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제르바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가.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피해는 있지만 푸그리드과 바다낚시 좋아의 활약으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레비아탄을 붙잡는 데 성공했으며, 지금은 전원이 공격하는 중.
피부가 말라도 재앙은 재앙.
일정 수준 이하의 공격은 견뎌 냈다.
물론 우리 쪽에도 강자는 존재했다.
-콰아아악!
-쩌어어엉!
“나이스, 곤!”
“흐하하! 나도 잘했지!”
“루건, 방금 건 살짝 빗나갔어요.”
바다낚시 삼 형제가 집요하게 놈을 괴롭힌다.
다른 곳을 공략하기보다는 직접 바다에 들어가 놈이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견제했다.
나머지 배와 선원들도 마찬가지. 레비아탄의 목을 연결한 쇠사슬을 붙잡고 버텼으며, 전투에 자신 있는 자들은 레비아탄의 목과 머리를 공략했다.
겉으로 보면 순탄한 과정.
그럼에도 왜일까.
“저 자식이 왜 그냥 내려왔냐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대한 불안감.
트윈은 푸그리드를 몰아내고 발자칸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지배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 그가 무리해서 푸그리드를 처형하려던 이유도 그 때문이고.
아직까지 발자칸은 푸그리드를 더 지지하니까. 다만 당시 상황의 분위기와 여론이 이렇게 만들었을 뿐.
다르게 말하자면…….
‘아직 트윈은 본인의 능력을 검증받지 못했어.’
이번 전투는 놈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다.
멍청히 지켜만 본다면 결코 좋은 꼴을 당하지 못할 테니까.
적어도 본인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주도적으로 레비아탄을 잡지 못한다면 푸그리드와 협력해 활약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정상이다.
그러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방호 시스템을 사용하는 거고.
방호 시스템은 지배자의 권한이며 가장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인데 어째서…….
심지어 지나치게 태연하다.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일 들 정도로.
의구심이 계속되는 와중.
-츠즈즈즈즉
권능이 반응하는 찰나.
-콰아아아앙!
“제길, 피해! 브레스다!”
“망할 용 대가리! 대가리 틀어! 발자칸으로 쏘면 안 돼!”
“뭐 해! 쇠사슬 당겨!”
거친 물보라가 튀어 오르더니 소름 돋는 에너지의 파장이 느껴졌다.
다급해진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아가리를 벌린 채 브레스를 준비하는 레비아탄이 보였다.
달칸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죄다 브레스를 쓰려 하네.
아니지. 이 녀석은 용 머리를 달고 있으니 당연한 건가.
“일단은 레비아탄에 집중하자.”
브레스는 감당이 안 된다. 저건 무조건 SSS급 일격이다.
놈을 구속하고 있는 배도 모조리 격침될 게 분명한 상황.
-콰아아아앙!
폭발을 일으켜 놈을 향해 전력으로 날아갔다.
다른 해적들도 필사적이다.
놈이 몸부림칠 때마다 튕겨 나가 발자칸에 처박히거나 바다로 빠졌으나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뒈져! 좀 뒈져!”
“망할 생선 같으니!”
“이딴 괴물은 대체 어디서 자꾸 나타나는 거야!”
악을 쓰며 각자의 무기를 쑤셔 넣는 이들.
그럼에도 레비아탄은 꿋꿋하게 힘을 모았고.
“대가리 치워어어어!”
놈을 향해 푸그리드가 뛰어올랐다.
무슨 스킬을 썼는지 바다를 밟고 점프.
반발력으로 물기둥이 치솟았고.
[유령 대포 (SS) Lv.MAX]
허공에서 신기루 같은 거대한 대포가 생성되어 불을 뿜었으니.
“크하아아악!”
잠깐이지만 레비아탄의 머리가 돌아갔다.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여전히 놈의 아가리는 발자칸으로 향해 있다.
바다낚시 삼 형제 역시 바다에서 빠져나와 작살과 무기를 던졌으나 부족하다.
곤이 던지는 작살은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충격을 주는 것보다는 관통에 특화되어서…….
“벌써 쓰기는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쾅! 콰과광!
연달아 폭발을 일으켜 빠르게 레비아탄을 향해 날아갔다.
다가갈수록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괴물.
대항할 수 없는 재앙에 몸을 던지는 꼴이었으나 혀 한 번 차는 것으로 불안감을 털어 냈다.
할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지척까지 도달한 나는 놈의 면상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칭호, 밤을 부르는 자가 발휘됩니다.]
[밤이 찾아옵니다.]
[스텟이 상승합니다.]
-쿠르르릉
-파하아아앗!
어두워진 하늘. 먹구름과 뒤섞인 불길한 어둠이 찾아왔고 지체 없이 펠라인 스킬을 사용했다.
[아스트랄 레인보우 (S)]
허공. 어둠 속에서 펠라인 세트가 각기 다른 빛을 내뿜는다.
여섯 개의 빛. 한순간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감.
레비아탄마저 커다란 눈동자를 굴려 나를 바라봤고.
“머리, 치우라잖아!”
[오로라 빔 (S) Lv.8]
[오로라 빔 (S) Lv.8]
[오로라 빔 (S) Lv.8]
[파이어 밤 (S) Lv.10]
[파이어 밤 (S) Lv.10]
[파이어 밤 (S) Lv.10]
.
.
.
-콰과과과과광!
망설임 없이 오로라 빔과 파이어 밤을 쏟아부었다.
일순간이지만 지금만큼은 내 화력은 S급을 뛰어넘는다.
오히려 좋지. 소모하는 마력 자체는 훨씬 적어 연달아 폭격까지 할 수 있으니까.
“카하아아악!”
-풍덩!
반발력으로 나 역시 바다에 처박혔지만 놈 또한 고개가 들렸다.
[멸망의 광선포 (SSS)]
-푸콰과과곽!
비스듬히 나아가는 브레스.
발자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길게 이어진 광선포가 어두운 하늘을 꿰뚫는다.
먹구름이 증발하고 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광선을 따라 반으로 갈라진 구름 사이로 뻗어 나오는 빛의 커튼.
“오오오오! 저 무지개 녀석, 좀 하잖아!”
“저게 되네? 좀 친다?”
“오늘 재밌는 광경 여럿 보는구만!”
발자칸이 무사한 걸 확인한 해적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방호 시스템이 있는데도 푸그리드가 원정 전투를 고집하는 이유.
놈의 브레스는 그만큼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웃차.”
그러거나 말거나. 바다에서 기어 나온 난 다시 놈의 몸을 타고 올랐다.
버프가 끝나기 전에 최대한 대미지를 넣어야 한다.
“냥펀?”
“후후후. 이제 내가 나설 차례지.”
등짝에 올라와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냥펀 역시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
뭔지 모를 박스가 가득 쌓여 있다.
“공블아이, 아까 한 거 더 할 수 있지? 최대한 깊게 파!”
“오케이.”
버프 종료까지 남은 시간 대략 3초.
고개를 끄덕인 난 냥펀이 가리킨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척추가 위치한 곳.
[도축 (S) Lv.7]
-썩둑!
몬스터를 토막 내는 데는 이게 최고라서 말이지.
살 뭉텅이가 떨어져 내린 공간 다시 한번 오로라 빔을 쏘았고.
-쿠르르르르!
고통에 놈이 몸부림치는 찰나 냥펀이 박스를 모조리 안으로 넣었다.
덥썩. 내 손을 잡은 녀석이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내린다.
기껏 올라왔더니 왜 또 내려가!
“야, 야야!”
“탈출!”
얼떨결에 같이 바다로 떨어지는 순간 냥펀이 스킬을 썼다.
예전에 봤던 그 스킬과 칭호.
[골드 익스플로전 (S) Lv.4]
[칭호, 돈지랄의 효과!]
-모든 재화를 이용한 행위에 보정치가 들어갑니다.
“설마?”
“으흐흑! 맞아, 저거 다 금이야!”
눈물을 머금은 냥펀이 충격을 피하기 위해 바다에 잠수했다.
그 후 내가 본 광경은…….
-구구구구구
-콰아아아아앙!
“키햐아아아악!”
놈의 등에서 황금빛 폭발이 일어났다.
일순간 주변이 노랗게 물들 정도의 광채.
터져 버린 근육과 피마저 타 버리는 파괴력.
레비아탄이 적잖은 대미지를 입었는지 발작하듯 몸을 떤다.
“미쳤네.”
골드 익스플로젼은 등급과 별개로 사용하는 재화가 많을수록 파괴력이 늘어나는 스킬.
재화만 충분하면 이론적으로는 한없이 파괴력이 강해질 수 있다.
냥펀 이 녀석, 이제는 대미지마저 돈으로 사는구나.
대체 금을 얼마나 쏟아부은 거야.
“푸하! 해치웠나?”
“궤엑!”
“아얏! 덕춘이가 나 때려!”
잠수했다 다시 얼굴을 내민 녀석이 플래그를 세우자 덕춘이가 머리를 잡고 흔든다.
나도 당했었지. 이래서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돼.
여튼.
“아쉽지만 쉽게 쓰러질 놈이 아니지.”
이 정도로 어찌할 정도의 괴물이었다면 재앙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대미지를 입은 건 사실이다.
집중이 분산됐는지 몰려들던 먹구름도 주춤한다.
-콰르르릉!
여전히 벼락이 내려치고 있었으나 낙뢰에 맞는 건 극소수.
전세가 기울었다고 봐도 좋았으나.
“제길! 망했군.”
“그게 무슨 소리야, 푸그리드?”
레비아탄의 목을 잘라 버릴 기세로 칼질을 하던 푸그리드가 욕설을 내뱉었다.
아직 먹구름은 도달하지 않았다.
브레스는 막혔고, 해적과 바다낚시 좋아가 날뛴 덕에 놈의 몸은 피범벅.
상처가 깊지 않더라도 출혈로 죽을 수준이다.
이미 바다는 푸른빛을 잃은 지 오래. 붉은 핏물은 바다의 짠 내마저도 덮어 버렸다.
이대로 몰아붙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텐데.
“놈이 그걸 쓴다! 다들 대비해!”
푸그리드가 소리를 지른다.
다른 해적들 역시 얼굴을 구기더니 레비아탄의 얼굴을 바라본다.
두 눈동자가 시퍼렇게 빛나고 있다. 뭔가를 저질러도 저지를 분위기.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직접 보는 건 두 번째니까. 발동 조건도 확실치 않다는 거지.”
“두 번째?”
“저번 토벌 때 본 게 처음이야!”
푸그리드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변화가 일어났다.
몰아치던 파도가 멈춘다. 바람조차 불지 않은 공간, 잔 흐름조차 없는 바다는 투명하게 하늘을 비추었고.
[하늘 역전 (SSS)]
-투둑, 투두두두
-촤아아아아!
바닷물이 비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다가 하늘이 된 듯한 광경.
중력을 거스르는 기이한 풍경은 얼핏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으나.
“상처가 회복된다!”
“일단 후퇴!”
“지금이라도 몰아붙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때 기억 안 나? 이제 벼락도 올라올 거라고!”
그 결과는 아름답지 않았다.
폭풍을 부르는 걸 포기한 녀석이 고른 선택.
하늘로 거슬러 올라가는 바다의 소나기가 녀석의 피부를 적신다.
서서히 아무는 상처.
출혈이 멈추고 벗겨졌던 비늘이 다시 자란다. 재생 능력을 되찾았다는 뜻이었으며…….
-콰르르르릉!
벼락 역시 바다에서 하늘을 향해 내리쳤다.
이게 맞는 건가.
바다 일부분이 번뜩인다 싶으면 그대로 치솟는 번개.
전격에 당한 NPC들이 한둘이 아니다.
뭐 이딴 게 다 있어.
-파지지지지!
[전격 내성 (S) Lv.3]
[빛 내성 (AA) Lv.5]
[강체强體 (S) Lv.9]
나 역시 전격에 휩싸였지만 어느 정도 버틸 만했다.
냥펀도 아티팩트를 사용해 몸을 보호하는 중.
바다에 있던 이들이 서둘러 배에 올라탔다.
벼락이 배 밑바닥을 두들겼으나 방호력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는 버텨 주는 상태.
“확실히 정상적인 능력이 아니야.”
이런 능력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면 진작에 썼겠지.
수없이 놈과 싸웠던 푸그리드도 이번이 두 번째라고 했다.
평소였다면 쓰지 못하는 능력이라는 말.
비정상적인 경로로 사용한 힘이든가 막대한 페널티를 요구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확인해 보면 될 터.
난 권능을 발휘했고.
[레비아탄]
-바다의 폭군!
-힘의 결탁을 수용했습니다!
달라진 설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힘의 결탁?
수용했다는 것은 받아들였다는 뜻인데.
-츠즉, 츠즈즈즈즈!
눈에 힘을 더했다. 권능이 강화되며 빛무리가 번진다.
내게만 보이는 빛의 선.
레비아탄의 몸에 연결된 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그 자리에는…….
“발자칸의 지배자가 무엇인지 보여주지, 벌레들아.”
[제르바- NPC]
-투스타 해적단의 선장.
-힘의 결탁 사용.
-탑 숭배자. 실버 등급입니다!
트윈의 모습을 한 제르바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