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35화 (335/740)

335화 이길 거 같은데

옥토 선생을 따라간 곳은 가장 높은 언덕에 지어진 오두막.

일대는 평원이었기에 사실상 이곳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잔디와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은 평화로운 분위기였으나.

“너희는 구석에 찌그러져 있거라.”

손짓 한 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박혀 있는 천족들을 보자니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으로 부려지고 있는 천족들의 수준이 어떤지는 몰라도 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천족 자체가 신성력으로 서열이 갈린다. 나 역시 신성력이 있어서 기운을 느끼는 게 좀 예민한 편이었고.

‘66층 교단을 관리하던 녀석들보다는 강해 보여.’

대략적인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뿔을 되찾은 레지스탕스 일원보다는 약해 보이지만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

원래라면 그들과 같이 구석에 있어야 할 보송송이는 나와 같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목재로 이루어진 내부에는 액자가 여러 개 걸려 있었다.

본적도 없는 희귀 동물의 그림. 상상으로 그린 거 같지는 않은 게 액자 속 동물들은 모두 박제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신기한 동물이 많군.”

“내 컬렉션이로다. 탑으로 들어올 때 기념품으로 가져왔지.”

옥토 선생이 다람쥐와 토끼가 섞인 듯한 동물의 박제를 쓸어내렸다.

밑에 이름이 적혀 있다. 크라스카? 뭔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하지만 일부러 죽인 건 아니야. 오랫동안 키웠지. 중간에 수명을 다해서 죽은 것이지. NPC와 달리 일반 몬스터나 동물은 나이를 먹거든.”

“반려동물 같은 건가.”

“난 자연에 풀어 두고 키우는 걸 좋아하지. 위험 요소는 이미 다 정리해 뒀거든. 먹이도 따로 주고.”

위험 요소와 먹이라, 뭘 한 걸까.

입꼬리를 올리며 키득거리는 녀석의 모습이 살짝 걸린다.

“복실아,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을 해야지.”

“넵! 알겠습니다!”

경례를 한 보송송이가 오두막 어딘가로 달려간다.

어쩌다 재앙한테 잡혀서 썩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뭐, 이것도 방법일 수도 있지.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재앙을 극복할 방법을 알아낼 수도 있으니까.

다른 등반가가 올라올 때까지 버티는 것도 방법 중 하나고. 지금도 봐라, 내가 오지 않았는가.

나뿐만이 아니다. 필드 어딘가에는 탈모맨과 핥짝이, 냥펀도 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앉거라.”

녀석의 권유에 의자에 걸터앉았다. 옥토 선생의 사이즈로 만든 가구들이라 작기는 했지만 그런 대로 앉을 수는 있었다.

이어지는 대화.

“난 털 달린 것을 사랑하지. 인간들은 끔찍해. 먹지 않아도 동물을 잡아 죽이거든.”

“나도 인간이긴 한데. 맞아. 넌 영물이냐, 수인이냐.”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도 물어보고.

“둘 다다. 영물이 되니 이런 몸이 되었느니라. 수인의 시초 중 하나인 게지.”

“그건 또 몰랐네. 수인의 시초라.”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리아나도 봤겠군. 토인족의 수장이 되었다지. 어떻게 잘 지내더냐.”

“…잘은 못 지낼걸. 사고를 좀 쳐 가지고. 그래도 처형은 안 당했어.”

“불쌍한 일이로고. 보나 마나 연못 때문이겠지. 됐다. 그 이야기는 넘어가지.”

“보니까 필드에 사람이 없던데. 68층에는 사람이 없나?”

“청소를 몇 번 했느니라. 지금은 20명 정도 남았지 싶구나.”

필드에 대한 정보도 얻고, 이어서는 내기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호록. 보송송이가 가져온 차를 마신 녀석이 싱긋 웃으며 날 응시했다.

“흥미로운 존재야. 나와 내기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는 있느냐?”

“내기가 내기지. 다른 게 필요해?”

“후후후. 그것도 그렇지. 보아라.”

옥토 선생이 박수를 치자 어딘가에서 대기하던 천족들이 보물 상자를 꺼내와 바닥에 쏟았다.

어째서인지 그슬리고 탄 흔적이 보였지만 기능에는 문제없어 보이는 것들.

재가 묻어 원래의 광채는 사라졌으나 내 눈에는 보였다.

[에스메랄다의 목걸이 (SS)]

-전설 속 황녀, 에스메랄다의 목걸이.

-착용자가 늙지 않게 해줍니다.

-벗으면 젊음을 유지한 시간의 두 배로 늙습니다.

[영원한 아이의 꿈 (SSS)]

-봉인된 아이의 꿈.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꿈 세계로 초대합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나요?

-밖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요.

[유령 기차의 엔진 (SS)]

-보름달이 뜨는 밤, 마을을 가로지르는 유령 기차의 엔진.

-영구기관입니다.

-드워프들이 좋아하겠네요!

.

.

.

권능을 통해 보인 정보.

종류도 다르고 아이템이 아닌 재료도 섞여 있었지만 하나같이 굉장하다.

가장 낮은 등급이 S급, 대부분 SS급 이상이다.

프램버그에서 봤던 베힐탄의 컬렉션과 맞먹는 수준이다.

“내가 주워 온 물건들이다. 달의 눈물을 맞고도 멀쩡한 것들이니 귀한 거겠지. 탐이 나느냐?”

“마음에 들기는 하네. 어디에다 써먹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무기나 방어구같이 전투에 관련된 것들이면 아는 척이라도 하겠는데, 지금 보여 준 것들은 효과를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늙지 않는 목걸이? 좋지. 페널티만 제외한다면 말이야.

영원한 아이의 꿈은 용도 자체를 모르겠고, 엔진은 괜찮아 보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장비 제작 스킬. 저걸 이용해 뭘 만들 수는 없다.

다른 것들도 비슷하다. 등급만 보면 혹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은 파악할 줄 안다.

무엇보다.

‘은근히 함정 같은 옵션들이 섞여 있군.’

중간중간 페널티로 보이는 옵션들이 눈에 띈다.

심드렁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자 녀석의 붉은 눈이 반짝인다.

“호오, 의외로 욕심이 없는 자로고.”

“욕심 많아. 내게 필요 없는 것들이라 그렇지. 가져가봤자 자기 만족 아니면 팔아 버릴걸?”

“팔면 돈이 될 터인데?”

“돈 많아.”

포인트는 부족하지 않다. 거래하는 곳이 워낙 많아서.

다른 걸 떠나서 녀석이 이런 걸 보여 주는 행위 자체가 시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탐나면 어쩔 거야. 싸워서 뺏을 만한 상대도 아니다.

“나와 겹치는 부분이 많구나. 이런 물건은 장난감에 지나지 않지!”

-콰득!

바닥에 굴러다니는 유리구슬을 잡은 녀석이 그대로 움켜쥔다.

깨져 버린 파편이 떨어지고 대기 중이던 천족들이 빠르게 잔해를 주웠다.

방금 저것도 S급이었던 거 같은데.

“해로운 것들이 만든 물건. 가치는 언제나 상대적인 법. 나와 내기해 이런 것들을 원하는 자는 저급한 자지. 확실히 그대는 달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내기로 그대에게 가져갈 것은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쌍두귀는 내기의 대가로 항상 내 뒤에 있게 되었지.”

“대충 이해됐어.”

쌍두귀와의 내기만 봐도 알 거 같다.

녀석이 쌍두귀의 등뼈를 뽑아가기는 했지만 정말로 가져간 것은…….

‘놈의 자존심과 의지.’

모든 걸 추월했던 녀석의 존재 의미를 짓밟은 거다.

타락한 영물이 된 이유도 그 때문일 거고.

놈에게는 유흥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재앙과의 내기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더한 놈이랑도 했었는데 뭘 이제 와서.

혼돈의 파편과의 내기보다는 낫겠지.

“내게 원하는 게 뭐냐.”

“100층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었느냐?”

다리를 꼰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턱을 괸다.

히죽이는 모습이 벌써부터 불안한데.

“내기에서 지면 나와 함께 평생을 나와 함께 이곳에 있자꾸나.”

“뭐?”

“혼자 있기 심심해서 말이지. 말동무가 있으면 좋겠거든.”

끔찍한 소리 하고 있네.

내가 탑에서 평생 썩기 싫어서 100층을 가는 거구만.

뭐, 좋다. 좋은데…….

“그럼 너도 더 걸어야겠는데? 사실상 내 인생을 걸라는 거잖아. 단가가 맞아야 나도 내기를 즐겁게 하지.”

“그 말도 옳다. 넌 뭘 원하지?”

“크게 욕심은 안 부려.”

손끝을 튕겼다.

내 인생을 담보로 잡겠다고 하니 나도 딱 그 정도로만 할 생각이다.

“너, 너의 소유권을 받도록 하지.”

“나의 소유권 말이냐? 큭! 흐흐! 재밌구나!”

재밌기는 개뿔. 나중에 결과가 갈려 봐야 정신을 차리지.

“어느 쪽이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군. 좋다. 내기 내용은 기억하겠지?”

“보름달을 무사히 보내면 된다는 거였던가.”

“달이 눈물을 흘리지 않게 만들면 될 것이야.”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으나 대화를 나누며 확실히 알게 됐다.

내가 지나왔던 필드는 거대한 크리에이터.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비슷했다.

월광의 옥토 선생.

보름달이 뜨는 밤, 녀석은 달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볼 것이며…….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달의 눈물을 떨어뜨리지.’

달의 눈물. 놈의 고유 능력이었으며, 단순하게 생각하면 운석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해결책은 두 가지.

떨어지는 운석을 부수든지, 놈이 운석을 떨구지 않도록 만들든지.

어느 쪽이든 쉬운 방법은 아니다.

다만 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물어보지. 내기를 하겠느냐?”

“하지.”

“시원해서 좋구나!”

[내기가 성사됩니다!]

[재앙과의 내기는 무를 수 없습니다.]

[승자가 결정될 때까지 내기는 지속될 것입니다.]

떠오르는 알람.

이걸로 내기는 확정되었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는 옥토 선생. 반면 옆에 서 있던 보송송이는 불안한 눈으로 나와 녀석을 번갈아 살폈다.

-드륵

옥토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름달이 뜨는 건 11일 후다. 그때까지 열심히 해 보거라.”

“넉넉하니 좋네.”

“시간이 늦었으니 난 올라가 보겠노라. 복실이가 방을 안내해 줄 터이니 잘 익혀 두거라. 곧 나와 함께 살게 될 터이니.”

꿈도 야무지네. 들어가 보라며 손짓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확인한 보송송이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더니 어깨를 잡고 흔들어 댔다.

“내기를 하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려고!”

“아악! 다 방법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거든요?”

“난 또 구해 주러 온 줄 알았는데. 으흐흑. 그래도 같이 일할 동료가 생겨서 좋네요.”

같이 일하기는 무슨. 진짜 내기에 이길 생각인데.

허세가 아니다.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느꼈기에 한 선택이지.

“보송송이,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됐죠?”

“잘은 기억 안 나는데 두 달 정도 있었던 거 같네요.”

“그럼 이쪽 지리와 상황은 잘 알겠군요.”

“어, 얼추 알죠?”

그럼 됐다.

이미 조건은 전부 맞았다.

톡톡. 테이블을 두들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남은 시간 11일. 필드 정보를 아는 보송송이. 68층에 올라온 멤버들. 고작해야 20명뿐인 NPC까지.

권능을 통해 본 옥토 선생의 정보를 떠올렸다.

[월광의 옥토 선생]

-수인족의 시초 중 하나! 재앙입니다.

-복슬복슬하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죠.

-동물 신분으로 영물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모든 털 달린 것들의 희망입니다.

맨 마지막 설명.

모든 털 달린 것들의 희망.

너희도 영물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고, 다르게 말하면…….

‘놈의 약점은 이거야.’

녀석이 지켜야만 하는 룰이라는 뜻이었다.

쌍두귀는 누군가를 추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레비아탄은 바다를 벗어나면 안 되며, 달칸은 낮에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그 근본이 되는 뭔가가 있기에 발생하는 규칙.

규칙을 어기는 재앙은 어떻게 되는가.

어떻게 되기는 추월당한 쌍두귀처럼 돌이 되든 하겠지. 죽지 않더라도 막대한 페널티를 받을 건 분명하다.

“저 토끼는 털 달린 것들을 어쩌지 못하죠. 보송송이도 그래서 여기 있는 거고요. 저 천족들이 털옷을 입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 그쵸?”

“일단은 그렇긴 하죠.”

“그거면 됐어요.”

마침 내게 딱 좋은 아이템이 있어서 말이지.

64층, 대림원에서 받아 온 물건.

[발톱 단지 (???)]

-수인의 발톱이 담긴 단지.

-발톱을 뒤로 던지면 해당 수인의 특성 하나를 잠시 빌려옵니다.

-무엇이 걸릴까요?

이거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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