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26화 (326/740)

326화 바다낚시 좋아

해상 군도 발자칸.

이름에 걸맞게 바다 한가운데 세워진 섬의 요새였으며, 바다 사람다운 거친 이들이 모여 있었다.

자유롭고 활기차며 역동적인 기운이 넘치는 곳.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 양식과 먹을거리가 눈에 띄었으나.

“허허, 어허허. 이런 망할.”

난 67층을 즐길 틈도 없이 감옥에 수감되었다.

절벽 안을 파고들어 만든 감옥. 두 손바닥이면 가려질 창문은 창살로 막혀 있었고, 바닷바람이 계속해서 들어와 방 안은 습했다.

환기라도 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행은 개뿔! 푸그리드 왜 여기 있는 건데?”

같은 감옥에 갇혀 있는 건 헬다잉 키친에서 만난 해적 푸그리드.

당당히 해상 군도의 지배자라며 목걸이를 던져 줄 때는 언제고 여기서 이러고 있냐.

그사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하하하! 원래 세상 사는 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

“웃음이 나오냐, 어? 웃음이 나와?”

녀석이 멱살을 잡고 흔들었지만 허허 웃을 뿐이다.

돌겠네.

상황은 잡혀 오면서 대충 들었다.

해상 군도는 정확히 말해서 해적들의 본거지가 아니다. 공생 관계라고 봐야지.

해적은 어떻게 해야 해적으로 살 수 있는가.

‘뭘 어떻게 해, 약탈해야지.’

그럼 이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약탈을 할까.

간단했다.

67층에는 발자칸을 비롯한 다른 해상 군도가 존재하고, 다른 섬의 해적선을 약탈하는 것이다.

본진은 치지 않는 것이 룰. 해적선을 공격하더라도 상대 NPC는 가능한 죽이지 않는다.

분노한 이들과 전면전을 펼칠 경우 서로 피해가 막심할뿐더러 포로는 곧 돈이니까.

더불어 각 대표 해적들은 군도를 수호하며 군도 주민들에게 보호금을 받는다. 반쯤은 뜯어내는 거지만 나름 정도는 지키는 모양.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레비아탄한테 당했다고?”

“어, 놈이 워낙 교활해서 말이지.”

67층의 재앙은 레비아탄.

나도 아는 놈이다. 우리 세계에도 나타난 괴물이니까.

아직까지도 잡히지 않은 채 바다를 누비는 중이기도 하고.

“그동안은 혹여나 못 잡아도 쫓아내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일이 틀어졌어.”

군도 해적들의 의무 중 하나는 재앙으로부터 군도를 지키는 것.

푸그리드 역시 경험이 많았기에 이번에도 무사히 놈을 무찌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러 악재가 겹쳐 실패했다고 한다.

전력이 줄어든 건 당연했으며 재앙에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민심도 떨어졌다.

그 틈을 노린 다른 해적단이 들고일어나 세대교체를 한 결과가 이거.

하여간 NPC라고 다른 게 없다니까.

문제는 따로 있다.

“처형이 말이 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놈들이 푸그리드를 처형하려 든다는 것.

레비아탄을 퇴치하지 못하기는 했으나 그동안 발자칸을 지켜온 건 그다.

당장 잠깐 민심이 떨어졌다 한들 여전히 발자칸의 주민들은 푸그리드를 지지하고 있다.

본인 입으로 한 말이라 오피셜인지 뇌피셜인지는 모르겠으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한 번의 실패로 목을 매다는 건 선 넘었지.

다른 의도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은 누가 군도의 주인인데?”

“트윈 스컬의 가밀. 우린 대충 트윈이라 부르지.”

“이인자의 자리에서 올라온 건가.”

“아니, 그게 좀 이상해. 녀석의 세력은 그리 크지 않았거든. 그런데 레비아탄이 나타날 즘 급격히 세를 불렸지. 다른 해적단도 흡수하고.”

푸그리드가 턱으로 밖을 가리킨다.

“널 잡아 온 제르바도 놈에게 들어간 녀석이지. 오래전부터 작전을 짠 거 같아. 어쩌면 이번 토벌에 실패한 것도 놈들의 수작일지도 몰라.”

-쿠웅!

혀를 찬 푸그리드가 바닥을 내려치며 당시의 상황을 말해 줬다.

대포가 망가지고, 선원들의 컨디션이 떨어졌다. 해류가 바뀌었으며, 선박에 구멍이 나는 등 우연이라 보기에는 힘든 악재의 연속.

함께 움직이던 해적단과의 연락이 중간에 끊겼고, 레비아탄을 잡기 위한 함정까지 파괴되었으니 정상적으로 레비아탄을 상대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나마 푸그리드의 빠른 선택 덕에 전멸은 피했다고는 하는데, 흐음…….

‘이거 아무리 봐도 푸그리드를 담그려는 거 같단 말이야.’

굳이 무리해서 처형하려는 이유?

그야 레비아탄한테 죽었어야 할 녀석이 살아 돌아왔으니까.

다르게 말하면 푸그리드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이 녀석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발자칸을 완전히 집어삼킬 수 없을 테니.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있다.”

“부탁?”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퀘스트창이 떠오른다.

[식칼 해적단의 부활- 돌발 퀘스트]

-처형 위기에 빠진 발자칸의 지배자 푸그리드.

-흩어진 힘을 모아 그를 구출하자.

-전복 세력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건 덤.

-보상: 레비아탄의 심장, 반파된 유령선 (A), 해적의 전설 보물 상자 (???)

“이건…….”

“꽤 좋은 것들로 골라 놨지. 심장은 싱싱한 게 좋아. 날 도와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레비아탄을 잡아 주마.”

대단한 자신감. 한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이들의 계략 때문이다.

반파된 유령선은 스킬인 거 같고. 줄 거면 멀쩡한 걸로 주지.

보물 상자야 언제든 좋은 거니까 패스.

다 좋은데…….

“가능하려나.”

이곳으로 잡혀 오며 물건들을 빼앗겼다. 그나마 펠라인 세트랑 무기는 인벤토리에 넣어서 뺏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 아공간 아이템은 놈들이 가져갔다.

아공간 아이템도 인벤토리에 넣어 볼까 했는데 비어 있으면 모를까 안에 물건이 있을 때는 넣을 수 없었다.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 나쁘지는 않네.

“그에에.”

덕춘이도 있고, 주요 장비는 가지고 있으니까.

보물 주머니에 넣어 둔 성물과 물약은 못 쓰겠지만 영 급하면 따로 만들면 되는 거고.

진짜 문제는 난 이곳이 처음이라는 거지.

“날 도와줄 녀석들이 있어. 그 녀석들도 헬다잉 키친과 친하니 너라면 말이 통하겠지.”

“누구지?”

“바다낚시 좋아라고 들어 봤나?”

들어 봤다. 헬다잉 키친과 인연을 만들며 들었던 집단이다.

집단 이름이 왜 이 모양인가 했었는데 여기 있었구나.

“기본적으로 중립이기는 한데 강한 놈들이야. 발자칸의 누구도 함부로 건들지 않지. 나와는 친분이 있는 놈들이고.”

“그들 먼저 만나라는 거군.”

“부하들은 흩어져 있어. 해적선에서도 짱박혀 있던 놈들이니 쉽게 잡히지는 않겠지. 모일 구실이 생기면 알아서 기어 나올 거다.”

“걔네들이 먼저 움직일 가능성은?”

“제발 얌전히 찌그러져 있으면 좋겠는데… 그 멍청이들이 나서서 일이 멀쩡히 돌아가는 꼴을 못 봤거든.”

눈살을 찌푸린 녀석.

푸그리드가 반지 하나를 빼더니 손가락을 물어 핏방울을 묻힌다.

은은하게 빛이 나는 반지. 놈이 그걸 내게 건넸고.

“반지를 보여 주면 내가 보냈다는 걸 알 거야.”

“그런데 말이야. 일단 내가 탈출해야 뭐든 되는 거 아닌가?”

“왜? 못 하겠어?”

그럴 리가.

턱. 창가를 붙잡았다.

“기다려. 죽기 전에는 돌아오지.”

[안개 질주 (S) Lv.6]

-푸화아아악!

안개가 된 난 그대로 창살을 넘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암초가 가득한 바다.

[안개화가 종료됩니다.]

[달라붙기 (A) Lv.3]

절벽에 달라붙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섬 안으로 들어가자. 그래야 뭘 하든 할 테니까.

* * *

상점에서 산 후드를 뒤집어쓰고 거리를 배회했다.

펠라인 세트는 나중에 전투가 필요할 때 착용할 생각.

이미 잡혀 올 때 옷차림이 노출됐다. 워낙 눈에 띄는 색이다 보니 놈들도 기억하고 있을 테고.

“어디에 있으려나.”

바다낚시 좋아. 이름만 봐서는 어디 방파제에 앉아 있을 거 같은데.

세력 중 하나기는 하지만 사실상 모임에 더 가까운 곳이라 했다.

취미가 맞아 모이고 보니 강한 놈들만 있었다는 신기한 놈들.

헬다잉 키친에도 연락을 해 봤지만 성과는 없었다. 재료와 요리를 주고받는 사이긴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이쪽도 모르는 모양.

혹시나 싶어 거리를 오가는 이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눈치다.

알면서도 말을 안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방향을 튼다.

“낚시하는 사람을 찾으려면 바다로 가야지.”

섬인 만큼 바다는 어디로 가나 있다.

중요한 건 어느 쪽에서 낚시가 잘 되냐는 것.

낚시 용품점에 들러 적당한 포인트를 물었고.

“뭘 잡고 싶은지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어디 보자. 회를 먹는다고? 등반가가 간도 크구만. 먹고 죽을 거면 맛 좋은 걸 먹어야지. 남부 개척지로 가 보게.”

괜찮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나야 요리 스킬도 있고 소화 스킬도 있어서 몬스터를 먹을 수 있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 * *

-쏴아아아아

거센 파도가 치는 곳.

이런 곳에 물고기가 있기는 한가 싶지만 있으니까 말해 준 걸 거다.

여기 나오는 놈들이 일반적인 물고기일 리도 없고.

“후우, 푸그리드가 바로 처형당할 일은 없어. 아직 시간은 좀 남았다는 거지.”

“그에에.”

어차피 그를 구출하려면 혼자서는 무리다. 좋든 싫든 도움 줄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

꾸득.

밧줄을 연결한 작살을 움켜쥐었다.

낚시는 따로 해 본 적이 없다. 대충 물고기만 잡으면 되는 거 아닌가?

“덕춘이, 고.”

“궤엑!”

퐁당.

덕춘이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낚시 초보가 성공적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

-쿠르르르르

-파아아아앙!

“키햐아아아악!”

“잘했어, 덕춘이!”

별거 있나. 덕춘이가 물에서 던져 주고.

-쒜에에에엑!

-콰아아악!

내가 작살로 꿰어 버리면 되는 거지.

몸통이 꿰뚫린 몬스터가 버둥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그에에에.”

덕춘이가 침 한 번 뱉어 주자 독이 퍼져 축 늘어졌다.

척. 엄지를 세우자 덕춘이도 엄지를 든다.

이번에 잡은 건 청새치를 닮은 몬스터. 이름은 모르겠다. 나도 처음 보는 종류라서.

육지와 달리 해양 몬스터는 연구가 덜된 상태.

“겸사겸사 몬스터 정보도 모아야겠네.”

나중에 써먹을 때가 있겠지.

상점창에서 종이와 연필을 사 기록했다. 외향과 이름, 능력 등등.

권능이 있는 이상 정보를 읽어 내는 건 식은 죽 먹기.

겉모습도 적당히 끄적여 주고.

“그에에엑!”

“또 왔냐! 오케이!”

-콰아아앙!

덕춘이가 물 밖으로 해양 몬스터를 던져 주면 다시 잡았다.

덩치가 큰 놈들은 덕춘이가 미끼 삼아 유인해 왔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내가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해체했다.

도축으로 식재료는 헬다잉 키친으로. 남은 건 직접 요리해 먹었다. 회면 회. 매운탕이면 매운탕. 찜도 해 보고 구이도 도전해 보고.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으나.

[폭식 (S)]

“그헤헤헤.”

내게는 대식가 덕춘이가 있어서 말이지.

해산물이 입에 맞는지 말하지 않아도 조개류나 미역 같은 것도 채집해 갔다 줬다.

이것들로 요리해 달라 이거지.

새로운 식재료들로 요리를 해서인지 요리 레벨도 잘 올라간다.

중간중간 발자칸에 들어가, 잡은 것들의 부산물을 파는 것도 잊지 않았다.

NPC와 안면을 트며 요리도 좀 해 주고.

내가 원하는 건 하나.

‘소문을 퍼트리는 것.’

찾아갈 수 없다면 찾아오게 만들어야지.

낚시에 관심이 있는 놈들이라면 분명히 올 거다.

지금도 내가 몬스터를 잡는 걸 구경 오는 이들이 있을 정도니까.

최근에 잡은 5성급 몬스터, 기간틱 어썰트 레이를 잡으며 유명세를 탔다.

듣자 하니 잡기 힘든 종류라는 모양.

나흘 동안 밤낮 할 거 없이 계속해서 낚시를 한 결과.

“이봐, 그쪽이 기간틱 레이를 잡았다지?”

“오오? 저것들 좀 봐. 그림 그려 둔 거 같은데? 이야. 그래, 잡은 것들은 기록을 해야지.”

“아하하! 이쪽도 예전에 종종 왔는데 여전히 잘 잡히나 봐?”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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