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천사의 날개
핥짝이가 노린 일격. 전에도 압축으로 상대방의 무구를 파괴하며 싸우는 걸 본 적은 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할 줄이야.
급속도로 압축된 아이템. 그것도 저주가 걸렸으며 S급에 달하는 장비를 소모품으로 쓸 줄은 몰랐다.
“저리 꺼져!”
핥짝이가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마기를 뿜어 대는 녀석을 걷어찼다.
이어 압축 구슬을 연달아 던져 댔고…….
“뭐 해! 지금 끝내야지!”
“당연하지!”
나 역시 풀 도핑을 했다.
[아스트랄 레인보우 (S)]
-10초간 모든 공격 스킬 데미지 1,000퍼센트 증가.
-10초 후 공격에 사용된 스킬 데미지 10퍼센트로 하락. (1시간 동안 유지)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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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참 (SS)]
[러브 앤 피스 (S) Lv.10]
[파이어 밤 (S) Lv.10]
[오로라 빔 (S) Lv.7]
[일렉트릭 쇼크 (S) Lv.1]
핥짝이 말대로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놈의 상태는 좋게라도 멀쩡하다고 볼 수 없다.
몸통이 찌그러지며 사실상 즉사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니까.
빙의를 했다 하더라도 몸은 파비안의 것, 놈의 본체와는 다르다. 그 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신성력에만 집중하던 녀석이라 더 그런 걸지도 모르지.
-콰아아아아앙!
-쿠구구구궁!
폭발이 이어진다.
쏟아지는 잔해. 파편이 튀어 오르고 공동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린다.
거대한 천사상이 부서지고, 천장에 금이 갔으며, 바닥의 타일은 모조리 깨져 흉하게 타오른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탈모 새꺄! 너도 일어나!”
“어, 어어. 일어났어!”
탈모맨도 겨우 몸을 회복해서 일어섰다. 덕춘이가 옆에 붙어서 치료를 하는 중.
원거리 공격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파비안을 잡아 심문하겠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그런 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거니까.
직접 놈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아스트랄 레인보우가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차캉!
검을 움켜쥐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여기부터는 나와 탈모맨이 활약해야 할 때.
공동을 집어삼킨 불길을 뚫고 나와 탈모맨이 놈을 향해 검과 주먹을 휘둘렀다.
-촤라라라락!
놈의 팔에서 뻗어 나온 시커먼 촉수가 접근을 방해했지만, 기어코 놈의 가슴과 다리에 검을 꽂아 놓을 수 있었다.
빠악!
탈모맨이 사커킥으로 놈의 머리를 찬 건 덤.
타격을 입을 때마다 마기가 거세게 뿜어져 나온다.
밀도 높은 마기의 흐름에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
신성력과는 정반대되는 힘. 세상 모든 것에 저항하듯 날뛰는 기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 같았다.
“크하아아압!”
이제 그만 죽어도 될 텐데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텨 낸 데이본드가 기어코 몸을 옥죄는 갑옷을 뜯어 버렸다.
상체 대부분이 으스러졌으며, 내부로 파고든 가시 때문에 살아 있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으나 악마에겐 상상을 뛰어넘는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필사적인 건 우리도 마찬가지.
[심연의 눈동자 (AA) Lv.5]
[집착하는 망령 (AAA) Lv.1]
속박기를 걸었다.
끔찍한 환상이 놈의 정신을 흔들고 망령이 녀석을 옭아맨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이따위 것! 하찮다!”
[데이본드의 광기가 범위를 확대합니다!]
-그그그극
-키햐아아아아!
놈으로부터 불길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심연의 눈동자가 눈을 감았으며, 망령조차 불길한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바스라진다.
온갖 흉측한 환상이 일렁거려 세상이 어지럽다.
[광기는 전염되는 법!]
[데이본드의 광기와 악의가 침투합니다!]
“크읍!”
“으으읍!”
날카로운 두통이 올라온다.
호흡이 가빠지며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서 있음에도 멀미가 나는 기분. 바닥이 빙글 돌아간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마저도 내게 악의를 품고 굴러왔으며, 근원을 알 수 없는 살기와 광기가 형상화되어 몸과 정신을 헤집었다.
바닥에 길게 이어진 그림자가 요동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흩트린다.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악귀와 망령이 회오리치며 저주의 단어를 속삭인다.
나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던 사람들의 불행한 모습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며, 그들은 모든 참극의 원인이 나라며 소리 질렀다.
견디기 버거운 힘. 불안감이 몸을 위축시켰고 부정적인 결말만이 떠올랐다.
“그에에에!”
“으으으윽!”
덕춘이가 난입해 탈모맨을 붙잡아 자리를 피했다.
탈모맨이 견딜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행동이었고, 실제로도 맞았다.
마기로 버티고는 있었으나 조금씩 정신이 나가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적어도 놈과 동급의 마기를 지닌 게 아니라면 당할 것이 뻔했다.
나 역시 신성력으로 어느 정도 상쇄하고는 있었으나.
[데이본드의 광기가 짙어집니다!]
그동안 겪어 왔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정신 공격에 머리가 혼탁해지는 것을 느꼈다.
-꽈득!
혀를 씹었다.
짜릿한 통증과 함께 쇠 비린내가 느껴졌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이 나갈 거 같다.
잊지 말자. 결국 다 허상이다. 부정한 망상에 불과하다.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어 죽이려는 개수작에 불과하다.
내 의지에 반응하듯 스킬이 발동됐다.
[정신 보호 (S) Lv.9]
[스킬 레벨 업!]
[정신 보호 (S) Lv.10]
“내가, 이딴 거에 당할 거 같아!”
조금은 맑아지는 정신.
그동안 내가 겪어 온 정신적 스트레스를 무시하지 마라.
반쯤은 오기에 가까웠다. S등급으로 올릴 수 있는 최대 레벨까지 달성하기는 했으나 Lv.10 다음에는 Lv.MAX 있다.
다만 아직 상위층에 오르지 못한 내가 온전히 감내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고.
“인간이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놈 또한 그러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칭호, 불가능을 극복한 자가 발휘됩니다!]
-해낼 수 없는 업적을 이룬 당신.
-당신은 불굴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 보호 스킬이 한계치에 이르렀을 때 단 한 번 초월할 수 있습니다.
48층, 데니엄을 완전한 NPC로 만들고 얻었던 칭호가 빛을 발했다.
정신 보호의 초월.
[정신 보호의 등급이 재조정 됩니다!]
[행운 스텟이 번뜩입니다!]
[정신 보호 (SSS) Lv.1]
행운 스텟의 영향으로 자그마치 두 단계나 뛰어 버린 등급.
태생 S급 스킬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간 정신 보호가 나를 수호했다.
맑게 깨어나는 정신.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붓던 형상들이 힘을 잃는다.
뒤집혔던 속이 진정되었으며, 눈앞을 가리던 어둠 또한 물러났다.
“퉤.”
입안에 고였던 핏물을 뱉으며 놈을 향해 다가갔다.
환상에서는 벗어났으나 정신적 피로감이 엄청나다.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다.
그럼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지개! 이게 필요할 거야, 어떻게든 써!”
그런 내게 이지키일이 뭔가를 던졌다.
녀석 또한 우리가 싸우는 동안 놀고 있던 게 아니다. 역시나 놈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지.
난 눈을 빛냈다.
이지키일이 던진 건 제단 위에 있던 성물.
데이본드가 원했던 물건이었으며.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 (SSS)]
-스킬형 귀속 아티팩트.
-성물입니다!
-제2 천계의 왕족에게만 허용되는 날개!
-날개 없는 천사의 깃털 2,000개를 모아 만들었습니다.
-2,000명의 영혼 조각이 깃든 물건.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요?
.
.
.
-착용 제한: 신성력 스텟 900 이상. 왕의 자격.
무려 SSS급 성물이었다.
순간이지만 데이본드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진짜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그럼 더더욱 줄 수 없지.
씨익 웃으며 날개를 붙잡았다.
등급도 말도 안 되지만 착용 제한도 말이 안 된다.
60층대를 오르는 이가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나라면 가능하지.”
두 개의 칭호로 버프된 능력치.
난 망설임 없이 안개 질주를 사용했다.
이어 망자귀환.
다시 한번 능력치가 올라갔다.
-파하아아아앗!
내 몸에 가득했던 신성력이 더욱 강렬해진다.
그에 반응하듯 천사의 날개 또한 환하게 빛났다.
안 그래도 800대였던 신성력이 900을 돌파하는 건 당연한 일.
남은 건 왕의 자격.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미 있어.”
그것도 두 개나.
[마그나로크의 왕관 (???)]
-얼음과 불의 신전의 총체, 마그나로크의 왕관.
-위엄이 서립니다.
-집단 통솔 강화.
-왕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신성력이 부족해 능력 일부가 봉인됩니다. (필요한 최소 신성력: 1,000)
17층, 얼음과 불의 신전. 히알틴 유적에서 뺏어 온 왕관과.
[댄싱 마스터의 왕관 (B)]
-모두의 아이돌! 당신의 존재를 뽐내세요!
-당신은 이미 모두의 위에서 빛난 적이 있습니다.
-왕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24층, 예티 던전에서 얻은 왕관.
지금은 댄싱 마스터의 왕관을 쓰고 있다. 마그나로크의 왕관은 신성력 부족으로 봉인되어 있어서.
이걸로 모든 조건은 달성했다.
[착용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아이템을 착용하시겠습니까?]
[해당 아이템은 귀속되며 양도할 수 없습니다.]
“착용한다.”
난 망설임 없이 천사의 날개를 착용했다.
[날개 없는 천사의 왼쪽 날개 (SSS)]
왼쪽 어깨에서 순백의 날개가 돋아났다. 몸 일부를 가릴 수 있을 정도도 커다란 날개.
그 안에서 압도적인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우우우우우우웅!
일대가 빛으로 물들었다.
새하얀 공간. 난 충만한 신성력에 몸을 맡겼다.
온몸이 다시 만들어지는 것 같다.
부러질 것 같던 육체가 생기를 되찾고, 흔들리던 정신이 굳건해진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차오른다.
“고, 고작 60층대 등반가 주제어 어떻게!”
데이본드가 경악했다.
놈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황금빛 안광이 터져 나오며 내 의지를 받아들인 신성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웅장하고 강인하게.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치듯 부정한 마기를 몰아붙이며 전진했다.
-츠즈, 츠즈즈즈즉!
신성력과 마기가 맞부딪치며 연기가 치솟는다.
힘의 대결.
본래였다면 불가능한 대결이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놈은 궁지에 몰렸으며, 빙의 페널티로 모든 힘을 쓰지 못한다.
서서히 기우는 승세.
-우우우웅
-쿠구구구구궁!
한번 잡아먹히기 시작한 마기는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렸고, 신성력은 거대한 흐름이 되어 데이본드를 집어삼켰다.
잔잔하지만 단호하게.
도망칠 곳 없이 밀도 있게!
“크하아아아악!”
놈이 몸이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타들어 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을 향해 단검을 뽑았다.
쉐핀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받았던 물건.
[천사의 뿔 단검 (S)]
-제2 천계 천사의 뿔로 만든 단검.
-강력한 신성력을 지닙니다.
-마魔를 가를 수 있습니다.
“그만 끝내자.”
망설임은 없었다.
빠르고 깔끔하게 단검을 휘둘렀다.
-쿠드드득!
육체를 통과한 칼날이 파비안의 몸속에 깃든 악과 마주쳤다.
데이본드와 파비안의 연결 고리.
빙의를 할 수 있게 만들었던 둘 사이의 계약.
손이 부르르 떨린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권능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칼날이 박힌 검은 쇠사슬을.
“으아아아압!”
기합과 함께 단검에 힘을 더했다.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쥐어짜 내듯 최선을 다해.
-쩌적, 쩌저적
느리지만 분명하게 칼날이 사슬을 파고든다.
결속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진다.
난 이를 악물며 팔을 내뻗었고.
-콰창!
기어코 파비안과 데이본드의 연결 고리를 부숴 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