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54화 (354/740)

354화 끊이지 않는 악몽

벨브레그가 빠르게 길을 뚫었다.

뒤를 보지 않고 앞으로 전진.

그나마 몬스터 무리를 휩쓸어서 약간의 여유가 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걸 아는지 전력을 다해 길을 만들었으며…….

“갑시다.”

“그러지.”

“장군님이 주신 기횐데 무슨 수를 쓰든 해야지!”

“방심하지 마. 쉬운 일 아니니까.”

난 벨브레그가 지정해 준 인원들을 데리고 달렸다.

며칠간 전투를 벌이면서 군사들과도 안면을 튼 상태.

나와 함께 움직이는 3명 모두 실력이 출중한 자들이었다.

저 멀리 시선을 던졌다. 탈모맨이 이끄는 레지스탕스가 게이트에 인접했다. 지체 없이 안으로 진입.

‘며칠 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이걸 노리고 있던 거였나.’

긱센은 봉쇄됐다. 지뢰와 함정으로 아무나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

반면 숲은 방치되어 있었다. 그곳은 이미 몬스터에 점령되었으니까. 그곳을 돌아간 거다. 며칠이라는 시간을 소모해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정면으로 뚫는 건 부담되는 일. 벨브레그가 이끄는 군부대가 온 만큼 영지는 우리에게 맡기고 문제의 근원을 노렸다.

무모했지만 성공만 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

“큰 짐을 맡겨서 미안하군.”

본대와의 연결이 끊기기 직전까지 몬스터 무리를 돌파한 벨브레그가 날 바라본다.

지금도 아슬아슬하다. 잠깐 머뭇거리면 포위당하기 딱 좋은 상태니까.

“영지를 부탁합니다. 저쪽은 우리가 해결하죠.”

짧은 대화를 마치고 스킬을 사용했다.

땅굴 이동.

지하에도 몬스터들이 있지만 필드 위보다는 훨씬 낫다.

-쿠르르르릉!

그를 뒤로하고 땅속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전진. 중간중간 데스웜을 비롯한 몬스터들이 덤벼들었으나.

-서걱

-촤아아아악!

망설임 없이 그어지는 검격에 안면과 몸이 갈라질 뿐이었다.

다른 대원들도 각자의 병기를 휘둘러 몬스터를 처치했다.

어디쯤 왔을까.

지하에 있는 만큼 어림짐작으로 위치를 가늠할 수밖에 없다.

다행이라면 그동안 땅굴 이동을 여러 번 사용해서 거리 계산이 익숙해졌다는 것.

“올라갈게요.”

“다들 경계하고, 게이트까지 전투할 수도 있어.”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페이몬의 언질에 메기와 델락 모두 무기를 움켜잡았다.

아무리 전장을 많이 겪었다 하더라도 목숨이 걸린 일에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법.

나 역시 숨을 고르며 위로 방향을 틀었다.

-콰르르릉

구멍이 뚫리며 하늘이 보인다. 거대한 게이트 끄트머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바로 진입합니다!”

파앗!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게이트를 향해 뛰었다.

“크아아아아!”

“키르르륵!”

땅속에서 솟은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 몬스터들이 달려들었으나 우리가 더 빨랐다.

게이트의 인력이 우리를 받아들였고.

-우우우우웅

[게이트에 진입합니다.]

[끊이지 않는 악몽]

곧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뀌는 공간, 습하면서도 끈적한 기류.

난 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주목했다.

‘끊이지 않는 악몽?’

이게 이번 게이트의 진짜 이름인가.

어쩐지 녹턴이랑 팬텀이 많이 나온다 했다. 딱 어울리네.

내부도 어두컴컴하니 을씨년스럽고.

진입과 동시에 경계 태세를 취했다.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 모든 것이 흐릿하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

“아까 한번 뱉어서 그런지 몬스터가 없네요.”

“언제 또 터질지 모르지만 말이야.”

페이몬의 말이 맞았다. 비정상적인 게이트다. 방심해서 좋을 건 없었다.

천천히 흔적을 살폈다. 먼저 안으로 들어간 탈모맨의 무리.

희미하지만 발자국이 남아 있다. 얼추 계산해 보면…….

‘대략 5명.’

적다. 4명이서 들어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전부 합치면 9명인가.

나와 탈모맨도 있으니 어지간한 게이트는 클리어하고도 남는 전력이기는 한데.

혹시 모르니 합류 먼저 해야겠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전방에는 내가, 좌우에 한 명씩. 맨 뒤에는 활을 든 메기가 자리를 잡았다.

사전에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만들어진 진형.

침묵이 이어진다. 괜히 소란스럽게 굴었다가 어그로가 끌리면 안 되니까.

그렇게 전진하지 얼마나 됐을까.

“속이 안 좋군.”

“맞아. 눈이 돌아갈 거 같아.”

메기와 델락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들의 말마따나 멀미 나기 딱 좋은 구조다. 형태가 일정치 않은 공간. 벽과 바닥은 계속해서 일렁였으며, 눅눅하게 가라앉은 공기는 역한 냄새를 풍겼다.

확실히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프램버그에서 겪었던 것만큼은 아니다. 조금 거슬리는 정도?

단순한 투정일까, 그동안 봐 왔던 모습을 떠올리면 그럴 성격이 아닌데. 고참인 페이몬 역시 따로 말은 안 했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의아했으나 일단은 움직였다. 지금은 합류가 우선이니까. 그저 계속된 전투에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뒤!”

-촤아아아악!

털썩.

벽을 통과해 나타난 팬텀 로드의 손톱에 델락이 당하기 전까지는.

멍하게 뜬 그의 눈이 돌아갔다.

* * *

-차앙!

-콰아아아아앙!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폭발을 일으켰다.

다시 게이트가 날뛸 타이밍이 된 건가. 한번 나오기 시작한 팬텀과 녹턴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댔다.

내 쪽으로 달려드는 놈만 서른 마리.

[러브 앤 피스 (S) Lv.10]

-파하아아앗!

눈부신 신성력이 검에 깃들었다.

정수리부터 허리까지.

한 번에 녹턴을 베어 넘기고 바닥에서 솟아오른 놈들은…….

-콰아아앙!

“키헤아아악!”

“크헤으으윽!”

그대로 짓밟아 죽였다.

미세한 컨트롤로 파이어 밤까지 같이 터트렸으니 놈들이 버틸 리 만무했다.

문제는…….

“제길, 너무 늦게 알았어.”

같이 들어온 대원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

그나마 고참인 페이몬은 어떻게든 버티며 놈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나 다른 둘은 아니었다.

“히익, 힉! 저리 가!”

“으그그그극.”

발작하듯 몸을 계속 꿈틀거리거나, 바르르 떨며 웅크리고 있다.

아까 어지럽다고 한 걸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됐다.

[메기]

-공포에 질렸습니다.

-전쟁 트라우마가 머리를 헤집습니다.

[델락]

-악몽에 시달립니다.

-몸을 가눌 수 없습니다.

정신 공격.

팬텀과 녹턴 계열은 정신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

정신체에 가까운 페어리가 당한 이유도 이 때문.

다만…….

‘천족은 신성력이 있어 어느 정도 면역이 있다고 했는데…….’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천족은 내성이 있어야 했다.

보유한 신성력에 있어 차이는 있겠지만 놈들은 어둠 속성, 저항할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전장에서 활약을 해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이들이 이렇게 된 건 하나.

[끊이지 않는 악몽이 시작됩니다.]

[침입자의 정신력이 약화됩니다.]

[몬스터의 정신 공격 및 저주가 강화됩니다.]

게이트 효과였다.

모든 게이트가 그런 건 아니지만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 게이트가 존재한다.

바다, 숲, 평야.

자연적인 부분인 경우도 있었고, 골렘 사원, 하피 둥지와 같이 몬스터 콘셉트도 있었으며…….

‘특수한 효과를 지니고 있는 곳도 있어.’

이곳이 그랬다.

침입자의 정신력을 갉아먹는 효과가 있었다.

눈치채지 못한 이유는 하나.

[정신 보호 (SSS) Lv.3]

비상식적으로 높은 정신 보호 스킬.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버린 만큼 내게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것.

정신적인 것도 문제건만.

[저주 내성 (S) Lv.10]

저주까지 걸어 대니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고서는 머리가 텅 비어 버릴 거다.

이런 식으로 흘러갈지는 몰랐는데.

“그에에에엑.”

덕춘이가 마지막 몬스터의 머리를 터트렸다.

한숨 돌릴 수 있는 타이밍. 페이몬이 털썩 주저앉았다.

“후, 후욱. 도움이 못 돼, 미안하군.”

“아닙니다, 페이몬.”

그도 정상은 아니다. 불안할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니.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뿐이다.

이건 답이 없다. 적어도 이들로는 무리다.

우리가 이렇다면 탈모맨 쪽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터.

아공간 팔찌에서 생명수와 성물을 꺼냈다. 수호자의 의지. AA급 성물이었으나 사용자의 신성력이 강하면 효과가 올라가니 나름 쓸 만할 거다.

“둘을 데리고 숨어 있어요. 저는 안으로 갑니다.”

“혼자서는 무리야. 안에 어떤 괴물이 있을지 모른다고. 눈치챘을 거 아닌가. 비규격 게이트야. 돌아가서 다시 전력을 꾸미는 것이…….”

“그럼 늦습니다.”

이미 벨브레그는 무리하고 있다. 전투 2조까지 모두 불러 몬스터 웨이브를 막고 있으니.

돌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탈모맨을 버리고 갈 수는 없지.’

내가 왜 여길 왔는데.

결심을 굳혔다는 걸 깨달았는지 페이몬이 발작하는 이들의 입을 천을 묶고 양 옆구리에 끼었다.

“무사하길 빌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여긴 게이트 안이고 성물이 보호해 준다 하더라도 수십 마리의 상위 몬스터가 덤벼들면 버티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그들을 위해서라도 빠르게 이곳을 정리해야 한다.

-파아아앙!

발을 박찼다.

게이트 제법 깊숙한 곳까지 왔다. 탈모맨도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을 거다.

-차앙. 캉! 파각!

“역시.”

오래지 않아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방향을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게이트의 디버프는 내게 소용없으니까.

빠르게 골목을 돌아 안으로 달려갔고.

“탈모맨!”

“공듀!”

그대로 녀석의 뒤통수를 때렸다.

“크헉!”

-콰아아앙!

충격을 못 이겨 앞으로 굴러가 박히는 녀석.

이 자식이 어디서 날 사회적으로 암살하려고, 기껏 도와주러 왔더니 말이야.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손을 털면서 목격자가 있는지 살폈다. 원한은 없지만 내 인권을 위해 입막음이라도 불사할 생각이었으나.

“여기도 당했군.”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다.

탈모맨이랑 함께 들어왔던 레지스탕스 역시 바닥에 엎어져 있었으니까.

딱 한 명 기절하지 않고 눈을 뜨고 있는 녀석이 있기는 했다만.

“아, 아이스크림.”

“뭔 꿈을 꾸는 거야.”

보다시피 맨정신은 아닌 거 같다.

머리를 긁적였다.

의외다. 사실 탈모맨이 여기 어딘가 나자빠져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콰아아아앙!

달려드는 놈들에게 파이어 밤을 먹여 주며 생각에 잠긴 것도 잠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칭호, 마왕의 가호가 함께합니다.]

[칭호, 초인의 길이 빛을 내뿜습니다.]

[SS급 권능, 두 세계의 지배자가 번뜩입니다.]

신성력뿐만 아니라 마기까지 합세해서 탈모맨을 보호하고 있었다.

94특임대를 나온 만큼 기본 정신력도 뛰어나겠지.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어떻게 오긴 걸어왔지.”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덕춘아, 얘네 좀 부탁한다.”

“그에에.”

쓰러져 있는 레지스탕스 일원들을 가리켰다.

고개를 까딱인 덕춘이가 그들을 끌고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왜냐…….

-으하아아아악!

[끊이지 않는 악몽의 주인이 비명을 지릅니다.]

이곳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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