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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38화 (338/740)

338화 승자

불타오른 대지 위로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사망자는 제로.

다친 사람은 있을지언정 죽은 사람은 없다.

내기의 승자는 누구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옥토 선생을 바라봤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을 흘렸다.

‘불리해. 확실히 불리해.’

운석을 한 번 막기는 했으나 따지고 보면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다.

여전히 천족 한 명은 수인이 되다 말았고, 밤은 끝나지 않았다.

구사일생도 써 버렸으니 똑같은 방법을 쓰는 건 불가능.

달의 눈물이 한 번만 더 떨어져도 상황은 역전된다.

놈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물론 놈도 멍청이가 아니니 내 상태가 멀쩡하지는 않다는 건 알아차렸을 거다. 지금 필요한 건 약간의 허세.

“어떻게 더 해봐?”

부담이 가는 건 녀석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재앙이라도 운석을 제한 없이 쏟아 낼 수는 없을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68층의 NPC는 전멸했을 테니까.

삐딱하게 몸을 세우며 녀석을 응시했다.

어떻게 나올 생각이냐, 옥토 선생.

“재밌구나. 역시 내가 눈여겨볼 만한 자로다.”

허세가 먹힌 걸까. 옥토 선생이 어깨를 으쓱인다.

흥미 가득한 눈동자가 움직인다.

땅에 박힌 운석의 파편, 변하다 만 천족, 여전히 빛이 나는 보름달, 이어서 내게로.

패배를 인정하는 걸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긴장되는 순간.

히죽, 녀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더욱 탐이 나는구나. 나와 함께하는 게다, 이블아이!”

-콰앙!

벼락같이 땅을 내리찍는 절굿공이.

터져나가는 파편 사이,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제길, 실패다.

놈도 걸린 게 있는 만큼 쉽게 넘어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 안 돼. 한 번 더 오는 거냐!”

“우린 다 죽었어, 죽는다고!”

“무지개 녀석아! 어떻게든 해 봐!”

두려움에 떤 천족들이 아우성친다.

멤버들과 보송송이도 얼굴을 굳혔다.

한 번은 막았지만 이번에도 막을 수 있을까?

“…공블아이, 또 할 수 있어?”

“해보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핥짝이의 말에 확답 대신 의지를 밝혔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선언이었으며.

“어쩔 수 없지. 어떻게든 해보자고.”

“우오오오! 크로스!”

“크로쓰으으!”

한숨을 내쉰 핥짝이가 손을 털어 냈다.

탈모맨과 보송송이는 팔을 교차하며 파이팅을 외치는 중.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으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으아아앙! 왜! 왜! 얘랑만 있으면 이 난리냐구!”

“허허허. 나를 두들겨도 나오는 건 운석밖에 없단다.”

냥펀이 우는소릴 하며 날 때리기는 했으나 이 정도는 그러려니 해야지.

머리를 움켜잡은 냥펀이 우뚝 멈춘다.

“흑흑! 텅─장의 힘을 보여 주겠어!”

생존 욕구로 따지면 우리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게 냥펀이다.

곧 냉철함을 되찾은 녀석도 아티팩트를 꺼내며 준비한다.

눈을 깜빡이듯 천천히 점멸하는 보름달.

“쿨럭!”

옥토 선생이 피를 토했다.

무리를 하는 건 녀석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운석을 두 번 넘게 사용하는 건 본 적 없어요! 아까보다는 작을 겁니다!”

보송송이가 외친다.

역시나, 보통은 하루에 한 번 정도인가.

“마, 맞아! 저거 그리고 진짜 운석 아니야! 불타기 전까지는 덜 단단해!”

“가속하기 전에 처리하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가라아아앗! 무지개애애!”

본인들의 목숨이 내게 달려 있다 이건가, 천족들 역시 머리를 굴려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뱉어 냈다.

막강해 보이는 능력도 나름대로 파훼법이 있다는 거겠지.

물론 쉽지 않을 거다. 누구나 할 수 있으면 필드가 이 꼴이 됐을 리도 없으니까.

[무지개다리 (S)]

-촤아아아악!

지체할 거 없이 달을 향해 무지개다리를 뻗었다.

아직 운석의 형체는 식별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작다. 땅에 떨어지려면 한참 남았다는 거겠지.

“해보자고.”

무지개다리를 타고 위로 올랐다. 전력을 다해 최대한 빠르게.

달에 가까워질수록 운석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확실히 아까 본 운석보다 작다. 여전히 위협적인 건 마찬가지였으나 조금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운석을 노려보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구사일생은 못 써. 아스트랄 레인보우도 마찬가지. 오로라 빔도 데미지가 줄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운석 강도 확인해 본답시고 아스트랄 레인보우를 쓰지 않는 건데.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들이받을까?

무한코인이 있는 만큼 무식하게 가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그럼 내기에 지는 거지.”

내가 죽은 것도 죽은 거다. 다시 68층에 올라와도 기다리는 건 나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옥토 선생뿐. 최악의 결과를 잠시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

되갚기를 써야 하나? 파이어 밤이랑 섞어서 쓴다면 어느 정도 파괴력이 나올 텐데.

-치직, 치지지지직

아래에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온 타이밍.

운석 역시 공기의 저항을 맞아 조금씩 타들어 가고 있었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답이 없다. 마땅히 더 좋은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판단을 마쳤으면 행동은 빠르게.

-콰아아앙!

무지개다리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이어서 파이어 밤을 터트려 운석에 접근.

[달라붙기 (A) Lv.3]

스킬을 사용해 운석의 표면에 붙는 데 성공했다.

밑에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하얀색과 회색이 섞인 무기질.

크기는 어림잡아 축구 경기장 반 정도.

지금은 이 사이즈지만 땅에 떨어질 때쯤에는 크기가 훨씬 줄여 줄 거다.

일부가 떨어져 나가든 압축되든 할 테니까.

“후우, 훕!”

-콰아앙!

-쾅! 콰광! 쾅!

연달아 표면을 내리쳤다.

천족이 말한 대로다. 불타기 전의 운석은 그리 단단하지 않다.

[땅굴 이동 (AAA) Lv.1]

-쿠르르르릉

운석 안으로 파고들었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어림짐작으로 해야 한다.

[칭호, 밤을 부르는 자가 빛을 발합니다!]

[안개 질주 (S) Lv.6]

[망자 귀환 (S) Lv.3]

[버프 다이스 (S) Lv.3]

[5]

[충격파]

이어진 풀 도핑.

스텟이 오르며 힘이 끓는다. 급격히 늘어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몸 이곳저곳이 비명을 질러 댔지만 무시했다.

아직 더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서.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 (SSS)를 착용합니다!]

[러브 앤 피스 (S) Lv.10]

신성력도 힘. 어떻게든 욱여넣으면 데미지가 늘어난다. 효율적이냐고 묻는다면 대답 못 하겠지만 그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다.

지금의 난.

“부서져라아아아!”

[되갚기 (S) Lv.7]

[스킬 레벨업!]

[되갚기 (S) Lv.8]

[파이어 밤 (S) Lv.10]

[파이어 밤 (S) Lv.10]

[파이어 밤 (S) Lv.10]

.

.

.

인간 다이너마이트니까.

-쿠구구구구궁

-쿠궁, 콰아아아아앙!

세상을 집어삼키는 순백의 폭발.

내가 뚫고 들어온 땅굴을 시작으로 빛이 뿜어져 나간다.

사방에 이는 균열. 무너지는 굴. 파편이 되어 흩어지는 공간.

“크하아악!”

나 또한 데미지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끔찍한 고통이 동반되었으나 이를 악물며 정신을 잡았다.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된다.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반쯤은 오기로 바닥을 기어 구덩이를 나왔다.

하늘 위로 흩어지는 파편들. 그중에는 꽤 커다란 것도 있었다. 운석을 폭발하는 데 성공한 걸까?

“아.”

탄식했다.

운석을 두 조각으로 만들기는 했다.

다만…….

“더 깊이 들어갔어야 했어.”

살짝 얕았다. 감으로 안으로 파고들었지만 충분하지 못했던 모양.

운석의 30퍼센트 정도만이 떨어져 나갔다.

내가 있는 본체는 여전히 땅으로 떨어지는 중. 폭발의 여파로 방향이 틀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멤버들의 사정권 안이다.

-타닥, 타다닥

-푸화아아악!

설상가상 가속도를 얻은 운석이 불타기 시작했다.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건지 급속도로 뜨거워지는 운석.

-까아아아앙!

강도 역시 올라가 아무리 내려쳐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땅굴 이동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저 아래, 필드가 보인다.

“제길! 제길! 제길!”

바닥을 내리쳤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남은 마력을 끌어모으며 폭발을 일으켰다.

조금이라도 더 휘어지도록. 멤버들을 벗어나 다른 곳에 처박히도록.

속력이 붙은 운석은 쉽사리 방향을 틀지 않았다. 그저 정면을 빗겨나갈 정도.

절망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타이밍.

[SS급 권능, 차원 상인의 무자본 특혜가 발휘됩니다!]

[차원 랜덤 박스가 지급됩니다.]

“어?”

릴카의 계승자가 되며 얻었던 권능이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꽝만 계속되어 잊고 있었던 건데.

“오픈!”

망설임 없이 상자를 열었다.

[행운 스텟이 반응합니다!]

-파하아아앗!

쏟아지는 오색 빛깔 광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팩트다. 거기에 행운 스텟이 반응하기까지.

드디어 잭팟이 터진 것인가.

빠르게 상자에서 나온 아이템을 확인했고.

“그렇지!”

주먹을 움켜쥘 수 있었다.

[차원 상점 이용권×1]

-단 한 번, 차원 상인의 개입 없이 차원 상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팔 수 있습니다. 차원은 넓고 수요는 다양하니까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물건도 살 수 있죠!

-상인 자격이 필요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다른 건 필요 없다. 무엇이든 팔 수 있다는 조건이 중요했다.

릴카의 계승자가 되며 상인 자격도 얻은 상태.

-찌이익!

차원 상점 이용권을 사용했다.

동시에 비틀리는 주위.

시커먼 소용돌이가 공간을 깨며 나타났고.

[차원 상점이 열립니다.]

[상인 자격 확인]

[차원 상점은 일반적인 재화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촤르르륵.

기존의 상점창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상품 리스트가 생성되었다.

단순히 무기나 아티팩트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 누군가의 기억, 그 외 관념적인 무언가 등등 의미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파스스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반응을 보인다. 몇 가지 품목에서 보이는 빛무리. 권능이 사라고 종용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 운석 판다!”

내게 필요한 건 망할 운석을 파는 것이었으니까.

가능할까 의구심도 들었으나.

[달의 눈물을 판매하시겠습니까?]

“어, 무조건, 반드시, 제발!”

차원 상점은 개의치 않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끝으로 운석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증발한 운석.

몸을 감싸던 열기도, 묵중한 무게감도 없다.

남아 있는 건 밑으로 추락하는 나와 여전히 시커먼 소용돌이.

[달의 눈물 판매 완료]

[합당한 대가가 주어집니다.]

[인벤토리에서 확인하세요]

판매가 완료됐다는 메시지와 함께 소용돌이가 사라졌다.

이걸로 운석은 해결 완료.

오히려 더 좋다. 위기도 넘기고 뭔지는 몰라도 보상도 받았으니.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콰아아앙!

땅에 처박히기 직전, 폭발을 일으켜 속도를 줄였고.

턱,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입을 벌린 채 날 바라보는 이들.

“우, 운석이 사라져?”

“어떻… 아니, 왜?”

“뭐든 어때! 살았는데!”

“우오오오!”

의문도 잠시 천족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멤버들과 보송송이도 마찬가지.

유일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건 옥토 선생뿐.

우리가 한 내기는 보름달이 뜬 밤을 무사히 넘기는 것.

운석이 떨어지지 않게 만들거나, 떨어지는 운석을 부수는 것이었으며…….

“더 떨굴 수 있어?”

“…불가능하노라.”

오늘 밤, 더 이상 운석은 떨어지지 않는다.

입을 뻐끔거리던 옥토 선생이 고개를 숙였다. 덩달아 축 처지는 귀.

[재앙, 월광의 옥토 선생과의 내기에서 승리합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혼돈 수치 +10]

승리를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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