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55화 (355/740)

355화 현실과 꿈의 경계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는 존재.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부터 궁금했다. 이번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대체로 5, 6성급 몬스터.

이것 자체로는 이상하지 않다. 고위급 몬스터가 나오는 게이트가 없는 것도 아니고.

다만 신경에 거슬렸던 부분은…….

“탈모맨, 고위 몬스터 나오는 게이트에 보스몹이 있냐?”

“없지?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없어.”

이거다.

이런 종류의 게이트는 보스 몬스터가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보스몹이 무엇이냐. 게이트 내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높은 서열에 있는 몬스터 아닌가.

일반 몬스터 중 가장 높은 등급은 6성. 여기서 튀어나오는 팬텀 로드가 그렇다.

어지간한 던전이었다면 그놈이 보스여야 정상.

여러모로 기존의 상식을 깨 버리는 게이트다.

아니지.

‘우리가 아직 못 만난 것뿐일지도 몰라.’

지구는 이제 막 멸망의 과도기에 접어든 상황.

반면 이곳은 과도기를 넘어 멸망을 향해 질주 중인 세계다.

냥펀의 말로는 더 이상 탑으로 불려가는 천족이 없다고 했던가.

따지고 보면 아직 우리 세계에는 재앙도 몇 마리 없다. 혼돈의 파편은 있지도 않고.

보지 못했다고 그 존재 자체가 없는 건 아니라는 뜻.

다르게 말하면.

[끊이지 않는 악몽의 주인, 파모스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새로운 종류의 괴물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찌이이이익!

공간을 찢듯이 나타난 괴물.

형체가 일정치 않던 내부가 비틀리고 무너진다.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날 것 같은 풍경이었으나 나와 탈모맨은 침착했다.

“끄응.”

반응을 보아하니 탈모맨 역시 컨디션이 아주 좋지는 않아 보였지만…….

신성력과 마기로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정신 보호 레벨 자체가 바뀌지 않는 이상 부담이 생긴다.

나 역시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

뭐가 됐든 놈은 어둠 속성. 마기가 없는 이상 신성력이라도 둘러야 한다.

-콰아아아앙!

일그러지던 공간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보스가 등장했다.

“음?”

“저게 뭐야.”

그동안 봐 왔던 몬스터와는 전혀 다른 느낌.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기세가 풍겨 나온다.

게다가.

“너희는 또 무슨 짓을 할 거야?”

말을 한다.

겉모습만 보면 소년에 가까운 형태였으나, 시커멓게 물든 눈과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사이한 기운.

팬텀 로드마저 두려움에 떠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즉

정보부터 확인했다.

[파모스]

-몬스터의 시초 중 하나.

-에이션트 나이트메어입니다!

-영물과 몬스터, 재앙과 혼돈. 그 경계 어딘가에 있습니다.

-멸망의 과도기 중반을 넘어선 이후 나타납니다.

“에이션트 몬스터?”

처음 들어 보는 종류다.

몬스터의 시초라니, 근원이 되는 놈이라는 거 아닌가.

‘따지고 보면 눈의 정령도 엘프와 드루이드의 시초기는 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갑작스레 이딴 괴물이 나올 줄이야.

난 마지막 줄을 유심히 봤다.

과도기 중반을 넘어선 이후에 나타난다라.

역시 저게 조건이었나.

차라리 재앙이었으면 나았을 텐데. 그놈들은 까다롭기는 해도 파훼법만 알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으니까.

이놈은…….

“너희도 꿈을 꿀 거야. 그치? 좋은 꿈을 꿔?”

-우우우우웅!

그 자체로 강한 놈이었다.

공간이 일그러진다 싶더니 사방에서 시커먼 송곳이 길게 뻗어 나왔다.

굉장히 빠른 속도. 앞뒤, 좌우, 위아래 할 거 없이 마구잡이로 쏟아진다.

불규칙하면서도 위험한 일격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송곳 하나를 튕겨 내고 몸을 굴려 공격을 피했다.

-파가가가각!

연쇄적으로 송곳이 꽂히며 검은 선이 공간을 메꾼다.

관통력이 장난 아니다. 어지간한 방어구로는 못 막을 거 같은데.

-슈욱!

“쉴 틈을 안 주는구만!”

다리 바로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송곳.

허리에 힘을 줘 몸을 비틀었다.

-까드드드득!

갑옷을 긁고 천장에 처박힌 송곳을 향해 엘보우를 날렸다.

-콰창!

공격력에 비해 내구도는 약하다.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것만 조심하면 될 거 같은데.

“탈모맨, 옆을 노려!”

좋은 정보는 바로 공유해야지.

때마침 녀석의 옆구리를 향해 송곳이 뻗어 나왔다.

“옆구리 시림 킥!”

-빠각!

즉각 반응한 탈모맨이 옆차기를 날린다.

숙련된 솜씨. 정확한 타격. 초인적인 육체와 권능이 합쳐진 파괴력.

-콰아아앙!

송곳이 그대로 깨져 나갔다. 날카로운 파편이 바닥에 꽂히고, 파모스가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뾰족한 게 싫어?”

“그럼 좋냐? 좋으면 맞아 보던지.”

파앙!

발을 박차고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력이 순환하며 신체 능력이 올라간다.

적을 향해 돌진하는 건 수십 수백 번도 더 해 봤으며, 그 속도를 이용해 검을 휘두르는 건…….

‘숨 쉬듯이 할 수 있어.’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절삭 (S) Lv.10]

[도축 (S) Lv.10]

[영혼 찢기 (S) Lv.10]

등반 초기, 아펠리오스를 처음 만났던 날 놈이 내게 휘두른 검이 이러했을까.

한 줄기 섬광이 놈의 목을 노렸다.

빈틈을 정확히 노려 들어가는 검격.

한 박자 느리게, 놈의 눈이 검로를 따라간다.

-찌이이이익!

-서걱!

깔끔하게 목을 베고 나오는 검.

느낌이 왔다. 정확히 들어갔다.

어지간한 놈들은 여기서 쓰러졌을 테지만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영물도 영혼 수복을 했어. 이놈도 할지 몰라.’

영혼 찢기가 태생 S급 스킬인 만큼 강력하기는 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놈은 지금껏 본 적 없던 유형의 몬스터고.

-파바바바박!

-콰자자작!

나를 노리고 들어오는 송곳을 피해 뒤로 몸을 날렸다.

한 번으로는 부족해 구르기까지 하고 나서야 공격이 멈추었다.

은근 까다롭네. 일직선이라 피하기는 쉬운데 수가 너무 많아서 피할 공간이 없다.

코를 찡그리며 놈을 노려봤다.

떨어지기 직전이었던 목이 저절로 자리를 찾아가 달라붙는다.

상처 부위가 조금씩 사라지는 게 재생 능력이 있는 거 같은데.

녀석이 희미하게 웃었다.

“칼에 찔리는 꿈은 많이 꿨지.”

스윽. 손끝으로 목덜미를 쓸어내린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영혼이 찢기는 고통도 말이야.”

미간을 좁혔다.

‘손을 움직여?’

분명 제대로 들어갔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충격이 들어간 게 손끝으로 느껴졌다.

움직일 수 없어야 정상이다. 영혼 찢기로 갈라낸 곳은 말을 듣지 않으니까.

그사이 영혼을 회복한 걸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뭔가 이상한데. 부자연스럽다. 손을 움직이는 것도, 말하는 것도.

묘하게 싱크가 안 맞는다고 해야 하나.

그 전에 목이 잘렸었는데 저렇게 담담하다고?

“움직이지 못하는 게 처음에는 무서웠어.”

[고통 무효화 (SSS)]

[웅크린 아이 (SSS)]

권능을 통해 보이는 메시지.

저거였군. 고통 무효화.

괜찮다. 아픔을 못 느끼더라도 대미지는 분명히 누적…….

-쿠우우우웅!

“커흑!”

징조 없이 나타난 검은 발이 나를 짓밟았다.

육중한 무게. 바닥에 처박힌 몸이 터질 듯했다.

갑옷조차 비명을 질러 대며 삐거덕거린다.

“공, 이블아이!”

탈모맨이 소리를 질렀다. 나를 돕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송곳이 쏟아져 나와 여의찮았다.

-쾅! 쾅! 콰아아앙!

쉬지 않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검고 거대한 발.

충격이 온몸을 강타한다. 갑옷을 넘어 내부까지 치미는 힘.

[땅굴 이동 (AAA) Lv.5]

-쿠르르르릉

급한 대로 땅굴 이동을 사용해 몸을 뺐다.

잠깐이라도 몸을 회복해야 한다.

땅속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벌어야…….

[끊이지 않는 악몽이 몸을 비틉니다.]

“뭐?”

-파앙

움직이던 경로가 저절로 바뀌더니 밖으로 몸이 던져졌다.

눈앞에 있는 건 파모스.

“여긴 내 꿈이야.”

[현 게이트는 파모스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있습니다.]

놈의 의지로 움직이는 게이트라.

어쩐지 망할 게이트가 안 없어지고 계속 몬스터를 뱉는다 했더니.

이 녀석이 닫을 생각이 없는 한 게이트는 얼마든지 열릴 거다.

[파이어 밤 (S) Lv.10]

[러브 앤 피스 (S) Lv.10]

-콰아아아아앙!

폭발이 놈을 집어삼켰다.

이번에도 역시나 놈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생각도 없는 거 같다.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콰과과과과광!

-쿠우우우웅!

연달아 폭발을 일으켰다.

아예 대놓고 오로라 빔으로 머리를 노리기까지.

-찌유우우우웅!

오색 광선이 놈의 머리를 날려 버리며 벽을 두드린다.

죽어야 정상이다.

생명체인 이상 머리가 날아가면 죽으니까.

‘그런 거였으면 목이 잘렸을 때 먼저 죽었어야지.’

무슨 트롤도 아니고 재생력이 미쳐 날뛰는 건가?

영혼 타격까지 무시하면서?

그게 말이 될 리가.

“아.”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 하나.

팔을 뻗어 놈의 멱살을 잡았다.

잡힌다. 분명 잡히기는 하는데.

묘한 이질감. 실체지만 실체가 아닌 듯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체나 다를 바 없는 가짜.’

어째서 움직임이 어색했는지, 스킬을 써도 먹히지 않는지 이해가 됐다.

왜 고통 무효화 능력이 발휘됐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너, 본체 아니지?”

히죽.

내 말에 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힌트는 녀석이 직접 말했다.

“여긴 네 꿈이라며.”

이곳이 놈의 꿈속이라면 당연히 꿈을 꾸는 본체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정상적인 건 아니다.

놈이 뱉어 내는 몬스터는 실존했으며, 내가 입은 상처 역시 진짜니까.

현실과 꿈의 경계.

그 안에서 자유로운 괴물.

[파무스의 악몽이 짙어집니다.]

그게 파무스의 정체였다.

사르르르.

붙잡혔던 놈이 사라진다.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것처럼 떨어진 공간에 나타난 녀석이 미소 지었다.

“빨리 눈치채네? 왜 그럴까? 너도 꿈을 많이 꾸니?”

“안 꾼다, 이 자식아.”

콰앙!

뻐억!

파이어 밤으로 몸을 날리며 놈의 배를 걷어찼다.

꿈은 개뿔. 자면서도 알리오스의 전투 기억을 토대로 맨날 싸우는구만.

어쨌든 하나는 알았다.

‘여기서 이놈이랑 싸워 봤자 답이 없어. 본체를 찾아야 돼.’

어디서?

어떤 곳에 숨어 있을까.

열심히 눈을 굴렸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다. 세상에 무적은 없으니까.

“네가 하나 틀린 게 있어.”

걷어차여 저 멀리 날아갔던 녀석이 빙긋 웃었다.

“나한텐 이게 진짜야.”

“개소리.”

타악.

바닥에 내려서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후우. 숨을 골랐다.

여전히 탈모맨은 집요하게 덤벼드는 송곳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공격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섞인 게이트라.

[타락한 천사의 검 (A)]

-경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나한테는 문제없는 곳이야.”

고개를 돌려 탈모맨을 바라봤다.

“탈모맨, 좀만 더 고생해라. 난 본체 잡으러 간다.”

“어? 야야야! 여기 좀 빡센데?”

“파이팅!”

-찌이이이익

가볍게 검을 그었다.

잘려 나가는 꿈의 공간.

일렁거리던 공간이 찢어지면 경계 너머, 진짜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칙칙한 색감의 석조 벽. 지저분한 바닥.

조명 하나 없는 어두운 그곳이.

“안 돼!”

설마 경계를 끊는 무기가 있을 줄은 몰랐는지 놈이 기겁하며 달려온다.

사이하게 번뜩이는 눈.

[‘파무스의 악몽 (SS)’이 당신을 덮칩니다!]

놈이 발악을 했으나.

[‘정신 보호 (SSS) Lv.3’가 파무스의 악몽을 이겨 냅니다.]

“그 정도로는 날 못 막는다.”

난 가뿐히 무시해 주고 경계의 틈으로 몸을 날렸다.

날 막으려면 쁘찡 연합 정도는 데리고 오라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