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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17화 (317/740)

317화 66층

난 잠시 머리를 짚었다.

갑자기 골 아프려 하네.

“갈매기에서 나온 뭐?”

“갈매기입니다!”

그래, 갈매기.

틀린 말은 안 했지. 갈매기 맞잖아. 넥타이 한 것만 빼면 어릴적 바다에서 본 갈매기랑 똑같이 생겼다.

다른 건 관심 없다. 이 녀석이 내게 찾아온 이유가 중요하지.

우체국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인 만큼 전달할 무언가가 있다는 걸 테니까.

누가 나한테 보냈는지 짐작이 안 가서 그렇지.

‘가만 생각해 보면 알리오스나 릴카도 갈매기로 나한테 연락을 준 적이 없단 말이야.’

왜일까.

굳이 둘이 아니더라도 친분이 있는 NPC가 여럿 있는데 이런 식으로 연락을 해 온 곳은 없었다.

따로 제약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갈매기는 등반가한테는 서비스를 하지 않습니다만 이번에는 특별한 요청이 들어와서요. 갈매기의 단골 고객들의 요구기도 했고요.”

주섬주섬 발목에 찬 아공간 아이템을 뒤적거리던 녀석이 알아서 떠들기 시작한다.

말이 많은 타입인가.

나야 좋지. 굳이 안 물어봐도 알아서 다 털어 주니까.

“최근에는 등반가한테도 서비스를 확대해야 하지 않냐는 말도 있습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지만요. 이미 커뮤니티와 개인 거래 시스템이 있잖아요.”

“그것도 그렇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 서비스와 유료 갈매기 시스템. 차별성이 없으면 의미가 없죠. 조직도 개편해야 하고 비용도 들고… 에휴, 인력난이라고요.”

탑에서 일하는 이들도 나름대로 걱정거리가 있구나?

근래에 본 집단 중 가장 회사원 같은 녀석이다.

인력난이 아니라 조력난인 거 같기는 하다만, 아무튼.

“차별성이 왜 없어. 등반가끼리는 몰라도 등반가가 NPC랑은 연락할 방법이 없는데. 우린 죽는 거 아니면 지나친 층은 다신 못 돌아가.”

인연을 만든 NPC가 있어도 이후로는 보기 힘들다.

심지어 안전지대 전에 있던 곳에서 만난 NPC면 불가능에 가깝다.

나야 릴카도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헬다잉 키친과 프램버그와 연락을 주고 받기는 하다만 그럼에도 다른 NPC랑 연락을 하지는 못하고 있으니까.

“아, 그것도 그렇죠. NPC와 등반가가 물건을 주고 받는 건 금지되어 있지만요.”

“막혀 있나?”

“정당한 사유가 아닌 물자 이동은 막대한 대가나 퀘스트, 까다로운 거래 조건이 필요해서요. 편지를 보내는 정도면 가능하겠군요. 이건 고객의 소리로 한번 넣어 보죠!”

우체국이라고 만능은 아닌 모양.

하긴 그랬으면 데이본드도 귀찮게 파비안이 올라오도록 기다릴 필요 없이 천사의 날개를 얻자마자 갈매기를 통해 보내라고 했겠지.

“그래서 용건은?”

“편지가 왔습니다. 신속 배달 서비스! 65층을 클리어한 후 전달해 달라 했습니다.”

갈매기가 찡긋 윙크하며 편지를 건넸다.

“레지스탕스 하얀뿔에서 온 연락이니 잘 확인해 주세요! 그럼 전 이만.”

“잠깐.”

난 날아가려는 갈매기를 붙잡았다.

하얀뿔이면 쉐핀이 있는 곳이다.

안 그래도 그쪽에 볼일이 있었는데. 마침 조건도 얼추 들어맞는 거 같고.

빛의 도시에서 뽑아온 뿔들을 꺼냈다.

“이건.”

“천사의 뿔, 이거 주인들한테 좀 전달해 줘라.”

“방금 거래에 제한이 있다 했는데요?”

“퀘스트 수행 중이야. 되는지 좀 봐 줘.”

“으으음, 배달 가능한 상황인지 확인해 볼게요.”

“잠시만.”

혹시 몰라 뿔에다 뿔 주인의 이름이 적힌 메모를 붙였다.

나야 권능으로 보면 그만이지만 갈매기는 아니니까.

메모를 마친 후 뿔을 건넸고.

[레지스탕스, 하얀뿔과 우호적인 관계]

[퀘스트, 이 뿔이 네 뿔이냐 수행 중]

[쉐핀과의 호감도 높음]

[뿔 전달로 인한 혼돈 낮음]

[거래 가능한 품목입니다!]

연달아 메시지가 떠올랐다.

등반가와 NPC 사이의 배달은 조건이 까다롭다더니 이런 식이었나.

시스템이 허술해 보이면서도 은근 철저하단 말이야.

그 와중에 혼돈까지 계산하고 있네.

“오오, 거래 가능하십니다, 고객님! 신규 고객 유치는 저의 실적! 회원 서비스에 가입하시겠습니까? 여기 보시면 우와아! 이 만큼의 혜택이? 추천 상담사 이름에는 갈매기라고 적어 주시면 감사하고…….”

거래가 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비즈니스 모드로 들어가는 녀석.

눈빛이 똘망똘망한 것이 실적에 목말라 하는 냥펀을 보는 것만 같다.

냥펀도 화조국 소속으로 일하느라 64층에 있는데. 슬슬 65층으로 올라올 거 같기는 하다만…….

“신규 고객 되냐? 등반가랑은 거래 안 한다며.”

“메뉴얼에 있는 내용은 아니에요. 거래 가능한 대상이 없어서 암묵적으로 NPC 대상으로만 영업을 하는 거라. 신규 고객님은 대면 가입이 원칙이기도 하고요. 이블아이 님은 괜찮죠!”

그렇다면야 뭐. 난 갈매기가 보여 준 회원 가입서를 살폈다.

안 그래도 갈매기 집단에도 관심이 있었다.

나와 연결점이 없는 곳이기도 하고, 하는 것만 보면 탑에 영향력이 있어 보여서.

내용상 문제 될 만한 건 없었으나.

“연회비?”

“프리미엄 고객의 경우, 연회를 내며 다양한 서비스를 받고 있답니다.”

“난 등반가잖아. 언제 나갈 줄 알고?”

“그래서 준비한 상품! 선금 결제 시 갈매기 마스코트가 그려진 에코백을 증정합니다! 그뿐일까요? 갈매기에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할 기회까지!”

갈매기가 슬쩍 다가와 날개로 입을 가리며 귓속말을 한다.

“이건 고객님이라 특별히 알려 드리는 건데 고객 감사제에 참여하면 등반에 도움이 될 만한 걸 얻을지도 몰라요. 추천드립니다. 하는 김에 우수 사원 추천에 제 이름도 좀.”

“그래, 알았다.”

“감사합니다!”

영업 열심히하네. 새우 과자라도 하나 던져 주고 싶다.

뭐가 됐든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다면 해 봐야지. 회비가 좀 비싸기는 한데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뿔 배달하는 거랑 해서 바로 결제하지.”

“네, 고객님! 포인트도 결제도 가능하고 아이템도 받습니다.”

“포인트로.”

-촤르르르륵

말하기가 무섭게 10만 포인트가 사라졌다.

많이 벌어 둬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빠듯했을 거다.

실적을 쌓아서 기분 좋은지 방긋거리는 녀석이 힘차게 날아오른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서비스를 이용하실 때는 끼루루룩! 하고 크게 외쳐 주시면 찾아오겠습니다! 가입 선물은 조만간 전달해 드릴게요!”

뭐요? 끼루룩?

잘못들었나 싶어 물어보려했지만 갈매기는 이미 날아간 후였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자.

“레지스탕스에서 온 편지라.”

쉐핀과 있을 때는 가능한 엮이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됐다.

피식 웃으며 편지 봉투를 뜯었다.

편지를 받아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초대장?”

“그에에.”

편지를 살핀 난 눈썹을 까딱였다.

내용을 간단히 살피자면 레지스탕스 하얀뿔의 본부로 초대한다는 거였다.

정확한 위치는 적혀 있지 않다. 일단은 레지스탕스니까 보안은 필요하지. 탑에서 의미가 있나 싶기는 하지만 말이야.

NPC인 이상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 다르게 말하면 하얀뿔이 경계해야 할 대상인 하얀 나무와 마주칠 일이 없다는 것.

아니면…….

“둘이 같은 층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

그럼 이해가 간다.

따지고 보면 이상했다. 레지스탕스가 탑 안에서도 이어질 이유가 없으니까.

가 보면 알겠지.

“일단은 지부부터 가 보라는 거 같은데.”

본부는 따로 있고 지부도 있는 모양.

레지스탕스 대원이라고 모두가 같은 층에 있을 리는 없을 테니 이해는 된다.

쉐핀은 62층의 지부장이려나. 사실상 그 층에는 대원이 쉐핀 혼자라서.

내가 먼저 찾아갈 지부가…….

“66층인가.”

굳이 레지스탕스가 65층을 클리어하고 편지를 전해 달라 요구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본부에 찾아가기 전 지부를 몇 군데 들려야 했다. 지부를 돌며 본부의 위치 정보를 모으는 형식.

그 첫번째가 66층에 있는 지부고.

이럴 줄 알았으면 갈매기를 통하지 않고 직접 뿔을 전해줄 걸 그랬나 싶기도 했으나 이미 지나간 일.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했다.

아, 그러고 보니 65층부터는 그게 있었네.

“상위층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있겠군.”

“궤엑.”

보송송이가 말했었다. 65층부터는 상위층 커뮤니티도 볼 자격이 주어진다고.

70층부터는 상위층으로 분류되어 하위층 커뮤니티에 글을 쓰지 못한다고도 했지.

이건 나중에 확인해 보고 일단 움직이자.

난 포탈을 향해 발을 뻗었고.

-우우우우웅!

[66층에 진입합니다.]

새로운 필드에 들어설 수 있었다.

* * *

[66층]

[재앙을 극복하시오.]

펼쳐진 공간은 거대한 협곡.

이걸 협곡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깎아진 절벽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중간중간 튀어나온 암석을 보아하니 떨어지면 좋은 꼴은 못 볼 듯한데.

먼저 권능을 사용했다.

[재앙을 극복하시오.]

-구름과 바람. 충동적인 사람이 되지 맙시다. 욕망에 잡아 먹히지도 맙시다.

“이번 건 무슨 교훈 같네.”

66층은 충동과 관련된 재앙인가.

이것만 봐서는 선뜻 짐작이 안 간다.

마냥 서 있어 봤자 바뀌는 건 없다. 일단 하얀뿔 지부를 찾아볼까.

난 주변을 살피다 하늘을 올려다봤고.

“응?”

“궤?”

특이한 모양의 구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이목구비가 정확한 얼굴 형상의 구름.

얼굴 구름이 눈알을 굴리더니 나를 마주본다.

-스으으으으

구름이 흐르며 놈의 표정이 바뀐다.

이를 보이며 웃는 모습.

기괴한 현상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도 잠시. 위험이 찾아왔으니.

[참을 수 없는 충동과 마주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박과도 같은 충동이 나를 뒤흔들었다.

협곡 밑으로 떨어지라는 내면의 속삭임.

나도 모르게 절벽을 향해 몸이 움직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원래부터 그러려 했다는 것 처럼.

“충동적이지 말라는게, 이런 뜻, 이었냐!”

난 이를 악물며 내 몸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는 거 같다.

머리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두 개의 의지가 충돌하며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저 구름.

씨익.

누굴 놀리나. 날 보며 실실 웃는 모습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내가 이따위 장난질에 놀아날 거 같아?

-콰아앙!

거세게 땅을 내리찍어 다리를 고정했다.

-쾅! 쾅!

이어 왼손과 오른손도 커다란 나무에 때려 박았다.

이걸로 팔다리는 고정.

움직이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지만 난 움직일 생각이 없다.

부르르 떨리는 몸.

몸에 힘을 주며 구름을 노려봤다.

내 저항이 가소로운지 눈알을 굴리며 웃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어서 떨어지라며 종용합니다.]

지가 뭔데 하라 마라야.

내가 반드시 저 면상에 오로라 빔 한 방 쏘고 만다.

까드득.

난 이를 갈며 정신을 다잡았고.

[정신 보호 (SSS) Lv.1]

정신 보호 스킬이 활성화됐다.

여기에 하나 더, 예상치 못 한 일이 펼쳐졌으니.

[현재 혼돈 수치- 107점]

[충동에 저항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혼돈 수치가 처음으로 움직였다.

어느새 100점을 넘어 버린 혼돈 수치.

60층대에서 100층에 진입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상황이었고, 혼돈은…….

“내가 왜 떨어져! 망할 구름 놈아!”

[충동에서 벗어납니다!]

[오로라 빔 (S) Lv.7]

-찌유우우우웅!

규칙을 무시하는 힘을 가졌다.

구름을 향해 쏘아올린 오로라 빔.

놈의 분노와 경악 섞인 얼굴이 꿰뚫린다.

-그아아아아아아!

구름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비명을 토해 냈다.

놈의 얼굴이 흩어져 사라졌고 그 사이로 햇빛이 내려 앉았다.

처음으로 재앙의 힘에서 벗어난 감격스러운 순간.

[바람이 구름을 비웃습니다.]

[내기에 이기는 건 자신이라며 소리칩니다.]

새로운 뭔가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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