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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36화 (336/740)

336화 떨어지다

68층에 올라온 지 11일이 지났다. 내일 밤, 보름달이 뜬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60층대를 오를 때 방해가 되었던 건 크게 두 가지.

재앙과 탑 숭배 집단.

그러나 이곳의 재앙은 호의적이었고, 탑 숭배 집단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밖에서 나댔던 탑 숭배자들은 전부 죽었거든.

옥토 선생은 친절한 대상에게는 한없이 친절했지만 그 외에는 폭군이었다. 혼란을 조장하는 숭배자들은 선생에겐 눈엣가시였고 대대적으로 소탕했다고 한다.

“위험도만 따지면 옥토 선생이 제일 위험한 것도 같고.”

“그에에.”

지금까지 봐 왔던 어떤 재앙보다 옥토 선생이 죽인 NPC가 더 많다.

아무리 그래도 운석은 너무했지. 아닌가, 차라리 이게 낫나? 다른 재앙들은 현대 화기로는 답이 없지만 운석이면 요격할 수도 있잖아.

과학적인 지식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지구로 운석이 날아오면 핵폭탄을 날려 쪼개거나 없애는 기술이 있다고 들은 거 같다.

녀석이 사용하는 달의 눈물은 어디까지나 능력이라 진짜 운석은 아닌 게 좀 걸리기는 하다만 서도… 미사일을 날리는 것도 어느 정도 높은 곳에서 운석이 떨어질 때 가능한 거니까.

아무튼.

“준비는 거의 끝났네.”

“그에에.”

“야, 이게 맞냐? 어? 맞냐고.”

덕춘이와 핥짝이가 구시렁거린다.

커뮤니티로 멤버들과 접촉했다. 같은 필드에 멤버 전원이 모인 만큼 혼자서 모든 걸 할 필요는 없었다.

68층에 남아 있는 NPC는 고작해야 20명 남짓.

수차례 운석이 떨어진 만큼 필드 내에 사람이 살아갈 만한 환경은 많지 않았다.

크레이터가 되어 버린 대지는 도자기처럼 구워져 식물이 살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까. 다 떠나서 옥토 선생의 눈을 피할 만한 은신처로 쓸 곳이 없다.

비교적 거리가 있는 냥펀과 탈모맨은 다른 곳을 돌며 생존자들에게 계획을 전하는 중이었고, 나와 핥짝이는 마지막 남은 생존자 무리를 찾아왔다.

“꼭꼭 숨었네, 진짜. 보송송이, 이쪽 맞죠?”

“그럼요. 여기 말고는 사람 살 곳이 없거든요.”

고개를 끄덕이는 보송송이. 핥짝이가 물끄러미 보송송이를 바라본다.

“…정말 보송송이라니. 내가 떠올렸던 모습은 이게 아닌데!”

헬멧을 감싸 쥐는 녀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핥짝아, 양심이 있자. 너 스스로를 봐.”

“님, 뒈지실?”

“덕춘이가 말한 겁니다. 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에?”

자연스럽게 덕춘이를 팔아 버린 후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 보니 아직 냥펀과 보송송이는 못 만났네. 만나면 어떻게 되려나.

보송송이는 핑크 펑크 진성 팬. 어떤 모습이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날을 위해 아직까지도 보송송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상태. 조력자가 있다고만 했다.

핥짝이도 둘의 만남을 기대하는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동의했고. 이럴 땐 참 잘 맞는단 말이지.

오늘 밤이면 만나가 될 테니 느긋이 기다리기로 하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파이어 밤 (S) Lv.10]

-콰아아아앙!

다짜고짜 필드를 폭발시켰다.

나만 그랬느냐? 아니다.

“스파이크!”

-콰아아아앙!

핥짝이 역시 압축 구슬을 날리며 땅을 뒤집기 시작했다.

보송송이 또한 우렁찬 기합과 함께 바닥을 내려쳤으니.

-콰과과과광!

폭죽이 터지듯 땅이 치솟고 파편이 날아다녔다.

얼핏 보면 뭐 하는 건가 싶겠지만 분명한 의도가 있는 행동이다.

“이, 이런 미친놈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집이!”

굴을 파서 모습을 숨기고 있던 NPC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며칠 동안 겪으면서 느끼는 건데 옥토 선생에게 당한 게 많은 이들은 극도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두더지도 아니고 땅굴을 파고 살아가는 걸 보면 말이다.

나름대로 생존 전략을 짠 거겠지. 보름달이 뜨는 날 달을 피하기 위해서는 땅속만 한 곳이 없으니까.

지금은 좀 곤란하지만. 나와서 나를 도와줘야 하거든.

“등반가? 지금 너희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저쪽은 그 녀석이군, 토끼한테 잡혀간 녀석. 아직도 살아 있었나.”

“지금 그게 중요해? 내일 보름달이 뜬다고!”

머리를 잡아 뜯으며 발광하는 사람들.

멱살을 잡고 흔드는 건 애교다. 눈 뒤집혀서 덤비는 경우도 봤어서.

“워워, 다들 진정하시죠. 다 여러분 잘되라고 온 거라고요.”

“집 부숴놓고 할 말이냐, 그게!”

“짜잔! 리모델링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상큼하게 미소를 지어 봤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불안감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없구만.

찰싹!

“어흑!”

덕춘이가 멱살을 잡은 손을 때리자 NPC가 비틀거리며 멀어진다.

전반적으로 상태가 안 좋다. 숨어 살다 보니 햇볕도 못 쬐고 영양분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모양. NPC가 영양실조에 걸리려면 도대체 얼마나 굶어야 하는 거지.

머리를 긁적였다. 차라리 잘됐지. 이들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 조금 더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오늘 밤 보름달이 뜨는 건 다들 아시죠?”

“모를 리가 있나. 그런 놈들은 이미 다 죽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를 거예요. 달토끼랑 내기를 해서 말이죠.”

“내기?”

내기라는 단어에 NPC들의 표정이 굳었다.

옥토 선생의 내기는 이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아마 불을 켜고 운석을 떨굴 곳을 찾을 겁니다. 이 정도로 대비해서는 답도 안 나올 거예요. 당장 우리가 몇 번 두들겨도 나왔잖아요?”

나와 옥토 선생 모두 내기에 꽤 많은 것을 걸었다.

녀석도 쉽게 가지는 않을 거라는 말. 털 달린 것들에게는 관대하지만 그 외에는 아니다.

막말로 시험 삼아 맨땅에 운석을 몇 번 떨굴 수도 있다는 말.

조금은 뻔뻔한 일이지만 ‘어이쿠, 실수로 죽였네.’ 이럴 수도 있다.

즉, 땅속에 숨어 있는 건 답이 아니다. 근처에 운석 하나만 떨어져도 이들은 뛰쳐나올 것이며 타깃을 찾은 옥토 선생은 망설임 없이 공격을 할 테니까.

보송송이도 생존자들의 위치를 아는데 옥토 선생은 당연히 알겠지.

차라리 나와 있는 편이 생존 확률이 높다. 물론 이 모습 그대로 나오는 건 말이 안 되고 대비를 해야지.

내 말을 들은 NPC들의 안색이 안 좋아진다.

“제길! 이거라도 입어야 하나?”

“임시방편이기는 한데 괜찮지 않겠어?”

“운이 좋으면 넘어갈 거 같은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만큼 이들 또한 옥토 선생에 대한 정보가 있다.

각자 얼기설기 만든 털옷을 꺼내 입는다. 모양은 좀 이상하지만 털북숭이가 되는 건 금방.

나쁘지 않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말이다.

-촤아악!

털옷을 그대로 찢어 버렸다. 울컥한 이들이 들고일어났으나.

“진짜 이걸로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이것도 아니면 뭐 어쩌자고!”

“내기를 했다 했잖아요. 눈 딱 감고 떨구면 어쩌시려고.”

옥토 선생이 관대하게 넘어가면 땡큐지만 그런 요행에 모든 걸 걸기에는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내 요지는 그러했고, NPC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지만…….

“방법이 없잖아. 네가 그딴 내기만 안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럼 뭐 어쩌자고!”

궁지에 몰린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당연했다.

나도 안다. 뭐가 됐든 생존이 우선이지.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보시라!”

우리의 시범맨 보송송이를 앞으로 내세웠다.

“일시적이지만 여러분을 수인처럼 만들 방법이 존재합니다. 이거면 충분해요.”

NPC들이 수군거린다.

“…수인? 고릴라 수인인가?”

“일단 사람은 아닌 거 같군.”

아직 변신 전인데요.

그냥 털 좀 많은 사람이라고요.

크흠. 헛기침 한 번 하고 발톱 단지를 꺼냈다.

“보송송이, 보여 주세요.”

“맡겨 주시죠!”

수인의 발톱 단지. 발톱이라고는 했지만 진짜 발톱은 아니다.

수인의 특성을 봉인한 조각이지. 모양이 초승달 모양이라 발톱이라고 이름을 붙인 거 같다.

꿀꺽, 보송송이가 발톱을 삼켰고.

[호인족의 특성을 빌려옵니다!]

[호랑이 팔!]

-꾸드드득!

변화가 생겼다. 가뜩이나 근육질이었던 몸이 더욱 커지며 근육이 부풀었다.

손톱이 자라나 맹수의 그것이 되었으며, 팔뚝까지 올라온 털에는 호랑이 무늬가 생겼으니.

“오오오.”

“하프 수인 같구만.”

양팔만 보면 영락없는 호인족이었다.

여전히 상체나 하체는 사람에 가깝지만 이건 크게 걱정할 게 아니다.

“운이 좋다면 하나로 충분하겠지만 보통은 아니거든요. 몇 개 더 먹어서 모양을 맞춰야 합니다.”

추가로 2개의 발톱을 더 먹자 완전한 호인족의 모습이 되었다.

이게 실험해 보면서 알게 된 건데, 맨 처음 먹은 발톱의 지속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이후 먹은 발톱도 관련 수인의 특성을 가져오게 된다.

평균적으로 3개. 많아야 5개 정도면 수인족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

유지 시간은 대략 12시간 정도. 달이 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어때요? 이거면 될 거 같죠?”

“확실히, 흉내 내는 것보다는 이편이 훨씬 낫지.”

“조, 좋다! 협력하지.”

뭐든 말로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편이 효과가 좋다.

“이쪽에 있는 NPC는 여러분이 전부인가요? 다른 NPC가 남아 있으면 불러 줘요. 괜히 그쪽으로 운석 떨어지면 우리도 곤란하니까요.”

“그러지. 한 명 따로 숨어 있는 녀석이 있어. 데려오마.”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한다.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겠지.

이걸로 필드에 있는 NPC는 모두 확인했다.

[냥냥펀치]: 이쪽은 다 됐음! 문제는 탈모인뎅…….

[니머리 탈모]: …? 풍성합니다만?

[냥냥펀치]: 냥? 아, 맞다. 발톱 6개만 더 보내 줘, 모자람.

떠들 여유가 있는 걸 보니 냥펀과 탈모맨도 다 한 모양이다.

냥펀에게 넉넉히 발톱 10개를 개인 거래로 보냈다.

이곳에 모인 NPC한테 먹이면 발톱도 거의 다 썼다. 발톱이 단지 안에 꽤 많이 있어서 다행.

하늘을 올려다봤다.

서서히 해가 지고 있다. 이제 곧 밤이 될 터.

“마무리되겠구만.”

분주하게 움직였다. 멤버들과 보송송이의 안내가 없었다면 기간 내에 NPC들을 모두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따로 숨어 있던 NPC까지 데려와 발톱을 먹여 확실히 변신한 걸 확인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먹어야지.”

“으, 발톱이라고 하니까 좀 그렇긴 한데. 별수 없지.”

나와 덕춘이, 핥짝이도 발톱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나나 덕춘이는 그나마 우호적인 관계라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핥짝이는 아니니까.

우리도 조심하는 편이 좋고. 보송송이는 이미 먹었으니 패스.

냥펀과 탈모맨 역시 수인으로 변한 후 오두막으로 올 거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옥토 선생 주변에 전력이 모여 있는 편이 좋을 거 같아서 말이지.

내기의 끝이 가까워졌다.

* * *

옥토 선생이 있는 오두막.

밤이 찾아온 곳,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올랐다.

마당으로 나온 옥토 선생이 웃는다.

“호오, 설마 이런 방법을 쓸 줄이야.”

우리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녀석.

호인족으로 변한 보송송이, 너구리족으로 변한 나. 핥짝이는 조인족이 되었으며 냥펀은 묘인족, 탈모맨은 토인족이 되었다.

변장도 아니다. 진짜 모습이지.

슬쩍 다가와 내 팔을 쓸어내린 옥토 선생이 고개를 젓는다.

“이런저런, 이건 정말 못 건들겠구나. 수인족이라니. 보다 면밀히 살필 수밖에 없겠노라.”

“살펴봐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필드 전부 뒤져서 이렇게 만들었거든.”

“그건 봐야 알 일이니라.”

옥토 선생이 달을 바라본다.

-사아아아아

[옥토 선생이 달의 눈을 개방합니다.]

붉게 물드는 달.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달이 일순간 눈을 깜빡이듯 까맣게 암전했고.

-촤아아아악!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가 나타났으니.

필드를 살피듯 달의 눈이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한다.

어떤 식으로 필드를 둘러보나 했더니 이런 식이었나.

그것도 잠시.

다시 달이 암전하더니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고개를 내저으며 눈을 뜨는 녀석.

“이것 참, 내가 한 방 먹었구나.”

“패배를 인정하는 건가?”

내 물음에도 옥토 선생은 반응이 없었다.

그저 천천히 절굿공이를 들어 올릴 뿐.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옥토 선생의 붉은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인다.

“딱 하나, 너희가 놓친 것이 있노라.”

-쿵

가볍게 땅을 찍는 절굿공이.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로 보였으나 곧 이변을 눈치챌 수 있었다.

“위, 위에!”

보송송이의 외침.

하늘 높은 곳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있다.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쿠구구구구구!

공기의 저항을 받아 붉게 달아오른 운석이 긴 꼬리를 만들며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냐!”

“이런 식이라니. 분명히 말했을 터인데. 오늘 밤 털 없는 자가 죽을 것이라고.”

내 외침에도 녀석은 빙긋 웃을 뿐이었다.

털 없는 자? 필드에 있는 NPC는 모두 수인으로…….

“아.”

아니다. 모든 NPC가 아니다.

“제기랄! 다들 도망쳐!”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데!”

“으아아아!”

3명.

옥토 선생의 오두막에는 3명의 천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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