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56화 (356/740)

356화 안 통해

찢어진 경계 안으로 몸을 던졌다.

파무스가 발악을 했으나 내겐 의미가 없었다. 그동안 쌓아 온 업보로 올라간 정신 보호 레벨이 몇인데.

“다시 생각하니 화나네.”

결과적으로는 좋은데 그동안 겪었던 정신적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이가 갈린다.

별수 있나. 내가 자초한 일인데.

쯧, 혀를 차며 내부를 둘러봤다. 이번 게이트는 여러모로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

더 무서운 건 이런 종류의 게이트가 한두 개 아닐 수 있다는 것.

‘파무스도 있었으니 다른 에이션트 몬스터도 있을 거야.’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으나 각 몬스터의 시초가 되는 괴물들이 분명히 존재할 거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종류의 위협. 미리 알아 두고 겪어 놔야 한다. 그래야 대응을 하지.

파무스의 악몽에서 벗어난 공간은 적막했다.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으며, 전신을 압박하던 살기와 거대한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녀석의 말마따나 본체가 저놈이 아닐까 싶을 정도. 방심은 하지 않았다. 언제 뭐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탑이다.

“게이트도 별반 다르지 않아.”

짐꾼 일을 할 때 느꼈다.

물론 예전과는 다르다. 난 각성자가 됐으며 탑 내에서도 입지가 생겼으니까.

그럼 뭐할까, 심장이 뚫리면 죽고 머리가 터지면 죽는데.

단 한 번의 실수와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구조 자체는 비슷하네.”

혀를 씹으며 머리를 비웠다. 잡생각이 너무 많았다.

탈모맨이 꿈의 영역에서 싸우고 있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다.

파악! 발을 박찼다. 안쪽으로, 놈의 본체가 있을 만한 곳으로 달렸다.

“키키키킥!”

“캬르르륵!”

몬스터가 없는 곳은 초반뿐이었는지 괴상하게 생긴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모르는 종류.

그도 그럴 것이.

[퍼스트 팬텀]

-팬텀의 조상!

-초기 상태의 몬스터입니다.

-고대종입니다.

[퍼스트 녹턴]

-녹턴의 원형.

-보다 원초적이며 강렬한 악몽을 선사합니다.

-고대종입니다.

파무스가 이쪽 계열 몬스터의 시초라고 했던가.

녀석을 지키기 위해 배치된 몬스터 역시 지금의 몬스터와는 다르다.

고대종.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재의 모습이 되기 전인 괴물.

으레 그러하듯 고대종이란 놈들은.

“캬하아아악!”

지금의 몬스터보다 강력했다.

분명한 악의와 공격성을 지닌 놈들.

까그그그극!

녹턴의 손톱이 갑옷을 긁고 지나갔다.

눈을 가늘게 떴다.

‘갑옷이 긁혔어?’

본래 정신체에 가까웠어야 할 놈들인데 영체와 육체가 뒤섞였다.

아니, 단순히 섞인 게 아니다.

-스아아아

검을 휘두르자 검이 녹턴의 몸을 통과했다.

영체와 육체. 서로의 장점만을 지니고 있다.

[카메라 (B) Lv.2]

찰칵.

팬텀과 녹턴의 모습을 찍었다.

기록해 둘 생각. 연합 사람이든 바깥사람이든 마주칠 수 있는 놈들이다.

가능한 한 기록해 알릴 생각.

오케이. 사진은 잘 나왔으니…….

“이제 죽어.”

[영혼 찢기 (S) Lv.10]

[절삭 (S) Lv.10]

[러브 앤 피스 (S) Lv.10]

“캬하아아아악!”

“끼아아아아!”

연달아 휘두른 검격에 놈들이 찢겨 나간다.

다른 속성이었다면 또 모르지만 어둠 속성이면 나한테 안 되지.

-스르르르르

-사아아아악!

놈들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지만.

방금 덤벼든 놈들은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걸까. 벽과 천장을 뚫고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쉽게 지나갈 리가 없지.

슬쩍 내가 통과한 경계의 틈을 살폈다. 어지간히 신경 쓰였는지 틈이 메꿔졌다.

반투명한 공간 속, 탈모맨이 가짜 파무스와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위태롭지만 어떻게든 버티는 중.

저쪽은 탈모맨이 알아서 잘하겠지. 희망 사항이 아니라 믿음이다. 녀석은 강하니까.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함께합니다!]

-촤아아아악!

-스거억!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놈들의 신체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팔다리.

확실히 강하다. 사실상 6성급 이상으로 봐야 할 정도로.

하지만…….

[오로라 빔 (S) Lv.10]

-찌유우우우우웅!

“크하아아악!”

“카흐으으윽!”

상성이 있는 이상 못 상대할 수준은 아니다.

[펠라인 세트의 속성이 활성화됩니다!]

번쩍!

펠라인의 남색 왼쪽 다리가 빛난다.

각 파츠마다 지니고 있는 속성. 그에 따른 보정치.

신성력과 오로라 빔 모두 빛 속성인 만큼 파괴력은 대단했고.

[파이어 밤 (S) Lv.10]

-쿠콰콰콰콰콱!

전력 질주하는 길에 터트린 파이어 밤은 개떼같이 몰려오던 놈들을 폭사시켰다.

전멸시킬 생각으로 한 거였건만 몇 마리가 살아남았다. 영악한 놈들. 다른 동료의 등 뒤로 숨거나 짧은 찰나에 벽 뒤로 스며들어 충격을 최소화했다.

이래서 고스트 타입은 장애물이 없는 곳에서 쓸어버려야 한다니까.

그래 봤자.

[시한폭탄 (S) Lv.2]

[시한폭탄 (S) Lv.2]

[시한폭탄 (S) Lv.2]

.

.

.

-콰아아아앙!

한 번 더 때려 주면 그만이지만.

확인 사살은 기본 중의 기본. 파이어 밤을 터트리며 지나간 자리에 시한폭탄을 심어 뒀다.

연쇄적으로 쏟아지는 불길.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놈들이 사그라들었다.

이걸로 장애물은 통과…….

-빠아아아악!

“큭!”

갑작스러운 충격에 벽에 날아가 박혔다.

나를 기점으로 함몰된 벽에서 파편이 우수수 떨어진다.

등 터지겠네. 이를 악물고 앞을 보자 거대한 뭔가가 있었다.

천장까지 닿는 머리. 시커먼 기류로 감싸진 몸.

대체 언제 나타난 거야. 아니, 그보다 저건.

[퍼스트 파우스트]

-7성급 고대종.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

-고대에는 8성급까지 몬스터가 존재했다고 전해집니다.

“7성? 사기 작작 쳐야지!”

듣도 보도 못했다. 몬스터는 6성급까지 존재한다는 게 정설이다.

어디까지나 현대의 기준에서는 말이지.

더 놀라운 건 7성을 넘어 8성급 몬스터도 나타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쉽게 나타나지는 않을 거다. 파무스와 같이 에이션트 몬스터가 있는 곳에서나 나타날 테니까.

[Tip. 고대, 퍼스트 몬스터들은 게이트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팁 메시지.

그것참 고맙네. 밖으로는 안 나와 줘서.

그럼 뭐하나… 게이트를 클리어하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들어가면 마주치게 될 텐데.

난이도 한번 기가 막히게 짜 뒀다.

“아주 세계가 멸망하라고 고사를 지내는구나.”

혼돈검을 움켜쥐었다.

이 빌어먹을 탑은 까도 까도 괴상한 것들이 계속 나와.

괜히 온갖 세계가 망한 게 아니라 이건가.

예상치 못한 괴물들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했다. 재앙이 60층대에 나온 만큼 상위층에는 더한 놈들이 나타날 거라고.

“구어어어.”

놈이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고통에 비틀어진 원귀의 얼굴이 몸 곳곳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애초에 파우스트란 몬스터 자체가 성불하지 못한 원혼과 악령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괴물이다.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강하긴 하겠지만 근본은 바뀌지 않을 터.

[칭호, 부활한 교단의 성자가 찬란하게 빛납니다!]

“내 친히 성불시켜 주마. 쁘─멘!”

콰앙!

신형을 날렸다.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주먹을 슬라이딩을 피하며 좌측으로 파이어 밤.

폭발의 반발력으로 90도에 가까운 각도로 방향을 전환했다.

날 깔아뭉개기 위해 내리친 발이 애꿎은 바닥을 박살 냈다.

“그아아아악!”

-끼아아아아!

-끄으으으으!

놈이 아가리를 벌리니 그 안에서 수많은 악령이 튀어나왔다.

온갖 디버프를 걸며 정신을 좀먹는 놈들.

[정신 보호 (SSS) Lv.3]

[저주 내성 (S) Lv.10]

[마법 무효화 (S) Lv.9]

괜찮다. 버틸 만하다.

오히려 악령들 때문에 시야가 가리는 게 더 거슬린다.

아니나 다를까.

-콰아아아앙!

사각지대로 파우스트의 주먹이 날아와 꽂혔다.

정신없이 떠오르는 보호 스킬들.

좁은 통로. 거대한 몬스터. 시야를 가리는 잡것들.

허공을 가득 메꾼 악령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악령에는 악령으로.

“가서 먹어.”

[집착하는 악령 (S) Lv.1]

-끼아아아아!

70층에서 S급까지 올린 악령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그동안 더덕이 먹이로 쓰였던 울분을 토해 내는 걸까, 난폭한 기세로 파우스트의 원귀들과 난투극을 벌였고 그사이 난…….

[칭호, 밤을 부르는 자가 발휘됩니다.]

[밤이 찾아옵니다.]

[버프 다이스 (S) Lv.8]

[4]

[가속]

버프를 몸에 두르고 벽을 박찼다.

가속의 효과로 움직임이 더욱 빨라진다.

거기에 파이어 밤으로 추진력을 더 했으니.

-쐐애애애액!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로 벽, 천장, 바닥을 박차며 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깨에서 허리로. 관자놀이에서 턱으로. 허리를 베고 팔을 그었으며 등과 다리를 갈라냈다.

나를 잡기 위해 주먹과 발을 마구 휘둘러 대는 파우스트.

-콰앙!

코앞까지 날아온 주먹을 피해 파이어 밤을 터트렸다. 순식간에 틀어진 몸. 주먹이 스쳐 지나가는 찰나 녀석의 팔뚝을 잡았다.

[달라붙기 (AA) Lv.1]

“그어어?”

몸을 날린 속도 그대로 팔을 잡아끌자 힘을 이기지 못한 녀석이 딸려온다.

균형을 잡기 발을 내딛는 녀석.

어림도 없지.

[오로라 빔(S) Lv.10]

광선이 무릎을 뚫고 지나갔다.

버프를 받은 이상 내 신성력은 900대. 아무리 7성급 괴물이라 할지라도 역속성의 대미지는 버티기 힘든 것이었고.

쿠웅!

거대한 녀석이 무릎을 꿇었다.

이걸로 끝.

-촤아아아악!

-사가가각!

버프 다이스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사방으로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신성력을 머금은 검에서 광채가 쏟아져 나오고.

“그아아아아악!”

-끼아아아악!

순식간에 난도질당한 녀석의 몸에는 그물처럼 그어진 상처가 새하얗게 타올랐다.

놈의 몸에 돋아난 원혼의 얼굴들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른다.

귀가 터질 것 같다. 맨드레이크의 비명과 동급. 어쩌면 그 이상.

“좀, 닥쳐!”

-푸욱!

미간을 향해 힘껏 찔러 넣은 검.

신성력을 아낌없이 불어넣었다. 순백의 광채가 놈의 안으로 파고든다.

수십, 수백 번의 검격으로 갈라진 피부에서 빛이 쏟아져나온다. 막대한 신성력에 파우스트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그그그극

-퍼어어어엉!

한계를 이기지 못한 녀석이 터져 나갔다.

그야말로 빛의 폭발. 놈의 살점 하나까지 모두 빛에 소멸했다.

남은 거라고는 녀석이 뱉은 검은 구슬 하나.

[고대의 정수]

-퍼스트 몬스터에게만 나오는 결정체.

-짙은 에너지를 머금고 있습니다.

마정석 같은 건가.

일단 챙겼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닌 듯하니.

후우. 숨을 고르고 안으로 전진했다. 망할 파우스트 때문에 체력이 쭉 빨린 기분이었으나 멈춰 있을 시간은 없으니까.

중간 보스 같은 놈이 나왔으니 파무스의 본체도 근처에 있을 거다.

역시나.

“찾았다.”

돌로 이루어진 돔. 그 중앙에 위치한 단상.

죽은 자를 위한 안식처인 양 하얀 천이 덮인 곳 위에 누워 있는 파무스가 보였다.

[파무스]

-본체입니다.

-영원한 악몽을 꾸는 존재.

-현실을 피해 꿈으로 도피한 자는 자유로울까요?

깡마른 몸에 창백한 얼굴. 온몸에 흉터와 화상 자국이 가득하다.

놈 위로 떠 오른 메시지창.

[고통 무효화 (SSS)]

[동면 (S)]

[에너지 드레인 (SS)]

동면과 에너지 드레인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가짜 파무스한테 고통 무효화가 왜 뜨나 했더니만 본체에 적용되는 효과였다.

이게 녀석의 본모습이라는 거지.

척 봐도 뭔가 사연이 있을 거 같… 기는 개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번뜩!

위기를 느낀 걸까, 녀석이 눈을 떴다.

그 위로 떠오르는 메시지.

[서버 최초! 끊이지 않는 악몽의 단상에 들어섰습니다!]

[악몽은 사람이 꾸는 법.]

[에이션트 나이트메어, 파무스의 과거를…….]

“안 궁금해!”

-서걱

검 끝이 놈의 목을 베었다.

[게이트 클리어!]

이제야 만족스러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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