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누가 이겼지?
어두운 하늘 위로 홀로 떠오른 보름달.
눈을 깜빡이듯 달이 점멸한 것도 잠시. 운석이 떨어져 내렸다.
긴 꼬리를 만들며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운석. 그 여파로 공기가 찢어져 나갔다. 천둥소리와는 전혀 다른 굉음.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그것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실수했군, 제기랄.”
잊고 있었다. 필드에 있는 NPC는 모두 수인으로 만들었다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오두막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옥토 선생의 종노릇을 하던 이들 아니던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인지 자체를 못 했다.
그래도 그렇지 망설임 없이 오두막을 향해 운석을 떨굴 줄이야. 내기로 건 것이 있으니 예정된 선택이기는 했다.
내기 앞에서 그들이 걸친 털옷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기에서 이긴 건 나인 것 같구나?”
“그건 두고 봐야지!”
히죽거리는 녀석에게 으르렁거리며 단지를 살폈다.
천족들을 수인으로 바꿀 수 있다면 옥토 선생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거다.
뭐가 됐든 녀석의 규칙은 동물과 수인을 사랑하여 죽일 수 없는 거니까, 그냥 놔두지는 않겠지.
문제는…….
“7개 남았어.”
남은 발톱이 많지 않다. 20명이 넘는 사람이 사용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초반에 실험해 본답시고 더 쓰지만 않았으면 여분이 좀 남았을 텐데.
머리를 흔들었다. 필요한 과정이었고 결과론적인 후회에 지나지 않는다.
핥짝이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걸로 되겠어?”
“일단 해 봐야지. 보송송이! 탈모맨! 저놈들 잡아!”
“나도 간다!”
핥짝이 역시 도주하는 천족을 잡기 위해 달려갔다.
시도는 해 봐야 한다.
“도망쳐!”
“개죽음당할 생각은 없다고!”
안색이 하얘진 천족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레이터의 규모를 생각하면 부질없는 짓.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운석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빠를 수는 없다.
생존 본능에 의한 행동일 뿐. 그들도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두 눈에는 공포만이 가득했다.
“거기서!”
“그냥 곱게 잡혀라!”
어떻게든 언덕에서 벗어나려는 천족들. 목숨이 걸려 있는 만큼 절박했고, 그들을 잡기 위해 우리 역시 사력을 다했다.
서로 뒤엉키고 쫓고 쫓는 그림의 연속.
촌극이나 다를 바 없었으며 그 광경이 마음에 드는지 옥토 선생은 아무런 방해 없이 깔깔거렸다.
“그래! 이런 생동감! 털 없는 것들도 이럴 때는 예쁘다니까.”
취향 한번 고약하네.
뭐라 따지고 싶었으나 시간은 토끼의 편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이 다가오고 있다.
처음에는 한 줄기 빛으로 보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모양까지 식별할 수 있다.
파괴를 예고한 달의 눈물.
-콰앙!
“잡았다!”
“놔, 놔라! 도망쳐야 된다고!”
폭발적으로 몸을 날린 탈모맨이 천족 한 명을 잡았다.
“으랏차! 움직이지 마요!”
“너희도 죽을 거야! 놔아!”
이어서 보송송이도 담벼락을 넘으려던 녀석의 다리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저항이 거셌지만 바짝 끌어안은 채 뒹굴자 놈도 별수 없었다.
팔과 다리를 고정해 고정하자 천족이 고성을 지르며 발광한다.
남은 천족은 한 명.
“야이 씨! 힘 빠지게 자꾸 도망가? 어?”
“혼쭐이 나 볼 테냥!”
“아,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악! 때리지 말고!”
이쪽은 금방 잡혔다. 둘이서 작정하고 달려드니 천족도 어쩔 수 없는 모양.
바닥에 눕힌 NPC를 걷어차며 제압하는 것이 살짝 불쌍하기도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이야.’
68층에 있는 NPC는 전반적으로 건강 상태가 안 좋다. 황폐한 필드, 먹을 것이 부족한 건 물론이요, 옥토 선생의 핍박을 받으며 살아갔으니.
멀쩡한 컨디션이었으면 잡는 것도 버거웠을 거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행운이었지만.
“60층대 등반가치고는 움직임이 좋구나. 안타까운지로고. 코인에 여분이 있길 바라마. 그래야 또 만날 터이니.”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시지. 받아, 탈모맨!”
“으럇!”
가장 가까이에 있는 탈모맨에게 발톱 단지를 던졌다.
한 손으로 받아든 녀석이 천족에게 발톱을 먹였다.
“우웁!”
[견인족의 특성을 빌려옵니다!]
[킁카킁카!]
주둥이가 길어지며 견인적의 모습을 띠기 시작하는 천족A.
이어 하나 더 먹이자 온전한 견인족의 모습이 되었다. 운이 좋게 2개로 끝난 것.
이어서 탈모맨이 보송송이에게 단지를 던졌고, 그 역시 천족B에게 발톱을 먹였다. 웅인족으로 변한 천족B. 사용된 발톱 3개.
남은 건 핥짝이와 냥펀이 붙잡은 녀석.
핥짝이가 녀석의 멱살을 잡아 올린다.
“한 번에 변신해라, 어! 안 되기만 해 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입 벌리라구!”
“으가가각!”
냥펀이 버둥거리는 녀석의 입을 벌리고 남은 발톱 전부를 털어 넣었다.
가능할까. 운이 좋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늑대인간의 특성을 빌려 옵니다.]
[탐스러운 꼬리!]
녀석에게 꼬리가 생겨났다. 이어 하반신 전체가 늑대인간으로 변화.
스타트가 좋다. 가능성이 보인다. 이제 상체만 변신하면…….
-뿅!
“엇?”
“응?”
앙증맞은 늑대 귀가 머리로 튀어나왔다. 그걸로 끝.
몇 초간 눈을 깜빡이며 변화를 기다렸지만 다른 변화는 없었다.
“아하하하! 꽝이로구나!”
웃음을 터트린 옥토 선생이 바를 잡고 구르고.
“내가 한 번에 변신하라고 했지? 얼른 마저 변신해!”
“으아아! 내 목숨의 원수! 약효가 덜 든 걸 거야! 때리다 보면 될 거라구!”
“악! 억! 익! 나한테 왜 그래!”
핥짝이와 냥펀은 다시 천족C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반쯤 울고 있는 냥펀이 특히 더 열심히 때리는 거 같은데.
저런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거 같고.
후우.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 일이 쉽게 풀릴 리가 없지. 운에 모든 걸 맡기는 건 내 취향도 아니고.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어떠하느냐.”
“내가 좀 질척이는 스타일이라 그건 안 되겠어.”
옆에서 깐족거리는 녀석의 정수리를 때려 주고 싶었으나 참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멤버들이 천족들을 잡는 동안 나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최후의 수단이 아직 남았다. 타이밍을 재고 있었을 뿐.
“오두막이 목표 지점이 될지는 몰랐지만 상관없지. 내가 플랜B도 안 만들어 뒀을 거 같아?”
어깨에 올라가 있던 덕춘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아무리 세세하게 계획을 짜더라도 변수는 생기기 마련.
대비하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었으며 난 지금까지 어떻게든 고난을 헤쳐 지나왔다.
굳이 오두막으로 모인 이유.
첫 번째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옥토 선생 옆에서 지켜보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무지개다리 (S)]
-촤아아아아악!
오두막이 있는 언덕이 필드에서 가장 높았기 때문이었다.
시야가 닿는 곳이라면 무지개다리는 뻗어나간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
여러 개가 떨어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하나라면 막을 수 있다.
이후의 일은.
“뒤쪽은 부탁할게.”
멤버들이 알아서 잘해 주길 바라야지.
수인족 모습을 한 멤버들이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살아 돌아와!”
“밑에는 우리한테 맡기고!”
“가랏, 공블아이!”
“무사히 갔다 오세요!”
씨익, 입꼬리를 올린 후 투구를 착용했다.
이어 무지개다리로 한 발.
-쑤우우우우!
무지개다리를 타고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일곱 빛깔을 내뿜으며 높이 뻗은 무지개.
밤하늘을 뚫고 이어진 다리는 달에 닿을 것만 같았으며.
“가까이에서 보니까 박력 장난 아니네.”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운석이 주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인간은 자연현상에 두려움에 떨면서도 경외심을 느꼈다고 했던가.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다양한 신화와 토착 신앙이고.
어떤 느낌인지 알 것만 같다. 온갖 괴물을 상대한 나도 지금만큼은 떨렸으니까.
-그그그그극
[화기 내성 (S) Lv.10]
불타오르는 운석의 열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땀이 쏟아지고 입이 마른다. 수분이 날아간 눈이 뻑뻑해져 살짝 눈을 찌푸렸다.
천천히 운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으로 모이는 광채.
[오로라 빔 (S) Lv.8]
[스킬 레벨업!]
[오로라 빔 (S) Lv.9]
-찌유우우우우웅!
연달아 오로라 빔을 쏘아 올렸다.
한 줄기 빛이 여러 줄기로 변하고 이어 더 거대한 빛의 기둥이 되어 운석을 두드렸다.
-쿠구구구구궁!
-콰앙!
굉음과 함께 파편 일부가 떨어져 나갔으나 본체는 굳건했다.
예상했던 바다. 이 정도 위력으로 부술 수 있었으면 필드가 이 꼴이 되지도 않았지. NPC들이 무력하게 쓸려나갈 일도 없었고.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손을 내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구구구구구!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운석.
양팔을 벌렸다. 이미 계획은 짜 두었다.
운석을 부수는 방법은 하나. 무지개다리를 이용하는 것.
이동 중 파괴 불가 옵션.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 이건 좀 아프겠네.”
누구 한 명은 반드시 무지개다리를 타고 있어야 했다.
정면으로 떨어지는 운석.
달이 가려지고 어두운 하늘이 붉게 물든다.
열기에 갑옷이 달아오르며 살 타는 냄새가 올라왔다.
시야가 불길로 가득해지는 시점, 운석과 무지개다리가 격돌했고.
-쿠웅
-쿠과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세상을 뒤덮었다.
* * *
타닥. 타다다닥.
미약하게 타오르는 불 싸라기.
바닥에 대자로 누운 난 정신을 차렸다.
[구사일생 (S) Lv.9]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적어도 한 번은 버틸 수 있기 때문. 운석을 맞으면서 레벨이 올랐다.
이후 충격파를 피하기 위해 안개 질주를 썼던 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후는 정신을 잃어서 잘 모르겠다.
보호 스킬이 연달아 발휘된 걸 보면 어떻게든 버티긴 한 거 같은데.
다른 애들은 괜찮으려나. 무지개다리로 운석을 파괴하기는 했지만 잔해들이 떨어졌을 건 자명한 일.
당장 내가 누워 있는 곳도 여기저기 불탄 흔적이 보인다.
“읏차.”
“그에엑!”
“덕춘아, 옆에 있었어?”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덕춘이. 어째 쓰러진 거치고는 몸 상태가 괜찮다 했더니만 옆에서 치유해 준 모양.
덕춘이가 무사하다는 건 다른 녀석들도 멀쩡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블아이!”
“고오오옹듭, 웁웁!”
“등신아 좀!”
“하하하하! 사이 좋네요!”
멤버들과 복실이 아니, 보송송이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의외로 기절한 시간은 길지 않았던 거 같다.
몸을 일으키니 시야가 좀 잡힌다.
반쯤 무너진 오두막. 가장 신경 쓰였던 천족들 역시 구석에 웅크려 있다.
재를 뒤집어써 검댕이 투성이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잘 버텼네?”
“으흐흑. 내 아티팩트!”
“이야, 떨어지는 거 압축하려다 죽는 줄 알았다.”
시커멓게 변한 손을 털어 내는 핥짝이. 떨어지는 파편을 압축시킨 건가? 얘도 대단하다 진짜.
냥펀은 이번에도 아티팩트를 제물로 바친 거 같고.
“음하하! 나머지는 우리 둘이 몸으로 막았지!”
“헬창 동료를 만나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하!”
어느새 단짝이 된 탈모맨과 보송송이가 어깨동무를 한 채 웃음을 터트렸다.
몸으로 하는 건 참 잘해. 인간 전차라는 말은 저 녀석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나도 투구를 벗으며 피식 웃었다.
찌그러졌던 갑옷도 원상 복구된 상태.
이제 남은 건 하나.
“옥토 선생, 이제 누가 내기에 이겼지?”
타들어 간 언덕, 우뚝 서 있는 옥토 선생에게 시선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