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쫓아오다
핥짝이의 65층 입성. 이로써 클리어에 필요한 7명이 모두 모였다.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필드 어딘가에는 있겠지.
“이지키일한테도 말해야 할 거 같은데.”
“무패 기록자?”
탈모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60층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전 세계에서 모인 강자들이 처음 만나는 자리인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는 자리니까.
비록 탈모맨이 패배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나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았다.
핥짝이와 냥펀이랑 싸웠으면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단순 전투력만 따지면 탈모맨이 조금 더 앞설 거 같은데.’
멤버들 모두 성향이 다르다.
핥짝이의 경우에는 영리하게 전투를 이어 나간다. 압축과 해제. 두 스킬을 이용해 많은 변수를 만들어 낸다.
등반 속도도 빠른 만큼 생존에 관련된 다른 능력도 뛰어나겠지. 멤버 중 유일하게 계승자가 아님에도 이 정도다.
냥펀은 직접적인 전투를 싫어하는 편. 육탄전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만…….
‘그냥 싸울 때는 까다롭지. 사용하는 아이템이 워낙 많아서 말이야.’
스킬은 아무리 다양해도 결국에는 주로 사용하는 것들이 있고, 계속 보다 보면 익숙해진다.
반면에 자금과 물량으로 온갖 아이템을 쏟아내는 녀석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탑에서 굴렀어도 모든 아이템을 알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골드 익스플로전도 꽤 강력하고.
다 자기만의 개성이 있기는 하다만 순수하게 강한 것만 따지라면 난 탈모맨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내가 겪어 온 누구보다도 전투 관련 스킬이 많은 게 놈이니까.
“녀석이랑도 한번 붙어 보고 싶었는데. 이야기만 들어서 말이야.”
탈모맨의 호승심을 불태운다.
“걔 말고도 있어. 파비안, 독일의 데어 힘멜 소속.”
“데어 힘멜? 거기 말 많은 곳인데.”
말이 많다? 나도 대형 길드라는 것만 알지 자세히는 모른다.
모든 나라가 그렇지만 독일 역시 자국의 헌터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유명하거나 스타 헌터는 저절로 알려지기도 하고, 길드 간판으로 내세우니 알 수 있다만…….
‘데어 힘멜은 대표적인 헌터가 없어.’
길드장의 이름만 나와 있다. 그밖에 헌터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어느 수준의 전력을 가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대규모 단위로 움직이며 군대와 함께 작전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정도?
“특임대에 있을 때 다른 나라 애들이랑도 가끔 작전 치르거든? 독일 애들이랑도 해 봤는데 구성원에 길드원 섞여 있더라. 암묵적으로 금기 사항이야. 다른 나라 작전에 군인도 아닌 길드 소속 헌터 데리고 오는 거.”
“길드와 정부가 상당히 가깝나 보군.”
“정부가 길드를 먹은 건지, 길드가 정부를 먹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탈모맨이 어깨를 으쓱인다.
일단 됐다. 탑에 있는 만큼 밖에 일은 신경 쓸 수도, 쓸 필요도 없다.
지금 중요한 건 65층을 클리어하는 것.
커뮤니티를 열어 봤다. 대강의 위치는 알아 둬야 하니까.
내가 65층에 있다는 건 비밀이다.
65층에 고작 7명 있는데 이 중에 쁘띠공듀가 있다고 하면 누구인지 빼박 걸리지.
핥짝이에게 개인 메시지로 보내도 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있나, 탈모맨이 하면 되지. 안 그래도 핥짝이가 탈모맨을 많이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핥짝이 어디냐고 물어봐. 가능하면 여명의 오망성 3, 6, 7번 중 한 곳으로 가라고 하고.”
“알았어, 잠깐만.”
탈모맨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다.
[니머리 탈모]: 핥짝아, 오망성 빈 곳으로 ㄱㄱ. 3, 6, 7번 비었을 거임
[정수리 핥짝]: ㅎㅎ, 우리 탈모맨은 몇 번에 있을까? 줄 게 있어서 그래, 어서 나오렴^^
[니머리 탈모]: 뭐… 뭘 주려고?
[정수리 핥짝]: 그건 비. 밀. 서프라이즈. 기대해ㅎㅎㅎㅎ.
안색이 안 좋아진 탈모맨이 날 바라본다.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받아 줄까?”
“되겠냐?”
“그치?”
후회는 아무리 일찍 해도 늦는 법. 울상이 된 탈모맨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어니, 클리어에 필요한 인원이 전부 모였어. 오망성이 발동될 때까지 기다리면 될 거야.”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지?”
“빛의 도시라는 유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유적이라, 나쁘지 않군.”
어니가 입꼬리를 올린다.
유적을 싫어할 헌터는 없다. 탑 곳곳에 숨겨진 유적. 그 안에 뭐가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제나 구하기 힘든 것들을 줬다.
특히나 이번 건 얻을 수 있는 게 확실하지.
“기대해도 좋아. 유적에서 여명의 오망성 제작법을 얻을 수 있으니까.”
“이거? 이거 만드는 법 알아서 뭐 해.”
“그야.”
난 입을 다물었다.
달칸이 탑 밖에 나타날 거라는 생각 자체가 없다.
저런 반응이 당연하다.
멸망의 과도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은 이미 커뮤니티에 남겼다.
오필리아의 노블 나이트와 협력해 발표했으니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쪽은 어느 정도 정보가 흘러갔겠지만 아프리카 쪽은 별다른 소식이 없었을 거다.
아니, 들어갔어도 같은 반응이었겠지.
당장 멸망의 과도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을 접한 우리 쪽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직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 적으니까.
잠시 다물었던 입을 벌렸다.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언젠가 달칸은 탑에서 나올 테니까.”
“갑옷을 보고 느끼기는 했는데 역시 제정신이 아니군.”
“믿지 않아도 돼. 뭐가 됐든 알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 잘 생각해 보라고.”
굳이 설득할 생각은 없다. 관심도 없고 믿음도 없는 사람 붙잡고 떠들어 봤자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테니까.
직접 봐야 믿지. 멸망에 접어들고 있다는 증거는 계속해서 나올 거다.
탑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 줄어든 건 시작에 불과하니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무료한 찰나.
난 다시금 커뮤니티를 켰다.
남는 시간 동안 공략이라도 올릴 생각.
겸사겸사 핥짝이가 탈모맨을 어떻게 갈구는지 구경 좀 하고.
역시나 핥짝이와 탈모맨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냥펀이 끼어 있는 건 당연.
[니머리 탈모]: 판사님… 전에 글을 쓴 건 제가 아니라 고양입니다, 부디 선처를!
[냥냥펀치]: 아닙니다, 판사님! 탈모맨은 고양이가 없습니다! 본인 손으로 누른 거예요!
[니머리 탈모]: 냥펀, 너마저!
[정수리 핥짝]: 탈모쉨, 냥펀의 말이 사실입니까?
[니머리 탈모]: 크흑! 나만 고양이 없어!
[정수리 핥짝]: 정수리 핥짝형 15회에 처합니다. 땅땅땅!
[냥냥펀치]: 잘가랑!
얼씨구, 잘 논다.
호기롭게 도발할 때는 언제고, 핥짝이가 올라오니 신경 쓰이기는 하나 보구먼.
나도 자연스럽게 떠들려는 순간.
[정수리 핥짝]: 여긴 또 왜 이리 시커메. 산속이라 그런가. 야야, 탈모 새꺄 356 오망성? 그게 어디 있ㄴㄴ으 거.
“어?”
핥짝이의 메시지가 끊겼다.
문장을 완성하기도 전에 다급히 끝난 메시지.
이곳은 65층, 이유는 하나다.
눈을 동그랗게 뜬 탈모맨과 눈이 마주친다. 녀석도 같은 생각인 모양.
“달칸!”
“핥짝아아아, 내가 간다아아!”
“어니! 계속 있어. 오늘 바로 오망성이 작동될 수도 있으니까!”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오망성을 뛰쳐나왔다.
지금은 밤. 달칸이 활동하는 시기다.
최근에는 나와 싸워 댔지만 원래라면 필드 곳곳을 다니며 공격 대상을 찾을 터.
내가 불가침의 영역을 믿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 핥짝이가 표적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만…….
“설마 바로 움직일 줄이야. 탈모맨! 핥짝이가 산이라고 했으니 중앙 부근일 거야! 아이 씨, 몸 말아!”
“어어엇!”
급한 상황. 난 탈모맨을 잡아 하늘로 던졌다.
65층에 대해 대충이나마 말을 해 주기는 했으나 언제나 그렇듯 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말로 듣는 것과 직접 겪는 건 천지 차이. 서두를수록 좋았다.
하늘로 떠오른 탈모맨을 향해 파이어 밤을 터트렸다.
-콰아아아앙!
“이야아악!”
“좀만 참아.”
폭발로 더욱 높이 날아가는 녀석. 나 역시 파이어 밤을 연달아 터트리며 녀석을 따라잡았다.
이걸로 시야는 잡았고.
“위치.”
“저쪽에서 뭐가 반짝였던 거 같아.”
정신없는 와중에 핥짝이의 위치를 찾고 있던 탈모맨이 한 곳을 가리킨다.
필드 중앙의 산맥. 거기서 살짝 벗어난 곳.
[무지개다리 (S)]
-촤아아아악!
그곳을 향해 무지개다리가 뻗어 나간다.
내가 가진 이동기 중에서는 이게 제일 빠르다. 안정적이기도 하고.
“오오오오! 무지개다리라니!”
“지금 감탄할 때냐. 어디 있는지 잘 봐 봐.”
감탄하는 녀석을 무시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폭발 스킬을 사용한다면 멀리서도 잘 보이겠구만, 핥짝이의 주 스킬은 그게 아니다.
그렇지만…….
-피유우우우, 퍼어어엉!
“그렇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핥짝이는 준비를 철저히 한다. 조명탄 정도는 가지고 다닌다 이거지.
탈모맨이 있다는 걸 아는 만큼 자신의 위치를 알려 준 거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똥이 필드를 밝게 비춘다.
-크르르르르
달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놈 또한 내가 오고 있는 걸 알아차렸을 거다.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 녀석이니까.
천천히 떨어져 가는 조명탄은 붉은빛을 세상에 뿌렸고, 무지개다리는 어둠 속에도 빛났다.
서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구조.
“크하아아아앙!”
“이거나 물어!”
난 달칸과 싸우고 있는 핥짝이를 볼 수 있었고.
“야, 이블아이! 너, 탈모맨 꽉 잡고 있어! 다음엔 걔야!”
핥짝이 역시 나와 탈모맨을 확인했다.
슬쩍, 탈모맨이 내 뒤로 숨었지만 어림도 없다. 나보다 덩치도 큰 녀석이 그런다고 숨어지겠냐.
아무튼.
“혼자서는 힘들걸? 애초에 싸워서 잡으라고 있는 놈이 아니거든.”
-푸우우우욱!
“크하아아아앙!”
난 혼돈검을 역수로 쥐고 무지개다리에서 뛰어내렸다.
그 속도와 무게 그대로 달칸의 등을 찌르는 건 덤.
“우오오! 우리 소중하고 착하고 비폭력자인 핥짝이를 괴롭히다니. 용서할 수 없다!”
-쩌어억!
탈모맨 역시 합세했다.
등을 찔려 날뛰는 녀석의 정수리를 정확히 무릎으로 찍었다.
보통은 머리가 아니라 무릎이 박살 날 텐데 녀석은 멀쩡해 보였다.
몸 하나는 단단하다 이거겠지. 쫄쫄이 입을 때부터 알아봤다.
“잡았다, 요놈! 키도 나보다 작은 게. 콰아악 씨!”
“아, 아아앗. 잠깐만! 도와주러 왔는데! 으가가각!”
자연스럽게 옆에 서는 탈모맨의 머리를 잡은 핥짝이가 그대로 팔꿈치로 정수리를 찌른다.
아픈지 몸을 비트는 탈모맨.
만나서 반가운 건 알겠는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서.”
[프로즌 브레이크 (S) Lv.3]
-콰드드득!
빙벽을 세워 놈의 시야를 가렸다.
그대로 땅굴 이동.
-쿠르르르릉
빙벽을 깨부수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이미 늦었다.
우린 이미 땅굴로 이동하고 있으니까.
“야,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여전히 탈모맨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있는 핥짝이가 물었다.
갈 곳은 정해 뒀다. 여기서 가장 가깝고 주인 없는 오망성.
“내가 처음에 있던 곳, 3번 오망성. 그쪽은 위치를 알거든.”
산맥에서 그리 멀지도 않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만큼 달칸이 쫓아올 가능성은 없다.
땅속에 있는 만큼 냄새로 추격하는 데 한계가 있어야 정상인데.
[달칸이 2페이즈에 진입합니다!]
“엉?”
“2페이즈는 또 뭔데!”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긴 뭐야.
“스스로 빈사 상태까지 갔다는 거지.”
설마 자기 몸뚱이를 물어뜯은 건가.
놈도 아는 거다, 필드에 7명이 모인걸. 봉인 당하기 전에 끝을 보겠다는 거지.
흠칫.
순간 느껴지는 살기에 뒤를 돌아봤다.
나만 느낀 게 아니다. 탈모맨과 핥짝이 역시 동시에 뒤를 확인했으니까.
-크아아아아앙!
영체화 된 달칸이 우리를 쫓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