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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20화 (320/740)

320화 다섯 날개 교단

빠르게 발을 박찼다.

나무 사이를 지나치고 바위를 뛰어넘으며 전진.

그럼에도 인기척은 없었으니.

[외톨이의 길 (B) Lv.9]

은신 스킬을 쓰고 있었다.

존재감 자체가 옅어지는 느낌.

재앙의 영향을 받아 영문 모를 짓을 하는 몬스터를 지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여유가 있으면 사냥도 좀 하겠는데 지금은 해야 할 게 있어서.

-착

사뿐히 나무 위에 올라섰다.

“거의 다 온 거 같지?”

“그에에.”

미네르에게 교단의 위치를 듣기는 했다.

초행길이라 확신이 안 들뿐. 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길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말해 줬던 구조물들을 지났으니 방향 자체는 맞는 거 같지만.

시선을 멀리 던지며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원을 그리듯 천천히, 꼼꼼하게.

“찾았다.”

저 멀리, 계곡 근처에 자리 잡은 교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익숙한 양식.

사이즈는 작지만 65층에서 본 빛의 도시 건축물과 비슷하게 생겼다.

탑을 오르다 보면 각 세계의 건축 양식도 조금은 알게 되는 법.

지하에 숨어 있는 하얀뿔 지부와는 달리 대놓고 나와 있다.

등반가를 꼬드기기에는 저쪽이 더 나아 보인다.

신전 밖으로 나온 NPC가 햇볕을 쬐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걸 보니 혹시 등반가가 오지 않을까 기다리는 모습.

대놓고 홍보 피켓을 들고 있는 걸 보니 분명하다.

‘서로 영입을 하는 건가.’

하얀뿔뿐만 아니라 하얀 나무에서도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쯤 되면 영입하는 건 시스템이 의도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서로 싸우게 될 두 집단이 등반가와 미리 접촉하는 걸 용인해 주고 있으니까.

그 증거로 66층의 NPC들은 활동 범위가 따로 정해진 거 같지 않다.

일종의 영입 전쟁.

휘쉔이 말했다. 66층 지부에 대원은 더 있지만 지금은 밖에 나가 있다고.

필드 어딘가에 있을 등반가와 접촉하기 위해서겠지.

나야 62층에서 쉐핀을 만났을 때부터 눈독을 들인 거 같지만.

“일단 가 보지 뭐.”

뭐가 됐든 난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자세한 건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에 결정하면 되니까.

미네르가 말했다. 교단을 통해 신성력을 얻을 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경로가 아니라고.

일시적이라고 했던가.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문제가 된다고 판단된다면 그에 대한 정보도 커뮤니티에 올릴 생각.

해 줄 수 있을 때 미리 해 줘야 한다. 70층 이후부터는 하위 서버에 글을 올릴 수 없다.

그때부터는 다른 연합 사람과 접촉해 대신 글을 올려 달라고 해야지.

어디까지나 나중의 일이니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다.

-파앗!

몸을 날렸다. 밖에 나와 있는 NPC가 있기는 했지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 들키지 않을 거다.

외톨이의 길은 사람과 인간형 몬스터를 상대로는 효과가 괜찮으니까.

외곽부터 교단을 살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동네에서 좀 큰 교회 정도의 사이즈.

내부 구조는 잘 모르겠고.

‘출입구는 정면에 하나, 후문에도 하나 있군.’

생활 쓰레기를 버리거나 기타 잡다한 활동을 할 때 쓰는 것 같다.

창문이라 불릴 만한 건 스테인드글라스뿐.

한쪽에 몰려 있는 걸로 봐서는 저쪽이 예배실인 거 같은데.

아닌 듯하면서도 은근히 폐쇄적인 구조다.

-우우우웅

미약하게 신성력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예배실보다 깊은 곳. 후문과는 거리가 좀 있는 쪽에서 느껴지는데, 이게 천족의 영향인지 성물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달라붙기 (A) Lv.1]

조심스럽게 벽을 타고 올라갔다.

혹시나 신전 위에도 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한 행동이었고.

“음?”

“궤?”

예상치 못한 것을 볼 수 있었으니.

“거, 거기. 물 좀 줘. 물.”

굴뚝처럼 솟은 기둥에 한 남자가 묶여 있었다.

NPC가 아니다, 등반가. 나보다 먼저 66층에 진입한 사람 중 한 명인 거 같은데.

입가에 손가락을 올리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워터 (C) Lv.7]

남자 위로 떨어지는 물.

마력을 조절해 조금씩 흘러나오게 하자 급하게 물을 받아 마신다.

이상하다.

‘워터는 상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킬이란 말이지.’

60층대에 오른 사람이 없을 리가 있나.

모종의 원인이 있다는 거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즈

빛무리가 번진다.

팔찌. 겉보기에는 평범했지만.

[불온한 자의 처벌 팔찌 (AAA)]

-정신 교육!

-교단의 뜻을 따르지 않은 자는 혼나야 합니다!

-주입된 신성력에 따라 스킬을 제한합니다.

-주입된 신성력보다 신성력이 높지 않을 시 파괴 불가.

-교단 사람만 착용 가능.

“사이비 맞네.”

뭐 이딴 아이템이 다 있어.

팔찌를 움켜잡았다.

이어 신성력을 불어 넣었고.

-콰득

그대로 아귀에 힘을 줘 부숴 버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바라보는 남자.

“그, 그걸 어떻게? 주입된 신성력보다 강해야 부술 수 있을 텐데.”

“내가 신성력이 좀 많아서.”

“설마 교단 사람인가?”

“뭐, 교단이라면 교단일 수도 있긴 하겠네. 이쪽은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얼음과 불의 신전 소속이라 봐야지.

어찌 됐든 명예 팔라딘으로 등록되어 있으니까.

“뭐가 됐든 고마워. 영국에서 온 케들락 포머스다. 넌, 아! 알 거 같아. 무지개 용사!”

“그걸 왜 알고 있는…….”

“60층에 있던 친구들이 말해 주던걸. 커뮤니티만 봐도 유명 인사잖아. 탑계의 셀럽!”

툭. 그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른다.

호감과 호기심이 잔뜩 깃든 표정.

“그거 알아? 영국 서버에서 알록달록하게 장비를 맞추는 게 유행했지. 이블아이룩이라고. 한국계 헌터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하하! 한국이 그렇게 개성적인지 몰랐어.”

[정신 보호 (SSS) Lv.1]

[스킬 레벨 업!]

[정신 보호 (SSS) Lv.2]

아. 정신이 아찔하다.

글로벌 무지개! 대한민국의 자랑!

이걸 따라 한다고? 왜? 뭐 때문에? 누구 놀리는 건가?

혹시 모른다. 연합 사람 중에도 나나 탈모맨, 핥짝이의 옷차림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있겠지. 안 봐도 장담할 수 있다. 이제 놀랍지도 않아.

한국계 헌터 이대로 괜찮은가.

지금은 탑에 갇혀 있지만 이들이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잊자. 난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고말고.

자기 합리화를 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흘낏 밑을 보니 입구 쪽에 있던 NPC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한 상태.

좀 더 떠들어도 될 거 같다.

“넌 여기 신자인가.”

“신성력 준다고 혹해서 들어갔다가 빠져나가려는데 잡혔지.”

“내부에 들어갔다는 거군. 성물도 봤어?”

“봤지. 그걸로 신성력을 넣어 주거든.”

성물이 핵심이라는 거다. 어쩐지 성물만 훔쳐 오라더라.

“안에 분위기는 어때? 신도들도 있고 그럴 텐데.”

“그 개 같은 놈들? 하여간 이쪽은 평등한 게 없어. 아. 생각만 해도 빡치네.”

“이상한 놈들이 많았나 보구만.”

“말도 마. 그 쥐똥만 한 신성력 가졌다고 얘들이…….”

슬쩍슬쩍 그가 겪었던 일을 건들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쌓인 게 많은지 줄줄이 쏟아내는 녀석.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다. 부조리가 어디 군대 저리 가라다.

신나게 떠든 지 얼마나 됐을까.

불안감을 느낀 녀석이 갈 채비를 한다.

“이만 가 봐야겠어. 괜히 이쪽에 얼쩡거리다가 잡히고 싶지는 않거든. 나중에 보면 사례하지.”

“그래. 가 봐라.”

“이거 받고.”

짧은 문답이 끝나고 자리를 피하려던 녀석이 뭔가를 던진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필요할 거야.”

“잘 쓰지.”

“개인적으로는 놈들이랑 엮이지도 않는 걸 추천하지만 너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내가 말해 준 거 잊지 말고!”

손을 흔든 녀석이 빠르게 숲으로 사라진다.

자, 덕분에 정보는 잘 얻었다.

놈이 건네준 건 신도임을 증명하는 반지.

[다섯 날개 교단 신도 반지 (B)]

-교단의 신도임을 증명하는 반지.

-문을 열기 위한 열쇠기도 합니다.

-신성이 없는 자 구원받지 못 하리라!

-숭배하십시오!

-은총이 내려질 겁니다!

어째 아이템 하나하나마다 설명이 사이비 같냐.

열쇠로도 쓰인다니 없었으면 고생 좀 했을 거 같다.

이래저래 생각은 해 봤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몰래 잠입하는 건 불가능.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돼.”

겉보기에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다르다고 한다.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다나.

게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면 반지를 사용해야 하며, 내부에는 NPC도 여럿 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성물의 위치가 숨겨져 있지는 않다는 것.

등반가도 몇 명 있다는 거 같다.

“가 보실까.”

대략적인 계획은 만들어졌다.

펠라인 세트를 해제하고 상점에서 금박이 박힌 망토를 샀다.

눈가를 가리는 가면도 썼고, 황금 목걸이로 포인트도 줬으니 뭐랄까.

사이비에 어울리는 수상한 모습이 될 수 있었다.

-타악

은신 스킬을 풀고 밑으로 내려갔다.

* * *

순백의 신전. 양각으로 무늬가 새겨진 황동 문을 거침없이 열었다.

-구구구구궁

문이 열리며 보이는 내부.

쭉 뻗은 복도와 벽에 걸린 초상화들.

그 안에는 NPC들이 보였고.

“누가 소란을 피우느냐!”

“새로운 신도인가. 경박하게 굴지 말고 예를 갖춰 들어와야 하거늘. 쯧쯧.”

“신입이면 그럴 수 있지. 이쪽으로 오게. 내 안내해 줄 테니.”

내게 시선을 던진 이들이 접근해 왔다.

빠르게 그들을 살폈다.

‘천족은 없어. 전부 신도들이군.’

굳이 NPC가 되고서도 신도로 활동해야 하나 싶었으나 본인들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잘됐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교단 반지를 보여 주면서 같은 신도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파아아아앗!

“오, 오오옷!”

“이 빛은!”

신성력을 내뿜어 바로 서열 정리에 들어갔다.

천족을 숭배한다는 건 그들의 서열 시스템도 그대로 가지고 왔다는 뜻.

내가 풀어준 케들락 또한 그렇게 말을 했고 난 천족 못지않은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

등반가와 NPC를 떠나 서열에서 밀린 이들이 허리를 굽혔다.

“여기 최고참이 누구지?”

“저, 접니다.”

굽실거리며 다가오는 신도 NPC.

그가 눈치를 살피더니 손을 비빈다.

“에그릭이라 불러 주십쇼. 헤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보인다.

등반가임에도 이만한 신성력.

천족에게 예쁨받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이들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과 가까워지면 여러모로 이득일 거고.

-따악

“네 이름은 관심 없다.”

“억! 죄송합니다!”

냉큼 녀석의 머리를 때렸다.

케들락이 말하길 이쪽은 상급자가 싸가지가 없는 게 전통이래서.

은근 재밌네. 릴카 말고 다른 NPC 딱밤 때리니까.

역시 손맛은 릴카가 최고다. 두상이 예뻐서 그런가.

아무튼.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성물로 안내해. 불시 점검이다.”

“부, 불시 점검!”

“언질이라도 주셨으면 준비했을 텐데.”

불시 점검이라는 말에 NPC들이 안절부절못했으나.

“쓰읍!”

“아, 아닙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인상 한번 쓰는 걸로 잠재웠다.

이게 권력의 맛인가.

“크흠. 관리는 목록도 가지고 오겠습니다. 새내기 신도도 당연히 보셔야겠죠. 홍보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다른 곳보다 실적이 좋을 겁니다요, 암요.”

길 안내를 하며 신전에 대한 보고를 올리는 녀석들.

적당히 필요한 정보만 걸러 들었다.

“아! 마침 이번에 새로운 등반가가 와서 상담 중입니다. 헤헤. 자질이 아주 뛰어나던데요. 상급자분이 오셨으니 자비를 베풀어 덕담이라도 해 주시는 게 어떠실지.”

“새내기?”

“예. 여기입니다.”

NPC가 복도 끝 방의 문을 연다.

새내기라, 또 어떤 불쌍한 사람이 잡혀 왔나 볼 생각으로 안으로 들어가니.

“아 씨, 이거 진짜 사이비 아니야? 어? 말 똑바로 하자. 빙빙 돌리지 말고!”

상담사로 보이는 NPC와 함께 있는 핥짝이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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