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32화 (332/740)

332화 트윈

트윈 아니, 제르바의 등장.

변신 스킬이라도 썼는지 트윈의 모습 그대로다.

진짜 트윈은 어디에 있는 걸까.

모르겠다, 그건 나중에 알아보면 되는 거고.

“저 녀석을 잡아! 저놈 때문에 비가 오는 거야!”

난 녀석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레비아탄이 사용한 스킬, 하늘 역전.

원래라면 쓰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레비아탄은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힘의 결탁으로 제르바의 힘을 가져왔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 대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야 앞뒤가 맞아.’

수없이 레비아탄을 상대해 온 푸그리드도 놈이 하늘 역전은 사용하는 걸 본 건 저번이 처음.

그때 사냥에 실패하여 감옥으로 가게 됐다.

단순히 일이 꼬인 것이 아니라 제르바가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든 거다.

놈부터 어떻게 해야 일이 풀릴 거 같았으나…….

“트윈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쯧쯧. 옷차림부터 느꼈지만 정신이 나간 녀석이군.”

“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한 대라도 더 때려!”

다들 어정쩡하게 나온다.

다짜고짜 저놈을 잡으라고 해 봤자 움직일 놈은 없다는 거겠지.

심지어 지금 놈은 트윈으로 변장한 상태. 뭐가 됐든 지금은 트윈이 발자칸의 지배자다.

놈에게 칼을 들이대는 건 반역과 마찬가지. 확실한 물증이 없으면 건드릴 수 없다.

“킥!”

그걸 아는지 놈이 눈을 번뜩이며 입꼬리를 올린다.

정확히 날 노려보는 눈에는 호기심과 명백한 악의가 담겨 있었다.

서늘한 감각, 본능적으로 위험한 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렇겠지. 실버 등급이니까.

‘처음 봤을 때도 연기를 하고 있던 거였나.’

67층에 도착한 직후, 놈과 마주쳤을 때는 이런 느낌이 없었다.

탑 숭배자 종특인가. 평범한 척 숨어 있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놈도 신경 쓰이건만 다른 쪽도 문제다.

“크하아아아!”

상처를 회복한 레비아탄이 난동을 부렸다.

괴력에 배가 휘청이며 서로 부딪쳤으며, 부서지고 가라앉기까지.

해적들이 발악하듯 달려들었으나 회복력을 되찾은 녀석의 저항이 거셌다.

-콰르르르릉!

“크하악! 이 망할 번개가!”

“제기랄!”

여전히 비를 거꾸로 올라가고 번개가 치솟는 상황.

환경까지도 최악이다. 내성이 없는 이들은 배 밖으로 나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타앗

그곳으로 트윈으로 모습을 바꾼 제르바가 나아갔다.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태연하고 느긋하게.

전혀 다른 분위기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뭘 하려는 속셈이지?

“어떻게 레비아탄을 상대하나 보려 했는데 더는 못 봐주겠군.”

목소리에 힘을 실었는지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귀에 박힌다.

가볍게 검을 든 녀석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푸그리드를 바라본다.

“저번 사냥에도 실패하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 퇴물이 다 됐어. 쓸모가 없다고.”

빙글. 몸을 돌린 그가 발자칸에 있는 구경꾼들을 보며 손을 펼쳤다.

“이딴 놈이 발자칸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 꼴을 봐! 성벽은 무너지고 배를 부서졌지, 레비아탄은 여전히 날뛰고 있지. 이게 너희가 원하는 발자칸의 모습인가!”

그의 말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푸그리드가 예전 같지는 않지.”

“레비아탄도 발전한다는 거야. 그럼 우리도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되는데… 크흠.”

“아니, 그래도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앞으로도 잘해야 하는 거니까 이러는 거 아냐, 멍청한 놈아.”

뒤섞이는 여론.

이 자식, 이러려고 나온 건가.

우리가 꾸민 계획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 계획은 레비아탄을 처리해 푸그리드의 필요를 알리고 자리를 되찾는 것.

“그러는 네놈은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지? 방호 시스템을 켰으면 진작에 잡았어!”

“맞아. 아까 화력을 집중했으면 가능성 있었는데!”

“트윈 이 새꺄! 쌔빠지게 일할 땐 짱박혀 있다가 이제 와서 지랄이냐!”

“코빼기도 안 보이던 놈이 입을 털어? 이게 맞냐? 어!”

내 외침에 해적들이 동조한다.

떳떳하지 못한 건 놈도 마찬가지라서.

방호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은 건 팩트다. 푸그리드를 견제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 해적들의 눈에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방호 시스템을 왜 써야 하지?”

“뭐?”

어깨를 으쓱인 녀석이 레비아탄을 향해 돌진한다.

굉장히 빠른 속도. 바다 위에 떠다니는 나무판자를 발판 삼아 도약한 녀석이 그대로 검을 뽑았다.

-콰드드득!

쇠사슬을 물어뜯은 레비아탄 역시 놈을 향해 아가리를 벌린다.

빼곡한 송곳니와 검이 맞닿는 듯하더니.

-콰아아앙!

섬광과 함께 레비아탄의 턱 끝이 잘려 나갔다.

“키햐아아아악!”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핏물.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

상처가 재생되지 않는다. 해적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으며.

“방호 시스템 따위가 없어도 놈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아. 강력한 힘만 있으면 충분하거든.”

놈이 즐기듯 검을 재차 휘둘렀다.

흩뿌려지는 핏줄기.

-푸욱!

“크하아아악!”

“전원 공격! 레비아탄은 이 자리에서 죽는다!”

레비아탄의 눈에 검을 찔러 넣은 녀석이 큰소리로 외쳤고.

“고, 공격!”

“일단 잡고 보자!”

가능성을 본 해적들이 제르바의 외침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앞장서서 놈을 공략하기 시작하는 녀석.

검을 휘두르고 스킬을 쓸 때마다 레비아탄의 상처가 늘어났다.

사기가 오르는 건 당연한 일.

“제법이잖아, 트윈!”

“이 녀석 원래 이렇게 강했었나?”

“몰라! 그랬겠지. 지금 하는 거 보면 몰라?”

다른 이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놈이 활약할 수 있는 이유.

[힘의 결탁 대가 수준을 검증합니다.]

[두 번의 결탁!]

[‘하늘 역전 (SSS)’ 사용.]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대가를 선택합니다.]

[목숨은 목숨으로! 레비아탄의 죽음을 약속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건가.

힘을 준 대가로 대상에게 페널티를 가한다. 선택이라고 하는 걸 보니 다른 형태로 대가를 받아 갈 수도 있겠지.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거야.’

뒤에서 수작질하기 딱 좋은 능력이다.

전면으로 나설 생각은 없다는 거겠지. 트윈의 모습으로 나온 것도 그 때문일 거고.

“제기랄. 일이 꼬였군. 돌격해! 놈을 몰아붙여!”

인상을 찌푸린 푸그리드가 돌격 명령을 내렸다.

흐름이 바뀌며 선택지가 사라졌다.

이대로면 레비아탄을 잡으면 제르바가 주인공이 된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확실하게 발자칸을 휘어잡을 거야. 푸그리드를 처형시키는 건 물론이고, 나랑 냥펀도 위험해지겠지.’

대대적인 숙청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번 일의 책임을 전가할 테니까.

따지고 보면 레비아탄을 몰고 온 것도 우리다. 아직은 모르고 있겠지만 누군가 입을 열면 끝이다.

푸그리드를 구출하기 위해 배를 탈취하고 침몰시키기까지 했으니 명분은 확실하다.

“최악이군.”

당장 레비아탄을 잡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잡으면 뭐 해, 뒷일이 감당이 안 되는데.

으득. 이를 악물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다.

“공블아이, 우리 망한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탈출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친 냥펀이 내 팔을 붙잡았다.

탈출도 방법이기는 하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기도 하고. 다만 그러면 푸그리드와 바다낚시 좋아 그룹은 포기해야 한다.

가능한 도망치거나 숨는 건 피하는 쪽이…….

“숨어?”

번뜩,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가자, 냥펀!”

“잘 생각했어! 해적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리도 살고 봐야지!”

“도망치는 거 아냐. 우린 안으로 들어갈 거야.”

“엥? 왜애애애!”

냥펀을 붙잡고 절벽으로 달렸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전투가 한창.

레비아탄 역시 사력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다.

상처를 입고 체력이 빠져 얼마나 버텨 줄지는 모르겠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저거 트윈 아니야. 제르바가 변장한 거지. 놈은 탑 숭배자고.”

“숭배자? 내가 아는 그 숭배자? 왜! 왜 너랑 있으면 이상한 놈들이 튀어나오는 건데!”

머리를 감싼 냥펀이 우는 시늉을 한다.

내가 마주치고 싶어서 만나나. 나중에 액땜이라도 하든가 해야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이거야. 놈은 가짜니까 진짜 트윈은 어딘가 숨어 있을 거란 말이지. 그놈을 찾아야 해. 저놈이 가짜고 숭배자라고 말해도 아무도 안 믿어.”

“못 찾으면 어떻게 돼?”

“푸그리드랑 사이좋게 처형당하지 않을까?”

“안 돼! 찾아! 빨리 찾으라구!”

내 등짝을 때리며 재촉하는 녀석. 본인도 부리나케 움직인다.

절벽을 타올라 감옥으로 들어갔다.

레비아탄과의 싸움이 계속되며 내부도 엉망진창이다.

트윈을 마지막으로 봤던 곳이 감옥이니 여기부터 시작하면 되겠지.

나와 냥펀은 빠르게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고.

“공블아이, 찾았어! 근데 상태가 좀 안 좋은데.”

샅샅이 감옥을 훑은 끝에 트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트윈과 일전을 벌이는 것까지 생각했는데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다.

“읍! 읍읍!”

커다란 상자에 포박된 채 구겨져 있는 녀석.

얼굴이 엉망진창인 걸 보니 꽤 얻어맞았나 본데.

놈도 트윈을 죽일 수는 없었을 거다. 대외적으로 활동할 꼭두각시는 있어야 하니까.

덕분에 수고를 덜었다.

난 상자째로 놈을 들어 올렸다.

서둘러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굉음이 들리지 않는다.

[레비아탄이 사망했습니다.]

[바다가 잠잠해집니다.]

“벌써 잡혔군.”

들어왔던 구멍으로 가자 바깥 상황이 보인다.

바다에 축 늘어진 레비아탄.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뉜 해적들.

푸그리드를 비롯한 부하들과 제르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해적들이 대립하고 있다.

사실상 포위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눈 채 노려보고 있다.

수적인 열세. 여론도 밀린다.

“푸그리드, 이제 그만하지 그래?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쉽게 가자고.”

“닥쳐라! 아무리 그래도 처형은 말이 안 되지!”

“그동안 레비아탄을 잡은 게 누군데!”

푸그리드의 부하들이 소리를 질렀으나 반응은 없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지. 발자칸이 이 꼴이 됐는데. 저기 바다낚시 머저리들도 이참에 정리해야지. 난 누구와 달리 방치하는 성격이 아니거든.”

제르바가 푸그리드 옆에 선 이들을 가리켰다.

“옳소! 저놈들 때문에 성벽도 무너졌어!”

“저번에도 초대형종 끌고 와서 개판 됐었다고!”

평소 쌓아온 업보가 많은 녀석들이라 분위기도 좋지 않다.

고개를 까딱이며 입꼬리를 올린 제르바가 푸그리드에게 단검을 던졌다.

바닥을 굴러 발끝에 멈춘 단검.

제르바가 턱으로 단검을 가리켰다.

“그동안 한 일들이 있으니 선택지를 주지. 너랑 너를 도운 등반가 두 명. 이렇게 셋만 죽자. 그럼 나머지는 추방하는 걸로 끝내 줄 테니까.”

녀석의 말에 푸그리드의 부하들이 발끈한다.

“저딴 개소리 듣지도 마쇼, 선장!”

“이렇게 막 나오면 우리도 못 참지. 그냥 한 판 합시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형이 말이 돼?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기세.

“그만.”

“선장!”

손을 들어 부하들을 말린 푸그리드가 단검을 줍는다.

“나 하나로 끝내지. 등반가 둘도 보내 줘. 어차피 위로 올라갈 놈들이잖아.”

“등반가라도 이곳에서는 이곳의 규칙을 따라야지, 안 그래?”

“NPC는 등반가를 직접적으로 건들면 페널티를 받지. 그만한 가치가 있나?”

페널티라는 말에 입꼬리를 올리는 녀석.

-쿠우우우웅!

그런 놈 앞으로 뛰어내렸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녀석들이 나를 향해 검을 겨누었으나 무시했다.

“페널티는 신경도 안 쓰겠지, 넌 탑 숭배자라 등반가 공격해도 페널티 안 먹잖아?”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상자를 바닥에 던졌다.

우지끈! 부서지며 진짜 트윈이 튀어나왔다.

“안 그래, 가짜 트윈? 아니, 제르바?”

일그러지는 놈의 얼굴이 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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