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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11화 (311/740)

311화 빛의 신전

빛의 도시. 유적.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건 좀 재밌는 광경이네.

나를 향해 다가오는 건 창을 든 천사상들. 창을 든 채 천천히 걸어오는 것뿐인데 위압감이 대단하다.

덩치가 커서 그런가? 아니면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할 신성력의 효과일까.

그래 봤자 나보다는 신성력이 부족한 거 같다만.

그런 소소한 걸 떠나서…….

“이야, 말을 다 하네?”

“그에에.”

지금까지 말을 하는 몬스터는 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면 재앙이라 불리는 것들도 육성으로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메스토카나 달칸도 시스템적으로 의사를 전달했으니까.

게다가 한 가지 더 재밌는 일이 있었으니.

“우우우. 크읍.”

얼굴이 퉁퉁 부은 어니가 천사상에 잡혀 끌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65층까지 오른 녀석인데 얘네한테 당했다고?

60층대에 올랐다는 건 6성급은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재앙이라면 말이 달라지지만 이미 달칸은 봉인된 후, 유적에 재앙급 몬스터가 돌아다닐 일은 없지 않은가.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바로 권능을 사용했다.

흥미롭기는 하지만 위험 요소는 놔두고 싶지 않아서.

난 놈들의 정보를 읽어 낼 수 있었고, 곧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빛의 수호자]

-4성급 몬스터.

-제2 천계에서 빛의 도시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골렘.

-신도들에게 메시지를 주며 일탈을 방지합니다!

-신성력이 없는 대상을 상대할 때 모든 능력치 4배.

-신성력이 없는 상대의 공격에 데미지를 입지 않습니다.

-단, 마기에는 취약합니다.

“사기 치네. 이게 뭐야.”

장단점이 확실한 몬스터.

등급 자체는 대단치 않다만 조건이 까다롭다.

신성력이 없는 상대에게는 무적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

이래서 이지키일이 신성력이 담긴 아티팩트라도 들고 있으라고 했구나.

딱 보니 어니는 덤볐다가 두들겨 맞은 거고.

기본이 4성급이기는 한데 버프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 신성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느 수준일지 감이 안 잡힌다. 대충 6성급으로 보면 되나?

“성전을, 읽으, 라.”

“경건, 함을 새겨, 라.”

“으으으으, 개 같은 동상들.”

억지로 어니를 끌고 온 천사상들이 오망성 제작법이 적힌 곳에 꿇어 앉힌다.

“읽, 어라.”

“이봐! 보지만 말고 좀 도와 달라고.”

-꾸욱!

“아아악!”

어니가 내게 헬프콜을 했으나 천사상이 바로 제압했다.

창대로 어니의 발가락을 누른 것.

“잡설, 금지.”

“경건한, 마음으로.”

부들부들 떨던 어니가 오망성 제작법을 읽어 내려갔다.

사실상 윗부분은 사이비 설교나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으나…….

“빛이 있어, 세상을 구하고.”

“더, 크게.”

“빛이 있어 세상을 구하고!”

“훌륭, 하다.”

“목소리, 유지.”

어니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글귀를 읽어 내려갔다.

툭툭. 어깨를 두들겨 응원해 줬다. 녀석이 많은 감정이 섞인 눈으로 날 노려봤으나 사뿐히 무시해 줬다.

재밌어서 보고 있기는 했는데 역시 시간 낭비다.

필요한 것만 딱 얻고 다른 데로 가 봐야지. 보아하니 오망성 제작법은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 모양.

제작법Ⅰ이 있으니 제작법Ⅱ도 있고 할 거다.

“여기 있네.”

[카메라 (C) Lv.9]

쭉쭉, 훑어보다 제작법이 나오는 부분을 촬영했다.

대충 살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을 거 같다. 신성력이 많이 드는 구조라 문제지.

“왜! 왜 넌 안 건드는 건데!”

“음?”

쪼그려 앉아 제작법을 살피던 때, 어니가 소리를 질렀다.

왜긴 왜야.

“난 신성력이 있거든.”

-파하아아앗!

가지고 있던 신성력을 숨김없이 뿜어냈다. 일순간이지만 몸이 하얗게 빛났다.

골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의 신성력.

그 눈부신 에너지의 파동이 일대에 퍼져 나갔고.

-쿵! 쿵쿵!

“오오. 위대하, 신 분!”

“하늘의, 일원!”

“경배하, 라. 불온한, 자여.”

“억!”

천사상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옆에 무릎을 꿇고 있던 어니의 머리를 눌러 숙이는 건 덤.

쉐핀이 말했던가. 천계와 정령계는 위계질서가 확실하다고.

천계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2 천계는 심한 편이다.

그런 곳에서 만들어진 골렘이 자신보다 월등히 높은 신성력을 지닌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는 뻔한 일.

-쿵!

난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있는 천사상의 머리를 찍었다.

몬스터가 머리 내밀고 대기하는데 안 때려 줄 수가 있나.

-쿠르르릉

단번에 조각나 쓰러진다. 이런저런 옵션 빼면 4성급 몬스터에 불과하니까.

굳이 스킬을 쓸 필요도 없다. 몇 대 톡톡 건드려 주면 되지.

“내부는 뭐가 없구나? 구조를 모르겠네.”

부서진 잔해를 살폈지만 어떤 원리인지 알 수가 없다.

몇 개 챙겨서 릴카한테 물어봐야지.

동료가 부서졌지만 천사상들은 가만히 있었다. 이게 바로 천계의 위계질서라는 건가.

나야 편하고 좋지.

주변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분해해서 아공간에 넣었다. 여차하면 재료로 쓸 예정.

신성력을 머금고 있는 것이니 따로 쓸 때가 있을 거다. 프램버그에도 좀 보내 줘야지. 그쪽도 신성력이 담긴 물건이 필요하니까.

“옛다, 가지고 다녀. 신성력이 있어야 덜 귀찮게 군다고 하니까.”

“고, 고맙다.”

난 큼지막한 조각상 조각을 어니에게 넘겼다.

성물도 몇 개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냥 주기에는 아까워서.

이것도 신성력을 품고 있기는 하니까 괜찮겠지.

자리에서 일어선 어니가 우물쭈물 내 옆에서 얼쩡거린다.

“왜, 할 말 있으면 하고.”

“한국 헌터들은 다 이렇게 강해?”

“평균은 넘을걸?”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공략을 올린 만큼 아무런 정보 없이 올라오는 나라의 등반가보다는 스펙적으로나 장비 수준으로나 우위에 있을 거다.

나도 그렇고, 기부 형식으로 장비나 포션을 연합에 보내주고 있으니 연합 사람들은 더 상황이 좋겠지.

연합 사람이면 서로 도와주는 분위기도 있으니까.

“너도 연합 사람.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긴 해. 혹시 나도 들어갈 수 있나?”

“쁘찡 연합은 사람을 가려 받지 않아. 규칙이 있기는 하다만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수준이지.”

아공간 팔찌에서 여분의 연합띠를 꺼내 건넸다.

“아, 그런데 연합 사칭해서 민폐 끼치고 다니면 다른 연합 사람들한테 두들겨 맞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나도 생각이라는 게 있어. 걱정 말라고.”

이렇게 또 하나의 연합 사람을 만든 뒤 발걸음을 옮겼다.

오망성의 제작법을 모아야 하고, 탈모맨과 핥짝이와도 만나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알아서 하는 걸로.

* * *

난 다시 탐색에 나섰다.

신성력을 풀풀 풍기고 다니니 방해하는 것도 없었기에 빠르게 모든 오망성 제작법을 찍어 기록할 수 있었다.

남은 건 탈모맨과 핥짝이와 합류하는 것.

중간중간 빈 건물에 들어가 챙길 만한 게 있는지 살폈지만 따로 없는 것 같았고, 이내 신전 입구에 있는 멤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읏차! 애들이 엄청 따라붙네! 하하하하!”

“불온, 한 자를, 쫓아라!”

“사악한 존, 재를, 처단하, 라!”

마기를 몸에 두른 채 천사상의 어그로를 끌고 있는 탈모맨과.

[압축 (S) Lv.8]

“옳치. 잘한다, 탈모맨. 미리미리 쟁여 놔야지. 신성력 담긴 구슬을 언제 또 모아.”

그런 탈모맨 근처에서 벼를 수확하는 농부처럼 천사상을 압축해 보물 주머니에 넣는 핥짝이를 만날 수 있었다.

정신 나갈 거 같네, 이게 뭐람.

“공블아이! 여기 챙길 거 많다, 야!”

“…어, 그래. 많이 챙겨라.”

보상으로 천사상 자체를 가져갈 줄은 몰랐다.

뭐든 만족했으면 된 거지.

“밖에는 딱히 눈여겨볼 게 없는 거 같네. 역시 메인은 신전인가.”

“얘네도 좋기는 하지만 아쉬운 건 맞지.”

기어이 돌아다니는 천사상 전부를 구슬로 만들어 챙긴 핥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물 주머니를 쓰다듬는 게 꽤나 두둑하게 챙긴 거 같은데…….

“혹시 돌아다니면서 파비안 본 사람?”

“어떻게 생겼는데?”

“독일인, 백인이고 키 커.”

이 정도 정보면 충분하다. 이미 이지키일과 브레드의 얼굴은 봤고, 어니는 흑인이었으니 그 외의 인물이 파비안이다.

“못 봤어.”

“나도 못 봤는데.”

“빅스타도?”

“초반에 잠깐 마주친 후로는 놉.”

포탈을 넘었을 리는 없으니 남은 건 신전뿐.

난 탈모맨과 핥짝이를 바라봤고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자고, 안에 뭐가 있는지!”

핥짝이가 거침없이 신전 안으로 향했고.

-쿵!

“으억!”

보이지 않는 장벽에 얼굴을 부딪치고 튕겨 나갔다.

뭐지, 결계인가?

[신도가 아닌 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성력이 없습니다.]

“입장 제한이 있나 본데?”

“아니 왜! 나 신성력 있는 아이템 가지고 있잖아!”

핥짝이가 팔을 보여 준다. 어디서 얻었는지 성물을 가지고 있다.

등급도 낮고 가벼운 회복 옵션이 달린 게 전부지만 신성력이 있는 건 사실.

“아무래도 본인한테 신성력이 깃들어 있어야 되는 거 같아. 물건이 아니라.”

“버프 같은 거?”

“그렇지.”

“탈모야, 너 신성 계열 버프 있냐?”

“하하하하! 당연히 없지.”

“하하! 해맑기만 한 녀석.”

“윽!”

탈모맨의 팔을 두들긴 핥짝이가 미간을 찌푸린다.

하는 수 없지.

“손.”

“응?”

의문스러워하면서도 내가 내민 손바닥 위에 손을 올린다.

[러브 앤 피스 (S) Lv.10]

-파하아아앗!

“오! 이게 사람한테도 되는구나?”

“진짜 되네. 혹시나 싶었던 건데.”

핥짝이의 몸에 신성력이 깃든다.

달칸과 싸울 때 써 본 결과, 러브 앤 피스는 내가 직접 사용하는 스킬이나 접촉한 대상에게만 신성력을 부여하고 유지할 수 있다.

사람한테 써 보는 건 처음이다만 됐으면 된 거지.

“신사 숙녀 여러분,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예. 고맙습니다.”

탈모맨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신전 입구를 안내한다.

나 역시 모자를 드는 시늉을 하며 핥짝이와 안으로 들어갔다.

[빛의 신전에 진입했습니다.]

무사히 신전에 입성한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원하게 쭉 뻗은 복도. 벽도 타일도, 기둥도 하얗다.

색이 있는 것이라고는 창문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뿐.

어쩌면 심심할 수도 있는 구조였으나 웅장함이 있었고, 기둥에 굵직한 무늬가 새겨져 아름다웠다.

벽면에는 양각으로 조각이 현실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천사가 괴물들을 무찌르는 모습.

어디 신화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주얼인데.

우리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고 천장이 높은 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앙에 놓인 거대한 수정.

“달칸?”

그 안에는 사슬로 묶인 달칸이 봉인되어 있었다.

보여주는 거다. 빛의 도시가 달칸을 봉인했음을.

누구한테?

‘당연히 빛의 도시에 있는 사람들한테겠지.’

기묘한 감각이다.

빛의 도시에 곳곳에 있던 천사상은 신앙을 증명하라며 돌아다니고, 따르지 않으면 무력도 서슴지 않는다.

곳곳에 천사와 관련된 글귀가 있었으며, 신전은 사람을 가려 받으며 달칸을 봉인한 업적을 자랑한다.

대체 왜?

난 천천히 홀을 살폈다.

원기둥 형태의 공간은 다른 곳과는 모습이 달랐다.

빼곡하게 박혀 있는 뿔.

-츠즈즈즈즉

권능이 반응한다.

반응하지 않더라도 저게 뭔지 눈치챌 수 있었다.

[달칸 봉인진]

-천족은 숭배받아야 마땅한 법!

-제2 천계의 귀족들은 달칸을 봉인하기 위한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사라진 재앙에 열광하는 사람들! 당신도 신도가 되겠습니까?

-천사의 가호가 함께할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드러난 정보.

난 권능에 힘을 더했고.

-하층민 천족의 뿔을 잘라 만들었습니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난 슬며시 주먹을 쥐었고.

“야야, 공블아이. 저거 봐 봐.”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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