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사냥 시작
해상 군도 발자칸.
이름에 걸맞게 사면이 바다인 곳이었으나 구역별로 역할이 나누어져 있었다.
동부 해안가는 거주지 및 어선이 주를 이루었고, 남부는 개척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북부에는 절벽이 위치했으며 서쪽에는…….
“다 쓸어버려! 배를 탈취한다! 저항하는 자는 묶어서 지정 구역에 넣어놔! 함정 설치 완료 상태 보고해!”
“포로 안에 넣어 두고 트랩 깔아 뒀습니다!”
“도망자 5명 포획 완료! 이동시키겠수!”
각종 함선이 모여 있었다.
해적의 비호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발자칸 자체 보호 능력은 있어야 하는 법.
비상상태에 돌입하면 해적뿐만 아니라 발자칸의 주민들도 나서서 싸운다.
그때를 대비한 전투선이 있는 건 물론이요, 푸그리드 해적단이 빼앗긴 해적선, 약탈로 가져온 노획선도 있었으니 우리에게 있어서는 백화점이나 마찬가지.
“야, 이 벌레 새꺄! 배에 불붙잖아! 얼른 꺼!”
“조졌다! 이거 우리가 쓰던 배랑 구조가 다른데? 이거 쓸 줄 아는 사람!”
“모르겠으면 다른 거 타, 등신아!”
-콰아아아아아!
-쿠우우웅!
나를 비롯한 푸그리드 해적단의 일원들은 서부 해안을 기습해 배를 약탈했다.
약탈이라고 하기에도 뭐하지, 빼앗겼던 걸 돌려받는 거니까.
겸사겸사 이자 삼아 괜찮은 전투선도 몇 개 가져가고.
많이는 못 가져간다. 푸그리드 해적단의 규모가 작지는 않지만 모든 배를 운용하기에는 인원이 모자라다.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로 나누기는 했으나 욕심을 부릴 수는 없는 상태.
“이, 이놈들!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이건 반역이다! 너희 다 물고기 밥이 될 거라고!”
트윈 해적단의 졸개들과 산하 해적단이 저항했으나 속수무책이다.
핵심 전력은 푸그리드를 막기 위해 북부 절벽으로 몰아넣은 상황.
거기에 산하 해적단의 선장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으니,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비교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놈들이었으며.
“닥쳐! 우리 덕분에 먹고 살던 놈들이 박쥐처럼 딴 놈한테 붙기나 하고!”
“배신은 너희가 먼저 했지!”
“물고기 밥? 너희 먼저 회 떠 줄까!”
“니들이 의리가 있냐? 어! 우리도 없지만 너흰 양심도 없어!”
푸그리드 해적단은 개개인의 무력부터가 남달랐다.
해적 특유의 난폭하고 거친 언행과는 별개로 협공이 제법이다.
그동안 배에서 동고동락하며 서로에게 익숙해진 덕일 터.
나 역시 그 사이에 껴 작업을 시작했다.
[시한폭탄 (AAA) Lv.6]
[시한폭탄 (AAA) Lv.6]
[시한폭탄 (AAA) Lv.6]
.
.
.
가져갈 건 가져가고 놔둘 건 놔둔다.
레비아탄을 상대하려면 푸그리드 해적단 말고도 다른 해적들의 힘도 필요하니까.
그들이 써야 할 배도 남겨 두기는 해야 한다.
다만…….
“굳이 전부 놔둘 필요는 없지.”
어디까지나 놈들의 역할은 보조다.
이번 일의 핵심은 푸그리드가 발자칸에 필요하다는 걸 보여 주는 것.
돋보이는 건 푸그리드 해적단이어야 한다.
몇 개는 없애는 편이 좋았다. 이래야 우리를 쫓는 놈들도 우왕좌왕할 거고.
배 3척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후 푸그리드 해적단을 불러들였다.
“머저리들아! 다른 잡동사니는 필요 없어, 배 챙겼으면 빠져!”
“아, 알았수! 자식들아! 애들 돈 뺏지 말고 배에 타!”
“반지 하나만 뺏고 갈게!”
“그냥 오라고 대가리에 똥찬 새꺄!”
욕을 내뱉으면서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들.
저 멀리, 우리를 잡기 위해 달려오는 NPC들이 보인다.
조심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이 난리를 피웠는데 들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펠라인 세트를 착용합니다.]
푸그리드의 메인 함선에 올라탄 난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펠라인 세트를 꺼내 입었다.
전면으로 나선 상황. 더 이상 모습을 감출 필요는 없었으니까.
“오오오! 무지개다!”
“범상치 않은 놈인 줄은 알았지만 해괴하기까지 할 줄이야!”
“뭐든 어때! 선장을 되찾으러 가자!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애애!”
저마다 함성을 지르는 녀석들.
뭐라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입을 꾹 다물었다.
전장에 나서는 만큼 사기 진작도 필요할 테니까.
괜히 내가 뜨끔해서 그렇지 날 놀리려고 저러는 것도 아니고.
상점창에서 해적 모자 하나를 구매해 투구 위에 썼다.
더욱 괴상한 스타일이 되었지만 여기서 뭐 하나 뺀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나도 기분 좀 내야지.
-차앙!
검을 뽑아 바다를 겨누며 외쳤다.
“출발!”
“출발하시란다! 움직여라, 멍청이들아!”
-촤아아아아!
미리 준비했던 만큼 배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육지보다 바다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들답게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으며, 선장을 구출하러 간다는 의지와 자신들을 공격한 이들에게 복수한다는 마음에 뜨거운 열기까지 감돌았다.
“A조, B조. 예정대로 움직이고 합류해. 합류 시점은 조명탄으로 알려줄 테니까 구분 잘 하고. 내가 쏘는 건 초록색이야. 알겠지?”
“알았수. 벤카! 우루스! 전달해!”
“바로 갑니다!”
우리가 운용하는 배는 총 6개.
그중 4개는 최소한의 인원만 태운 미끼다.
각 조마다 두 척씩. 내가 있는 본대까지 합쳐서 3개의 부대가 흩어졌고.
“거기 서라!”
“지금이라도 투항해! 선을 넘으면 우리도 너흴 보호해줄 수 없다!”
뒤늦게 우리를 쫓아온 이들이 부랴부랴 배를 몰고 따라붙기 시작했다.
전투선은 대부분 가져왔기에 그들이 쓸 수 있는 건 일반 범선과 쾌속선뿐.
당연히 우리를 잡기 위해 쾌속선을 선택할 게 뻔했고.
“쫓아오긴 뭘 쫓아와.”
-따악
놈들이 우리의 뒤를 바짝 쫓는 시점, 손가락을 튕겼다.
-콰아아아아앙!
-쿠르르르릉!
쾌속선에 설치했던 시한폭탄이 일제히 폭발했다.
불길이 치솟으며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갑판.
필드에서 쓰는 배인 만큼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겠지만 그대로 놔둘 수도 없을 터.
불길에 휩싸인 이들이 당황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저놈들 한 방 먹여 줘라.”
“그 말만 기다리고 있었수다! 얘들아, 폭격!”
“한 번으로는 정이 없다! 3발씩 쏴!”
-콰앙! 쾅! 쿠궁!
사납게 웃은 이들이 놈들을 향해 포탄을 날렸다.
NPC들인 만큼 죽지는 않겠지만 꽤 아플 거다.
한 척은 제대로 맞았는지 천천히 바다에 가라앉고 있다.
좋겠네. 불 꺼져서.
“자, 가 보자고.”
“그에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전진했다.
바다 저 멀리 먹구름이 소용돌이친다.
내려치는 녹색 번개.
정상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다. 레비아탄이 나타나는 징조지.
바다낚시 삼 형제가 제때 와준 모양.
대단한 녀석들. 기어코 셋이서 레비아탄을 끌고 왔다.
도착 예정 시간은 대략 4시간 후.
“어떻게 될지 봐 보자, 트윈.”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녀석.
발자칸을 집어삼키고 푸그리드를 처형하려는 놈이 어떻게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자, 이걸로 내가 할 일은 했고.
[쁘띠공듀]: 준비됐어요, 냥펀?
[냥냥펀치]: 매수 완료!
[쁘띠공듀]: 좋아욧! 갑시다!
[냥냥펀치]: 으냐아아앙! 여론은 돈 주고 사는 것이닷!
지금부터는 냥펀이 날뛸 차례다.
* * *
-쿠구구구구궁!
-콰아아아앙!
연달아 들리는 폭음.
매캐한 화약 냄새와 성난 주민들의 함성과 욕설.
불타오르는 성벽과 가동된 방호 시스템.
전례 없는 혼란과 위기에 트윈 해적단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레비아탄의 브레스를 맞은 발자칸의 외벽이 무너지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예고 없는 급습.
급하게 해적들이 출동했으나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만큼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으며, 집과 상가가 날아간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푸그리드를 풀어라, 무능한 놈들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어디 근본도 없는 놈이 대표를 한답시고 까불어!”
“제 역할도 못 할 거면 꺼져!”
“저기 애들 싸우는 거 안 보이냐! 너흰 뭐 하는 거야!”
주민이라고는 하나 이들 역시 해상 군도에서 살아가는 이들.
해적 출신이 절반이 넘었고, 범상치 않은 과거를 가진 사람 역시 부지기수였다.
일원 하나하나가 상황에 따라서 전투 인력이 되는 곳.
발자칸을 지배한다는 건 이들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고, 반대로 말해 그들의 신임을 얻지 못한다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거였다.
-쾅!
“빌어먹을!”
절벽에 지어진 감옥.
트윈이 벽을 내려찍으며 얼굴을 구겼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레비아탄이 떠난 지 십여 일이 지났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바다를 누비는 놈인 만큼 다른 해상 군도에서 날뛰고 있어야 정상이었으나 다시 이곳으로 왔다.
바다낚시 삼 형제의 활약이었으나 트윈이 알 리 없는 상황.
설상가상 숨죽여 있던 푸그리드의 부하들이 배를 탈취하여 밖으로 나왔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감옥에 처넣고 싶었으나 발자칸 지척까지 다가온 레비아탄을 막고 있는 게 그들이다.
“비켜!”
“억!”
-콰앙!
감옥을 지키던 부하를 밀쳐 낸 트윈이 감옥 문을 부수다시피 열고 들어갔다.
눈을 감고 앉아 있는 푸그리드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운 그가 소리를 질렀다.
“네놈 짓이지? 네놈이 수작을 벌인 거야!”
팔다리가 구속되어 있음에도 입꼬리를 올린 푸그리드가 트윈을 바라봤다.
명백한 비웃음. 위축은커녕 위기감도 느끼지 못한 그가 턱을 들며 창문을 바라본다.
희미하게 보이는 레비아탄.
“감옥에 있는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안 그래?”
“닥쳐! 내가 모를 거 같아? 저기 있는 녀석이 네놈의 지인이라는 건 알고 있다.”
이블아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탈옥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될 줄 알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았을 것이다.
뒤늦은 후회였고 상황은 뒤집을 수 없게 흘러갔다.
여론이 바뀌었다.
어째서인지 자신의 말을 듣고 선동을 하던 이들이 반대로 트윈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우연이라기에는 절묘한 타이밍. 냥펀의 작품이었다.
후우. 가만히 숨을 내뱉은 푸그리드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레비아탄이 왔는데 해결해야지, 발자칸의 지배자.”
뿌득.
트윈이 이를 악물었다.
지배자의 자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모종의 거래로 이 자리에 섰지만 트윈은 본래 낮은 서열에 있던 해적.
‘그분의 힘이라면 해결할 수 있어. 하지만 그분은 밖으로 나서지 않아.’
트윈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무엇을 선택하든 최악이다. 차악을 골라야 하는 상황.
“…풀어 줘.”
“선장님?”
“풀어 주라고! 일이 끝나면 다시 처넣으면 돼!”
트윈의 명령에 움찔거리던 부하가 푸그리드의 구속을 풀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건 트윈도 알고 있었다. 푸그리드를 내세우는 건 스스로의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럼에도 이런 선택을 한 것은 그를 이 자리에 앉게 해 준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 좋군. 오랜만에 푹 쉬었어.”
손목을 문지른 푸그리드가 창밖을 노려본다.
부르르, 떨고 있는 트윈을 보며 다시 한번 비웃음.
“걱정 마. 놈은 내가 처리해 줄 테니까. 하하하하!”
-콰아앙!
푸그리드가 벽을 걷어찼다.
폭발하듯 터지는 벽. 감옥이 뻥 뚫렸다.
NPC를 수감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감옥이었으나 구속복을 벗은 그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레비아탄을 상대하는 해적선이 명확히 보인다. 익숙한 해적선. 갑판에 서 있는 무지개 갑옷.
-풍덩!
푸그리드가 망설임 없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물보라와 함께 바다에 빠진 그가 빠르게 헤엄쳐 이블아이가 있는 해적선으로 향했고.
“선장!”
“오오오오! 드디어!”
갑판 위로 올라온 푸그리드를 발견한 선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를 대신해 지휘하고 있던 이블아이도 마찬가지.
“왔냐?”
“그래.”
“약속은 지켰다. 이제부터는 네가 진행해.”
이블아이가 해적 모자를 벗어 푸그리드에게 건넸다.
씨익, 웃으며 받아드는 푸그리드.
부하들이 푸그리드의 장비를 들고 와 착용시킨다. 어느새 해적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일순간 조용해지는 공간. 부하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고.
“지금부터 레비아탄을 사냥한다!”
그가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