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39화 (339/740)

339화 69층

재앙과의 내기에서 승리.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흔치 않은 일이라는 건 알겠다.

그 증거로 혼돈 수치를 10점이나 주었으니.

층마다 다르지만 두 자리 숫자로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기서 느낀 건데…….

‘혼돈 수치는 단순히 재앙을 잡아서 얻는 게 아니야.’

층을 클리어하면 기본적으로 혼돈 수치를 얻을 수는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어떤지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어지거나 추가로 주는 형식 같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재앙을 만나기 전부터 혼돈 점수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행동과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겠지.

나야 이미 혼돈 점수 100점을 넘겼으니 그러려니 한다만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한 정보다.

70층이 머지않았다. 상위층에 올라가면 하위 채널에 글을 올릴 수 없다.

“야야, 똑바로 안 드냐?”

“아, 알겠노라.”

편히 누워 있는 자세 그대로 한쪽 구석에 무릎 꿇고 양손을 들고 있는 옥토 선생에게 핀잔을 줬다.

내기에서 승리했다는 건 뭐다? 뭐긴 뭐야. 이제 이 녀석은 내 맘대로 굴릴 수 있다는 거지.

소유권을 인정받았으니 어지간한 명령은 내릴 수 있을 거다.

물론 일정 선은 지켜야 한다. 키우던 개도 주인을 무는 마당에 재앙이 어떻게 나올 줄 알고.

진짜 노예처럼 부려 먹다가 눈 돌아가면 그땐 답이 없다.

“그헤헤헤!”

“꼬리는 안 된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덕춘이가 옥토 선생 주변을 알짱거리며 깐족거린다.

더덕이 때도 느낀 건데 덕춘이가 서열 정리를 참 잘한단 말이지.

“깡총아, 포기하면 편해. 덕춘이 앞에서는 넌 그냥 토끼일 뿐이야.”

“토끼가 맞다만… 것보다 깡총이라는 이름은 좀 어떻게 할 수 없느냐. 품격이라고는 없구나.”

“원래 개똥이처럼 지어야 오래 산댔어. 다 너를 위한 거라고.”

“오호라, 그래서 덕춘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로고.”

“궥?”

괜히 옆에 있던 덕춘이까지 날 노려본다.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니,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지.

깡총이. 내가 옥토 선생에게 새롭게 지어 준 이름이다. 그리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지는 않았으나 덕춘이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차라리 이게 낫다는 표정이다.

현재 우리들은 68층을 클리어한 상태.

[68층 클리어!]

[혼돈 +5점]

[전 서버 최초! 차원 상점을 오픈했습니다.]

[칭호, 차원 상인을 획득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혼돈 점수를 추가로 받는 건 물론이고, 칭호도 얻었다.

차원 상인!

아무래도 어떤 식으로든 차원 상점을 여는 것이 트리거인 모양.

릴카도 차원 상인이라고 했었나,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다.

70층에 올라가서 물어보는 것이 나을 터.

남들이 쓸 수 없는 걸 쓸 수 있다는 건 분명한 메리트다. 기분 좋은 수확이고.

“68층은 좀 쉽게 지나가겠군.”

내가 깡총이의 주인이 된 이상 이후에 탑을 오르는 이들에게 68층은 프리패스다.

이미 말을 해 놨다. 애들 괴롭히지 말고 곱게 보내 주라고.

솔직히 말하면 반쯤 의구심이 들기는 했다. 재앙은 각자 할 일이 있으니까. 즉, 탑이 목적을 가지고 배치해 둔 존재라는 거다.

그동안 겪어 온 재앙들도 기능을 하지 못하면 재생성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나.

[월광의 옥토 선생의 소유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행히 탑은 내기의 결과를 존중해 줬다. 정확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오랜만에 밀린 공략들도 전부 올렸다.

안 그래도 60층대를 오르고 있는 이들이 늘어난 상황.

쁘찡 연합뿐만이 아니다. 오필리아가 이끄는 노블 나이트도 빠르게 따라붙는 중.

대충 예상하건대 70층대에서는 연합 사람들과 만나지 않을까 싶다.

나만 공략을 올린 게 아니다.

[냥냥펀치]: 68층 날로 먹는 방법.

그냥 올라오면 지나갈 수 있다냥!

깡총이 괴롭히다 얻어터질 수 있으니 주의!

평소 내가 올린 공략을 정리해 재업로드 해 주던 냥펀도 공략을 올렸다.

내가 부탁했다. 보송송이도 옆에 있어서 내가 직접 올리면 쁘띠공듀인 게 탄로 날 테니까.

맨입으로 해 달라고 한 건 아니고…….

“공블아이를 찬양하라! 흑흑. 손실 메꿨다.”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냥펀 님!”

깡총이가 가지고 있던 아이템을 줬다. 그동안 나를 돕다가 날려 먹은 아티팩트가 너무 많아서 그냥 두기에는 미안하더라고.

옆에서는 보송송이가 부채질을 해 주는 중. 내기가 끝나고 냥펀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부터는 계속 저러고 있다. 이게 팬이지. 왜 내 팬들은 ‘쁘띠! 공듀! 평화!’ 이러고 있는 걸까.

“나도 덕분에 잘 먹고 갑니다아.”

뒤따라온 핥짝이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다.

옥토 선생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이 등급은 높은데 상태가 안 좋거나 내가 쓰기에는 애매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몇 개는 챙겨 두고 나머지는 멤버들에게 풀었다.

핥짝이가 입고 있는 은갈치 슈트도 장비를 흡수해 능력치를 강화시키는 성장형 아이템이라 재료를 많이 먹는 편이라 한다.

탈모맨이야 거의 맨몸으로 싸우는 놈이라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마당에서 운동 중.

보송송이한테도 권유를 하기는 했는데.

“구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어떻게 받아요.”라는 예의 바른 소리를 했다가 헛소리 말라는 핥짝이와 냥펀에게 귀를 잡혀 끌려갔었다.

줄 때 받아야 한다는 지론. 몇 가지 물건을 챙겼는지 빵긋 웃는 것이 내심 관심이 가기는 했나 보다.

잡혀 있던 천족들은 필드로 돌아갔다. 그냥 간 건 아니고…….

“오오, 위대하신 천족이시다.”

“얼음과 불의 교단이라니. 고대의 신앙이 새롭게 솟아올랐노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성일지니, 숭배하라! 미천한 것들이여!”

어쩌다 보니 얼음과 불의 교단으로 편입해 버렸다.

아무래도 내가 싸우면서 신성력을 뿜어 댄 영향인 거 같은데… 이때다 싶어서 포교 활동 좀 했다. 뭐든 신도가 늘어나면 나야 좋지. 신성력도 늘어나고.

“위로 올라갈 거냐?”

“올라가야지.”

핥짝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좀 남아서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것들도 체크했다. 화조국에 납품할 것들도 만들어서 보내고, 프램버그에도 물건 좀 보내고.

운석을 팔면서 얻은 보상도 확인했다. 일반적인 재화로 거래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아이템이나 그에 준하는 귀금속 등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네.”

[푸거의 접이식 망원경 (SS)]

-전설적인 애꾸 해적 푸거가 사용하던 망원경.

-단순히 멀리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죠!

상당히 좋은 물건이 떴다. 원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다는 설명.

등급 또한 SS급이었으니 말 다 했지.

안 그래도 별을 주시하는 눈이 있어 정보를 잘 얻는 편이었는데, 이것까지 있으면 더욱 좋은 효과가 날 거다.

시험 삼아 사용해 보니…….

-지이이잉

저절로 늘어나며 초점이 맞춰지더니 오두막 안에서는 보이지 않을 탈모맨이 보였다.

마당에서 운동을 하는 중. 어디서 났는지 보충제도 꺼내 먹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즉

내가 이 아이템이 마음에 드는 이유. 이런 식으로 권능과 연계가 가능하다.

녀석이 먹는 보충제의 정보가 떠오른다. 탑에 저런 게 있던가. 살짝 관심이 생겼다.

[단백질 보충제 MAX]

-고급 단백질 보충제입니다.

-메스토카 유충을 말려 곱게 갈았죠!

-그뿐일까요? 킹매뚜라기와…….

…그만 알아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하는 건 얻었으니 69층으로 올라갈 생각.

굳이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깡총아, 우리 간다.”

“드디어 가느냐? 하하하하!”

“너무 대놓고 좋아하는 거 아니냐?”

“그럴 리가,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더냐.”

전혀, 1그램도 느껴지지 않는데.

하다못해 입꼬리라도 내리고 말해라.

됐다. 쓱쓱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밖으로 나섰다.

“가자, 탈모맨!”

“이제 가는 거야? 좋지!”

-쿵!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바벨을 내려놓은 탈모맨도 포탈로 향했다.

“냥펀 님, 가는 길 꽃길만 걸으시고 들숨에는 건강을, 날숨에는 재화를 얻으소서.”

“오오냥, 너도 무탈히 올라 이 몸을 보좌하거라. 내 정체 어디서 떠들고 다니지 말고.”

“충신, 보송송이.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럼 나 먼저 간닷!”

“저도 따라갑니다!”

자연스레 부하1을 얻은 냥펀과 보송송이가 먼저 포탈을 지나고.

“좀 있으면 70층이네, 이따 보자!”

“읏차, 몸도 풀었겠다. 해 보실까.”

핥짝이와 탈모맨도 진입.

나 역시 망설임 없이 덕춘이와 함께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 * *

-우우우우웅

-파아아앗!

익숙한 전송이 끝나고 빛이 터졌다.

[69층]

[재앙을 극복하시오.]

68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황폐한 건 68층과 마찬가지였으나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었으니.

“저건 또 뭐야?”

“그에에.”

거대한 건물 하나가 보였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외관.

장난감 성같이 과장된 장신구와 성벽. 웅장함보다는 깜찍한 느낌이 강했다.

탑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으나 삭막한 공간에 동떨어진 이질감 덕에 재앙과 관련되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혹시나 다른 게 있나 싶어서 필드를 둘러봤으나 아무것도 없다.

결국은 저쪽으로 가야 한다는 건데.

-지이이잉

“마법진?”

얼마 걷지 않아 발밑으로 마법진이 나타났다.

꽤 커다란 사이즈. 작정하고 피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고.

-파아아앙!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만큼이나 빠르게 마법진이 활성화되었다.

위로 터지는 팡파르. 종이꽃이 휘날리며 몸이 빨려 들어간다.

[벌룬 파크에 입장합니다.]

그런 내게 떠오르는 메시지.

포탈에 이어 연달아 장소가 바뀌었다.

“워우.”

“그에에.”

무슨 테마파크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

뭐랄까. 거대한 실내 놀이동산 같은 느낌이다.

관리가 안 돼 칠이 벗겨지거나 녹이 슨 부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발랄한 풍경.

놀이기구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인형이나 풍선도 사방에 달려 있다.

이곳이 어딘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69층에 있는 건축물이라고는 아까 보았던 성밖에 없으니까.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잡아 오는 건가.

조금은 흥미로운 방식. 여기에 하나 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으니…….

“솜사탕 팝니다!”

“여기 이것 좀 잡숴 봐. 새콤한 것이 일품이여!”

“거기, 발 조심하고!”

이곳에서는 NPC가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었다.

언뜻 활기차 보이기까지. 하는 것만 보면 안전지대나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다만 왠지 모를 위화감. 재앙이 있는 곳에서 이럴 수 있는가.

예외가 없는 건 아니다. 발자칸도 따지고 보면 제대로 된 환경을 구축하고 있었으니까. 여기라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묘하게 이상하단 말이야.’

난 보이는 그대로를 믿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그들을 관찰했다.

NPC들은 웃고 있었으나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해야 하나.

내가 서 있는 곳은 입구. 아직 완전히 입장한 상태는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은 안 보이는 걸로 봐서는 입구가 여러 개인 거 같은데.

-우우우웅!

내가 있는 대기실에서 불길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5분 내 입장하지 않을 시 사망]

“이야, 강제 입장이야?”

강매도 아니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 찰나.

휘적휘적, 한 인물이 다가왔다.

피에로 분장을 한 존재. 화려한 색의 정장과 모자, 커다란 키를 자랑하는 녀석이 휘적휘적 걸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중절모를 올려 인사를 하더니 자신이 들고 있는 풍선들을 가리킨다.

그러고는 품에서 불지 않은 풍선을 건네주며 팻말을 가리켰다.

[입장하기 위해서는 풍선을 불어야 합니다.]

풍선.

릴카가 준 퀘스트의 마지막 재료가 불지 않은 풍선이었지 아마?

그렇다는 건.

“네가 이곳의 재앙이군?”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고.

[재앙, 벌룬 파크의 피엔트를 마주했습니다.]

알림창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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