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안으로
숲 너머 게이트. 통칭 지옥 터널이 열렸다.
일반적인 게이트는 일정 시간 내에 클리어하지 않으면 내부에 있던 몬스터를 폭발적으로 내뱉고 사라진다.
흔히 말하는 게이트 브레이크.
제때 클리어하지 못한 게이트가 연쇄적으로 터지면 생기는 것이 몬스터 웨이브건만…….
‘저건 계속해서 몬스터를 꺼낸다고 했지.’
그래서 지어진 이름이 지옥 터널이다.
마치 지옥과 연결된 통로 같다고 해서.
튀어나오는 놈들도 보통 흉악하게 생긴 게 아니다.
하나같이 어둠 속성을 지니고 있다. 진짜 악마가 나타난 건 아니다. 악마도 어엿한 종족 중 하나니까.
다만…….
[녹턴]
-5성급 몬스터.
-정신을 헤집으며 끝없는 악몽을 선사합니다.
[팬텀 로드]
-6성급 몬스터.
-모든 팬텀들의 왕!
-정신체에 가깝습니다.
[환상수]
-5성급 몬스터.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분명 티끌 차입니다!
하나같이 등급이 높은 괴물들이었으며, 정신체에 가까운 놈들도 상당하다.
피지컬이 대단한 놈도 있었지만 이쪽이 더 신경 쓰였다.
“페어리가 당했다더니 이런 놈들 때문이었군.”
옆에 선 벨브레그가 중얼거렸다.
현재 긱센 영주의 최고 책임자는 그.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기 전, 물자를 정리하고 병력 배치를 마쳤다.
본인은 직접 최전선에 나왔으니 단순히 뒤에서 지휘만 하는 스타일은 아닌 듯했다.
“어쩔 수 없죠. 있는 거로 어떻게든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지. 기본자세가 되어 있구나. 과연 냥펀 남작의 직속 부하다워.”
오, 냥펀 남작이라니.
이렇게 안 어울릴 수가 있나.
시스템 보정이 아니었다면 벨브레그도 사람 이름이 냥펀일 수가 있나 했을 텐데.
아무튼, 그건 그거고.
“오네요.”
-쿠르르르르
한바탕 몬스터를 쏟아내던 게이트가 잠잠해졌다.
대신.
“크하아아아악!”
“크르르르르!”
새로운 몬스터의 등장에 자리를 뺏긴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난투를 벌였다.
서열 정리, 혹은 영역 다툼.
그것도 오래지 않아 끝난다. 단순히 하급 몬스터만 있다면 모를까 저기에는…….
“키하아아!”
-구구구구궁
팬텀 로드와 같은 보스급 몬스터도 존재했으니까.
그를 따르는 놈들이 움직이자 가뜩이나 경쟁에 밀려 여기까지 온 놈들은 또다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다르게 말하면.
-댕! 댕! 댕!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됐다! 모두 준비!”
지금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는 뜻.
이미 준비는 마쳤다. 기존에 싸우고 있던 자들은 본래의 자리를 지키고, 벨브레그의 부하들은 숙달된 움직임으로 진형을 짰으니까.
원칙상으로 따지면 나 역시 병사들 사이에 있어야 했으나…….
‘냥펀의 직속 부하라고 옆에 두었지.’
은근 신경 쓰이나 보다. 일단 나도 준 귀족 신분이니까. 냥펀 덕에 말이지.
괜히 아무렇게나 방치했다가 객사하면 할 말도 없고.
그래 봤자 전쟁터 안이니 위험한 건 마찬가지지만.
흘낏, 주변을 살폈다.
‘탈모맨 이 자식은 어디에 있는 거야.’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탈모맨이다. 분명 긱센에 있다고 했는데 보이질 않는다.
녀석뿐만이 아니다. 레지스탕스 일원들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아는 대원들은 모두 다른 층에 있으니 71층에 있는 이들의 얼굴은 알지 못하지만 권능을 통한다면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는 건…….
‘모습을 숨겼다는 건가.’
왜?
직접 영지를 살펴서 안다. 일반 평민들은 무장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절대 지금까지 몬스터 웨이브를 막았을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분명 레지스탕스가 나서서 전투를 했다는 건데.
단순히 하얀 나무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러기에는 아직 서로 견제할 급은 아니지 않나?’
현시점에서 하얀뿔은 소규모 집단. 하얀 나무가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다.
이제 막 생성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지금은 서로 싸울 때가 아니다. 힘을 합칠 때지.
따로 목적이 있는 거다. 정확히 무슨 짓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커뮤니티를 확인해 봤지만 말이 없다. 평소 커뮤니티에서 사는 녀석치고는 이상한 일.
설마 죽어서 탑 밖으로 나간 건가 불안감이 들기도 했으나.
[친구 목록]
-니머리 탈모
-정수리 핥짝
-냥냥펀치
.
.
.
여전히 친구 목록에 있는 걸 보니 그건 아니었다.
퇴출당하면 친구 목록에서도 사라진다.
복잡해지는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은 집중할 타이밍.
“전방을 향해 쏴!”
-콰가가가가각!
-쿠우우우웅!
전투가 시작되었다.
망루에 올라선 이들이 제각기 원거리 공격을 쏘아 댔다.
스킬을 던지고 활을 쏘고 창을 던진다.
[어스 월 (B) Lv.2]
-콰드드드득!
나 역시 스킬을 사용했다.
이번에 새롭게 얻은 어스 월.
70층 시험장에서 등급을 올려놨다.
필드 위로 솟아오른 벽이 몬스터를 막았으나.
-콰앙!
“카르르르륵!”
“크허어엉!”
남들보다 월등한 마력으로 동급 스킬보다 튼튼하긴 하지만 기껏해야 B급 스킬.
5성급 이상의 상위 괴수들을 오래 막아 둘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정도면 상관없다. 잠시 발을 묶어 뭉치게 만드는 것, 그게 목적이니까.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병사들이 진형을 구축할 때 나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땅굴과 디그로 함정을 팠으며 필드 곳곳에는.
[시한폭탄 (S) Lv.2]
[시한폭탄 (S) Lv.2]
.
.
.
-쿠구구궁
-콰아아아아앙!
폭탄을 심어뒀으니까.
대번에 몸이 터져 나가는 몬스터. 뼈와 살점이 허공을 수놓는다.
열댓 마리의 괴물이 즉사했으나 몰려드는 놈들에 비하면 극히 일부.
‘몰려드는 놈들만 하더라도 수천. 뒤에 있는 놈들까지 합치면 만 단위.’
몬스터 웨이브란 게 이런 건가.
직접 겪어 본 적은 처음이다.
-쿠구구구구궁
놈들이 움직일 때마다 지축이 흔들린다. 전율이 일 정도.
멸망에 접어든 세계의 현실이었으며, 이겨 내야 할 장애물이다.
“전투 1조 투입!”
“투입!”
원거리 공격으로 수를 줄이기는 했으나 모두 없애는 건 불가능.
꾸역꾸역 밀려온 놈들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왔다.
깊이 파 두었던 구덩이 역시 몬스터의 사체로 가득 찬 지 오래.
평지나 다를 바 없는 곳을 통해 몬스터 무리가 다가왔고.
“가자아아아아!”
“죽지 말고 보자고!”
대기 중이던 전투 1조가 튀어 나갔다.
2조와 3조는 대기.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번갈아 교대할 예정이었으며.
“위험하다 생각 들면 내 뒤로 숨게.”
“정 죽겠다 싶으면 생각해 보죠.”
나와 벨브레그 역시 1조에 속했다.
-콰앙!
파이어 밤을 터트리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혼자서 너무 앞서나가는 건 아닌가 싶었으나.
“적당히 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에에.”
덕춘이 역시 투지를 올렸다.
타악.
몬스터 무리 한가운데 착지.
“크헝!”
헬하운드가 반갑다고 아가리를 들이민다.
반가울 땐 악수.
-빠각!
주둥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박살내며 놈의 목구멍을 두 갈래로 만들어 줬다.
이어서.
[워터 (B) Lv.4]
-촤아아아!
사방으로 물을 뿌린 뒤.
[일렉트릭 쇼크 (S) Lv.7]
-파지지지지직!
사방으로 전격을 쏟아부었다.
전류가 서로를 통해 전달되며 일제히 몸을 떨어 댄다.
즉사하는 놈도 있고 버티는 놈도 있고.
상관없다. 안 죽었으면 죽여 주면 되지.
-서걱
깔끔하게 휘두른 검. 마비된 몬스터들이 수수깡처럼 썰려 나간다.
덕춘이 역시 폴짝 뛰어 남은 놈의 뺨을 때렸으니.
-빠드드드득!
그대로 고개가 한 바퀴 돌아가며 절명했다.
70층대로 넘어온 만큼 이미 신체 능력과 스킬은 최대 레벨 가까이 올랐다.
나머지 스킬들도 80층에 도착하기 전에 만렙을 찍겠지.
달려드는 놈들 대부분이 어둠 속성.
나쁘지 않다. 천족 모두 수준은 달라도 신성력은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마찬가지.
-파하아아앗!
[러브 앤 피스 (S) Lv.10]
신성력을 방출하며 검과 갑옷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스킬에도 충분하게.
[프로즌 브레이크 (S) Lv.7]
-카가가가가강!
응축됐던 빙벽이 그대로 폭발한다.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파편이 되어 몬스터를 난자했다.
애초에 난 범위형 스킬이 대부분. 주변 신경 쓸 거 없이 날뛸 수 있는 무대만큼 제격인 곳이 없었고.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연달아 일어난 폭발에 빈 공간, 나를 피해 달아나는 놈들을 쫓아 검을 휘둘렀다.
고스트? 정신체?
뭐든 상관없다.
신성력을 머금은 검은 놈들의 몸을 찢어발기기 충분했으며.
[영혼 찢기 (S) Lv.10]
“키햐아아악!”
내게는 정신체마저도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는 스킬이 존재했으니까.
팬텀 로드가 세로로 갈라진다.
6성급 몬스터라기에는 허무한 최후.
물리적 타격이 안 먹힌다는 것 빼면 별거 없는 놈이다.
“저, 저 녀석 뭐야.”
“혼자서 다 하잖아! 저쪽은 신경 쓸 거 없다! 전력 약한 쪽 봐 줘!”
“미친! 무슨 신성력이!”
“어디서 저런 놈이 나왔단 말인가!”
“뭔 상관이야, 좋은 게 좋은 거지!”
함께 싸우던 군사들의 감탄이 들려온다.
사기가 올라가는 덤.
미세하지만 몬스터 무리가 주춤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몰려드는 것보다 죽어 나가는 놈들이 더 많다.
어디까지나 나를 비롯한 몇 군데만 해당되는 말이었지만.
“저 양반도 괴물이네.”
땅 밑에서 노려오는 데스웜의 머리를 찔러 넣으며 벨브레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동부 전선의 2성 장군.
혁혁한 공을 세워 올라온 강자.
-콰르르르릉!
그의 메이스가 휘두르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다.
파괴적인 전격.
내가 쓰는 일렉트릭 쇼크보다 한 단계 위의 출력.
낙뢰의 개수도 어마어마하다. 전격으로 이루어진 비가 쏟아지는 듯한 풍경.
-치이이이익
살과 피가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거품을 물고 눈을 뒤집은 놈들이 바닥에서 빌빌거리고, 그를 따르던 병사들이 확인 사살을 한다.
효율적인 전투. 뒤를 맡기고 본인은 앞으로 돌격한다.
너무 깊지는 않게. 충분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놈들의 공습이 완만해졌다 싶으면 방향을 틀어 주변 전투조의 부담감을 줄이기까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그동안 이런 전장은 셀 수 없이 많이 돌았다는 건가.
“나도 질 수 없지.”
다행히 수준 아래의 몬스터라면 그와 동급의 퍼포먼스를 보여 줄 자신이 있다.
그리고 어둠 속성과 정신체 몬스터는 그 수준에 부합한다.
-쿠과과과과광!
거대한 폭발이 전장을 뒤덮었다.
* * *
전투 1조에서 2조로, 다시 3조.
한 바퀴 순환하는 데 총 12시간이 걸린다.
4시간을 사이클로 돌아간 전투. 각 조마다 8시간을 쉴 수 있는 텀이 있었기에 체력 분배도 훌륭했다.
…라고 생각했다.
“이런 빌어먹을!”
“젠장! 이놈들은 끝도 없는 거냐!”
“싸워! 죽어도 싸워!”
전투가 4일 차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첫날 죽인 몬스터만 수천 마리. 둘째 날 역시 마찬가지.
셋째 날에는 그 수가 줄었다.
벨브레그와 함께 온 군사들 역시 역전의 용사였으나, 부상자는 꾸준하게 있었고 사망자 역시 있었다.
영주성에 있던 물자도 바닥이 나는 중.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역경을 이겨 내고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저 망할 게이트!”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며!”
위기를 직감하기라도 한 걸까.
숲 너머 게이트가 폭주하듯이 열려 댔다.
영지에 남아 있던 이들의 말로는 지금껏 이런 적이 없었다고.
한 번 몬스터를 뱉어내면 최소 이틀은 얌전히 있었다 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하루에 한 번, 심할 경우 세 번까지도 뱉어 냈다.
그날 전력의 20퍼센트가 날아갔다.
악착같이 싸운 덕에 놈들을 물러내기는 했으나 앞으로 몇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될지 모르는 상황.
-촤아악!
앞에 선 몬스터를 반으로 가르며 얼굴을 구겼다.
인원이 줄어든 만큼 전투조가 2개 조로 바뀌었다. 체력이 떨어진다.
계속된 마력의 활용에 몸까지 너덜너덜하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
같은 생각을 한 걸까. 벨브레그 역시 숲 너머의 게이트를 노려보고 있었고.
저걸 없애야 한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던 타이밍.
-투두두두두두
저 멀리, 숲이 끝나는 부근에서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몬스터들의 신경이 우리에게 쏠려있는 틈.
정확히 게이트를 향해 맹돌진 하는 이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알아볼 수 있는 녀석이 한 명 끼어 있었으니.
“탈모맨?”
탈모맨과 그가 속한 레지스탕스 일원들이었다.
설마 그동안 숲을 우회해서 저곳으로 향하고 있던 건가. 우리가 몬스터를 막을 때를 이용해서?
내가 본 걸 벨브레그가 못 봤을 리가 없다.
“이블아이,별동대를 이끌고 저들을 돕게!”
“그럼 여기는 어떻게 합니까?”
“여긴 내가 맡지, 빨리 가!”
그가 품에서 나팔을 꺼내 불었다.
뒤에서 대기하던 2조가 뛰쳐나온다.
“메기! 페이몬! 델락! 이블아이와 함께 게이트로 향해라!”
그 말을 끝으로 벨브레그가 군사들을 이끌고 전진했다.
으득. 이를 갈았다.
그래, 이거 말고는 없지.
“갑시다.”
난 내게 붙은 이들과 함께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