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65층
문제가 해결하려면 그 원인을 없애면 된다.
결과의 부산물을 해결해 봤자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일은 계속해서 벌어지니까.
대림원은 여러모로 특이한 집합체.
연못의 등장과 함께 불화가 시작되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연못을 사용하는 것으로 뭉쳐 있다.
광란의 밤과 그에 따른 서열 전쟁, 각 부족끼리의 불화. 그 외에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으나 따지고 보면 소원 들어주는 연못이 없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들이 내게 준 소원권은 진짜 소원권이 아니다. 연못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거지.
‘다른 사람들은 여기를 어떻게 클리어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없애는 쪽으로 하겠어.’
나보다 먼저 탑을 오른 이들이 존재했으니 다른 방법도 있기는 할 거다.
대림원이 연못으로의 접근을 막기는 했겠지만, 어디까지나 60층대는 재앙을 없애는 것이 아닌 극복하는 것이 클리어 조건이니까.
“소원 들어주실 거죠?”
난 대표들을 바라봤다.
재앙에 소원을 빌지 않을 거다. 왜냐 내 소원을 들어주는 건 대표들이니까.
소원권을 이런 식으로 사용할지는 몰랐는지 머뭇거린다.
“크흠,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연못을 이용하면 많은 걸 얻을 수 있네. S급 이상의 스킬도 가능하고, 원하는 아이템도 얻을 수 있지. 등반에 필요한 것들 말이야.”
“그렇습니다! 물건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동료나 연인을 만나게 해 달라고 빌 수도 있죠!”
“물론 연못은 대가를 바라지. 그건 걱정 마. 자네의 소원은 우리가 빌어 줄 생각이니까. 오랫동안 연못을 사용한 만큼 많은 걸 알지. 대가를 최소화하는 것도 말이야.”
히포토스와 치킨맨이 설득을 한다.
맞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나는 등반가. 그것도 무한 코인 때문에 무조건 100층을 클리어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더 좋고 강한 스킬을 원하는 건 당연한 일. 아이템? 이제 하나 남은 펠라인 세트를 달라고 하고 싶다.
욕심을 부리자면 얼마든지 부릴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는데…….
“스킬, 아이템, 동료 다 좋지만 그것들은 이미 있어서요.”
지금도 충분하다.
다르게 말하면 펠라인 세트를 거의 다 모았다. 스킬 역시 스킬 합성이 있다. 게다가 릴카의 계승자가 되면서 일주일에 한 번 랜덤 뽑기도 가능하다.
아직까지는 꽝밖에 안 걸려서 신뢰도가 조금 낮아지기는 하지만, 분명 언젠가는 잭팟이 터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는 게 좋을 거다. 안 그러면 릴카의 정수리에 혹이 가득해질 테니까.
동료야 뭐, 이미 멤버들도 있고 연합 사람들도 있어서.
커뮤니티 켜는 게 두렵지 막상 연락하고 만나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어찌 된 게 탑 밖에 있을 때보다 탑에서 생긴 인연이 더 많은 거 같다.
“그대는 욕심이 없구료. 나, 고행은 그대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오.”
리아나를 짊어진 고행이 고개를 끄덕인다.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순위가 다를 뿐.
“뭘 고민해. 이거 계속 둘 거야? 나중에 일 터지면 감당 가능하고?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이었어. 안 그래? 큰 고양이야. 호랑이 체면에 약속 어길 거야?”
애초부터 연못에 좋은 감정이 없던 서량이 타이가를 보며 턱을 까딱였고.
“무슨 소리! 호랑이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암, 그렇고말고.”
다루기 쉬운 놈일세.
속말은 말하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이제 욕심을 접을 때가 됐어요. 언제까지 재앙에 사로잡힐 수는 없잖아요?”
“결단을 내릴 때가 왔습니다.”
이어 하월과 그레이까지 동의를 했고, 히포토스와 치킨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여기까지는 잘 진행이 됐는데.
“연못을 없앨 방법은 알고 있어요?”
현실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연못을 없애 달라는 소원은 들어주지 않소. 내가 이미 해 봤지.”
“어엉? 그런 소원 빌었었냐?”
고행의 말에 타이가가 입을 벌린다.
이건 의왼데, 고행도 연못이 사라지길 원했던 건가.
머리를 긁적였다.
예상은 했다. 소원 들어주는 연못이라고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재앙을 없앨 수 있으면 너무 쉽지.
팔짱을 끼며 미간을 좁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고민을 하며 손가락을 두들기는 그때 서량이 나섰다.
“아, 걱정 마. 없애는 방법은 내가 알고 있으니까.”
“정말이오? 서량!”
“내가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
다행히 정답은 서량에게 있었다.
“너희 연못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본 적 없지?”
“연못에서 씻은 적이 있기는 한데 잠수까지는 해 본 적 없네요.”
“…좋은 집 놔두고 왜 여기서?”
“뭔가 신비한 힘으로 피부가 좋아지지 않을까 해서요. 기분 탓인가, 조금 좋아진 것도 같네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하월을 바라보던 서량이 다시 주제로 돌아갔다.
“아무튼 내가 고양이의 본분도 저버리고 안에 들어갔다 이거야. 거기서 발견한 것이 이거!”
서량이 손가락을 튕기자 시커먼 파편이 나왔다.
바로 권능을 사용했다.
[소원 들어주는 연못의 자갈 파편]
-소원 들어주는 연못의 바닥에 깔린 자갈의 파편.
-물수제비가 잘 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별거 없는 정보였으나.
-츠즈즈즈즉!
권능에 힘을 더하자 추가 정보가 떠올랐다.
[소원 들어주는 연못의 자갈 파편]
-연못을 이루는 기본 토대의 일부.
기본 토대라, 서량이 말한 방법이 뭔지 알 것 같다.
“연못물 자체는 아무런 능력도 없어. 본체는 이거, 밑에 깔린 자갈끼리 결속이 되어 있거든? 바닥에 있는 자갈 다 떼서 꺼내면 사라질 거야.”
“의외로 간단하군.”
“아닐걸? 말했잖아. 결속됐다고. 나도 떼어 내기 힘들어서 긁어 온 게 전부야. 하지만, 흐흐흐!”
서량이 또 다른 물건을 꺼낸다.
마법 수식이 적힌 황금 모종삽과 시약이 담긴 병.
다크서클로 가득한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내가 방법을 찾아냈지. 알아내는 데 오래 걸렸다. 그동안 잠도 줄이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희가 아냐!”
부르르 몸을 떤 서량이 모종삽과 시약을 타이가에게 던졌다.
반사적으로 받아든 타이가가 멀뚱멀뚱한 눈으로 서량을 바라봤다.
“뭘 봐, 시약 풀고 모종삽으로 자갈 떼야지.”
“왜 내가?”
“그럼 내가 하리? 밥까지 떠서 먹여 줘? 아니면 소원 빈 사람한테 시켜?”
“그렇기는 한데.”
“출발, 사람 많네. 번갈아 가면서 하면 금방 하겠다.”
뭐라 항변하려던 타이가가 구시렁거리면서 연못으로 들어갔다. 같은 고양잇과라 그런가, 질색하는 표정이 적나라하다.
-뽀그르르
밑으로 잠수한 타이가, 수면으로 기포가 올라오는 듯하더니.
-콰아아앙!
-촤아아악!
-투두두두둑.
굉음과 함께 자갈이 쏟아졌다.
자신이 만든 물건들이 효과가 있자 만족스럽게 웃는 서량.
자갈은 계속해서 나왔고.
“푸하!”
“와아아아아! 타이가 멋져요!”
“훌륭하오. 역시 호랑이답소이다.”
“대단합니다! 나였으면 이렇게 못했을 겁니다!”
“한 번 더!”
“한 번 더!”
다른 대표들은 타이가를 우쭈쭈 해 주며 독려했다.
내심 기분이 좋은지 코를 긁적인다.
“그, 그런가? 하하하하! 내가 좀 하지! 기분이다! 좀 더 하고 올게!”
“대인배로군!”
“이게 타이가다!”
다시 안으로 잠수하는 타이가. 난 옆에 서 있는 서량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들 타이가를 다루는 솜씨가 익숙하네요.”
“머리 크기만큼 뇌가 크지 않은 죄지. 그러려니 해.”
약 1시간.
홀딱 젖은 타이가는 모든 자갈을 캐내는 데 성공했고, 다른 대표들은 보송한 모습 그대로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소원 들어주는 연못이 사라집니다.]
[64층 클리어!]
[혼돈 수치 +4점]
-우우우웅
포탈이 생성되었다.
* * *
연못은 사라졌다.
언제나 그렇듯 완전히 없앤 건 아니었다. 이곳은 탑이었고, 64층은 여전히 재앙 구간으로 남아 있어야 하니까.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대림원은 이동하질 않네.”
“그에에에.”
다른 60층대 마을과는 달리 대림원은 안전지대로 이동되지 않았다.
인구가 많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대림원이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탑의 의도일까.
아마 후자에 가깝지 싶은데. 지금이야 다들 욕심을 포기하고 연못을 없앴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거야 나중의 일, 지금의 대림원은 바뀌었다.
“더 이상 대림원은 연못을 이용하지 않을 겁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그레이가 말했다. 이미 대표들끼리 회의를 했다나.
나 역시 바로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이제 좀 비슷하게 만드네.”
“이래 보여도 장비 제작 A등급이라니까요.”
“꼴에 인챈트 스킬도 있고 말이야. 거기에 포션 제작까지. 흐음, 완전 잡캐네.”
“여러 방면으로 유능하다고 해 두죠.”
서량에게 자갈을 캘 수 있는 마법 모종삽과 시약을 만드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 이후에도 연합 사람들이 계속 올라올 거다.
대림원의 협조도 약속받은 상황. 필요 장비만 제공해 주면 다른 이들은 쉽게 이곳을 클리어할 수 있겠지.
여기서 한 가지 더 부탁을 했으니…….
“쁘띠공듀라, 이야기는 들었어요. 진짜 괜찮겠어요?”
“그럼요.”
“이상한 이름이군. 뭐, 좋아. 해 달라니 해 주는 수밖에.”
“본인의 공을 돌린다라. 마땅한 명예를 내려놓는 겸손함, 또 하나 배웠소.”
연못을 없애고 대림원의 협력을 얻어 낸 사람이 이블아이가 아닌 쁘띠공듀라고 말해 달라고 했다.
사실 둘 다 나지만 이들이 알 길은 없었다. 앞으로도 없어야 하고.
굳이 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위로 올라오면서 사람이 줄고 있어. 이블아이의 동선과 쁘띠공듀의 공략이 겹치는 걸 눈치챌 거란 말이야.’
이쯤 되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으나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법.
지금도 봐라.
[마지막잎새]: 공듀 님! 공듀 님……! 아아… 오늘도 목놓아 외쳐 봅니다. 쁘띠공듀!
[해파리컷]: 쁘띠이이EEE────겅듀!
[라임라이]: 60층 넘어가면 공듀 님 만날 수 있다는 게 실홥니까?
[해소리]: ㅇㅇ, 근데 님은 가기 전에 뒈질 듯?
[라임라이]: 넌 나한테 뒈지고^^. 잡혀 봐 그냥 콧구멍에 와사비를…….
[해소리]: 어허! 쁘띠!
[라임라이]: 사랑!
[해소리]: 평화!
[라임라이]: 오케이, 화해 완료.
└님들 혹시 ㅂㅅ이세요?
이런 놈들에게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다.
연합이 커져서 그런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많아진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인적성 평가해서 연합 사람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이준석]: 공듀 님 가라사대, ‘쁘띠공듀는 모두의 친구라구욧!’ 아아! 복창합니다.
[헬창12]: 쁘띠공듀는 모두의 친구라구욧!
[갈갈믹서]: 쁘띠공듀는 모두의 친구라구욧!
[니머리 탈모]: 쁘띠공듀는 모두의 친구라구욧!
[이준석]: 쁘─멘.
연합회장 녀석조차 이러고 있으니 할 말이 없네.
아니, 탈모맨 이 자식은 왜 저러고 있는 거야.
모르겠다. 이해하려 하지 말자. 원래 저런 놈이다.
이래저래 일은 많았으나 할 일은 모두 끝났다.
퀘스트도 완료했고, 보상도 두둑이 받았다.
수인의 친구 칭호도 받고, 혼돈 수치도 올랐다. 그 외에도.
[야수의 심장 (S)]
-야수처럼 대범하게!
-영물의 내단으로 만든 영약입니다.
S급 영약. 아주 귀한 거다. 이건 바로 섭취했다.
온몸에 힘이 가득 찬다. 스텟이 제법 오른 후부터는 어지간한 영약으로는 이런 느낌 못 받았었는데.
이대로만 간다면 80층에 도달하기 전에 충분히 999 스텟을 채울 거 같다.
다음은 이거.
[너구리 가면 (AAA)]
-가면을 쓰면 다른 사람의 얼굴로 짠!
-랜덤 성형을 경험해 보세요!
정체를 숨길 때 유용하게 쓰일 거 같은 물건이다.
나쁘지 않네.
[너구리굴 이용권]
-너구리 수인들의 은밀한 공간.
-뿌연 연기 속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비밀입니다!
불친절한 설명이지만 내 옆에는 하월이 있다.
난 이게 뭔지 알려 달라 했고…….
“아, 그거 스파 이용권이에요.”
“네?”
“스파요. 서비스 잘해 줄 테니 한번 놀러 와요. 티켓 찢으면 이동되고, 동반 1인까지 가능한데 이블아이는 특별히 3명까지 허용해 줄게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에요.”
찡긋. 하월이 윙크를 한다.
스파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 보든지 하고.
[발톱 단지 (???)]
-수인의 발톱이 담긴 단지.
-발톱을 뒤로 던지면 해당 수인의 특성 하나를 잠시 빌려옵니다.
-무엇이 걸릴까요?
마지막 거는 등급마저도 불분명하다.
이건 써 봐야 알 거 같은데.
“항상 느끼는 거지만 탑은 랜덤을 참 좋아한단 말이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걸로 할 일은 끝.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게.”
“잘 가요.”
“위에서 어떤 수인을 만나든 잘해 줄 겁니다!”
“부디 몸 건강하길.”
난 대표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포탈로 향했다.
리아나에 대한 건 묻지 않았다. 그건 이들의 영역. 내가 간섭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우우우우웅
익숙한 부유감.
빛과 함께 공간이 바뀐다.
* * *
[65층]
[재앙을 극복하시오.]
“여긴 밤인가.”
눈을 뜬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별 하나 뜨지 않은 밤.
야간 시야 덕에 보는 건 문제 없었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메시지창을 응시했다.
이번에는 어떤 재앙이 나타나려나.
난 천천히 드러난 정보를 살폈고.
“어?”
“그에?”
예상치 못한 이름에 입을 벌렸다.
이번 재앙, 내가 아는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