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바다낚시 삼 형제
바다낚시 좋아. 이름만 봐도 목적이 분명한 집단.
구성원이 10명도 안 되고 발자칸에서 주로 활동하지만 그 명성은 다른 해상 군도에도 퍼져 있다고 했다.
낚시를 위해서라면 바다로 나서기도 한다는데…….
‘사실상 실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다른 해상 군도 근처까지 나갈 때도 있었으니 해적과 마주치는 건 일상이고, 때로는 레비아탄과 싸우기도 한다고…….
해적단이 모여서 함정을 설치해야 잡든지 쫓아내든지 할 수 있는 게 레비아탄인데, 고작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이 모여 레비아탄을 퇴치하거나 무사히 도망친다?
개개인의 무력이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봐야 했다.
푸그리드를 구출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하던 찰나였는데.
“워우.”
“그에에.”
상상 이상의 모습이다.
나를 찾아온 바다낚시 좋아 사람들은 3명.
하나같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바다낚시 삼 형제다!”
“오늘은 또 무슨 개짓거리를 하려고 나타난 거지?”
“오오, 진짜냐!”
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들이 소리쳤다.
바다낚시 삼 형제?
뭔 소린가 싶어 위를 바라봤고.
“잠수하는데 구명조끼 입는 머저리, 곤!”
한 남자가 자연스럽게 탄 갈색 피부에 노란 구명조끼, 오리발를 착용하고, 등 뒤에는 고래작살을 걸친 녀석을 가리켰다.
“바다낚시는 바다를 낚는 것!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하하!”
뭐가 좋은지 곤이 허리에 손을 얹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를 이어 옆에 있는 이는…….
“생태계 파괴 생태학자, 에게르도 있어!”
반바지에 플라밍고 튜브, 눈에는 선글라스, 잇몸을 보이며 웃자 금니가 번뜩이는 양반이다.
“오호. 옆에는 개구리? 바다와 개구리라니, 멋진 조합이군요!”
덕춘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녀석. 바지를 뒤적이더니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내 덕춘이를 그리기 시작한다.
아니, 바지에서 스케치북이 어떻게 나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거 아닌가?
어이가 없는 것도 잠시.
친절한 구경꾼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자급자족! 위장 속의 아쿠아리움 루건도 왔군!”
자기 차례를 기다렸는지 팔짱을 낀 루건이 고개를 끄덕인다.
“낚시는 손맛도 중요하지만 갓 잡아서 회 떠 먹는 것도 맛이라고. 그쪽은 뭘 좀 아는 친구 같구만!”
꼬부랑 수염에 깊은 눈. 아이스박스 두 개를 크로스백처럼 멘 떡대가 내가 요리한 음식을 가리켰다.
손에 저건 뭐야, 중식도? 어떤 놈이 회를 중식도로 뜨냐.
그래도 낚시를 한다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 조그만 낚싯대를 바지춤에 넣어 두기는 했다. 낚싯대는 맞나? 그냥 회초리에 낚싯줄 묶어 둔 거 같은데.
벌써 머리가 아파 온다.
일단 이놈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어디 놀러 왔는지 죄다 웃통을 벗고 껄껄거리는 것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으나.
‘대충 서 있는데도 기세가 장난 아니네.’
허점투성이로 보임에도 함부로 덤빌 수 없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개노답 삼 형… 아니, 바다낚시 삼 형제의 등장에 술렁거리는 사람들.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가 됐든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다. 푸그리드를 구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그쪽은 이름이 뭐지?”
“이블아이라고 불러라.”
“이블아이! 어디서 들어 본 거 같기도 하군!”
들어 봤을 수도 있지. 워낙 해 둔 일이 많아서.
시장 구경이라도 온 것처럼 녀석들이 내가 잡은 물고기와 요리를 살핀다.
“깔끔하게 꿰뚫었어.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니야.”
“회 뜨는 실력이 있네. 봐 봐. 두께도 일정하고 안이 비친다니까?”
“이건 귀한 어종이군요. 저도 잡으려고 바위섬 몇 개를 폭파시킨 적이 있죠.”
대화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좋지.
흘낏. 주변을 둘러봤다. 이들의 등장으로 구경꾼이 늘어났다.
좋지 않다. 바다낚시 좋아를 끌어들이기 위해 움직이기는 했으나 과한 관심은 좋지 않으니까.
혹시나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녀석이 섞여 있을 수도 있고…….
‘푸그리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지 않지.’
자리를 옮기자.
“바다낚시 좋아 소속이라지?”
“우리를 알고 있나?”
“저렇게 다 말해 주는데 누가 몰라. 전에도 들은 적이 있지만, 헬다잉 키친 모임에서 소문을 들었거든.”
“헬다잉 키친!”
팔을 들어 팔찌를 보였다.
파트너십 계약을 맺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물건.
헬다잉 키친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었고.
“60층대 등반가가 파트너라. 실력이 제법인 모양이야.”
“어쩐지 요리를 좀 하는가 싶었어. 이제 좀 이해되는군!”
“요리에는 식재료가 필수. 내가 모르는 생물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요.”
삼 형제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그쪽 무리도 헬다잉 키친과 좋은 사이라던데 모임에서는 못 봤단 말이지.”
“아, 낚시하느라 바빴거든.”
“낚시는 현장감이 중요한 법! 그런 모임에서 낚시의 짜릿함을 느낄 수는 없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
난 턱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그럼 낚시 한번 하지, 어때?”
“오호라? 그렇지. 낚시인에게 대화가 필요한가! 함께 낚시하면 다 통하지!”
곤이 가슴을 치더니 바다로 뛰어든다.
“보니까 그쪽도 작살을 쓰는 거 같던데 한번 놀아 보자고!”
“좋지.”
나 역시 망설임 없이 바다로 들어갔다.
괜찮은 포인트가 있다며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녀석.
“따라올 수 있는지 볼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따라올 수 있냐고?
당연하지.
“가자, 덕춘아.”
“그엑.”
녀석처럼 빠르게 헤엄칠 자신은 없지만 내게는 덕춘이가 있다.
몸에 밧줄을 묶은 덕춘이가 고속으로 헤엄치기 시작했고, 줄을 붙잡은 난 미리 준비했던 스키를 발에 장착했으니…….
-촤아아아악!
“이게 수상 스키라는 거다!”
“궤에에엑!”
앞서나가는 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이 박수를 친다.
“보통내기가 아니군. 포인트까지 가는 건 걱정 없겠어!”
이어 뒤에 있던 에게르와 루건도 우리를 쫓아 바다로 뛰어내렸다.
“굉장한 개구리군요!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습니다!”
-파아아앙!
에게르의 플라밍고 튜브가 팽창하며 어지간한 배 사이즈로 커졌다.
“갑시다, 루건!”
“으랴아아아아!”
-파바바바방!
아이스박스를 실은 루건이 발장구를 치며 튜브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덩치를 봤을 때도 짐작했지만 각력이 대단하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와 곤을 따라오는 거대한 플라밍고 튜브.
생긴 거와 별개로 박력 넘치는 광경이었으며.
“바다낚시 삼 형제가 떠났다!”
“다행이다. 저번처럼 초대형종을 끌고 오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신참 녀석, 우리를 위해 멍청이들을 끌고 밖으로 나간 거 아닐까?”
“그런 건가? 젠장, 좋은 녀석이잖아!”
멀어져 가는 우리를 본 구경꾼들이 손을 흔들어 댔다.
평소 무슨 짓을 벌이고 다녔으면 떠난다고 사람들이 기뻐하냐.
이놈들을 따라가는 게 옳은 선택인가.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
“해 보자고.”
* * *
바다낚시 삼 형제가 잡은 포인트는 해초가 가득한 어딘가였다.
시커먼 깊은 바다에 흔들리는 해초.
발에 스치는 미끈하면서도 차가운 감촉에 누군가는 소름이 돋을지도 모르겠으나.
“여기가 괜찮다고. 물고기들이 몸을 숨기기 딱 좋거든.”
“해초를 먹고 자란 놈들이 맛도 좋지. 음하하!”
“특이한 식생이죠. 우후후. 여기에 매키스 진액을 넣으면 해초와 반응해서 독가스가 발생하거든요.”
이들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도 큰 감흥이 없었고.
망망대해. 미지의 공간이 두려운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도 경험 차이지.’
이미 낯선 곳에서 돌아다니는 건 익숙하다.
바다 밑에서 크라켄과 싸운 적도 있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낚시를 시작했다.
낚시는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바다낚시 좋아의 다른 멤버들은 다른 데 있나?”
“낚시가 좋기는 하지만 각자 일이 있으니까. 현생도 챙겨야지.”
“일하고 있다는 거네.”
세력이니 뭐니 말은 하지만 본질은 취미 모임.
각자 나름대로 일을 하는 건 당연했다.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분위기를 푼 후, 용건을 꺼냈다.
“푸그리드 알지?”
“소식 들었지. 사실 그거 때문에 발자칸으로 돌아온 거거든.”
“오랜만에 원정 낚시였는데 말이지!”
푸그리드한테 받은 반지를 꺼내 보여 줬다.
“이건…….”
“맞아. 푸그리드가 도움을 요청했어. 바다낚시 좋아가 도움을 줄 거라던데.”
“설마 이거 때문에 낚시를 하고 있던 건가. 우리를 끌어내려고?”
“낚시를 좋아하는 녀석인 줄 알았건만.”
곤이 미간을 찌푸린다.
에게르와 루건 역시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날 노려보는 게 불만이 있는 모양.
순수하게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기뻤던 거 같다.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거 때문에 시작한 건 맞아. 하다 보니 재밌어서 더 했지만. 단순히 그것만 목적이었으면 이렇게 기록해 두지도 않았지.”
그동안 낚시를 하며 기록한 것들을 에게르에게 넘겼다.
크기와 특징 등을 자세히 기록한 문서.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종류의 몬스터도 꽤 섞여 있다.
눈을 반짝인 에게르가 빠르게 문서를 살핀다.
“오오오오! 제법 잘해 놨군요. 저도 이 부분은 몰랐던 건데. 오호라, 내분비기관에 돌을 넣고 다니는 놈이 있을 줄이야. 으흠, 맞아요. 메가피쉬는 어금니가 척추랑 연결되어 있죠.”
이어 루건에게는 어종과 부위에 따라 어울리는 요리를 연구한 레시피를 건넸다.
요리 스킬이라는 게 단순히 반복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이왕이면 맛있게 먹는 편이 좋고, 한국에서 먹었던 맛을 재현하기 위해 나도 연구 꽤나 했다.
신체 능력이 올라가니까 미각도 예민해져서 대충 먹기 싫더라고.
“매운탕이라, 이쪽도 비슷한 음식이 있기는 한데 들어가는 재료가 좀 다르군. 이건 찜? 그냥 하면 비려서 못 먹는 종류인데, 오호라. 물약까지 사용해?”
“포션 제작 스킬이 있어서. 써먹을 수 있으면 써먹어야지.”
“그렇지! 더 맛있게 할 수 있으면 돌이라도 넣어야 되는 거야!”
나도 할 때는 진심으로 한다.
설렁설렁할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내게도 제법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친구, 낚시 좋아하는 거 맞는데? 곤, 취미가 아니었더라도 이 정도면 열정이 있는 거야. 시작은 다 관심으로 시작하잖아.”
“동의합니다. 흐흐. 여유가 되면 같이 식생 조사를 나서고 싶군요. 최근 빨판괴어를 연구하고 싶어서요.”
어느 정도 진심이 통한 걸까. 루건과 에게르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진다.
두 사람의 대변 덕분인가 곤 역시 손을 들었으니.
“알았어, 다 알아들었어. 어차피 우리도 푸그리드를 도울 생각이었다고. 친구가 처형당하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
그런 양반들이 낚시하러 나오는 게 말이 되나 싶기는 했으나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터.
“안 그래도 요즘 발자칸에 소문이 나고 있거든. 낚시하면서 이야기 좀 들었지. 푸그리드를 모함하는 내용이 많던데.”
“헛소문들이지.”
“푸그리드가 해적이기는 하지만 나쁜 놈은 아니잖아요?”
역시나,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모으고 있던 모양.
“최근에 들려온 정보에 의하면 일주일 내로 형을 집행할 거 같다더군. 지금도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고. 당위성을 만들려는 걸 거야.”
“시간이 많지 않군.”
“흐음, 여론전으론 우리가 밀려요. 평소 하던 짓이 있어서.”
일주일. 길다면 길지만 흩어진 푸그리드의 세력을 모으고 함정을 판 이들을 물리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아직 적들의 전체 세력을 파악하지도 못했고.
이들 역시 구출 계획을 짜지는 못한 거 같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생각을 해 봤어.”
바다낚시 삼 형제를 바라봤다.
낚시를 하며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는데.
“듣자 하니 그동안 푸그리드가 레비아탄을 상대해 왔다면서. 그럼 발자칸에서 놈을 가장 잘 아는 것도 푸그리드겠지, 맞아?”
“그렇지. 그쪽으로는 베테랑이니까.”
루건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 일이 꼬인 것도 레비아탄을 막지 못해서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놈이 실패할 일이 없는데.”
“걔 아니면 레비아탄 상대법을 아는 놈도 없을걸?”
이게 포인트다.
발자칸의 주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레비아탄.
그놈을 제대로 상대할 줄 아는 건 푸그리드뿐이다.
그러니까…….
“레비아탄을 끌고 오는 거 어때? 놈들이 푸그리드를 풀어 줄 수밖에 없도록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