렇지 않아?”

“똑똑하네.”

푹.

“크하아악!”

단검을 역수로 쥐고 어깨를 찔러 줬다.

“멍청하기도 하고. 본인 입장을 모르잖아. 하여간 탑 숭배자 놈들은 마음에 안 들어.”

“그, 그걸 어떻게!”

“관상이 그래, 관상이. 어딜 봐도 범죄자 상이잖아.”

이놈도 본인이 NPC인 걸 자각하고 있다.

권능을 사용해 정보를 읽어 냈다.

[히몬- NPC]

-탑 숭배자입니다.

-그리 대단한 위치는 아닙니다.

역시나 탑 숭배자. 이쯤 되면 숭배자들은 모두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이제 이놈을 포박해 끌고 가면…….

- 스아아아악!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살기!

엄청난 열기가 머리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반쯤은 본능적으로 히몬의 멱살을 잡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 푸화아아악!

내가 있던 자리에 불길이 치솟는다.

순백의 불길. 신성력을 태우며 불타오르는 초고온의 공격.

정통으로 맞았다면 나라도 무사하기 힘든 위력이다.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봤다.

“가디슈.”

“이런 이런. 아직 그 녀석은 잡히면 안 돼.”

언제 따라왔는지 가디슈가 서 있다. 한 손에는 아까와 같은 새하얀 불덩이가 떠올라 있다.

실버 등급이라고 했던가. 저번 발자칸에서 만났던 녀석도 실버 등급이었는데.

‘이 녀석이 더 강해.’

당시 싸웠던 제르바는 변신을 비롯한 특이 능력 때문에 골치 아팠지 전투력만 따지면 엄청나게 강하지는 않았다.

반면 이 녀석은 전투에 특화된 느낌.

본인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지 여유롭기 그지없다. 쯧쯧 혀를 차며 내게 잡힌 히몬을 내려다본다. 눈에 경멸이 가득하다.

“히몬 멍청한 녀석아, 고작 이런 일도 제대로 못 한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버러지 같은 놈. 꼭 내가 움직이게 만든단 말이야.”

머리를 쓸어 올린 녀석이 입꼬리를 올렸다.

주변을 살폈다. 놈이 본색을 드러냈다는 건.

“입막음이라도 하려는 건가.”

“어차피 다 정리하려 했어. 네놈들은 좀 거슬리거든.”

놈도 아는 거다. 나와 멤버들이 들어오면서 흐름이 바뀌었다는 걸.

더 나은 미래의 가능성. 숭배자인 녀석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졌겠지.

나와 핥짝이를 따로 빼낸 것도 이 때문일 터. 뭉쳐 있을 때보다는 따로 떨어트려서 없애는 게 안전하니까.

“얌전히 있었다면 다음 영지까지는 살 수 있었을 텐데.”

“다음 영지?”

“출장 도중 레지스탕스가 습격. 함께 행차하던 귀족 전원 사망. 왕자인 나도 부상을 입게 되지. 하얀 나무와 하얀뿔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완벽한 시나리오 아닌가.”

“지방에서 당한 귀족들도 네놈 소행이군.”

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빙긋 웃어 보일 뿐.

그거면 충분했다.

녀석이 한발 다가왔다.

“네놈 때문에 시나리오를 바꿔야 하잖아. 왜 귀찮게 하고 그래, 히몬.”

“네, 넵!”

“뭐 하고 있지? 임무 마저 해야지.”

“알겠습니다!”

벌떡 일어선 히몬이 도주하려 한다.

나 역시 놈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 콰아아아아앙!

“크윽!”

순백의 불길이 치솟으며 방해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히몬.

입가를 비튼 가디슈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온다.

“좋아. 이런 시나리오가 좋겠어. 임무 중 레지스탕스로 전향한 이블아이가 왕자를 습격.”

지익.

놈이 스스로의 팔을 손톱으로 긁는다.

피부가 갈라지며 피가 후두둑 떨어진다.

“때마침 도착한 벨브레그 장군이 왕자를 구하고 이블아이는 공개 처형. 헬멧 쓴 친구는 다음 습격 때 귀족들이랑 같이 죽이면 될 것이고.”

피 묻은 손가락을 빙글 돌린 녀석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히죽거린다.

“그래, 냥펀 백작은 이블아이와 공조한 것으로 반역죄. 죽을 때까지 감옥에 처박아 둬야겠군. 등반가들은 이쪽이 더 고통스럽거든. 무의미하게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주욱. 녀석이 이번에는 배를 긁는다.

옷이 찢어지며 기다란 상처가 생긴다.

- 구구구구구궁

저 멀리 발소리가 들려온다.

왕자인 가디슈를 찾기 위해 병력이 움직이고 있는 거겠지.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이블아이? 기껏 잡은 녀석은 도망갔고 넌 날 공격한 게 됐는데?”

녀석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몸을 똑바로 일으키며 놈을 향해 다가갔다.

- 떨그렁

쥐고 있던 검을 놓았다.

싸울 의지를 잃은 것처럼 바닥만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왜? 지금이라도 살려 달라고 빌려고?”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느니 킬킬 거린다.

이상한 놈이네.

“무슨 소리야, 가디슈.”

[아스트랄 레인보우 (S)]

[버프 다이스 (S) Lv.8]

[3]

[가속]

- 콰앙!

징조 없이 빠르게.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섬광과도 같은 속도.

속도에 몸을 맡기며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스킬을 사용했다.

그 누구도 내가 범인이라고 예측할 수 없는 스킬.

[데몬 스피어 (S) Lv.3]

시커먼 기류와 함께 생성된 창을 힘껏 뻗었다.

- 푸국!

놈의 몸에 틀어박힌 창.

마기가 넘실거리더니 이내 창이 사라진다.

울컥. 쏟아지는 피.

가디슈가 놀란 눈으로 복부를 내려다봤고.

“괴한이 널 공격하고 도망간 거지.”

- 왕자님!

- 어서 찾아! 움직여!

뻐억!

놈의 턱에 주먹을 갈긴 난 기절한 놈을 붙잡고 왕자를 찾으러 오는 벨브레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장군! 왕자를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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