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심사숙고해서 고르자
70층 광장에 새로운 등반가들이 나타났다.
상위층에 진입한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좋은 징조. 난 터져 나오는 빛무리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누가 왔을까. 후보군이 여럿 있기는 한데. 연합 사람? 오필리아가 왔을 수도 있다. 아니면 빅스타 쪽.
의외로 대형 길드 쪽에서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난 공략을 모두 오픈해 두니까.
대형 길드원들도 따라만 한다면 충분히 등반할 수 있겠지.
‘길드 내부에서는 내 공략을 무시하라고 지침이 내려온 거 같지만.’
대형 길드와 쁘찡 연합은 적대적인 관계. 연합을 통해 그들의 치부인 백환과 세이퍼 정책의 진실을 밝혔다.
내 공략을 믿고 따르기 시작하면 그들 역시 내부에 의심이 싹틀 수밖에 없는 법.
-사아아아
빛무리가 사라지고 올라온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무려 4명.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뭘 봐, 색종이 같은 게. 확 접어 버릴라.”
“오빠! 욕 좀 하지 마요.”
“…욕 안 했는데?”
“어, 맞네? 헤헤. 이블아이한테 색종이라고 하니까 그랬죠.”
뚱한 표정의 오징혁과 웃으며 그와 팔짱을 끼는 김소담.
김소담이 반가운지 손을 흔든다. 30층대에서 같이 파티를 꾸렸었지.
오지혁이야 6층부터 악연이었고, 지금은 좀 다르지만.
이야, 커뮤니티로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둘이 만나는구나. 세상 말세 아니, 축하한다.
“헤이, 브로! 내가 왔지!”
65층에서 만난 이지키일도 왔다. 이 녀석은 올 거 같았다. 애초에 나보다 먼저 등반하기 시작했던 녀석이니까.
당시 탑 숭배자 헌터를 심문하고 동료를 회복시키느라 늦었을 뿐이다.
그런데…….
“걔는? 브레드.”
“그 친구는 아직 68층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 레이디랑 잘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레이디면, 설마 깡총이?”
“늘 말하지만 넌 네이밍 센스가 정말 구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녀석.
깡총이가 깡총이지 레이디는 또 뭐야.
됐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지.
브레드가 무사하다니 다행이다. 난 또 밖으로 퇴출된 건가 했는데. 당시 부상이 심했어서.
이걸로 3명, 마지막 한 명은…….
“우오오오오! 형니이이임!”
바닥에 엎어져 괴성을 지르는 녀석.
60층에서 만났던 쁘징 연합, 바로…….
“섹시가이 김정현이 형님을 보러 왔습니다아아!”
“브로, 늘 느끼지만 연합 사람들 다 이상해. 맛탱이가 갔다고.”
“어허,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다. 저 녀석만 이상한 거야.”
그 말에 이지키일이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다.
뭐. 왜. 뭐.
어찌 됐든 좋은 신호다. 이들도 올라왔다는 건 다른 이들도 곧 올라온다는 거니까.
이지키일이 말하지 않았던가. 브레드가 68층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이준석을 통해 공략을 알렸다.
[이준석]: (공지) 오늘부로 공듀 님이 직접 공략을 올리지 않을 겁니다.
밖으로 나갔냐고요? 아닙니다! 현재 상위층을 공략 중이시라 70층 미만 채널에 글을 올릴 수 없으시기 때문이죠!
그동안 활동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상위 채널에 가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분발해 공듀 님을 영접하러 갑시다!
[근육팡팡전사]: 우오오오! 위로 간드아아아!
[꿈과희망]: 공! 듀! 공! 듀!
[김부영]: ㄹㅇ 70층대? 개쩐다!
[초록잎]: 어쩐지 한동안 글이 없더라니만 그런 일이! 축배를 올려라!
[바위처럼]: 어? 탈모좌도 최근 말 없지 않아요?
[도도]: 냥펀 님이랑 핥짝 님도 없던데. 설마……?
[이준석]: 예! 최근 상위층에 진입하셨답니다!
우오오오오!
채팅창이 한동안 난리가 났었지.
아무튼, 이준석이 글을 올린 후 내가 정리한 공략을 전달했다.
그냥 준 건 아니고 프램버그에서 받아 온 양산형 관측 아이템도 함께 보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괜찮은 아이디어를 제시했으니.
[쁘띠공듀]: 먼저 풍선 찾은 사람들은 대기하다 다음 사람들 찾는 거 도와줘용!
이거다. 바로 포탈로 넘어가지 말고 밑에서 올라오는 이들도 도와달라는 이야기.
그편이 훨씬 안전하다. 중간에 꼬일 일도 없고.
69층이면 아직 커뮤니티 제약이 없을 때니까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순서를 정할 수 있겠지.
그 과정 중에 사이가 돈독해지는 건 덤. 연합 사람들의 결속이 더 강화될 거다.
“며칠 내로 8명 정도 더 들어올 거다, 이블아이.”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오네.”
“쁘띠공듀가 층 몇 개를 완전히 박살 내 놨더군.”
오지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68층은 완전히 개방되었고, 69층도 있으나 마나 한 상황.
커뮤니티를 보면 지금도 무릎 잡고 쪼그려 앉은 피엔트의 사진이 돌아다닌다. 앞에 깡통도 있던데. 종종 마음씨 좋은 연합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 준다나.
여튼. 그 외에도 많다. 67층도 발자칸에 가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65층도 인원만 맞으면 비교적 쉽게 클리어 가능하니까. 64층도 대림원과 인연이 있어서.
한 사람이 했다고 하기에는 굉장한 업적. 한 층대의 난이도를 대폭 낮춰 버렸다.
어쩌면 나중에 탑을 오르는 이들은 50층대보다 60층을 더 쉽게 등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70층에 그게 있다지. 한계 돌파 스킬북.”
“오? 아네? 어떻게 알았냐.”
“상위층에 산군 출신 헌터가 있다. 내게 연락을 주더군.”
“아, 루키 그룹 말하는 거네.”
이준석이 예전에 말했었다. 루키 그룹 중에는 산군 길드 출신도 있다고. 비교적 최근에 합류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른 상위 헌터에 비하면 아래층을 오르고 있을 거다.
올라가다 보면 마주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이야기. 그런 녀석이 오지혁에게 접근했다는 건…….
‘오지혁도 루키 그룹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나도 그쪽에 관심이 좀 있어서. 뭐가 됐든 안면을 텄으니까. NPC들 사이에서 언급될 정도로 강한 세력이기도 하고.
최상위층을 오르고 있을 걸로 예상되는 스마일캡 역시 루키 그룹이다.
오지혁이 그들의 관심을 받는다면 연결책이 될 수도 있겠지. 그곳에 들어가려면 루키 출신이어야 하니까.
“그쪽에서 너와 다른 놈들한테도 관심을 보였다. 따로 연락이 갈지도 모르겠어.”
“오호라. 그렇게 나와주면 나야 좋지.”
앞으로 마주칠지도 모르는 만큼 미리 말을 터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안부를 시작으로 몇 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NPC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 우리를 훔쳐보며 수군거린다.
“등반가들이 많이 올라오는데?”
“그러게. 그동안은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하하하! 좋은 거 아니겠어? 우리도 장사해야지. 자자! 여기 괜찮은 포션이 있습니다!”
“나도 질 수 없지. 그쪽 아가씨! 보니까 염색하는 거 같은데 우리 미용실로 와!”
70층이 활기를 띠는 순간이었다.
* * *
핥짝이의 챌린지가 마무리된 시점.
예상보다 빠르게 14종의 흔적을 클리어했다. 부활 사업 건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고.
“이걸로 영업 뛰면 된다는 거지?”
“어. 사용법은 죽은 사람 앞에 들고 있으면 돼. 영혼이 머물고 있다면 반응이 올 거야.”
“등반가한테는 사용할 수 없나?”
“이것만으로는 불가능. 등반가는 진짜 죽는 게 아니니까. 다른 조건 더 필요함.”
그것도 그렇지. 따지고 보면 등반가는 코인이 차감되는 거다. 다 쓰면 퇴출당하는 거고.
제네타로부터 비어 있는 영혼석 30개를 받았다. 중간중간 여러 루트로 보급해 준다나.
슬슬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살짝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다.
여기만큼 스킬 레벨 올리기 좋은 곳이 없으니까. 다만 위로 올라가려는 이유는…….
“야야, 또 왔다. 어쩔 거야? 어?”
“형니이이이이임!”
“이곳인가! 이곳이 무지개 용사가 머무는 여관!”
“탈모좌, 한 번만 안아 줘요!”
“아까 슬쩍 봤는데 털 많은 아저씨랑 금색 빛깔도 있던데? 누구지?”
김정현을 비롯한 연합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기 때문.
관심을 받는 건 좋은데 이래서야 활동하기가 살짝 껄끄러워서. 사실 나만 껄끄럽다.
‘보는 눈이 많을수록 내 정체 숨기기도 힘들다고.’
하위층은 그렇다 치지만 상위 채널에서는 계속해서 공략을 올려야 한다.
내가 등반하는 속도랑 공략이 올라오는 속도가 같으면 의심받을 건 뻔한 일.
가뜩이나 탈모맨과 핥짝이는 이미 모습이 알려졌다.
뭐, 핥짝이는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헬멧에 목소리 변조 기능이 있어서 성별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거다.
냥펀이야 아이돌 출신이라 철저히 정체를 숨기고 있고. 우리나 알지 다른 사람은 얘가 냥펀인지도 모를 거다.
보송송이야 보송송이니까 패쓰.
“릴카, 우리 릴카. 위에는 조금 다르다고?”
“응! 지금까지 겪은 거랑 구조가 다를 거야.”
릴카를 허벅지에 앉힌 핥짝이가 녀석을 쓰다듬는다. 벌써 길들인 건가. 엄청난 수완이다.
70층이 상위층으로 분류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구조와 형식이 다르다나. 정확한 건 직접 겪어 봐야 알 거 같다.
기본적인 준비는 다 끝났고. 남은 건.
“너 또 강제 퀘스트 줄 거지?”
“헤헤. 당연하징! 이번에도 부탁해! 상위층에서는 다른 곳에서 얻기 힘든 것들을 얻을 수 있거등.”
[릴카의 부탁 (6)- 강제 퀘스트]
-이제 익숙하잖아요? 받아들이세요!
그럼 그렇지. 이 녀석이 그냥 넘어갈 리가 있나.
설명에 양심 없는 거 봐라. 뭐, 은근히 도움도 되고 보상도 제대로 받으니까.
저번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는 영약을 받아서 쟁여 놨다.
소원 들어주는 연못을 없애며 추가 조건도 달성해서 보상을 하나 더 얻었는데.
[릴카의 소개장]
-탑 곳곳을 돌아다니는 릴카!
-인맥도 많고 릴카한테 빚을 진 NPC도 많죠.
-소개장을 보여 주면 비협조적인 NPC도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네요.
소개장이다. 비협조적인 NPC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상당히 매력적이다.
NPC라고 전부 우호적이지는 않으니까.
인벤토리에 잘 넣어 뒀다. 나중에 쓸 일이 생기겠지.
이제 남은 건…….
“그거 할 거지?”
“옆에서 봐줄 사람이 있을 때 하는 게 좋으니까.”
“잘 생각했엉. 괜히 혼자 하다가 꼬이면 곤란해지잖아.”
폴짝, 핥짝이한테서 빠져나온 릴카가 나를 잡아끈다.
비어 있는 방으로 들어간 릴카가 스킬을 사용한다.
[신기루 (S) Lv.MAX]
[사일러스 (S) Lv.MAX]
[금고화 (SS) Lv.MAX]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방 자체를 잠그고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조정했다.
혹시나 근처에 얼쩡거리는 사람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도록 신기루도 사용하고.
그럴 만한 일이다. 괜히 주변 사람들 끌어들였다가 낭패를 입을 수도 있어서.
71층으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할 일.
“그럼 연다?”
“으으. 다신 보기 싫었는데.”
[칭호, 차원 상인이 빛납니다!]
[차원 상점 오픈]
-지이이이잉
차원 상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깡총이 때와 달리 정식으로 사용하는 만큼 경험자인 릴카가 옆에서 보조해 주려는 것.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시커먼 소용돌이가 생성된다.
여기까지는 그때와 같았으나.
[차원 상인이 등장합니다.]
“하하하! 차원 상점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양식인지 알 수 없는 복장에 머리에는 더듬이 같아 보이는 것이 달렸다.
처음 보는 종족.
“아니, 이게 누구야? 릴카잖아!”
“카르카, 오랜만.”
둘이 아는 사이인 모양.
이상할 건 없다. 릴카는 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차원 틈을 떠돌아다니며 차원 상인으로 활동했으니까.
“손님부터 받으라구, 멍청아.”
“아이고, 실례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라. 어디 보자. 릴카와 같이 있는 걸 보니 대략적인 사용법은 숙지하고 계시겠죠?”
살짝 고개를 숙인 녀석이 눈을 빛내며 날 쳐다본다.
“오호라, 손님도 차원 상인이군요! 신입이라. 귀하네요, 이건.”
“상품 목록부터 볼 수 있을까?”
“그러시죠!”
과장된 손짓으로 그가 팔을 펼치자 차원 상점의 목록이 떠오른다.
역시나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난 빠르게 목록을 살폈다.
없는 것도 만들어 팔아 버린다는 것이 차원 상점. 분명 좋은 게 있을 거다. 잘 살펴보자.
“흠흠. 말했지만 한번 고르면 반드시 거래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엉. 최대한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릴카 역시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조언을 해 줬고.
“이거! 이거 주세요!”
“야!”
난 바로 물건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