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오늘 밤 끝내자
영체화 된 달칸. 원래라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몸 전체가 암염으로 뒤덮어야 2페이즈에 진입한다.
이동 속도, 전투력 모두 올라가는 건 당연.
그래도 그렇지 스스로 2페이즈에 돌입할 줄이야.
“영특한 걸 넘어 영악하군.”
놈의 입장에서는 최후의 수단, 여기서 끝을 보겠다는 거겠지.
봉인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이제야 확실해진다. 65층은 일종의 술래잡기.
필드에 올라온 사람들이 오망성에 자리 잡기 전에 달칸은 등반가를 잡아야 한다.
‘본의 아니게 내가 시선 끌기를 했어.’
달칸이 내게 과하게 집착한 결과 65층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이 오망성에 자리 잡았다.
아무리 달칸이라도 몸은 하나. 한 곳에 집중하면 다른 곳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크하아아아아!”
놈이 가까워지고 있다. 땅굴 이동도 속도가 상당히 빨랐지만 영체화 된 달칸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이대로는 따라잡히겠는데.”
“그냥 싸우면 안 돼?”
“아까보다 2배는 강해. 물리 공격도 안 통하고. 뭐, 나도 들은 거지만.”
“그럼 테스트해 보지 뭐.”
핥짝이 말이 맞다. 언제부터 남의 말만 믿고 움직였다고. 직접 확인하는 건 기본이다.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나 자신은 믿을 수 있으니까.
“먼저 한 방!”
보물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낸 핥짝이가 그대로 스파이크를 내려친다.
[해제 (S) Lv.7]
-콰과과과광!
구슬이 달칸에게 닿자마자 해제. 압축되었던 것들이 한 번에 팽창하며 폭발했다.
돌, 쇳덩이는 기본. 그 외에도 온갖 것들이 튀어나온다. 오, 저건 뭐야.
“도끼?”
“살상력을 높여야지. 아쉽다. 원래는 탈모맨한테 쓰려고 했는데.”
“노, 농담두… 하하하!”
흘낏, 탈모맨이 핥짝이의 눈치를 봤지만 핥짝이는 씽긋 웃을 뿐 말이 없었다.
“왜 답이 어, 없어. 진짜루?”
“급한 불 끄고 보자?”
“으, 으응.”
급 쭈그리가 된 탈모맨은 그렇다 치고.
“크르르르르.”
핥짝이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았음에도 달칸은 건재했다.
진짜 물리적인 타격은 입지 않는 모양.
방법은 하나다.
“빛 속성이나 신성력으로 공격해야겠는데.”
[러브 앤 피스 (S) Lv.9]
[파이어 밤 (S) Lv.10]
-콰아아아아앙!
달칸과 싸우며 올라간 스킬 레벨.
사실상 찍을 수 있는 최대 수준의 파워였고.
“크허어어엉!”
신성력을 머금은 파이어 밤은 영체화 된 달칸에게도 타격을 줬다.
스텟으로만 따져도 800이 넘는다. 어둠 속성인 녀석에게는 상극.
자신의 공격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달칸이 고통에 몸부림쳐서일까, 뒤에서 쫓아오던 핥짝이가 옆으로 붙더니 날 노려본다.
“너, 신성력이 얼마나 높은 거야.”
“좀 높아. 800은 넘지.”
“그게 가능해?”
“되더라.”
어이가 없는지 핥짝이가 날 위아래로 훑는다.
“나도 신성력 있는데?”
“넌 또 왜 있어!”
뒤를 돌아보니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있는 탈모맨.
녀석이 달칸을 공격할 때 신성력을 느낀 거 같기는 했다만 진짜였나.
“권능 효과로 얻었지. 나 킬더레스 계승자잖아. 말 안 했었나?”
“안 말했거든? 냥펀도 계승자던데 너까지… 설마 공듀 너도?”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난 심지어 두 명의 계승자다. 알리오스와 릴카. 그거 말고도 추가적으로 권능이 한 개 더 있고.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대로 말하기에는 핥짝이의 눈이 너무 매섭다.
아무튼.
탈모맨이 가지고 있는 권능, 두 세계의 지배자.
대충 짐작은 했다.
‘킬더레스는 천마대전에서 승리했다고 그랬지.’
즉, 마계와 천계 양쪽을 거머쥐었다는 거다.
어쩌면…….
“너, 혹시 마기도 가지고 있냐?”
“어떻게 알았어?”
“킬더레스의 계승자니까.”
탈모맨 이 녀석도 스펙이 장난 아니네. 나도 마기는 없는데.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마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오히려 더 적지.
천사는 성직자 계열로 가면서 어떻게 얻을 방법이라도 있지, 마기는 말 그대로 악마들만 쓰는 힘이니까.
악마 숭배자 뭐 이런 게 있다면 또 모르겠다만. 나도 마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처음 본다.
“왜 나만 신성력 없는데! 어? 왜 난 없냐고!”
“나한테만 그래, 공듀도 있는데!”
“너도 있는 게 제일 짜증 나!”
뒤로 자리를 옮긴 핥짝이가 다시금 탈모맨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잠깐 멈칫했던 달칸이 다시 추격을 시작했으며.
“온다.”
“크하아아악!”
[연옥의 불세례 (SSS)]
“튀어!”
벌린 거리가 무색하게 놈이 브레스를 뿜었다.
전에 겪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화력.
아가리를 벌리기도 전에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고, 권능을 통해 정보를 파악하자마자 땅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프로즌 브레이크 (S) Lv.3]
[프로즌 브레이크 (S) Lv.3]
[프로즌 브레이크 (S) Lv.3]
.
.
.
곧장 프로즌 브레이크를 연달아 사용했지만 생성되기가 무섭게 녹아내린다.
아니, 이걸 녹는다고 말해야 하나. 그냥 박살 나고 있는데.
땅 위에 올라와서도 안전한 건 없었다.
-쿠구구구구궁
-콰화아아아악!
땅이 갈라지며 암흑의 불길이 치솟는다.
우리가 빠져나온 구멍으로는 화산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뿜어지고.
돌마저 녹아 용암이 흐른다.
[무지개다리 (S)]
-촤아아아악!
-치이이이익.
급한 대로 무지개다리를 사용했다.
놈의 브레스 범위를 벗어나기 위한 것도 있고, 당장 쏟아지는 불길을 막을 방패도 필요했다.
이동 중에는 파괴 불가.
불길에 닿은 무지개다리가 시커멓게 타올랐으나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래서 스킬이 등급만큼이나 효과가 중요하다.
이것도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무지개다리도 무한정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온 달칸이 하늘을 날아 우리를 쫓는다.
넘실거리는 암염이 육체를 대신하고 활짝 벌린 아가리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인다.
그나마 다행이네. 놈도 제한 없이 브레스를 뿜어 대지는 못하는 모양.
“공블아이, 너 여기에도 신성력 넣을 수 있어?”
핥짝이가 압축 구슬을 내민다.
의도는 분명했다. 원거리에서 견제하자는 거지.
탈모맨은 근접전 위주고, 나는 굳이 따지자면 근접전 아니면 파이어 밤을 이용한 중거리 전투다.
원거리 공격이라고는 오로라 빔뿐인데.
‘오로라 빔은 경로가 너무 정직해.’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만큼 달칸은 쉽게 피해 낼 거다.
원거리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핥짝이밖에 없다는 것.
핥짝이가 건넨 구슬을 받았다.
“해 봐야지.”
러브 앤 피스는 스킬에도 적용될 만큼 범용성이 뛰어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에 적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
[러브 앤 피스 (S) Lv.9]
-파스스스
신성력이 깃들었으나 핥짝이에게 넘겨주자 신성력이 흩어진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사용할 때만 유지되는 모양인데.
[인챈트 (AA) Lv.6]
[러브 앤 피스 (AAA) Lv.3가 깃듭니다.]
내게는 인챈트가 있다.
두 스킬의 등급 격차가 커서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지.
어차피 이걸로 놈을 잡으려는 게 아니다. 방해하려는 것뿐.
“넌 길 안내만 제대로 해.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씨익 웃은 핥짝이가 신성력이 깃든 구슬을 내려친다.
[너에게 닿기를 (S) Lv.2]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
-상대에게 닿을 겁니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죠!
새로 얻은 스킬인가, 전에는 못 봤던 거다.
효과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쐐애애액!
달칸이 몸을 돌려 회피하려 했지만 구슬은 결과적으로 달칸에게 닿았고.
[해제 (S) Lv.7]
“크허어엉!”
그대로 압축이 해제되며 신성력을 머금은 파편이 달칸을 덮쳤다.
“좋았어. 공블아이, 계속 만들어 줘!”
“오케이!”
효과가 있는 걸 확인한 핥짝이가 연달아 구슬을 던졌고, 나 역시 인챈트를 계속해서 사용했다.
오망성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난 뭐 하지?”
“넌 저기 날아오는 놈들 해결해야지!”
탈모맨의 물음에 핥짝이가 허공을 가리킨다.
시커먼 하늘. 달칸을 따르는 몬스터 무리가 우리를 향해 몰려들었다.
평소 달칸과 싸울 때와는 다른 느낌.
[짙어지는 어둠.]
[달칸의 의지에 몬스터가 강화됩니다.]
강해진 건 달칸만이 아니었다. 녀석의 영향을 받은 몬스터 역시 버프를 받았지.
가뜩이나 고스트 계열의 놈들. 6성급에서도 강하다고 분류되는 그림자 왕과 팬텀 로드. 온갖 상태 이상을 거는 밴시 퀸까지.
“으랴아아압!”
“그에에엑!”
탈모맨과 덕춘이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신성력이 깃든 주먹을 휘두르고, 팔꿈치로 찍고, 박치기도 서슴지 않는다.
덕춘이가 침을 뱉을 때마다 몬스터가 녹아내리는 건 덤.
나 역시 폭발을 일으켜 보조했다.
-촤아아악
무지개다리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급하게 사용한 만큼 오망성에 바로 닿지는 않았지만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다.
“저기가 3번 오망성이야. 둘 다 안으로 들어가!”
“넌!”
“난 안 돼! 이미 3번 오망성에서 불가침의 영역을 거의 다 사용했어! 내가 들어가면 한 번밖에 못 버텨!”
내가 3번 오망성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불가침의 영역은 한 번.
이후에는 놈이 오망성 안으로 들어온다.
‘둘이라면 4일은 버틸 수 있어.’
나 때문에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다.
결전을 각오하는 찰나.
“그럴 수야 없지! 이쪽은 내가 잠시 잡아 둘 테니까 너희는 빈 오망성으로 가!”
“야!”
“탈모 새꺄!”
누가 말리기도 전에 탈모맨이 달칸과 몬스터 무리를 향해 뛰쳐 나갔다.
녀석의 몸에 신성력이 깃든다. 하얗게 타오르는 몸.
[SS급 권능, 두 세계의 지배자가 빛납니다!]
[칭호, 초인의 길이 빛납니다!]
[정의의 일격 (S) Lv.2]
-파하아아아악!
탈모맨의 거침없이 주먹을 뻗는다.
동시에 형상화된 거대한 신성력 주먹이 몬스터를 강타한다.
“키하아아악!”
“그아아아아!”
신성력 주먹에 닿은 몬스터들이 빛이 되어 바스러지고, 달칸 역시 으르렁거리며 분노했다.
“어차피 봉인해야 된다며. 오늘 끝내 버리자고! 2페이즈가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잖아!”
“너 진짜……!”
“이미 저질렀어. 어물쩍거리면 그게 더 위험해.”
핥짝이의 팔을 붙잡았다. 우리가 지체할수록 탈모맨이 곤란해진다.
돌발 행동이었으나 탈모맨도 맞다. 2페이즈는 달칸이 완전히 타 버릴 때까지 지속된다. 문제는 언제 다 타는지 모른다는 것.
하루 이틀이면 적당한 오망성에서 버티면 그만이지만 일주일, 그 이상이면? 필드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으득. 이를 악문 핥짝이가 나를 따라 달렸다.
“무리하지 말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오망성으로 뛰어! 커뮤니티로 생존 신고하고!”
핥짝이의 외침에도 탈모맨은 말이 없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저 우리 쪽을 향해 엄지를 세우고는 전투에 집중했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 이동할 경로를 파악했다.
‘6번과 7번의 위치는 북쪽. 산을 넘어야 해.’
여기서 정반대 위치.
다시금 파이어 밤을 터트려 하늘 위로 날아올랐고 무지개다리를 사용했다.
“크허어어엉!”
“어딜!”
달칸이 나를 발견하고 달려들려 했으나 탈모맨의 방해로 저지당했다.
-콰아앙!
탈모맨 역시 달칸의 앞발에 맞아 날아갔으나 곧바로 일어섰다.
몸 하나는 정말 튼튼한 모양.
녀석이 버텨 주는 동안 최대한 빨리 이동해야 한다.
-촤아아아악!
다행히 무지개다리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탈모맨에 대한 걱정, 무사히 오망성에 도착할 수 있을까라는 초조함에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애써 털어 냈다.
지금은 달칸을 봉인하는 것만 생각하자.
“핥짝아, 이렇게 하는 거 어때.”
“뭘 어떻게?”
난 작전을 말했고, 핥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