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손가락
그레이가 뛰쳐나갔다.
딱딱하게 굳었던 베히가의 피가 새로운 시신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녹아 함께 흐르고 있다.
비릿하다 못해 자극적이기까지 할 정도로 강렬한 피 냄새.
신체 능력이 향상되며 오감 또한 발달하다 보니 후각 역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코를 찡그리며 상황을 살피기도 전에 시선을 돌렸다.
내가 보고자 하는 건 각 대표의 반응.
이들은 모르겠지만 난 안다.
똑같은 수법이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 시체는 배에 팔뚝만 한 나뭇가지가 박혀 있다는 것.
‘제길.’
빠르게 대표들과 수색대원의 표정을 확인했다.
만약 이들 중에 범죄와 관련된 이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티를 내겠지.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에.”
순간적으로 등에 소름이 돋았다.
모두가 홀리기라도 한 듯 시체를 바라보고 있다.
흘러가는 피를 따라 눈알이 굴러가는 이들도 있었고, 침을 삼키는 이도 있었으며, 억제력이 떨어지는 이의 입가에는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코를 움찔거리는 이까지.
글러 먹었다. 이따위 반응이면 전원이 범인 같다.
그나마 제정신으로 보이는 사람은 셋.
연신 곰방대를 물고 연기를 뱉어 내는 하월.
발을 떨며 코를 찡그리고 있는 토끼 수인 리아나.
입을 다문 채 팔짱을 끼고 있는 곰 수인 고행.
“다들 정신 차려요!”
내가 소리를 지르자 화들짝 놀란 이들이 몸을 추스른다.
아주 미약하지만 동족을 감싸 안은 그레이의 어깨도 떨렸던 것 같다.
돌아버리겠네.
“잠깐 상처 좀 보겠습니다.”
“그, 그럽시다.”
그레이를 뒤로 보내고 죽은 견인족을 살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수법은 동일해 보이지만 차이점도 있다.
손가락 세 개가 잘렸다는 것.
범행이 벌어진 시간대도 다르다.
“밤에 당한 거 같군요.”
시체는 이미 차가워진 지 오래.
몸도 딱딱하다, 손가락 끝까지.
못해도 5시간은 지났다는 건데… 새벽같이 움직였으니 사실상 해가 떨어지고 오래지 않아 죽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배에 박힌 나뭇가지를 조심스레 뽑았다.
관통상. 척추까지 부러졌다. 즉사하기 충분하고도 남는 치명상.
이어 목 뒤까지 확인했으니…….
‘확실히 똑같아.’
목뼈에 닿을 정도로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
다시 체크 해도 마찬가지.
사고 위치까지 동일하다는 건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거겠지.
설마 모르토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말도 안 돼. 겔릭은 뛰어난 전사입니다. 이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단 말입니다!”
그레이의 외침을 듣자니 좀 애매해졌다.
모르토가 그렇게 강하나? 내가 느끼기에는 아니었는데, 본인도 전투 쪽과는 거리가 있다고 했었고.
물론 베히가의 경우가 있기는 하다.
“베히가도 당한 걸 모르나, 그레이.”
히포토스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안색을 굳혔다.
“생각보다 위험한 놈이야. 수색대들도 강하기는 하지만 발이 빠르고 탐색 능력이 더 뛰어나지, 진짜배기 전사와 싸우면 크게 다칠지도 모르네.”
“흥! 그건 너희 늑대들이나 그렇겠지. 호인족은 다르다.”
“닥쳐, 큰 고양이.”
“고양이 무시하냐?”
수색대의 안위를 걱정하는 히포토스와 비웃는 타이가. 말싸움에 휘말려 발끈하는 고양이 수인 서량.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말 몇 마디만 해도 개판이 되네.
주변에 있던 이들도 셋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레이만이 침통한 얼굴로 이를 갈 뿐.
차라리 잘됐다. 잠깐 싸우게 두자.
저기는 저쪽에 맡기고 난 흔적을 찾자.
주의 깊게 상처와 주변 환경을 살폈다.
‘달라.’
워낙 피가 진창이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피가 미친 듯이 쏟아지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며 과다출혈이 된 거지.
미묘한 차이점. 단순히 스킬을 더 했냐 안 했냐의 차이기는 하다.
‘다시 보니 목 뒤 상처도 조금 다른 거 같기도 하고.’
한번 의심이 들어서일까 상처도 살짝 달라 보인다.
조금 더 폭이 얇은 느낌이랄까.
이건 잘 모르겠다. 나도 의사가 아니라 눈대중과 감각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어서.
확인해 보겠다고 베히가의 시신을 끌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미 시간이 지나서 상처가 변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음으로 신경 쓰이는 건.
‘핏방울.’
대략 4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
나뭇가지가 부러진 나무가 보였다.
그곳과 이곳을 잇는 길을 따라 적지만 핏방울이 떨어져 있고.
손에 쥔 나뭇가지를 쥐고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이어 부러진 단면을 맞추자.
“이 나무였군.”
딱 들어맞는다.
강력한 힘으로 내던져져 나무 기둥에 꿰뚫린 건가.
가능한가를 따지지 말자. 어떤 식으로든 가능할 거니까.
스킬이든 권능이든 아이템이든 방법은 차고 넘친다.
“여기서 죽은 겁니까?”
“네, 그레이.”
자신의 동족이 죽은 것에 분노한 것일까.
눈가가 붉게 달아오른 그가 이를 드러냈다.
“범인을 반드시 찢어 죽일 겁니다, 반드시!”
“범인은 잡힐 겁니다.”
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수행원으로 따라온 수색대들의 절반은 혹시 모를 범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흩어졌고, 남은 인원은 이곳으로 다가올 이들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서러 나갔다.
현장에 남은 건 나와 대표들.
“치명상으로 보이는 건 두 곳. 목 뒤와 복부 관통상. 과다출혈은 부차적이니 패스. 범행 시각은 해가 지고 한두 시간 뒤. 범행 장소야 이곳이고. 특이 사항이 있다면 손가락이 잘렸다는 것.”
대략적인 상황 정리를 마치자 치킨맨이 손을 들었다.
“밤에 몰래 나간 이가 범인 아니겠습니까!”
“그건 몰라, 범인이 밖에 있는 걸지도 모르니. 겔릭이 왜 야밤에 나갔는지가 중요하네. 자의든 타의든 나갔다면 본인 잘못이지. 밤에는 마을에, 그게 우리 규칙 아니었나?”
“히포토스!”
“규칙은 규칙이네, 그레이.”
히포토스의 말에 그레이가 이를 드러냈다.
똑같이 동족을 잃었지만 상황이 다르다.
야행 금지.
베히가는 낮에 죽었으나 겔릭은 밤에 죽었다.
규율을 어겼다.
밤에 나가는 건 동족 포식과 광란의 밤을 긍정하겠다는 뜻.
밖에서 어떤 일을 당하든 본인의 불찰이라는 게 히포토스의 의견이었다.
말이야 바른말일지 모르지만.
“그걸 지금 언급해야겠어요?”
“소인의 생각도 그렇소.”
“눈치 없는 털쟁이!”
다른 이들의 반응대로 시기가 적절치 않다.
은근히 피어오르는 불화.
그래, 이게 재앙이지. 이용하기는 개뿔. 벌써 휘둘리는구만.
아직까지 재앙에 의한 사건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난 그럴 거라고 확신이 든다.
뭐가 됐든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온 상태.
모르토는 괜찮으려나, 범죄가 밤에 일어났다면 마주쳤을 가능성도 있는데.
하긴 마주쳤다면 이곳에는 겔릭이 아니라 모르토가 누워있지 않았을까.
범인이 일부러 살려 둔 게 아니라면.
“그레이, 겔릭이 밤에 밖에 나갔을 만한 이유가 있소?”
“딱히 없을 겁니다. 있더라도 개인 사정이었겠죠. 개인의 마음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를.”
웅인족 고행이 작게 묵념하고.
묘인족 서량이 나섰다.
“뭐가 됐든 범인이 아직 살아 돌아다닌다는 건 맞네? 흐흐. 아주 우리를 놀리고 있어.”
이건 동의한다.
같은 위치에서의 범죄라니. 우롱하겠다는 것과 같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이곳으로 올 걸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닐까요?”
“일부로 보이기 위한 짓이라.”
“도전이군, 도전이라 볼 수밖에 없어. 잡히면 다짐육으로 만들어야겠군!”
“타이가 제발 닥쳐요. 다들 수색대를 꾸릴 때 은밀히 진행했나요?”
주먹을 치는 타이가의 얼굴을 밀친 하월이 대표들에게 물었다.
기본 상식이라는 게 있다면 내부에 범인이 있을 걸 염두에 둬서라도 은밀하게 움직였을 거다.
“물론이다.”
“그렇소.”
“우린 원래 은밀해.”
“응!”
“견인족은 수색대가 항상 있지.”
역시.
은밀하게 움직였구나.
“앗? 조용히 움직이는 거였습니까? 하하! 그건 몰랐는데요.”
“크흥! 호인족은 언제나 당당하게 움직인다.”
“그걸 왜 말해 멍청이들아!”
머리를 긁적이는 둘을 향해 리아나가 발끈했다.
오케이.
닭대가리랑 호랑이는 생각이 없다.
놀랍지도 않네.
다들 날카로운 눈으로 둘을 노려본다.
“아, 아니. 어차피 밤에는 다들 가만히 있지 않습니까. 나가는지 감시도 제대로 한다고요!”
“우린 평소에도 늘어지게 잔다. 밤에 안 나가.”
뭐라 항변하는 둘.
자는 건 또 자랑이다.
“후우, 일단 두 부족에서 정보가 샜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네요.”
“아니라니까!”
-쿠웅!
타이가가 주먹을 내리쳤으나 반응하는 이는 없었다.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볼 뿐.
이때다 생각한 걸까, 하월이 말을 이었다.
“범인이 진짜 밖에 있었다면 시신을 여기다 놔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저는 내부에 있다고 봅니다.”
정보가 샌 쪽이 가장 의심스러워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의도했든 아니든 새 부족과 호랑이 부족에 정보가 퍼진 건 사실.
감시하는 이들이 있다 하더라도 작정하고 몰래 나가려고 한다면 피할 수 있었을 거다.
밤에 나가는 건 금기고, 상황을 봤을 때 금기는 잘 지켜지고 있었으니까.
“호랑이 부족과 새 부족 중 겔릭을 불러낼 수 있는 자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겠소.”
“그렇긴 해야지. 닭대가리야 닭대가리답게 했고, 타이가야 타이가답게 한 짓이라 이해는 되는데 확인은 해야 하잖아.”
“나도 동의한다.”
고행을 시작으로 서량, 히포토스 역시 동의한다.
“조사 및 심문은 우리도 같이할 거야! 자체적으로 하면 몰래 숨길 수도 있으니까!”
리아나 역시 나섰다.
좋은 지적이다. 자체 수사만큼 못 미더운 게 없지.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고 용의자를 감쌀지도 모르니까.
분위기가 기울었다.
치킨맨과 타이가도 불만은 있어 보였으나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했다.
“그레이, 시신 수습하게나.”
“알겠습니다. 안식이 우선이죠.”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뒤.
그레이가 옷을 벗어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고, 다른 대표들도 보초를 서던 수색대원들을 불러 모으러 움직이려 했다.
마을로 돌아갈 생각.
바로 그때.
-삐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는 우리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양쪽에 수색대를 동원한 채 나타난 건 고양이 수인.
“토끼 부족 마을에서 손가락이 발견됐습니다!”
급하게 뛰어와 숨을 헐떡이던 묘인족이 품에서 천으로 감싼 물건을 꺼냈다.
“뭐? 줘 봐.”
묘인족의 대표 서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천 보따리를 받아들더니 대표들 사이로 들어갔다.
서로 마주치는 시선. 모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사락
그녀가 천을 열었다.
완전히 열기도 전에 보이는 붉은 자국.
이어 내부에는…….
“손가락이군.”
“그레이, 확인해 봐!”
“…겔릭의 손가락이 맞습니다.”
죽은 자의 손가락이 있었다.
리아나가 입을 떡 벌린 채 굳는다.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으나 손가락은 진짜였다.
“그래서, 어디가 의심스럽다고? 우리한테 멍청하다고 했나. 그러는 넌 속이 음흉하구나. 무능한 건가? 자기 마을에 범인이 있는 것도 모르고.”
타이가가 빈정거리며 앞으로 나온다.
“축하한다, 그레이. 히포토스. 이참에 토끼 고기로 잔치라도 벌이지.”
“뭐 이 새끼야!”
“워워! 다들 스탑!”
급격히 안 좋아지는 분위기.
난 둘 사이를 갈랐다.
“손가락이 나온 건 맞습니다. 맞는데 범인인지는 확인해야죠. 내가 도둑질해서 타이가 주머니에 넣는다고 타이가가 범인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범인이 맞다면 그땐 그때 여러분 마음대로 하세요.”
나를 향해 쏟아지는 살기.
제법 따끔했지만 가뿐히 무시해 줬다.
“지금은 마을로 돌아갑시다.”
“이블아이 말이 맞아요. 가서 보자고요.”
“성급할 것 없소.”
다행히 하월을 시작으로 내 말에 따라 줬으며.
“심문은 내 눈앞에서 해야 할 거야.”
“얼마든지요.”
“쯥!”
타이가 역시 혀를 차더니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