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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19화 (319/740)

319화 하얀뿔 66층 지부

가니안? 언젠가 보겠다 싶기는 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가니안이 사용한 숟가락]

-영웅, 가니안 자히무스가 애용하던 은수저.

-목숨을 내놓고 사는 이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미신과 징크스가 존재합니다.

-평범한 은수저지만 가니안에게는 아니죠.

48층에서 만난 데니엄과 오델토, 헤이다.

그들의 배경이 되었던 세계의 전쟁 영웅이 가니안이다.

어쩐지 강하다 했는데 영웅일 줄이야.

아니, 그런 양반을 왜 영웅이 아닌 나무꾼이라고 하냐고.

영웅 정도 되면 탑도 꽤 높이 올랐을 텐데 뜬금없이 이런 곳에 있을까.

하는 행동도 뭐랄까 좀 가벼운 편이고.

혹시 동명이인은 아닌가 싶어 권능을 사용했고.

[가니안 자히무스]

-세인턴 피스 제국의 전쟁 영웅.

-나무꾼 출신으로 징집당했으나 이후 전적을 쌓고 대장군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전쟁에 지친 그는 모든 일이 끝나면 시골로 내려가고자 했습니다.

-결국 세계는 멸망했지만 가니안은 귀농 생활을 할 것입니다.

본인이 맞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보다 세인턴 피스 제국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현자도 그렇고, 프램버그도 그렇고.

그건 그렇다 치는데…….

“어, 어째서 저 미치광이가!”

천족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미 가니안에 대해 알고 있는 거 같다.

미치광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은 이미지는 아닌 모양.

“저 사람을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요!”

“억! 어억!”

천족 여인이 내 멱살을 잡고 흔든다.

그럼 길을 확실히 알려 주든가, 모르니까 길을 아는 사람한테 물어봤지.

“여기가 하얀 나무에 대해 잘 안다는 곳 맞아?”

“아니요! 아니에요!”

“그럴 리가, 이 친구가 보여 준 편지에 적혀 있던데. 하얀 나무를 무찌르고 어쩌고.”

“편지 보여 줬어요?”

“하하, 어쩌다 보니.”

천족 여인이 비틀거리며 물러선다.

발뺌하기에는 늦었다는 걸 깨달은 거겠지.

“후우, 좋아요. 전 미네르라고 해요. 66층 하얀뿔 지부장이죠.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미네르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날씨는 맑았으나 여전히 정체 모를 시선은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

“나와 있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들어올 때 입구 막아놔요. 바람 들어오면 안 되니까.”

그 말을 끝으로 미네르가 아래로 내려갔다.

나와 가니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랐고.

-쿠구궁

통로 천장을 부숴 입구를 막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소리를 들은 미네르가 멈칫하기는 했지만 뭐라 하지는 않았다.

* * *

발광석이 박혀 내부는 어둡지 않았다.

지하에 지부를 만든 것치고는 공기도 괜찮은 편.

환풍기가 없는 걸 봐서는 모종의 장치를 이용해 공기를 만드는 것 같았다.

계단이 끝나자 문이 나왔다. 투박한 철문에는 뾰족한 뿔이 그려져 있다. 저게 하얀뿔의 상징이겠지.

“오? 미네르, 손님들이야?”

지부 내부에 들어서자 새로운 천족이 보였다.

헐렁한 옷을 입고 있는 미남. 허리에는 검을 차고 있었고, 길게 기른 머리는 뒤로 묶고 있었다.

쉐핀과 미네르와 달리 잘린 뿔을 머리카락으로 가리지 않은 게 눈에 띄었다.

“예, 쉐핀이 말했던 이블아이랑. 옆에는 뭐,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알지. 한번 봤잖아, 우리.”

“누구더라?”

“기억 못 하면 말고.”

픽, 웃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휘쉔이다, 이블아이.”

“예. 반갑습니다.”

66층 지부는 이 두 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가.

기척을 살펴봤지만 더 이상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66층 지부 대원은 몇 명 더 있어. 지금은 밖에 나가 있지만.”

“그렇군요.”

“안으로 들어갈까? 굳이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가 미네르를 바라봤고,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로 안내했다.

지금 있는 곳은 탕비실 느낌. 여럿이 앉아서 대화하기는 불편한 감이 있었다.

회의실에 자리를 잡자 미네르가 입을 연다.

“우선 이곳까지 온 것을 축하해요. 65층을 통과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까다롭기는 했죠.”

달칸도 그렇고, 숭배자도 그렇고. 사실 따지고 보면 달칸보다는 숭배자 쪽이 더 힘들었다.

빙의는 반칙이지.

“하얀뿔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겠죠?”

“대충 하얀 나무에 대항하는 곳이라는 건 압니다.”

“나도 하얀 나무에 관심이 있지!”

나무라는 말에 가니안이 끼어들었다.

미네르가 눈살을 찌푸린다.

“…당신이 뭘 생각하든 그 나무가 그 나무는 아닐 거예요.”

“놔둬.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사람이니까. 상식을 포기해야 말이 통해.”

휘쉔의 말이 맞다. 약간 아니, 좀 많이 정신이 나간 양반이라.

얼씨구, 가니안 본인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아무튼, 우리가 왜 이블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나요?”

“쉐핀을 도와줘서?”

“물론 그 부분도 큽니다만 당신이 70층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건 또 처음 듣는 말이네.

나에 대한 기대감이 큰 건가? 그거랑 레지스탕스로 불러들이는 거랑 뭔 상관일까.

“70층 위에 뭐가 있나 보군요.”

“그건 직접적으로 말해 줄 수 없어요. 시스템 제약. 아시죠?”

알다마다. 이런 식으로 언질을 주는 거면 몰라도 구체적인 정보를 말해 줄 수는 없겠지.

릴카도 간접적으로 정보를 주면 줬지 직접적으로는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

대충 짐작은 간다. 70층대에는 하얀뿔과 하얀 나무가 배경으로 되는 필드가 나타나리라는 것.

나와 접촉하는 건 그때를 대비해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서일 거고.

이런 식으로 물밑 작업을 시도하는 걸 보니 상황이 좋지는 않아 보이는데.

어쩌면 이런 과정도 필요하다고 시스템이 느낀 걸지도 모른다.

안 그랬다면 어떤 식으로든 제재를 가했을 테니까.

난 미네르의 말에 집중했고.

“레지스탕스와 함께한다면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요.”

“억지로 하라고는 않네요.”

“그럼 하얀 나무랑 다를 게 없잖아요. 그래도 이야기는 끝까지 듣고 판단해 줬으면 해요.”

미네르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래저래 말이 많기는 했는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두 집단이 배경으로 있는 층을 클리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거군요. 어디까지나 레지스탕스 편에서 클리어하도록요.”

“미리 필요한 물건들을 모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거죠. 상위층부터는 지금까지 겪어 온 층과는 다른 형식으로 진행돼요.”

짐작은 하고 있었다. 커뮤니티도 상위층을 기준으로 나뉘니까.

게다가 나쁜 제안은 아니다. 이미 둘 중 한 곳을 고른다면 레지스탕스 쪽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진행 중인 퀘스트도 있고.

반응을 보아하니 아직 갈매기가 뿔을 전달해 주지는 않은 모양.

전달해야 할 뿔이 여러 개니까 이해한다.

“솔직히 말하면 하얀뿔은 하얀 나무에 비해 전력이 약해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등반가를 끌어와야 하고요.”

“좋은 소식 하나 알려 드릴까요?”

미네르를 향해 몸을 살짝 기울였다.

내게 모이는 시선.

“여러분이 뺏긴 뿔이 곧 도착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65층에 있던 달칸 봉인 시설. 거기 있던 뿔을 뽑아서 갈매기를 통해 전달해 달라고 했거든요. 조만간 올 거예요.”

-쾅!

내 말에 휘쉔이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선다.

“그 말이 정말인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죠.”

“이런 좋은 녀석!”

팔을 벌리며 내게로 다가오는 녀석을 의자로 막아 내고 말을 이었다.

“이미 레지스탕스랑 같이 움직이려고 결정해 뒀습니다. 들어 보니까 제2 천계 천족들은 뿔에서 신성력이 나온다면서요. 전력이 조금은 올라가지 않을까요?”

“물론이지!”

“단면이 완전히 아물지 않았으면 봉합도 가능할 겁니다. 시간이 오래됐거나 손상되었다면 아쉽지만 전용 무기로 만들어서 써야겠죠. 어느 쪽이든 전력에 도움이 돼요!”

미네르와 휘쉔의 표정이 밝아진다.

[레지스탕스, 하얀뿔의 호감도 상승합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네.

가니안은 상황을 몰라서 볼을 긁적이고 있고.

뭐가 떠올랐는지 손뼉을 친 미네르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건넸다.

“받아요. 이게 있으면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표식이네요.”

“그렇죠. 디자인은 다양해요. 숨은 그림 찾기 알죠? 그것처럼 그림 안에 상징이 숨겨져 있어요. 하얀뿔 소속이라면 알아볼 겁니다. 원하는 디자인으로 골라 봐요.”

미네르의 말대로다.

고양이가 놀고 있는 스티커, 올드 스쿨 스타일의 스티커, 기하학적인 패턴의 스티커 등 종류는 다양했지만 그림 어딘가에는 하얀뿔의 상징이 그려져 있다.

고양이 스티커를 골라 연합띠에 붙였다. 갑옷에 붙이기에는 좀 뭐해서.

“이걸로 정식으로 레지스탕스와 함께하게 된 거예요. 말 바꾸기 없기!”

“적당히 협력 관계라고 하죠. 이미 소속이 많아서 한 곳에 얽매이는 건 힘들거든요.”

쁘찡 연합을 시작으로 프램버그, 헬다잉 키친과도 엮여 있다. 화조국과도 거래하는 사이고.

집단마다 이해 관계가 있는 만큼 어느 한쪽을 편애할 수는 없다.

“괜찮아요. 대단한 걸 요구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얀뿔은 목적이 분명한 곳이야. 하얀 나무를 무너트릴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지.”

그렇다면야 뭐.

강제성은 없어 보인다. 있으면 그때 가서 관계를 끊어도 되는 거고.

어디까지나 하얀뿔과의 동행은 서로의 이해 관계가 맞아서 하는 거니까.

최우선 순위는 등반이다.

“좋아요. 그럼 바로 일을 시작해 보죠.”

미네르의 말과 함께 퀘스트창이 떠오른다.

[기회는 준비한 자에게 찾아오는 법!- 일반 퀘스트]

-하얀뿔과 우호적인 관계인 당신!

-교단, 다섯 날개의 성물을 훔쳐 보는 건 어떨까?

-보상: 하얀뿔 본부 위치 단서, 천상의 가루 (S)

성물이라.

“66층에는 우리 말고도 하얀 나무의 하수인들도 있어요. 등반가를 상대로 신자들을 모집하고 있죠. 신성력을 주겠다면서요. 혹하는 사람도 꽤 있을 거예요. 65층을 통과했다면 더 잘 알겠죠.”

알다마다. 달칸을 봉인한 후 나타난 빛의 도시.

그곳에 돌아다니던 천사상들, 신성력이 없으면 상대할 수 없다.

신성력을 얻을 수 있다면 등반에 도움이 되는 건 당연.

“정말 신성력을 얻을 수 있습니까?”

“결론적으로만 말하면 얻을 수 있어요.”

미간을 찌푸렸다.

하얀 나무를 싫어하는 건 알겠지만 등반가 입장에서는 더 도움이 되는 쪽을 선택하는 게 맞다.

선택은 자유니까.

내 생각을 파악했는지 미네르가 말을 잇는다.

“정상적인 경로로 얻는 게 아니에요. 일시적인 거죠. 대가가 있습니다. 게다가…….”

잠시 말을 멈췄던 그녀가 내 옆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신성력은 위로 올라가면 결국 얻을 수 있어요.”

이건 몰랐던 사실.

“그거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좀 알 수 있을까요?”

나야 신성력이 있으니 상관없다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니까.

이런 고급 정보를 뿌린다면 쁘찡 연합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겸사겸사 내 공략 점수도 채우고.

이게 어느 정도 올라가니까 점수 올리기가 쉽지 않아서.

“퀘스트를 완료하면 조금은 말해 줄게요. 상위층에 대한 내용이라 많이는 못 해 줘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단 위치부터 알려 주시죠.”

성물 훔치는 건 자신 있으니까.

[칭호, 성물 약탈자가 은은하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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