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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05화 (305/740)

305화 얜 또 언제 올라왔어?

달칸과의 싸움. 이제는 익숙해졌을 정도다. 그럼에도 결판이 안 나는 건 내 개인적인 무력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역시 똘똘하단 말이야, 우리 멍멍이.”

“크르르르릉!”

나도 그렇고 달칸도 그렇고, 싸울 때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전략을 바꾸고 숨겨 둔 수를 사용했다.

다른 몬스터처럼 고착화된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의 컨디션과 가용할 수 있는 물건과 스킬의 상태, 심리전과 변칙적인 공격 등등. 놈과의 싸움은 위험했지만 즐거웠다.

둘 다 영악한 경향이 있어, 약점을 드러내며 유혹하는 일은 있어도 진짜 위험한 허점은 보이지 않았다.

포악하지만 조심스러우며 영악한 영물. 그게 달칸이었다.

반면에 나는…….

[치명적인 포즈 (D) Lv.3]

“우루루루루!”

“크하아아앙!”

놈을 도발하여 흥분시키고 심리적인 허점을 찌르는 형식을 사용했다. 놈이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엿 먹이기를 반복.

지금에 와서는 작은 행동만 해도 놈이 경계하는 수준까지 왔다.

손톱만 한 가시도 박히면 아픈 법인데 내가 하는 공격은 얼마나 아프겠나. 짜증도 날 거고 화도 날 거다.

필요하다면 전면전도 각오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면 철저하게 간접적인 공격을 하며 도주와 회피. 타이밍이 맞는 순간 총공세를 펼쳤다.

함정, 기습 가리는 것도 없다. 더럽다면 더럽고, 치열하다면 치열한 싸움의 연속.

보는 사람은 어떤 생각이 들까.

“오우, 이게 한국인의 매운맛인가. 진흙탕 싸움인가 개싸움인가. 둘 다 개 같으니 후자가 맞겠군.”

이지키일의 감상평이 뒤따랐다.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겠으니 반박하지 않았다.

“아우우우우우!”

-쾅! 콰과광!

분노를 참지 못한 달칸이 연달아 땅바닥을 찍어 누른다.

아무리 놈이어도 땅굴 이동과 안개 질주, 무지개다리로 도망치는 날 확실히 제압할 수는 없었다.

고착화된 상황, 놈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낮게 으르렁 거리며 날 노려봤고.

“크헝!”

크게 한 번 외치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스스로도 아는 거다, 지금 너무 흥분했다는 걸. 이런 식으로 여러 번 당했기에 화가 풀릴 때까지 시간을 가지려는 거겠지.

하여간 영특한 녀석이란 말이야.

“그에에.”

“그래그래, 영특하기로는 우리 덕춘이가 최고지.”

톡톡, 덕춘이의 코를 두들겨 줬다.

확실히 덕춘이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달칸에게 집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달칸을 따르는 수많은 몬스터. 덕춘이가 놈들을 상대해 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싸울 생각도 못하지 않았을까.

“기념비적인 날이네.”

난 투구를 벗으며 땀을 닦아 냈다.

전투의 열기가 가시지 않아 수증기가 위로 올라왔다.

달칸과 수차례 싸웠지만 쫓아낸 건 처음. 엄밀히 말하자면 쫓아냈다기보다는 놈이 물러선 거지만 결과만 보면 비슷하니까.

덕분에 불가침의 영역도 소모하지 않았다. 뭐, 또 언제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에 좀 도와달라니까.”

“브로, 그런 싸움에 날 끼우려 하지 말라고. 끼어들 만한 틈도 없었고, 끼어들었으며 오히려 일이 꼬였을 거야. 너보다는 날 먼저 노렸을 테니까.”

“그것도 그렇지.”

나 같아도 미꾸라지 같은 놈보다는 다른 놈부터 노렸을 거다. 나는 당연히 이지키일을 도우려 합류했을 거고 히트 앤 런은 할 수 없었겠지.

“놀라워. 설마 달칸을 상대로 이렇게 할 수 있을 줄이야.”

“너도 싸워 봤어?”

“물론이지, 일단 해봐야 견적이 나온다고. 난 4시간 버틴 게 최대였어.”

“전면전?”

“게릴라.”

4시간도 대단한 거다. 나도 처음에는 4시간은 커녕 1시간 조금 넘게 싸웠던 거 같은데.

뭐, 나야 전면전으로 했으니까, 여하튼.

“어때? 가능성이 있어 보여?”

“놉, 적어도 너랑 나랑 둘이 힘을 합치는 걸로는 부족해.”

“다른 세 명까지 합세한다면?”

“흐으음.”

65층에는 나와 이지키일만 있는 게 아니다.

이지키일과 같은 빅스타 길드 사람과 파비안, 소속 불명인 헌터까지, 총 다섯 명이다.

그중에서 나와 이지키일, 파비안은 60층에서 무패행진을 이어 나간 검증된 실력자고.

나야 잘 모르지만 이지키일이라면 대략적인 전투력을 알고 있을 거다.

“불안불안하지만 운이 좋다면 1페이즈는 이길 수 있어.”

“…1페이즈? 설마?”

“예쓰. 달칸은 2페이즈까지 있다고.”

그건 몰랐네. 지금까지 1페이즈에서 놀고 있던 거야?

“물론 2페이즈라고 월등히 강한 건 아니야. 장단점이 확실하지. 너도 알지? 달칸은 상처를 입으면 그 부분을 불로 덮는 거.”

“잘 알지.”

이미 몇 군데 구멍을 내 줬었다.

“치명상을 입고 죽을 수준에 이르면 놈의 몸 전체가 타올라.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지. 불길이 모두 사그라질 때까지 폭주하는 건데, 그때는 물리적 타격이 전혀 안 먹혀.”

“완전히 불탈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닌가.”

“2페이즈 상태에서는 놈을 따돌리는 게 불가능해. 땅속으로 들어가든, 물속에 숨든, 하늘로 날아가든 다 쫓아와. 그때의 달칸은 영체에 가까워. 공격력은 지금의 2배는 될 거고.”

무조건 싸우게 된다는 거네.

버티기에는 화력이 엄청날 것이고.

“문제는 그다음인데, 달칸은 밤의 영물이라 밤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완전히 죽지 않아. 2페이즈가 끝나고 온몸이 불타 사라져도 일주일 후면 부활하지.”

“괜히 봉인을 하는 게 아니었군.”

“예쓰. 놈은 영물 중에서도 특별하니까. 급이 높다 하더라고.”

“우리 덕춘이보다?”

자랑스럽게 덕춘이를 들어 이지키일에게 내밀었다.

“게, 그헤헤.”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녀석.

내 펫이라 그런 게 아니고 진짜 우리 덕춘이는 최고라니까?

덕춘이 덕에 넘어간 위기가 몇 개인데. 지금은 6성급 몬스터도 해치운다. 아직 등급이 AA급인데도 불구하고.

그만큼 잠재력이 높다는 거지. 격으로 따지면 타락한 영물인 쌍두귀보다 높을지도 모른다.

녀석의 능력을 무시한 채 추월해 댔으니까.

이지키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펫이 있는 헌터도 처음 봤지만 그게 영물인지는 또 몰랐군. 브로, 누구나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가 제일 귀엽고 예쁜 법이야. 이름은 또 왜 그 모양인 건데.”

“네가 아직 덕춘이를 잘 몰라서 그래. 그치, 덕춘아?”

“그에에.”

덕춘이를 쓰다듬어 주고 어깨 위에 올렸다.

아무튼 이걸로 확실해졌다. 단순히 싸워서는 답이 없다는 걸.

물론 시스템 특성상 놈을 무찌르면 포탈이 열리겠지만 가능성이 낮다.

모두가 목숨 걸고 싸울 거라는 보장도 없다. 뭐가 됐든 자기 목숨이 가장 소중한 법.

나야 무한 코인이 있다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니까.

그보다…….

“그런 정보가 있다는 건 이미 해본 사람이 있다는 거겠지?”

“6년 전쯤에 빅스타의 상위 헌터들이 해봤었지,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결과적으로는 전멸이었고 코인 하나 씩 날렸지만. 아, 이건 한 가지 가설이기는 한데.”

이지키일이 살짝 뜸을 들인다.

“신성력이 900을 넘어가면 완전히 없앨 가능성이 있다고는 하더라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 성직자 계열 중에도 신성력 스텟이 900을 넘는 사람은 없어.”

“그건 아닐걸? 80층 위로 올라가려면 모든 스텟이 999를 찍어야 하니까.”

“나도 알지. 다만 애초에 신성력을 스텟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고, 그 사람들은 60층대까지도 못 올라왔어.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다면 오필리아뿐이지. 그녀가 가지는 상징성은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야.”

난 턱을 긁적였다.

나도 신성력 스텟 800이 넘는데, 이대로 간다면 80층 전에 999스텟은 충분히 찍을 거고.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확실히 드물기는 하다.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스텟은 힘, 민첩, 체력, 마력. 4개가 전부.

그 외의 스텟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가지고 있지 않다.

성직자 계열로 갔다는 사람들 태반이 신성력이 옵션으로 붙은 아이템을 두르고 신성계열 스킬을 쓰는 수준이니까.

그런 의미로 따지면 내가 특이한 거지. 신성력도 가지고, 행운 스텟도 가지고 있으니까.

원래는 없어야 할 스텟을 2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있기나 할까. 있을 수는 있겠지, 세상은 넓고 헌터는 다양하니까.

아무튼, 현재로서는 봉인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

그 전까지는 최대한 버티면서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한 가지 더.

“65층에 올라온 사람들한테 클리어 방법을 알려 줘야겠군.”

“예쓰. 그래야 엇갈리지 않지. 내 친구는 1번 오망성에 자리 잡았어. 파비안은 2번에. 소속 불명은 자세히는 모르겠고. 너와 난 4번에 있지.”

“달칸은 나를 쫓아 올 거야. 내가 움직이면서 소속 불명 헌터한테 전할게. 그래야 다른 사람들 부담이 줄 거야.”

“네 부담이 커질 텐데?”

“상관없어.”

“그렇다면야. 오망성을 활성화 시키는 건 쉬워. 7개의 오망성에 사람이 있기만 하면 저절로 되니까. 난 다른 이들이 언제 올 수 있을지 확인해 보지.”

대략적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여전히 밤. 달칸이 몸을 숨겼지만 언제 어디서 나올지 알 수 없다.

낮까지 기다렸다 움직이는 편이 좋을…….

“아, 이동하기 시작하면 연락하기 힘들 테니까 커뮤니티 친추 좀 받아 줄래?”

“바로 가지. 한시가 아까워.”

“노노노노! 왜 그리 급해? 지금 가는 건 위험하다고!”

닉네임 밝히는 게 더 위험하다, 자식아.

어디서 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고.

“간다!”

-콰아앙!

바로 폭발을 일으키며 오망성을 벗어났다.

멀리서 이지키일이 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 * *

어둠 속 어딘가에 달칸이 숨어 있을 거다. 내가 찾는 사람도 어딘가 있을 거고.

60층대까지 올라왔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생존에 익숙해졌다는 말.

신원 불명의 헌터도 오망성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팻말이 가리키는 위치는 이미 파악한 상태.

빛 한 점 없는 필드였으나 야간 시야가 있는 난 똑바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워오오오오

달칸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나를 쫓으려는 걸까. 오늘은 그냥 놔뒀으면 좋겠는데.

“그럼 그렇지.”

산등성이 너머 달칸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오망성을 벗어난 나를 노리려는 거겠지.

걸리적거리던 오망성도 없으니 놈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사아아아아

놈은 조급하지 않았다.

조금씩 압박하듯 거리를 유지한 채 날 쫓아왔다.

밤은 길었고, 밤은 놈의 영역이니까.

그렇게 1시간.

다음 오망성을 찾을 수 있었다. 꽤나 가까운 거리. 마력을 아끼지 않고 날아와서 그런가.

이미 놈과 한차례 붙었기에 싸우는 건 답이 없어 서두른 것도 있다.

일종의 타임어택.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지개다리 (S)]

난 충분히 위에 있었고, 무지개다리는 이동 중에는 파괴 불가니까.

-촤아아아악!

어둠 속에도 찬란히 빛나는 무지개다리가 다음 오망성에 닿았다.

고속으로 이동.

땅굴 이동보다도 빠른 속도로 난 오망성을 향해 나아갔고.

“크허어어엉!”

지금까지 기회를 엿보고 있던 달칸이 크게 도약했다.

거대한 덩치로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정도의 도약은 보여 준 적이 없다.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공격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대비도 해놨다.

[홀리 크랩 (AAA)]

-콰직!

성물을 발동시켰다. 어둠 속성인 녀석에게 효과적인 물건.

“크헝?”

바닥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집게발이 놈의 꼬리를 붙잡았다.

한순간이면 된다. 나를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던 놈이 허공에 멈췄다 떨어진다.

“내가 너한테 안 보여 준 게 많단다, 멍멍아.”

“그헤헤.”

울부짖는 녀석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덕춘이도 마찬가지.

이제 곧 도착한다.

오망성과의 거리는 고작해야 500미터 정도.

“크하아아앙!”

놈이 홀리 크랩을 부수고 다시금 달려든다.

대단한 근성. 놀랍도록 빠르게 질주한 녀석이지만 놈은 끝내 내게 도달하지 못했다.

내가 먼저 오망성에 도착했기 때문에?

물론 그것도 있기는 한데.

“고오오오옹듀우우우우!”

그보다 빠르게 누군가가 오망성에 뛰쳐나와 달칸의 안면을 강타했다.

“카하아아악!”

불의의 일격에 뒤로 나자빠지는 달칸.

익숙한 목소리. 잊을 수 없는 옷차림. 난 녀석의 정체를 파악했다.

“내가 왔다!”

탈모맨.

이 녀석은 또 언제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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