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수색에 나서다
하월의 물음.
해가 저물어가는데도 모르토가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다.
당연하다, 모르토는 지금 밖에 있으니까.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소원 들어주는 연못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겠지.
난 혀를 잘근 씹었다.
‘어쩐지 그 녀석, 밖에서 연못을 찾겠다면서 비장한 표정을 지었지.’
당시에는 NPC씩이나 되는 놈이 뭘 그리 생색을 내나 했다.
게다가 너구리는 따지고 보면 야행성 아닌가.
탑도 올랐던 녀석이 밤에 돌아다니는 걸 무서워할 리 없다 생각했는데.
‘밤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규칙이 있던 건가.’
멍청한 녀석이 이런 건 또 왜 말을 안 한 거야.
조금 어벙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정보는 말해 줘야야 했는데.
범인 찾기에 혈안이 된 이들도 야간 이동을 포기했다.
반드시 이유가 있을 터.
“밤에 나가면 안 되는 이유가 확실히 뭔지 알 수 있습니까?”
“아직 제 질문에 답하지 않았어요.”
하월 역시 순순히 넘어가지 않는다.
서로 원하는 게 있다.
그리고 서로가 원하는 답을 알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녀는 확신보다는 예측이겠지만.
그래, 밑밥 좀 던져가면서 하자.
“그 질문에 대답해도 믿을 수 있겠어요? 제가 모르토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데요.”
“이미 봤군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봤다고는 말 안 했는데요?”
내 대답에 그녀의 미간이 좁아진다.
모르토를 봤다는 걸 알아차릴 수는 있겠지만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오로지 나만 알고 있다는 뜻.
톡. 가볍게 재를 털어 낸 하월이 날 지그시 바라본다.
“재밌군요. 거짓말을 하려거든 해 보세요. 너구리는 거짓말 정도는 간파할 수 있으니까요. 저처럼 오래 살았다면…….”
스아아악.
순간 그녀의 눈에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들었고.
“속마음을 들여다볼지도 모른답니다.”
[SS급 권능, 마음을 엿보는 눈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정신 보호 (S)’가 저항합니다!]
[저항 실패!]
[마주 보는 시선에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노려봅니다!]
[상대의 시야가 대부분 차단됩니다.]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
이 기분 안다.
현자 존 트레일러를 만났을 때 잠깐이지만 느꼈다.
그의 권능은 SSS급 현자의 눈.
그것과는 수준도, 결도 달랐지만 묘하게 닮은 권능.
당시에도 내 권능이 반응했었지, 지금과 달리 조금은 온화했지만.
비슷한 계열의 권능은 이런 식으로도 작동하는 건가.
뭐, 됐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눈에 띄게 놀란 하월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지금 건 실례인 거 아시죠?”
“그에에에.”
덕춘이도 낮게 울었다.
남의 속마음을 읽으려 하다니.
나도 비슷한 느낌으로 정보를 읽는지라 뻔뻔하게 나가기도 애매했다만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지.
“설마 통찰 계열의 권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것도 꽤 상위급.”
“칭찬은 고마운데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인 거 같네요.”
“그렇네요. 미안해요. 실례했어요.”
“사과 받아들입니다. 대신 대답은 해 주셔야죠?”
시도해서 성공했다면 모를까 실패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직접적인 해를 끼친 게 아니니 원하는 정보를 얻는 선에서 끝낼 생각.
사실 억지로 더 요구한다고 들어줄 것도 아니고.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누른 하월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죠. 수작질을 한 건 저니까요. 그래도 놀랐어요. 통찰 계열 권능뿐 아니라 다른 권능까지 있을 줄이야.”
“거기까지 봤군요.”
대부분의 시야를 가렸다 했지 전부 다라고는 안 했으니까.
권능이 여러 개인 것까지는 알아차렸나 보다.
“네. 이름이 조현수였다가 이블아이였다가 쁘띠공듀였다가. 상당히 어지럽더군요. 친근한 이들의 모습도 해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황금빛에 은색에 괴상한 그 무언가까지. 내부를 비틀고 감추는 권능까지 있더군요. 으으, 혼란해.”
…권능 아닙니다. 제대로 본 거 맞아요.
뭐라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는 게 더 손해인 거 같아 입을 다물었다.
권능 종류가 달라서 그런가 나처럼 정보가 뜨는 게 아니라 심상 같은 걸 보는 형식인 거 같다.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친구들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냥펀, 핥짝이, 탈모맨! 고마워!
[정신 보호 (S) Lv.7]
[스킬 레벨 업!]
[정신 보호 (S) Lv.8]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그녀가 정신을 차릴 때 동안 기다렸고.
후우.
그녀의 입김에 날아온 나뭇잎이 내 앞에 내려앉았다.
-잘그랑
찻잔으로 변한 나뭇잎.
“백목차예요. 집중력을 올려 주죠. 잘 나가는 차이기도 하고요.”
마찬가지로 자기 앞에도 찻잔을 만들어 낸 그녀가 호록, 차를 삼켰다.
밤을 나서지 않는 이유.
단순한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안을 위함일까.
-짝짝
하월이 손뼉을 쳤고.
“너굴맨.”
그녀의 부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작고 귀엽게 생긴 너구리 수인이 나타났다.
마치 신기루처럼 그 자리에서 나타난 인물.
지금까지 숨어 있던 건가, 전혀 몰랐다.
까만 눈동자가 반짝인다.
“주변에 엿듣는 사람이 없도록 감시해요.”
“너굴맨만 믿으라구!”
하월의 명령에 쏜살같이 사라지는 녀석.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 그 뒷모습을 바라봤고.
“뭔가요?”
“너구리 부족 최고 해결사죠. 자, 보안은 이거면 될 거 같고. 야행 금지에 대해 물으셨죠. 그러기 위해서는 광란의 밤을 말할 수밖에 없겠네요.”
태연하게 다리를 꼬며 앉은 하월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새벽.
숲속에 위치한 대림원의 새벽은 다른 곳보다 어두컴컴했으나, 이파리 사이로 보이는 미약한 빛은 해가 뜨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새벽이슬이 맺힌 잎사귀.
본디 아침을 알리는 열기가 말려야 마땅했으나.
-쿠웅, 쿵
-구구구궁
“가자! 움직여라, 굼벵이들아!”
“베히가의 넋을 위로하라!”
“저 시끄러운 호랑이 새끼들, 송곳니 다 뽑아 버리고 싶네.”
“새대가리는 닥쳐!”
“화내지 말지어다. 마음을 다스려야 참극을 면하리니.”
각 부족에서 몰려든 수색대에 의해 닦여 나갔다.
총 여덟 부족.
집결지는 동쪽 입구.
그 수가 예순네 명.
나까지 합치면 예순다섯.
부족당 여덟 명씩만 차출했음에도 이 정도다.
대림원을 둘러싼 숲은 광범위하다. 오픈 필드인 만큼 생태계까지 갖춰진 곳.
누군가 본다면 100명도 안 된다고 할지도 몰랐으나 이들 전원 상위층에 올라간 실력자.
범인 색출에 열이 오른 만큼 선별된 이들이 모였으니 전력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거기에 각 부족의 대표까지.
말이 수색대지 범인 수색 및 확보까지 확실하게 끝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이건 뭐 전쟁하러 가는 수준이군.”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옆에 있던 하월이 혼잣말을 거들었다.
여기만 이 정도지 마을 내부에서도 범인 색출을 위한 작업이 시작됐을 거다.
숲 밖에 범인이 있을 가능성이 클 뿐이지 마을 내부에 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진짜 신경 써야 할 건 그쪽일지도 몰랐다.
그렇다 한들 사람의 몸은 하나. 양쪽을 동시에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으니 가능한 내가 주도할 수 있는 곳에서 움직이는 게 정답.
“다들 기본적인 사항은 다 들었겠지요?”
무장을 한 견인족 대표 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적당히 나서기 좋아하고 침착한 편이라 그레이가 대부분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
“협동적으로 움직이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대림원은 각 부족의 특수성을 존중하니까요.”
어떤 수인이냐에 따라 수색 방법은 천차만별.
억지로 짜 맞추느니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는 편이 효율이 좋았다.
다들 그걸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고.
“각 대표들은 수행할 수색대원 두 명을 대동한 채 현장으로 갑니다. 나머지 수색대원들은 팀을 이루든 개인으로 움직이든 알아서 수상한 자의 족적을 찾으시고요. 위험하면 신호 보내세요.”
지급 받은 호루라기를 만지작거렸다.
목에 걸 수 있게 끈이 있었고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사이즈.
불면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나.
귀가 좋은 수인이라면 더 멀리서도 알아차린단다.
이런 건 좋네.
“인원 배부는 이미 다 했을 거라 믿습니다. 그럼 바로 개시하시죠. 반대하시는 대표 있습니까?”
그레이가 주변을 살폈고 역시나 반대는 없었다.
작전 개시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침묵의 긍정이 인식되는 순간 모두가 움직였으니까.
“호인족의 자긍심을 가지고 찾아라, 얼간이들아!”
“수색하면 견인족이지.”
“깨갱거리면 구하러 가 줄게. 토인족 귀 좋은 거 알지?”
“끌끌끌, 네발 달린 짐승들. 하늘을 날면 될 것을.”
“뭐래 병신이, 나무에 가려서 보이겠냐.”
경쟁하듯 뛰쳐나가는 게 화목하니 보기 좋구만.
저쪽은 알아서 하라 하고.
“우리도 갑시다.”
나 역시 대표와 수색대원들을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들 피지컬이 뛰어난 관계로 이동 속도는 빨랐다.
숲길을 달리고 관목을 뛰어넘었으며, 어정쩡하게 길을 막고 있는 나무는.
“어흥!”
호족 대표 타이가가 몸통으로 박살 내 버렸다.
그 모습에 입을 가리는 대표들.
“어흥이라네요.”
“와, 소름.”
“아아, 짐승이로다.”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수인족에게 짐승다운 행위는 치부 비슷한 무언가 같다.
본질이자 문화, 동시에 역사이기도 하기에 없앨 수는 없으나 완전히 짐승이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
히포토스도 비슷했다. 옷을 잘 차려입고 다니며 야성을 숨겼으니까.
음, 모르토도 물 거냐고 물으니까 살짝 움찔했었지.
처음에는 수인족 간의 예의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지난밤 하월이 내게 해 준 이야기가 있으니까.
야행 금지.
동족상잔의 비극.
소원 들어주는 연못이 불러온 참사.
‘광란의 밤.’
내면의 야성을 인정하고 약육강식의 진리를 받아들이자.
누구의 소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
누군가 소원을 빌었던 그날 밤. 지금과 달리 사이가 좋지도, 함께 살지도 않았던 이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했고 피가 대지를 적셨다.
육식 계열이 초식 계열을 압도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말 그대로 짐승이라면 모를까 이들은 수인이었고, 얼마든지 개인 역량으로 상대방을 뛰어넘을 수 있었으니까.
그날 밤을 시작으로 열흘.
수인의 35퍼센트가 죽었다.
…여기까지가 하월의 말이었다.
가뜩이나 멸망하던 세계. 같은 수인끼리도 이 사달이 났으니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다.
더 볼 필요도 없이 탑에 있는 것만 봐도 알지.
그랬던 이들이 어째서 지금은 싸우지 않는지, 연못을 포기하지 않고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월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고.
나중에 따로 물어볼 계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타앗
허리까지 올라오는 바위를 박차고 앞으로 뛰어내렸다.
초입부에 가까워졌다.
낯익은 형태의 바위와 나무들이 보인다.
“거의 다 왔습니다.”
생각을 잠시 멈춘 난 손을 들었다.
일제히 속도를 줄이는 이들.
미리 합이라도 맞춘 듯 자연스럽다.
“현장을 훼손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히 따라오세요.”
“흐흐음, 이미 다 엉망인 거 아닌가? 다들 알잖아. 늦게 온 거.”
“그래도 조금의 흔적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묘인족 대표 서량이 꼬리를 흔들며 말하자 치킨맨이 핀잔을 준다.
“응, 그래. 긍정적이라 좋다, 우리 닭대가리.”
“가자! 빨리 가자아아!”
토인족 대표 리아나까지 보채자 다시금 이동이 시작됐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현장.
간헐적으로 보이는 검게 굳은 핏자국.
코를 찌르는 혈향.
그리고…….
-주르르륵
“겔릭!”
베히가가 죽었던 그 자리에.
견인족 한 명의 시체가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