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투스타 해적단
허리에 손을 얹고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바다 위에 우뚝 솟은 바위섬.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니 가슴이 탁 트이는 거 같다.
쭉 이어진 수평선.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어디 엽서 사진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좋네. 나중에 밖으로 나가면 바다도 놀러 가야지.”
“그에에.”
물이면 마냥 좋은지 덕춘이도 고개를 끄덕인다.
개구리 주제에 바닷물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으니.
다만 아직은 먼 얘기다. 올라가야 하는 층은 많이 남았으니까.
당장 여기도 휴양하러 온 게 아니다.
그럴 만한 곳도 아니고.
-구르르르르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웠으나 내 눈에는 보인다.
수면 아래 움직이는 시커먼 그림자.
해양 몬스터.
미지의 적이 날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하긴 하다.
“헌터들이 꺼릴 만해.”
아무래도 바다는 육지보다 움직임의 제한이 많아서.
전문적으로 해양 몬스터를 처리하는 길드와 집단이 있을 정도다.
국가에서도 지원을 많이 해 주고.
항공 무역도 한계가 있어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해양 무역을 하긴 해야 한다.
듣자 하니 그쪽이 돈은 많이 번다는 거 같은데…….
“나랑은 상관없지만.”
육지, 바다, 하늘. 난 안 가린다. 몬스터가 있으면 잡아야지.
돈이야 사냥을 하다 보면 저절로 쌓이는 거고.
뚜둑.
목을 풀자 뼈 소리가 난다.
내 존재를 눈치챈 걸까. 바다 밑에서 유영하던 놈들이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온다.
척 보기에도 한 덩치 하는 놈들.
해양 몬스터는 중형급 이상이 많다. 그중에서도 공격성이 심한 놈이 있었으니.
-촤아아악!
“카하아아악!”
더블 크로 블루핀.
거대한 참다랑어에 집게발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4성급으로 알려진 몬스터였고 일각에서는…….
[절삭 (S) Lv.7]
[도축 (S) Lv.7]
-서걱!
먹을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멸종될 몬스터라고 불렸다.
거대한 몸이 반으로 갈라진다.
내장이 쏟아져야 정상이었으나 도축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된 상황.
그럼에도 비린내는 어쩔 수 없었지만 생선 잡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이야, 때깔 좋네.”
난 적당히 잘린 살덩이를 집어 들었다.
선홍빛 고기. 참치를 회로 먹으면 기가 막힌다던데.
대격변 이후, 바다 멀리 나가 잡아 오는 해산물의 가격이 미친 듯이 올랐다.
지금은 어지간히 돈이 많은 게 아니면 먹지 못한다나.
나야 어릴 때는 회를 안 좋아해서 어떤 맛인지 기억은 잘 안 난다.
이번 기회에 먹어 보지 뭐.
[요리 (B) Lv.5]
회를 뜨는 것도 요리로 인정해 주는지 스킬이 정상 작동했다.
혹시나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적당한 크기로 잘라 내 입에 넣었다.
“괜찮은데? 너도 먹어 봐라.”
“궥!”
냉큼 입에 넣는 덕춘이.
과하지 않은 기름기와 훌륭한 식감.
바닷물이 섞여 좀 짜기도 했고 비린 느낌도 있었지만 묘하게 끌리는 맛이다.
[소화 (AAA) Lv.3]
날것이라 그런지 소화 스킬이 발동되기는 했지만.
덩치가 커서 그런가 한 마리 잡았는데도 나오는 고기가 꽤 많다.
내장은 쓸데가 없어 보이니까 패스하고, 맛있어 보이는 부위 위주로 도축해 일부는 아공간에 넣고 나머지는 헬다잉 키친으로 보냈다.
뭐, 맛보기는 이 정도로 해 두고.
“저기군.”
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시선을 던졌다.
67층. 해상 군도 발자칸.
헬다잉 키친 모임에서 만난 NPC가 있다. 그에게 받은 물건도 있고.
[해상 군도- 발자칸의 귀인 목걸이]
-67층에 존재하는 해상 군도 발자칸.
-그곳을 지배하는 해적 푸그리드의 귀인임을 증명하는 목걸이.
-몬스터보다 해적이 무서운 그곳에서 안전은 보장합니다!
해적 소굴의 수장, 푸그리드가 준 목걸이.
이번 필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얼핏 보더라도 규모가 상당해 보이는 곳이었고, 해안가를 기준으로 높은 벽이 세워져 있었다.
일부는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선박장으로 보이는 곳도 있었고 절벽으로 외부와 차단된 곳도 있었으니…….
“천혜의 요새로군.”
60층대 들어서 가장 도시 같은 곳이기도 했다.
그동안 있던 곳은 대부분 소규모 단위의 마을이거나 NPC 몇 명이 모여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파앗!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파이어 밤으로 날아갈까도 했는데 바다라 그런지 거리 가늠이 안 된다.
그렇다고 무지개다리로 이동하자니 내 인격과 자존감이 거부하고.
오랜만에 수영 좀 한다 생각하지 뭐.
-풍덩
갑옷을 착용한 상태지만 이미 초인에 가까운 육체를 지닌 만큼 부담은 없었다.
[수중 시야 (E) Lv.1]
[수중 호흡 (B) Lv.1]
호흡과 시야까지 확보한 상황.
앞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확실히 속도가 더디기는 했으나.
[파이어 밤 (S) Lv.10]
-쿠르르르르!
중간중간 폭발을 일으켜 추진력을 얻자 제법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덕춘이야 알아서 잘 헤엄치니 상관없고.
‘나중에 물에서 쓸 이동 스킬을 얻으면 좋겠네.’
급할 건 없다. 지금도 조금 불편할 뿐이지 충분히 활동할 만하니까.
그런 나를 향해 거대한 덩치의 해양 몬스터들이 알짱거렸으나.
“그에에엑!”
-구구구궁!
“그어어어어!”
우리의 킹갓개구리 덕춘 님 선에서 정리가 됐다.
덩치로 따지면 놈들이 훨씬 크다만 급이 달라서.
쏜살같이 돌진한 덕춘이가 몸통 박치기를 할 때마다 놈들의 몸이 움푹 파이며 나가떨어진다.
중간에 뺨이라도 한 대 맞으면 뭐 그대로 죽는 거고.
그렇게 어느 정도 헤엄쳤을까.
-쿠구구구궁!
-파아아앙!
‘뭔데 또!’
갑작스레 폭격이 떨어졌다.
출렁이는 물결에 휩쓸려 밀려날 정도.
흐릿하지만 봤다. 바다 밑으로 떨어지는 포탄을.
-퍼어어엉!
-콰르르릉!
포탄 세례가 이어진다.
그때마다 파도가 일렁거려 위치를 잡기도 버거울 지경.
나를 노리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위협 사격.
내 주변에 떨어질지언정 정확히 나를 향해 쏘고 있지는 않다.
‘물 위로 나오라는 건가.’
그런 의미가 아닐까?
어차피 이 상태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힘들다.
어떤 놈이 이러는지 얼굴이라도 봐야겠다.
위로 방향을 틀었다.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포격이 멈추었다.
“푸하!”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자 해적선 하나가 보인다.
예전 51층에서 봤던 것들과는 전혀 다르다.
낡기는 했으나 제대로 된 구색을 갖추고 있었고, 해적이라는 걸 티 내는 건지 해골이 그려진 돛이 있었다. 해골 눈이 별 모양인 게 특징.
포격할 때 썼을 대포가 나를 향해 조준되어 있다.
그 위로 보이는 NPC들이 있었으니.
“이거 이거, 신참이구만!”
“어이, 등반가! 그렇게 물속에 있다간 그대로 수장된다? 크하하하!”
“색깔이 왜 저래? 알록달록한 것이 열대 과일 에디션인가?”
나 해적이요 하고 말하는 것 같은 옷차림이다.
햇빛에 변색된 옷. 시미터와 단검. 가죽 스트랩과 장화.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는 이들이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질러 댄다.
다른 사람이라면 정신이 없어 넋이 나갔을지도 모르겠지만…….
“미친 놈들아! 대포를 왜 쏴!”
“그에에엑!”
난 울컥 화부터 났다.
아니, 가만히 헤엄치는데 대포를 쏴?
그런 내 반응이 의외였나. 한순간 놈들이 입을 다물었고.
“푸하하하! 골 때리는 놈이 왔는데?”
“그래.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휘이익! 새콤달콤! 맘에 들어!”
폭소와 함께 휘파람을 불어 대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좋다 치는데.
-콰아아아앙!
그대로 나를 향해 대포를 쏴 버린다.
예고 없이 날아든 포탄.
[독자무강獨者武强 (S) Lv.8]
[강철의 의지 (S) Lv.8]
[강체强體 (S) Lv.9]
[물리 공격 내성 (S) Lv.8]
-쿠웅!
-파하아아앙!
반사적으로 팔로 쳐 냈다.
포탄이 바다에 처박히며 물기둥을 만든다.
육중한 무게와 파괴력에 팔이 좀 아팠지만 이 정도는 귀엽지.
물리력에 의해 뒤로 밀려나기는 했으나 덕춘이가 균형을 잡아 줘서 꼴사나운 모습은 면했다.
“미친놈 맞네.”
기껏 나오라고 위협 사격해 놓고 나오니까 대포를 갈겨?
머리에 나사 몇 개는 빠진 놈들이다.
어쩌면 신고식일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에 당할 거였으면 60층대는 못 올라왔지.
놈들 역시 히죽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고.
웃는 거 좋지. 많이 웃으면 수명도 늘어난다는데.
“같이 좀 웃자.”
-콰아아앙!
등 뒤로 폭발을 일으켜 기습적으로 해적선에 접근했다.
[달라붙기 (A) Lv.3]
물이끼가 끼어 미끄러웠으나 스킬의 효과로 무리 없이 붙을 수 있었고.
[시한폭탄 (AAA) Lv.6]
빠르게 해적선을 돌며 폭탄을 심었다.
불길한 마법진이 선박에 물드는 걸 본 놈들이 소리를 지른다.
“야, 인마! 뭐 하는 거야!”
“저 새끼, 잡아! 일단 잡아!”
“뭐 해, 등신아. 내려가서 끌고 와!”
“으아아악!”
선장으로 보이는 놈이 옆에 있던 부하를 걷어차 바다에 빠트린다.
놈을 시작으로 다른 해적들 역시 쪽배를 내렸고, 성격 급한 놈들은 직접 바다로 뛰어들었으니.
“거기 신참, 선배들이 장난치는데 정색하는 거 아니야. 배 건드는 건 더 아니고.”
“곱게 내려와. 우리 화나면 무섭다? 어?”
“흐흐흐. 한 성깔 하나 본데 아무렇게나 대가리 들이밀면 쓱싹, 모가지가 날아가는 거야.”
“처음 와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등반가도 건들 수가 있어요, 응?”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오는 녀석들.
“맞아, 내가 좀 흥분했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쳐 줬다.
놈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래, 말이 통하네. 천천히 내려와.”
“67층에 왔으면 이쪽 동네의 룰에 따라야지.”
“여기서 깔짝거려 봤자 서로 좋을 게 없거든. 우리가 다 후배 생각해서 데려다주려고 온 거야.”
실실거리는 놈들의 면면을 살폈다.
단순한 친구들이야.
피식 웃으며 선박에서 떨어져 바다로 뛰어내렸다.
“지금이야, 잡아!”
“넌 뒈졌다!”
이때다 싶어 나를 향해 달려드는 놈들.
이럴 줄 알았다. 에휴.
[파이어 밤 (S) Lv.10]
-콰아아아앙!
발아래로 폭발을 일으켰다.
나를 향해 오던 놈들이 폭발에 휘말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턱
반발력에 위로 올라온 난 해적선 위에 올라섰다.
이어서 손가락을 튕겼으니.
[시한폭탄 (AAA) Lv.6]
[시한폭탄 (AAA) Lv.6]
[시한폭탄 (AAA) Lv.6]
[시한폭탄 (AAA) Lv.6]
.
.
.
-쿠콰과과광!
해적선에 설치한 폭탄이 일제히 터져 나갔다.
“으아아악!”
“야, 이 미친놈아!”
“뭐라도 잡아!”
크게 휘청이며 흔들리는 배.
달라붙기로 발을 고정한 나는 크게 상관없었지만, 갑판 위에 올라와 있던 해적들은 균형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선장을 비롯한 몇몇은 버텨 냈지만.
배가 기울지는 않는 걸 보니 구멍이 나지는 않은 거 같다.
하기야 시한폭탄 몇 번으로 박살 날 거였으면 60층대 바다에서 쓰지도 못하겠지.
해양 몬스터가 들이박으면 아작 날 텐데.
아무튼.
“환영해 줘서 고맙다. 덕분에 67층이 어떤 분위기인지 잘 알겠어.”
난 선장으로 보이는 놈을 향해 다가갔다.
얼굴에 기다란 흉터가 있는 녀석.
“배짱이 좋구나, 이름은?”
“이블아이, 넌?”
“제르바다. 투스타 해적단의 선장이지.”
투스타 해적단이라. 이름 구리네.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놈한테 푸그리드한테 받은 목걸이를 던졌다.
삐딱하게 서는 건 덤.
목걸이를 확인한 제르바가 눈썹을 치켜세운다.
“알아보나 보네. 푸그리드한테 이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말이야. 대접이 영 별로네?”
“아, 귀한 손님이었군. 설마 푸그리드와 연이 있는 등반가일 줄이야.”
제르바가 선실을 가리킨다.
“선장실로 안내하지. 어이, 안으로 모셔.”
“서, 선장?”
“모시라고.”
제르바가 눈을 부릅뜨자 선원이 나를 선장실로 안내했다.
해적선치고는 깔끔한 범선.
“여기 있으쇼.”
“그러지.”
난 선장실 소파에 앉았다.
이번 층은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거 같다.
* * *
투스타 해적선의 갑판.
“으으, 망할 등반가.”
“이게 뭔 꼴이야.”
바다에 빠졌던 이들이 올라왔고, 그들 중앙에 있던 선장 제르바는 입꼬리를 올렸다.
“푸그리드를 찾아온 등반가라, 재밌군. 그 녀석이 감옥에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