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제네타
52층, 현자 존 트레일러에게 받았던 퀘스트가 있다.
[존 트레일러의 부탁- 돌발 퀘스트]
-현자, 존 트레일러에게는 마음의 짐이 있습니다.
-그를 도와주는 건 어떨까요?
-태초의 보석 (1/1)
-호문쿨루스 제네타 가동 (0/1)
-보상: 현자의 돌 (SSS)
무려 현자의 돌을 얻을 수 있는 퀘스트.
사실 현자의 돌에 대해 잘 모른다. SSS급 아이템이기도 하고, 마나석보다 월등히 강력한 아케인 젬을 만드는 핵심 재료 중 하나라는 것 정도?
아케인 젬 말고도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도 하는데, 연금술 쪽으로는 지식이 없어서 장담할 수 없다.
우뚝 멈춰 섰기 때문일까.
“야! 안 가냐?”
릴카를 안고 있던 핥짝이가 소리쳤다.
내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고개.
“앗! 지지야, 지지!”
폴짝 품에서 뛰어내린 릴카가 내게 달려왔다.
지지라니, 말이 심하네.
내가 찾아야 할 호문쿨루스는 제네타.
에너지원이 없어 가동 불가 상태라고 했던 거 같은데 실상은 좀 달랐다.
힘이 없는 건 마찬가진데 완전히 가동 불가가 된 거는 아니었다. 나를 정확히 바라보며 입을 달싹거리는 걸 보니.
“손, 님?”
남자아이의 모습이었는데 모든 호문쿨루스가 그러하듯 한 미모했다.
덩치가 작아서 어찌저찌 절전 상태로 버틴 거 같다. 상태를 보니 그것도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못 움직이고 말만 하지 않은가.
“인간, 사라.”
골목 구석. 녀석은 허름하다 못해 쓰레기랑 비교할 법한 가판대에 발을 올리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한쪽에는 깡통 하나. 팔려고 내놓은 것인지 정체 모를 것들이 올려져 있었는데.
[상한 고기]
-윽! 냄새!
-상했습니다.
[바퀴 하나 없는 미니카]
-굴러는 갑니다.
-아님 말고!
[고급스러울 뻔한 반지]
-중앙 보석을 누가 떼 갔네요.
양심이 있는 건가. 그냥 쓰레기 아니야?
그 와중에 가격은 비싸다. 저거 하나에 5,000포인트를 달라 하네. 날강도도 이러진 않겠다.
그 옆에 조그맣게 쓰여 있는 문구.
-마나석이랑 마정석도 받습니다.
아무래도 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 같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버틴 건가.
손끝으로 미니카를 집어 들었다. 바퀴는 돌아가나? 색도 벗겨져 얼룩덜룩하다.
어릴 적 문방구에서 팔던 싸구려도 이러지는 않았다.
“잡았, 으니. 사야 됨. 암튼 사야 됨.”
“양심이 없는데?”
바로 강매를 시전하는 녀석.
생긴 건 꼬마 같은 것이 못된 것만 배워서.
“얜 상도덕이 없다구!”
어이가 없어 눈을 깜빡이는 타이밍, 릴카가 나선다.
아. 얘 상인이었지. 이런 사기 같은 거래에는 민감…….
“차라리 내걸 사!”
“에라이, 자식아.”
-따악!
“아파!”
바로 꿀밤을 먹여 줬다. 여기서 영업을 하네. 그것도 수준이 비슷할 때 해야지. 다 쓰러져 가는 가게, 가게도 아니지. 노점상을 견제하냐.
“릴카, 오랜만.”
“으으. 내가 여기 있지 말랬는뎅. 말 안 들어.”
역시 NPC계의 인싸. 둘이 아는 사이 같다.
“전에 준, 마정석, 감사.”
흘낏 나와 멤버들을 바라보던 릴카가 모른 척한다. 부끄러운 모양.
뭐야. 괴롭히나 했더니만 도와줬던 건가.
“웬일로 착한 일을?”
“아, 아니거든! 맘에 드는 게 있었거등!”
쓱쓱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쪼르르 핥짝이한테 달려가 다시 안긴다.
솔직하지 못한 녀석 같으니.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만나서 반갑다. 이블아이라고 해.”
“나, 제네타. 말 자꾸 시켜서, 에너, 지 부족. 저것도, 사라.”
눈짓으로 상한 고기를 가리킨다.
피식 웃으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물건을 꺼냈다.
“그보다 더 좋은 걸 주지.”
[최상급 아케인 젬 (S)]
-호문쿨루스를 움직이는 핵.
-강력한 출력을 자랑합니다.
순간 제네타의 눈이 커진다.
시간 끌 거 없이 녀석에게 건넸다.
“다른 건 아니고 현자한테 부탁을 받았거든.”
“존, 트레일러?”
“어. 너 데리고 못 간 거 많이 미안해하더라.”
“그, 래.”
희미하게 웃은 녀석이 아케인 젬을 받아든다.
따로 설치를 해 줘야 하나 걱정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스스스슥
아케인 젬이 저절로 녀석의 몸에 녹아들었으니까.
-지이이이잉!
강력한 에너지의 파장.
일순간 제네타의 몸에서 푸른 빛이 나더니.
[동력 자원 획득]
[절전 상태 종료]
[정상 가동합니다!]
죽은 듯이 누워 있던 녀석이 기지개를 켰다.
-기기기긱!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었는지 관절에서 소리가 났지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시원하게 웃어 보일 뿐.
“으으으으! 살았다!”
그와 함께 울리는 알림창.
[존 트레일러의 부탁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건을 잡았다.
이게 현자의 돌인가.
한 손안에 들어가는 사이즈. 묘하게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동그란 형태의 돌이다.
살짝 투명한 것이 보석 같기도 하고.
신기한 마음에 살펴보고 있는데.
“혀, 현자의 돌!”
입을 딱 벌린 릴카가 달려와 점프한다.
어허. 어딜 감히.
바로 손을 들어 피했다.
“나 줘어어어!”
“어림도 없다, 요놈아. 어디서 맨입으로.”
“우우우우!”
릴카가 꼬리를 세웠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현자의 돌을 어떻게 쓸지는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당장은 용도도 모르고 내가 다를 수 있는 물건인지도 확실치 않아서.
영 모르겠으면 릴카한테 팔아도 괜찮을 거 같다.
그럼.
“가자.”
“응?”
미련 없이 등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왔다. 숙소 구해야지.
퀘스트 때문에 잠깐 온 거니까. 볼일 다 봤으면 가야지.
“나 안 데려감?”
“내가 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합류한 제네타가 멀뚱멀뚱 날 쳐다보니 당당히 외쳤다.
“구했으면 책임을 져야 됨.”
“…다시 뱉을래?”
“으윽! 못된 등반가가 호문쿨루스를 괴롭힌다!”
녀석이 바로 길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놈이?
당황하기가 무섭게 길거리에 있던 NPC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쟤 제네타 아니야?”
“야, 이 나쁜 놈들아. 안 그래도 다 죽어 가는 애한테 뭐 하는 거야!”
“말세야, 말세. 에잉.”
“어이. 일로 와봐. 어디서 애 한 명을 두고 우르르 몰려가지고.”
70층은 등반가가 많이 없다. 사실상 NPC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할 필요를 느꼈고 릴카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괴롭히기는요. 이렇게 사이좋게 있었는데요. 그치?”
“그, 그럼. 아항항.”
인싸 릴카의 말이라면 공신력이 생길 터.
“어? 나 아까 봤어. 릴카 머리 때리던데?”
“뭐어어? 저 쪼만한 애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카악, 퉤! 악질이었구만. 혼쭐을 내주지.”
역효과다.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길거리에 NPC가 빼곡하다.
진짜 무력을 행사할 생각인지 몽둥이도 들고 있다.
“공블아이. 이거 마, 맞아?”
“워우, 20명은 될 거 같은데요?”
냥펀과 보송송이가 물었다.
맞긴 맞지. 진짜 맞게 생겼는데.
허허. 이 악랄한 꼬마 같으니라고.
-꾸우우욱
“엇? 아야야야!”
제네타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너, 두고 보자. 뛰어!”
일단은 탈출이다.
왼손에는 릴카. 오른손에는 제네타를 잡고 뛰었다.
“어, 어?”
“몰라. 일단 뛰어!”
“하하하하! 오늘도 개판이군!”
NPC들과 대치하던 녀석들도 나를 따라 달렸다.
아무래도 귀찮은 놈을 주운 것 같다.
* * *
안전지대 외곽에 위치한 여관.
성난 NPC들을 피해 도망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NPC들이 활동 영역에 제한이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계속 쫓아왔을 거다.
어찌 됐든 여관은 빌렸다. 그리 크지 않은 관계로 건물 전체를 전세 냈다.
나도 그렇고 냥펀도 그렇고 포인트가 부족하지는 않아서.
가뜩이나 멤버들에 보송송이, 릴카까지 있는데 제네타까지 합류했다.
나 포함 무려 7명. 이 정도 인원으로 돌아다닌 적이 있던가. 나름 북적이고 나쁘지 않다.
끼익. 의자에 몸을 맡기며 식당 구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좋은 일 하고 이러기는 또 처음이네.”
멤버들은 방에서 씻고 휴식을 취하는 중.
난 식당에 앉아 제네타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제네타는 날 곤란하게 만든 죄로 양손을 들고 혼나는 중.
“나, 나는 왜.”
“어허. 네가 똑바로 말했으면 NPC들도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갈 수 있었잖아.”
얼떨결에 같이 벌을 서던 릴카가 입술을 삐죽인다.
됐다. 이건 이정도로 하고.
“둘 다 이리 와.”
“으으. 팔 아팡.”
“더러운 인간 놈들.”
둘을 부르자 구시렁거리면서 다가온다.
퀘스트는 완료했지만 제네타를 그냥 놔두기는 애매했다.
인도적인 차원일 수도 있고 현자에 대한 서비스인 것도 있지만…….
‘이 녀석을 어떻게 안 하면 계속 달라붙을 거란 말이지.’
그때마다 NPC들이 불친절하게 나올 건 뻔한 일이다.
70층부터는 상위층이다.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모아온 정보에 따르면 기존과는 다른 형식으로 등반이 진행된다.
당장 다음 안전지대에 올라가기 위한 조건이 붙는 것부터가 다르지 않던가.
가능한 여기서 대비를 좀 하고 싶은 마음. 상점도 들러야 하고 한동안은 릴카와 작업도 해야 한다.
물어볼 것들도 잔뜩 있고.
“뭐가 문제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먹고 살길이 막막함. 정상 가동되면서 시스템이 요구하는 게 많아짐. 앵벌이로 못 버텨.”
아. 그것참 현실적인 문제네.
그동안은 절전 상태라 적당히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안 된다는 말이다.
NPC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 자아를 유지한 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릴카처럼 물건을 팔든 퀘스트를 주든 필드에서 구르든.
현재 제네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가지고 있는 것도 없다.
퀘스트를 주는 것 자체는 할 수 있지만 보상으로 줄 만한 물건이 없다는 것.
이럴 경우 생산 활동을 하거나 장사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지. 70층에는 등반가가 많지 않으니까.’
제네타를 불쌍히 여기면서도 NPC들이 섣불리 돕지 못했던 이유가 뭐겠는가.
그들도 여유가 없는 거다. 근근이 먹고 살 정도 벌고 있는 거겠지.
나중에야 연합 사람들을 비롯해 등반가가 여럿 들어오면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릴카, 이쪽으로는 네가 잘 알잖아. 방법 없어? 조수로 쓴다던가.”
“으으음. 난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조수 있어도 못 썽.”
맞네. 대장장이 일만 하면 몰라도 개인 상인도 겸하고 있으니 사실상 혹을 하나 붙여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작 재료 사느라 돈도 펑펑 쓰는 녀석이라 감당이 될지도 의문이고.
뭐가 됐든 자생을 해야 한다는 건데.
내가 무슨 사회복지사도 아니고 NPC 인생 설계를 하고 앉았냐.
“제네타, 네가 잘하는 거 뭐야? 현자랑 같이 탑 올랐다며 뭐든 했을 거잖아.”
“난 전투 담당이 아니라서 다른 건 모르겠고 이런 건 할 줄 앎.”
머리를 긁적이던 제네타가 손을 펼친다.
부끄러워하는 것에 크게 기대감은 없었는데.
-파아아아앗!
심상치 않은 광채가 일었다.
전투 담당이 아니었다면 대체 어떤 역할을 했단 말인가.
서서히 잦아드는 빛.
힘이 빠진 듯 녀석이 길게 숨을 내뱉는다. 난 그의 손에 쥐어진 물건을 확인했고.
“이런 미친…….”
어째서 제네타가 에너지가 방전된 채 방치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