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70층
거침없이 벌룬 파크를 헤집었다.
나를 막는 NPC는 없었다. 본인이 부탁했는데 막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처음에는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으나.
“벤쉬가 누굽니까? 나오세요.”
“아! 접니다! 히히히히!”
성공적으로 풍선의 주인을 찾아 주기 시작하자 불안은 신뢰로 변했다.
풍선을 가져간 벤쉬가 풍선을 터트렸다.
-빰빠라라밤! 빰빠밤!
이제는 익숙한 효과음과 함께 사라졌던 왼쪽 눈을 되찾았다.
“드디어 제대로 보인다!”
“오오오! 축하해!”
“다들 박수!”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NPC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축하해 주는 이들.
이미 자신의 신체를 얻은 이들 역시 박수를 치며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야, 날로 먹네.”
“날블아이!”
“하하하하! 불의를 참지 않는 모습, 아주 좋다!”
“굉장하군요. 60층대에서 이런 퍼포먼스라니.”
멤버들과 보송송이도 마찬가지.
벌룬 파크가 넓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구조물. 돌아다니다 보니 금방 만날 수 있었다.
의외로 냥펀과 탈모맨은 이미 자신의 풍선을 찾았다.
나보다는 아니지만 상당히 빠른 속도라고 볼 수 있었는데…….
‘냥펀은 아티팩트로 찾았고, 탈모맨은 자기 기운을 찾아갔다고 했었지.’
아티팩트야 나도 쓰고 있으니 그렇다 치고, 탈모맨은 좀 특이했다.
신성력과 마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만큼 두 가지 기운이 모두 느껴지는 풍선을 찾아 터트렸다고…….
다들 나름의 방법으로 클리어를 하는 거 같다. 핥짝이도 놔뒀으면 냥펀의 도움을 받아 알아서 클리어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다. 재앙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서 클리어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본인 능력이 아니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여기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물려받기라도 해 볼까.”
내가 쓰고 있는 망원경 같은 아이템을 하나 구해서 전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69층에 오른 사람이 쓴 다음, 이후에 올라올 사람에게 건네주는 형식.
물론 문제는 많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밖으로 나가게 되면 사라질 것이고, 개인이 욕심을 부린다면 물려주지 않을 거다.
부작용도 좀 있고 하다만 양산할 만한 아이템을 만들 수 있으면 할 만할 거 같은데.
이건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고.
“왜 이렇게 질척거려! 네가 그런다고 안 찾을 거 같아?”
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피엔트를 보며 얼굴을 구겼다.
도리질을 하며 매달리는 녀석.
질질 녀석을 끌며 계속해서 풍선을 가리켰다.
“천장에 빨간색은 호메 풍선이고요, 저쪽 기차 세 번째 칸에 달린 파란색은 카민 밀러의 풍선입니다. 챙겨 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게 저기 있었구나, 고맙소!”
신나서 달려가는 NPC들.
그들을 막고 싶은지 피엔트가 팔을 허우적거린다.
이때다 싶어 발을 털었다. 처량하게 나가떨어진 피엔트가 훌쩍인다.
확실히 전투와는 인연이 없는 재앙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만한 놈은 아닌 거 같지만, NPC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직접 피엔트를 공격할 경우 풍선을 터트려 버린다고 한다.
공격한다 하더라도 죽이기도 힘들고, 어떻게 죽여도 어디선가 새로운 피엔트가 나온다나.
나야 애초에 싸울 생각이 없으니 상관없다.
그렇게 풍선 찾기가 이어졌고.
[벌룬 파크의 모든 NPC가 풍선을 되찾았습니다!]
[집단 전송이 이루어집니다!]
[이블아이의 명성이 탑 곳곳에 퍼집니다!]
“오, 다 끝났나?”
오래지 않아 모든 NPC의 풍선을 찾았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다 보니 금방 끝났다. NPC들이 질서 있게 따라와 준 덕분인가.
NPC들 아래에 전송 마법진이 생성된다. 밝은 표정으로 내게 손을 흔드는 녀석들.
“이 은혜 잊지 않겠네!”
“쁘찡 연합이라고 했던가? 마주치면 잘해 줄게!”
“지긋지긋한 곳도 안녕이다! 잘 있어라, 피엔트!”
-파아아아앗!
빛과 함께 NPC들이 사라진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중에 연합 사람들을 만나면 잘 대해 주라고 언질을 줬다.
재앙 구간에서 벗어난 NPC들은 안전지대로 이동하니까.
어느 서버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중에는 대한민국 서버도 섞여 있을 거다.
다른 서버라도 연합에 대해 알려 주면 나중에 합류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도 있고.
현재 해외 헌터들의 유입도 늘어나 쁘찡 연합의 규모가 상당히 커졌다. 등반가로 이루어진 세력 중에는 가장 큰 규모.
대형 길드도 함부로 건들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고, 지금에 와서는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
그건 그거고.
“쟤, 뭐 하냐.”
“우는 거 같은데?”
“공블아이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텅 비어 버린 벌룬 파크, 광장에 철푸덕 주저앉은 피엔트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풍선은 모조리 터졌고, 곳곳에 있던 NPC는 모두 위로 올라갔다.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였고.
[대규모 NPC 전송 확인]
[NPC 보충까지 남은 시간 16일]
새로운 NPC가 이곳으로 들어오기까지는 2주일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상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고, 새롭게 들어오는 등반가는 쉽게 69층을 클리어할 수 있게 됐다.
한 명씩 순차대로 들어와서 풍선을 전부 터트리면 되는 거니까.
“괜찮은데?”
오케이, 대충 감이 잡혔다.
한 번씩 벌룬 파크를 완전히 정리한 후에 순서대로 들어오라고 하면 되잖아.
그때마다 관측 아이템을 뿌려 주고.
망원경이야 내가 써야 하니 안 되고, 보급용으로 만들어 달라고 프램버그에 연락을 넣어야겠다.
그곳의 기술력이라면 풍선을 찾아내는 물건도 만들 수 있겠지.
생각을 마친 후에 바로 연락을 넣었다. 나중에 프로토타입을 만들면 연락을 줄 거다. 보급은 이준석한테 맡기면 될 거고.
이걸로 대략적인 공략법은 완료.
바쁜 것도 끝났겠다. 좀 쉬어 볼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정작 쉬지를 못했다.
멤버들도 여유가 생겨서 그런가 벌룬 파크 곳곳을 살펴보는 중.
“이거 맛있다!”
“쓸 만한 물건이 좀 있네. 다 두고 가서 그런가.”
NPC들이 올라가며 남긴 물건들, 츄러스나 솜사탕 같은 간식도 제법 있고, 따로 쓰던 아이템도 어느 정도 남았다.
주인 없는 물건들이니 챙겨도 괜찮겠지. 파밍 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녀석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난 벤치에 누웠다. 퀘스트 보상을 확인할 생각.
[신체 보물찾기!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NPC들이 단체로 준 퀘스트라 어떤 게 나올지 짐작이 안 간다.
뭐가 나오려나. 난 하늘에서 떨어진 물건을 확인했고.
“이게 뭐지? 신기하게 생겼네.”
그동안 본 적 없는 형태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정육면체 유리였는데 내부가 특이하다.
유리 내부에 하얀색으로 뭔가가 그려져 있었는데 뭐랄까… 지도? 어딘가의 통로를 보여 주는 것 같다.
3D 지도라고 해야 하나.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얼핏 봐도 복잡한 구조. 전에 겪은 미궁도 이것보다는 덜 복잡했던 거 같은데.
권능으로 정보를 확인했다.
[수정 무덤 지도]
-전설 속, 수정 왕국을 아시나요?
-전설이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했었죠!
-수정 왕국이 가장 번성했을 때의 왕, 쿠쟌이 잠든 무덤의 지도입니다.
-수정을 가공해 만든 3D지도. 멋지지 않나요?
수정 왕국이라, 이건 또 처음 들어 본다.
아무래도 유적인 모양. 어느 층에 있는 유적인지는 모르겠다.
릴카를 만나면 물어봐야지.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알고 있으니까.
-저벅저벅
“음? 왜, 볼일 있냐?”
편히 누워 빈둥거리는 내게 피엔트가 다가왔다.
축 처진 어깨에 시무룩한 얼굴.
녀석이 팻말을 들어 올린다. 말은 하지 않는 대신에 팻말에 글을 적어 대화를 하는 모양.
어디 보자.
-여기 계속 있을 건가요?
“아니, 나도 바쁜 사람이야. 계속 못 있지.”
슥슥. 팻말을 지운 녀석이 새롭게 글을 쓴다.
반쯤 울먹이는 표정.
-얼른 위로 꺼져요, 시제발.
명백한 축객령.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좀 많이 괴롭히기는 했지.
좋다. 있어 봐야 나오는 것도 없는데. 손을 털고 일어났다.
“생각보다 별거 없네.”
“자잘한 것도 팔면 돈이 된다구! 티끌 모아 태산!”
“닭꼬치 오랜만에 먹으니까 장난 아니다.”
“닭도 단백질 아니겠어요? 하하하!”
멤버들도 파밍을 마친 것 같고.
더 지체할 필요는 없겠지.
툭툭. 페인트의 머리를 두들겨줬다.
“간다, 가. 뭘 또 삐져 가지고. 70층으로 가자! 이제 상위층이다!”
“오오오! 상위층!”
“간드아아아!”
예상보다 빠르게 클리어한 69층.
우린 포탈을 넘었다.
포탈을 넘기 전, 나를 째려보던 피엔트가 바닥에 침을 뱉은 것 같기도 하고.
* * *
-우우우우우웅
-파아아앗!
익숙한 부유감이 끝나고 빛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시야가 선명해진다.
[70층- 안전지대]
[상위층에 진입하신 걸 축하합니다!]
[현 시간부로 70층 미만 채널에서의 글 작성이 불가능해집니다.]
지금부터는 70층 이상 채널에서만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다.
하위층은 눈으로 보는 거로 만족해야지.
아무튼.
“안전지대 광장은 다 똑같구나.”
“안전지대가 그렇지 뭐.”
“하하하! 간만에 목욕이나 해 보실까!”
우리가 서 있는 곳은 70층 광장.
구조 자체는 익숙하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으니.
“등반가가 안 보이넹.”
“상위층까지 올라온 사람이 많지 않잖아.”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 모두 NPC라는 것.
몇몇이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오랜만에 들어온 등반가라는 건가.
광장에는 없더라도 어딘가에는 등반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우리가 전부일 수도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상위층을 오르고 있는 사람이 대충 50여 명이라고 했던 거 같으니까.
그거야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내용이다.
“왔냐아아아아!”
NPC 사이를 뚫고 한 녀석이 달려온다.
보나 마나 릴카. 아니나 다를까 오도도도 달려온 녀석이 펄쩍 뛰어 내게 날아온다.
일단 받아 줬다. 찰싹 달라붙는 녀석. 순간 몸이 앞으로 쏠렸다.
“윽! 너 좀 무거워졌다?”
“안 무겁거등!”
-따악!
잽싸게 내 머리를 친 녀석이 바닥으로 내려온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뭐지, 왜 내가 머리를 맞은 거지.
“어서 퀘스트 재료를 내놓, 꿱!”
“그래, 이 감촉이지.”
바로 복수해 줬다.
크으. 오랜만에 때리는 꿀밤이라 그런가 손맛이 좋네.
역시 릴카 두상이 제일 예뻐.
“아파!”
“성장통이란다. 아직 키가 덜 컸나 보지.”
“진짜?”
진짜겠냐.
못 본 사이에 좀 더 멍청해진 것도 같고.
괜히 나 때문에 그런 거 같아 쓱쓱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똑똑해져라. 똑똑해져라.
“…왠지 눈빛이 불손한뎅?”
“착각이야, 그럴 리가 있나. 여긴 처음이라 그런데 괜찮은 여관 있으면 안내 좀 해 줘라.”
“흐음, 따라왕.”
가늘게 뜬 눈으로 날 노려보던 녀석이 앞장서기 시작했다.
안전지대에 도착하면 여관부터 구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래야 죽은 뒤 다시 안전지대에 떨어져도 광장이 아니라 여관으로 떨어지니까.
예전에야 대형 길드랑 척을 져서 그런 거지만. 뭐,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지.
“히히, 귀여워.”
“엣? 흠흠. 그대로 직진. 그다음 오른쪽.”
어느새 릴카 옆으로 다가선 핥짝이가 릴카를 안아 든다.
은근히 귀여운 걸 좋아한단 말이지.
릴카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고.
안내에 따라 골목을 걸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괜찮은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아!”
맞다. 70층이면 그것도 해야 하는데. 현자한테 받은 퀘스트가 있다.
분명 에너지가 다 닳은 호문쿨루스를 충전시키는 거였는데…….
“설마 저건가.”
골목 구석 내가 찾던 인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