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어게인
신성력으로 빛나는 검에 무지개가 깃든다. 홍예참, 어두운 세계의 유일한 빛.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권능도 힘을 더한다.
절삭과 도축. 영혼 찢기에 독자무강으로 버프까지 두른 채 검을 휘둘렀다.
노리는 건 놈의 머리. 아무리 재생력이 좋아도 머리가 날아가면 영물도 어쩔 수 없겠지.
-촤아아아!
-찌이이익!
물리력과 동시에 영혼에 직접적인 타격이 가해진다.
내 공격이 놈에게 통하는 건 이미 확인한 상황.
놈은 강력하다. 온전한 영물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으니까.
그럼에도 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쌍두귀 같은 규칙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니.
“크하아아아앙!”
머리를 가격당한 놈이 울부짖었다.
온갖 디버프 포션을 집어삼키고, 코는 마비된 녀석.
지금 승부를 봐야 한다. 놈은 바보가 아니었고 이렇게 당한 이상 똑같은 수에 또 당할 리가 없다.
-화르르륵!
여전히 암염이 일렁거리며 내 몸을 불태우려 했으나 혼돈 수치가 높기 때문인지 버틸 만했다. 혼돈의 파편과 상대하면서 느끼지 않았던가.
혼돈 수치가 높으면 다른 힘의 영향을 덜 받는다. 난 아직 혼돈의 파편 수준의 혼돈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60층대라고 믿기 힘들 정도는 가지고 있다.
화기 내성을 비롯한 내성 스킬들의 레벨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촤악! 촤아아악!
메시지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놈이 날뛰며 날 떨쳐 내려 했으나.
[달라붙기 (B) Lv.6]
놈의 털을 붙잡은 채 버텨 냈다.
“곱게 죽자. 질척이지 말고!”
푸욱! 놈의 근육을 찢기를 반복. 망가진 신체를 수복하기 위해 암염이 넘실거린다.
시야를 가득 덮는 불길. 열기에 입이 바짝 마르고 시야가 흐려진다.
흥건하게 흘러나오는 땀이 수증기로 사라진다.
탈수 증상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으나 정신력으로 버텼다.
-꽈득!
드디어 두꺼운 근육을 뚫고 검이 두개골에 닿았다.
“크하아앙!”
위험을 느낀 녀석이 작전을 바꿨다.
몸을 흔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땅바닥에 뒹굴기 시작한 것.
아무리 스킬의 보조를 받는다지만 놈의 피지컬은 압도적이다.
덩치만큼이나 무게가 많이 나갔으며.
-쿵! 쿠르르릉!
“커흑!”
순수한 물리력만으로도 평범한 헌터는 압사시킬 위력이 나왔다.
이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건만 놈의 암염이 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마치 브레스를 몸에 두른 느낌.
[파이어 밤 (S) Lv.9]
-콰아아앙!
난 폭발을 일으켰다.
놈의 거대한 몸이 잠깐이지만 들썩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져나왔다.
아쉽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뇌까지 부술 수 있었는데.
쉽게 당해 주지는 않겠다 이거지.
그런데 말이지.
“난 좀 끈질겨.”
-파하아아악
안개 질주를 사용했다. 이미 일대는 칠흑의 불길로 불타오르는 상황.
나도 그렇고 놈도 그렇고 시야가 가려졌다.
연기가 되어 놈의 머리로 날아갔다.
이전 싸움의 영향이 있는 걸까. 마력이 충분치 않다. 연달아 안개 질주를 사용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3시간의 휴식으로는 완전히 몸을 회복시키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
개의치 않았다.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싸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한 적은 없으니까.
[안개화가 종료됩니다.]
망자귀환을 쓰고 싶었으나 마력에 여유가 없다.
차선책을 골랐다.
[버프 다이스 (AAA) Lv.4]
[4]
[스플래시 데미지]
랜덤이지만 사용되는 마력에 비해 효과가 좋은 버프를 두르고.
[아스트랄 레인보우 (S)]
마력을 소모하지 않고 쓸 수 있는 펠라인 세트 스킬을 발동시켰다.
급격히 올라간 화력으로 단번에 놈을 처치할 생각.
내가 선택한 스킬은 이거.
[오로라 빔 (S) Lv.4]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만큼 관통력은 내가 가진 스킬 중 제일이다.
-찌유우우우웅!
-찌유우우우!
다른 스킬과 섞어 쓸 만큼의 마력은 없다. 오로지 오로라 빔.
한 점에 집중해 연달아 쏘아 냈다.
빗나갈 일은 없었다. 바로 놈의 머리 위에서 쏜 거니까.
-빠드드드득!
전력을 다해 공격한 것이 통했다. 단단한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놈을……!
[밤의 허상 (SS)]
“엇?”
몸이 떨어진다. 갑작스럽게 달칸이 사라졌다.
밤의 허상? 처음 보는 능력. 밤의 영물 달칸이 어둠 속에 스며들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차리는 건 금방이었다.
나도 비슷한 스킬을 썼으니까.
‘이놈도 무적기가 있었어!’
내게 안개 질주가 있다면 놈에게는 밤의 허상이 있었다.
-크르르르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방향을 특정 지을 수 없는 울림.
경계심을 올리며 빠르게 주변을 살폈고.
-콰아아앙!
“크헉!”
신기루처럼 나타난 놈이 세차게 내게 몸통 박치기를 했다.
포탄이 날아가듯 튕겨 나갔다. 나무를 부수고 땅에 처박혔다. 반발력으로 몇 차례나 땅바닥을 굴러 오망성까지 밀려났다.
온몸이 부러질 거 같다. 갑옷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났으며 보호 스킬이 연달아 떠올랐다.
차라리 덤프트럭에 치이는 게 이것보다는 덜 아플 것 같다.
그 와중에도 검은 놓치지 않았으나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마력은 바닥, 몸도 정상이 아니다.
놈 또한 멀쩡한 몰골은 아니었으나 둘 중 누가 더 엉망진창이냐 묻는다면 내 쪽에 손을 들어 주고 싶다.
-핥핥핥핥!
덕춘이가 열심히 회복을 걸어 주었지만 금방 나을 부상이 아니다. 부러진 뼈가 장기를 찔렀는지 숨쉬기조차 쉽지 않다.
보물 주머니에서 상급 포션과 엘릭서까지 털어 넣었다.
-꾸드드득
뼈와 근육이 빠르게 재생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필요한 건 변함 없었고.
“크허어어엉!”
달칸이 흉포한 울음과 함께 내게 몸을 날렸다.
“하!”
절체절명의 순간이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것이 재앙. 60층대를 오르고 있는 사람 혼자서 상대할 수준은 아니라 이건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커다란 앞발을 보며 입가를 비틀었다.
오케이, 이번은 내 패배.
“다음에 두고 보자.”
그때는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서 오마.
머지않은 미래를 약속하며 난 팔을 벌렸다. 이왕 맞는 거 제대로 한번 맞아 볼 생각.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 곧 엄청난 고통이.
-쿵!
-우우우우우웅!
“음?”
놈의 공격이 막혔다. 내가 있는 곳은 여명의 오망성 안.
빛의 기둥이 생기며 나를 보호했다.
[불가침의 영역 (1/4)]
오망성 위로 떠 오르는 메시지.
불가침의 영역. 오망성의 정보를 읽었을 때 뭔가 했는데 이런 거였나.
“서비스 좋네.”
“그에에에.”
덕분에 살았다.
“크하아아아아!”
분개한 녀석이 연달아 발을 휘두르고, 물어뜯고, 브레스를 뱉었으나 오망성은 굳건했다.
이제 알겠다. 왜 녀석이 오망성을 부수지 않았는지. 부수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부순 거다.
달칸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결계.
비록 횟수는 정해져 있지만 그동안은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
팻말 뒤에 적힌 STAY가 이런 뜻이었던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난 팔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말이 달라지지.
“멍멍이 친구, 2차전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걱정 마. 3차전도 있으니까.”
난 킥킥 웃으며 녀석에게 손을 흔들었다.
“크르르르르.”
달칸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더니, 쿵! 결계에 머리를 박고 나를 노려본다.
나 역시 놈을 바라봤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아우우우우우!”
하울링을 내뱉은 녀석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불가침의 영역 (3/4)]
“어, 죽겠다.”
“그에에에.”
하늘 위로 떠 오른 해를 보며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달칸과의 싸움은 4차전까지 이어졌다.
결과는 보다시피 연전연패.
오망성에 대자로 누웠다. 놈을 위기까지 몰고 갈 수는 있지만 끝을 볼 수가 없다.
“부족해, 한참 부족해. 더 강해져야 해.”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과 아이템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소모성으로 사용해 버린 검만 20개가 넘었고, 포션 역시 40개는 넘게 사용했다.
아직 여유분이 있기는 하지만 몇 번 더 싸우면 부족해질 거다.
무리한 싸움을 이어 간 탓에 체력도 마력도 바닥을 긴다.
회복을 하면서 전보다 더 튼튼해진 거 같기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에 달칸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죽는 건 나니까.
“그래도 스킬 레벨은 많이 올랐다, 그치?”
“그에에.”
드디어 파이어 밤의 레벨을 10까지 찍었다. 일반 등급 스킬로 찍을 수 있는 최대 등급과 레벨.
진짜 쓸 수 있는 건 모조리 썼다.
구애의 춤과 치명적인 포즈까지 등급이 올랐으니 다른 스킬은 말할 것도 없지.
객관적으로 봐도 더 강해진 건 맞는데…….
“이상해.”
뭔가 어그러진 느낌이다.
달칸이라는 재앙은 아무리 생각해도 홀로 싸워서 이길만한 상대가 아니다. 적어도 60층대를 오르고 있는 사람이 잡기에는 급이 높다.
동층대에 비해 오버 스펙인 나도 이러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까.
어쩌긴 어째. 제대로 비벼 보지도 못하고 죽는 거지.
“확실히 다른 층이랑 달라.”
다 떠나서 65층은 다른 60층대와 다른 점이 있었다.
NPC가 없다.
재앙 구간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힘을 합쳐 싸우도록 되어 있다.
층마다 NPC들이 있는 마을이 있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클리어했다.
방향성을 잘못 잡은 느낌.
팻말에 적혀 있던 STAY의 의미를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여명의 오망성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곳도 가 보면 단서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고개를 들어 메시지창을 살폈다.
[낮 종료까지 남은 시간- 03:34:52]
다시 찾아온 낮. 이 오망성에 남은 불가침의 영역 효과는 한 번.
경험상 여명의 오망성은 3일에 한 번씩 발동한다.
불가침의 영역은 한번 발동되면 하루 동안 나를 보호해 주고.
간단히 말하면…….
“다음 낮을 기다리려면 3일을 기다려야 하는데,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날은 하루밖에 안 된다는 거지.”
그 시간 동안 달칸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만 실패한다면 그때는 뭐, 60층부터 다시 올라야 한다.
-절그럭
난 바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지금까지 방법으로는 달칸을 상대할 수 없다.
탑은 친절하지는 않지만 이겨 낼 수 없는 과제를 던져 주지는 않는다.
분명 방법이 있다. 난 그걸 알아내면 되는 거고.
혼자 들이박아 봤자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팻말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멀리, 산등성이가 보였다.
“가자.”
“궥.”
-파아아앙!
발을 박찼다.
* * *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목적 지점을 정하고, 도착하면 다시 다음 목적 지점을 골라 이동했다.
중간중간 파이어 밤으로 몸을 띄워 오망성이 보이는지 살피기도 하고.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만큼 서두르는 편이 좋았다.
장애물이 많으면 땅굴 이동을, 호수나 강이 나오면 파이어 밤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이동했을까.
“찾았다!”
[파이어 밤 (S) Lv.10]
-콰아아아앙!
하늘 높이 날아간 난 다음 여명의 오망성을 찾을 수 있었고.
[무지개다리 (S)]
-촤아아아악!
그대로 무지개다리를 사용해 그곳으로 이동했다.
하늘에서 이어지는 무지개다리는 상상 이상으로 장관이다.
기념 삼아 사진 한번 찍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어?”
“왓 더 뻑킹 레인보우 어게인?”
오망성 위, 얼빵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이지키일 존 스페너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