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313화 (313/740)

313화 데이본드

천사의 통로에 진입하자 발견한 건 치명상을 입은 브레드였다.

출혈이 심하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놔두면 사망할 게 분명했다.

“그에에.”

우리 중 회복 능력이 있는 건 덕춘이뿐.

내 생각을 읽은 덕춘이가 브레드를 핥는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복부 관통상을 비롯한 자상들.

어깨 쪽도 깊게 베인 것 같은데.

임시방편으로 회복 포션과 생명수를 상처에 부었고, 그사이 탈모맨과 핥짝이는 전투태세를 갖추며 주변을 경계했다.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진형이 갖춰졌다.

전방에 탈모맨, 후방에는 핥짝이, 나는 그 중간.

딱히 흠잡을 데 없는 구성.

“상처가 잘 안 아물어.”

난 브레드의 상태를 살폈다.

치명상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 조치를 취했으면 반응이 와야 정상이다.

출혈은 멈췄지만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더디다.

따로 회복 불가 스킬에라도 당한 건가. 의심이 드는 찰나.

“이건 마긴데?”

“뭐?”

“여기 상처, 이거 마기야. 일반적인 회복 스킬로는 힘들어. 신성력 기반 스킬을 써야 할걸?”

탈모맨의 말마따나 자세히 보니 검은색 연기가 상처 부근에 머물고 있다.

신성력 계열 스킬은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생명수와.

[러브 앤 피스 (S) Lv.10]

-파아아앗!

러브 앤 피스로 덕춘이에게 신성력을 주입시키는 것.

혹시나 덕춘이가 카오스 속성이라 안 통하나 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은 모양.

-핥핥핥핥!

덕춘이가 핥는 곳을 따라 신성한 빛이 번진다.

회복 특성에 신성력이 깃들었다는 뜻이었고.

“으으으으.”

브레드가 반응을 보였다. 조금이지만 의식이 돌아오고 있다.

출혈이 멈추고 부러졌던 뼈가 맞춰진다. 조금씩이지만 새살이 돋기까지.

“응급조치는 여기까지. 적 위치 파악했어?”

“앞에서 왼쪽. 무기 소리가 들려.”

“둘이서 싸우는 소리 같은데?”

“그럴 거야. 파비안과 이지키일 둘이 있을 테니까.‘

브레드는 일단 놔둔다. 상처는 어느 정도 치유해 줬으니 죽지는 않겠지.

지금은 이지키일을 도와야 한다.

“가자!”

“오케이!”

“날 놔두고 쌈박질이라니. 절대 안 되지!”

-파아아악!

적의 위치를 파악해 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대형 길드라는 족쇄가 있는 둘이 맞붙었다는 건 정치적인 부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한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었고,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우리는 바로 개입할 수 있다.

통로를 따라 달리자 둘의 목소리가 선명해진다.

“기습을 하다니, 개자식이!”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던 녀석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콰아아아앙!

이어지는 폭음.

통로를 지나 소음의 근원지에 도착하자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단을 가운데로 양옆에 새워진 거대한 천사상.

그곳을 무대 삼아 이지키일과 파비안이 검을 나누고 있었다.

“이지키일!”

“무지개!”

우리의 등장을 반기 듯 이지키일의 얼굴이 밝아졌다.

녀석의 상태도 좋지 않다. 어떻게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왼쪽 팔이 시커멓게 죽어 있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사실상 팔 하나로 싸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반면에 파비안은…….

“예상외의 손님이 많군.”

“크흡!”

-콰아아아앙!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이지키일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파비안이 시미터를 크게 휘두르자 검은 폭발이 일어나며 이지키일을 날려 버린다.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튕겨 나오는 이지키일을 향해 파비안이 시미터를 찔러 넣으려 했지만.

“가라, 탈모맨!”

“탈모! 탈모!”

그보다 빨리 탈모맨을 걷어차 날려 보냈다.

설마 동료를 날려 버릴지는 몰랐는지 파비안이 잠깐이지만 멈칫했고.

-콰드드드득!

둘 사이에 끼어든 탈모맨이 건틀릿으로 놈의 검을 움켜잡았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쇳소리만 울리는 시미터.

“맞붙어선 안 돼! 저 녀석 마기를 쓴다!”

그 모습을 본 이지키일이 소리를 질렀다.

파비안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이미 늦었어.”

[어둠으로의 인도 (S) Lv.4]

-푸화아아악!

파비안으로 뿜어져 나온 검은 안개가 탈모맨을 집어삼켰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한 기운.

접근마저도 꺼려지는 힘은 위험할 것이 분명했지만.

“따땃하구만.”

탈모맨은 그 안에서 웃고 있었다.

[SS급 권능, 두 세계의 지배자가 빛납니다!]

[칭호, 마왕의 가호가 함께합니다!]

마기를 가지고 있는 건 탈모맨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칭호, 잊힌 교단의 팔라딘이 번뜩입니다!]

[러브 앤 피스 (S) Lv.10]

여기,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나도 있다.

신성력과 마기는 상극. 서로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파비안의 얼굴이 구겨진다. 일이 꼬였다는 걸 파악한 거겠지.

이지키일 역시 놀란 표정을 짓는다.

“너, 너흰 대체.”

“우리가 좀 대단하지.”

피식 웃으며 파비안을 향해 달려갔다.

“날 방해하지 마라!”

파비안이 거세게 시미터를 휘둘렀다.

가볍게 몸을 틀어 피해 내는 탈모맨.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이어 밤을 사용했다.

-콰아아아아앙!

러브 앤 피스로 신성력을 머금은 상황.

파비안이 폭발에 휘말려 바닥을 구른다.

“하하하! 이쪽은 내가 맡지!”

“그래라. 난 이쪽으로 할란다.”

난 왼쪽에서 탈모맨은 오른쪽에서 공세를 가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파비안이 정신없이 검을 휘두른다.

적당히 넘길 만한 공격은 허용하면서 위험한 일격은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 낸다.

제법 실력이 좋다.

이지키일이 고생할 만하네.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게 가상하기는 하다만…….

“나도 있다, 이놈들아!”

[해제 (S) Lv.7]

-콰아아아앙!

“크흐읍!”

이곳에는 핥짝이도 있다.

예상치 못한 각도로 날아온 구슬이 급속도로 팽창하며 파비안을 압박했다.

타이밍에서 맞춰 나는 레프트훅, 탈모맨은 로우킥을 날렸다.

-뻐억!

-빠아악!

주먹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제대로다.

놈도 데미지가 있는지 비틀거린다.

그렇겠지 신성력이 가득한 성스러운 주먹으로 때려 줬는데.

가능한 산 채로 잡을 생각이다. 놈에게 뽑아내야 할 정보가 많아서.

등반가 중에 숭배자가 얼마나 있는지, 숭배자끼리의 커넥션은 없는지, 탑 밖에 숭배자들과 연결된 집단은 없는지 등등.

그런 의미에서 한 방 더 먹여 줘야지.

-빠아아아악!

탈모맨을 막기 위해 가드를 올리는 틈을 타 보디블로를 날려 줬다.

이번 건 좀 아팠는지 놈의 이마 위로 핏줄이 올라온다.

그러게 얌전히 제압당하면 편할 것을 왜 버티고 앉았는지.

“죽어!”

-부웅!

놈이 기습적으로 목을 향해 시미터를 휘둘렀지만 가뿐히 피해 냈다.

알리오스의 계승자가 되면서 검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졌다. 그런 입장에서 본 놈의 검술은 빠르기만 한 엉터리.

마기로 감싸져 있어 위험하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다.

콰직!

체중을 실어 놈의 발등을 찍었다.

“엇차!”

타이밍에 맞춰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는 탈모맨.

“크아아아아!”

놈이 괴성을 지르며 비틀거린다.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의 상대가 못 된다는 건 느끼지 않았을까?

“그냥 항복하지? 너한테 물어볼 게 많거든.”

이지키일에게 받았던 숭배자 패를 꺼내 흔들었다.

녀석의 눈동자도 흔들린다.

“보니까 넌 그냥 등급도 없는 쩌리던데. 뭐 하러 숭배자가 된 거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모르는 척하지 말고. 이미 숭배자들이랑은 마찰이 있었어. 테일러라고 아나? 너보다 등급 높던데.”

61층에서 만났던 숭배자, 테일러.

녀석의 증명패를 놈에게 던졌다.

“…위에서 말했던 게 너였군, 이블아이.”

“그쪽에서도 나한테 관심 있대? 잘됐네. 나도 관심 있는데. 인연인가 봐.”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순순히 숭배자인 걸 인정한다.

이유는 하나.

“너, 그냥 갈 생각이 없구나?”

숭배자들이 정체를 드러내는 경우는 하나.

목격자를 없앨 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녀석이 할 판단은 아닌 거 같다만 굳이 계속 싸우겠다면 말리지는 않지.

대신 지금까지처럼은 아닐 거다.

-차캉

검을 뽑았다.

곱게 말해서 통할 놈이 아니니까.

나중에 회복을 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조금은 거칠게 다뤄 줘야 할 거 같다.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탈모맨 역시 기세를 올린다.

놈도 마찬가지.

파비안의 눈이 붉게 물든다.

“네 목을 원하는 분들이 계신다!”

-푸화아아아악!

“이런 미친!”

넘실거리던 마기가 놈을 집어삼켰다.

한순간 놈의 몸에서 피가 쏟아져 시야가 붉게 변했다.

자해?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피가 빠져나간 곳으로 마기가 들어간다.

놈의 피부가 서서히 시커멓게 물들었다.

-꾸득, 우드득

몸이 비틀리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린다.

이변을 눈치챈 나와 탈모맨이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근육이 부풀었다가 쪼그라들고, 관절은 불안하게 비틀린다.

공허하게 비어 버린 눈마저 검게 물든다.

놈을 감싼 마기가 점점 짙어진다.

끈적한 뭔가가 턱밑까지 차오른 느낌.

명백한 악의를 지닌 힘의 밀도가 나를 압박해 온다.

-치지지직

신성력을 만나 타오르는 마기.

긴장감이 올라가는 순간.

“큭.”

파비안이 웃었다.

검게 물들었던 눈동자가 세로로 찢어졌다.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르기 힘든 모습. 차라리 악마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심지어 지금도 계속해서 몸이 바뀌고 있다.

‘목소리도 달라졌어.’

두 명이 동시에 말을 하는 듯한 목소리.

난 빠르게 권능을 사용했다.

[파비안 페벤더]

-최고 층수 65층.

-탑 숭배자.

-S급 권능, 부정한 거래자 보유.

-AAA급 권능, 버티는 의지 보유.

-칭호, 생존자의 낙인 보유.

.

.

.

여기까지는 좋다.

오히려 낫지. 놈의 정보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아직 내가 우위에 있다는 거니까.

조금은 안심이 되려는 찰나.

[상대의 수준이 바뀌고 있습니다.]

[권능에 제한이 생깁니다.]

[일부 정보가 가려집니다.]

연달아 알람이 떠올랐다.

-츠즈즈즈즈

놈의 정보가 조금씩 사라진다.

별을 주시하는 눈은 나와 동급이거나 높은 수준의 상대의 정보는 제한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뜻하는 건 하나.

실시간으로 놈의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

“지금 쳐야 해!”

시간이 지나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변신할 때 공격하는 건 국룰 위반, 억!”

“지금 그거 따질 때야? 어!”

언제 다가왔는지 핥짝이가 헛소리를 하는 탈모맨의 등짝을 때렸다.

말 잘했다. 지금은 그런 사소한 걸 따질 때가 아니다.

힘을 조절할 때도 아니다.

알 수 없는 힘이 개입됐다.

[오로라 빔 (S) Lv.7]

-찌유우우우웅!

급한대로 오로라 빔을 먼저 쐈으나.

-스르르륵

놈은 뱀처럼 미끄러져 공격을 피해 냈다.

거기에 더해 안쪽으로 파고들기까지.

인간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움직임이었으며.

“천사의 날개와 네 목을 가져가겠다.”

-콰아아아앙!

놈이 휘두른 주먹은 어지간한 스킬보다도 강력했다.

직격당한 일격.

포탄처럼 몸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등부터 시작해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온다.

절대 60층대를 오르는 등반가의 힘이 아니다.

못해도 70층대 이상, 아니면 NPC.

그 정도 수준은 된다고 생각했고.

[계약에 따라 NPC, 데이본드가 파비안에 빙의합니다.]

[힘 일부가 봉인됩니다.]

그 생각이 정답임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저놈은 더 이상 파비안이 아니다.

파비안의 몸을 이용해 실력을 행사하는 NPC지.

“내 친히 네 목을 뽑아 주마. 영광으로 알아라.”

삐죽 솟은 송곳니를 보이며 웃는 녀석.

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영광은 개뿔. 이름 알려 줘서 고맙다. 넌 내가 나중에 꼭 찾아가 줄게.”

콰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데이본드가 맞붙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