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피 냄새가 난다
난 히포토스의 안내를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전부 늑대 수인이다.
대림원의 모두가 수인이라 하지만, 각 부족에 따라 성향과 문화가 다른지라 각자의 영역은 인정해 준다나.
특히나 영역에 민감한 이들도 있어서 그런 경향이 강했다.
늑대 수인도 그런 쪽이었고.
‘제법 잘해 놨네.’
그동안 거쳐 간 60층대 마을이랑은 구조 자체가 달랐다.
마을 외곽에서부터 보안을 위한 순찰대가 보였고, 큼지막하게 지어진 마을은 역할에 따라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그 외 잡다한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사람들도 서로 사이가 좋은 거 같고.
재앙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낯설다. 탑에 이런 곳이 있어도 되는 건가?
내 심보가 꼬인 게 아니라 시스템은 확고한 면이 있다.
허술할 때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 자유롭고 창의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열어 둔 거라 보는 게 맞았다.
의도한 바가 있고 그에 따라 역할이 주어진다.
등반가라면 몰라도 NPC는 탑의 의지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60층대는 수행할 과제가 분명한 층.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놔둘 리가 없었다.
‘지나친 불신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봐 왔던 건 그래.’
탑을 오르면서 가장 중요한 소양 중 하나는 자신을 믿는 것.
아무리 믿기 힘든 일이 있더라도 직접 확인했다면 믿을 것.
수인들의 집단, 대림원. 이곳에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뭔가가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거야 지내다 보면 알 수 있을 거고.
‘모르토는 잘하고 있으려나.’
그리 정감 가는 녀석은 아니었지만 이미 엮여 버렸다.
처음에는 때려치울까도 했지만…….
“하하하, 어떤가? 다들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지. 화합, 평화. 비록 세계는 멸망했지만 탑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
“그렇군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광경입니다.”
자랑하듯 마을을 구경시켜 주는 히포토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차라리 놈이랑 함께한 게 다행인 것도 같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위화감이 떠나질 않는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이들.
훌륭하게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사냥꾼들.
비록 아이와 노인은 없지만 단란한 느낌이 들었다.
보이는 대로면 그게 맞는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겉만 보고 믿지 말자. 웃는 낯 아래 숨겨진 진실을 봐야 한다.
난 분명히 이들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흉포함을 봤다.
아무리 단정하게 옷을 입고 화기애애한 척 있더라도 본능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야성은 숨길 수 없으니까.
단순히 감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 감으로 위기를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감이 아니더라도…….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즉
[히포토스- NPC]
-대림원 늑대 부족의 대표.
-한때 ‘은빛 갈퀴의 포식자’로 불렸었습니다.
-발톱을 숨겨도 야수는 야수.
-까불다가는 앙! 깨물지도 몰라요!
깨문다고 하니까 귀여워 보이지만.
“우리는 도축도 제법 하지. 칼도 필요 없어. 손톱으로 쓱 긁으면 되거든, 맛 좀 볼 텐가?”
“괜찮습니다.”
“하하하! 그래. 인간은 몬스터 고기를 못 먹지. 내가 실수했군.”
근처에 정육점, 손톱으로 몬스터 고기를 잘라 버린 그가 입을 벌리자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한번 물리면 살점 조금 뜯기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모든 수인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늑대 수인들의 외형은 사람보다는 늑대의 모습이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길게 뻗은 주둥이, 까만 코, 몸을 감싼 털.
숨길 생각 없이 드러낸 발톱.
잠깐이지만 고기를 바라본 히포토스의 입가에 침이 흐르는 걸 봤다.
이가 근질거리는지 입맛을 다시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모르토도 내 어깨를 잡고 으르렁거렸네.
본능적인 행동인가.
그건 그거고.
“베히가의 장례는 언제 치를 생각입니까?”
예상과 달리 히포토스는 베히가의 죽음에 분노하면서도 별다른 행동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인지도가 많은 만큼 곧장 장례식을 치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장례는 나중에 치를 거야. 놈을 죽인 원흉을 해치우지 않으면 베히가도 눈을 감지 못할 테니.”
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찰나의 순간 살기가 감돌았다.
착각일까, 그의 입꼬리 끝이 미미하게 올라갔다 내려온 거 같은 건.
“범인은 우리 중에 있지. 늑대 부족뿐만 아니라 대림원 전체가 나설 걸세.”
“다른 변수는 생각하지 않는군요, 사고라던가.”
내 물음에 히포토스가 피식 웃었다.
“베히가는 강한 전사라네. 무려 92층까지 올랐던 녀석이니까. 밖을 봐.”
그가 팔을 휘두르며 숲을 가리켰다.
생태계가 갖춰진 숲.
작은 동식물부터 시작해서 몬스터까지 배회한다.
인위적으로 몬스터만 몰아 두었던 하위층과는 결이 다르다.
이곳은 이미 하나의 세계나 마찬가지.
그곳에 자리 잡은 집단이 대림원이다.
64층에서 그들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몬스터. 이미 숲은 우리의 영역이지. 6성급이어도 상관없어. 그딴 마물은 상대가 되지 못하지.”
동의한다. 나도 6성급 몬스터를 상대로 죽을 자신이 없거든.
92층까지 올라갔다면 손가락만 써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재앙이 있지 않습니까. 이곳 64층에는 말입니다.”
이걸 물어보고 싶었다.
이들은 재앙에 대해 침묵한다.
겉도는 모르토마저 말할지 말지 고민했을 정도인데 무리의 대표를 맡고 있는 히포토스는 어떠려나.
“…재앙이 문제였다면 우리는 이곳에 터를 잡지도 못했어. 자네도 시신을 수습했으니 알겠지. 베히가는 살해당했네. 몬스터도 등반가도 아니야. 범인은 같은 수인이지.”
역시나 말을 회피한다.
다른 걸 떠나 범인이 수인인 건 동의하는 바다.
일단 모르토가 배를 찌른 건 맞으니까. 목 뒤의 상처가 의문이지.
적당히 걸어가며 잡담을 이어 나갔다.
“등반가는 NPC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시네요.”
“얕보는 건 아니네만 자네 세상에는 특별히 강한 존재가 없는 거 같더군. 다들 평범해. 간혹 무골을 지닌 자도 있지만 완성된 영웅은 없지. 다르게 말하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고.”
나를 달래듯 히포토스가 어깨를 두들겼다.
인자한 표정에는 약자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이용할 생각이지.
“저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겠네요. 베히가를 이길 수 없으니까요.”
“가능성은 열어 두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일 걸세.”
속으로 미소 지었다.
원하던 답이 나왔다.
“그럼 제가 이번 수사에 끼어도 되겠군요. 시신을 처음 발견한 것도 저고, 현장을 확인한 것도 저니까요.”
내 말에 히포토스가 얼굴을 찌푸렸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도 내심으론 나의 도움을 원하고 있었을 거다.
어찌 됐건 베히가의 죽음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협조 요청을 하기도 전에 도움을 주겠다 하면 이들 입장에서는 땡큐지.
“안 그래도 정식으로 요청하려 했다네. 선뜻 도와준다니 고맙군.”
“친한 수인이 하나 있어서요.”
“그런가. 자, 안으로 들어가지.”
히포토스가 끝을 모르게 자란 나무를 중심 삼아 층층이 쌓아 올린 건물로 들어섰다.
흙과 나무로 만든 거 같았는데 놀랍도록 튼튼해 보였다.
뻥 뚫린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와 따뜻한 느낌이 드는 내부.
-우우우웅
난 히포토스와 함께 마법진 위로 올랐고.
“대회의실로.”
“네. 알겠습니다!”
그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마법진을 지키던 수인이 마법을 가동했다.
미미한 진동.
포탈을 지날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한순간에 변화하는 시야.
-우우우우
떨림이 멈추고 마법진이 빛을 잃자 새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 * *
건물 최상위층인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이 아찔하다.
못해도 수십 미터. 어쩌면 100미터가 넘어 보이는데. 나무가 이렇게 길게도 자라는구나.
게다가 건물을 지은 수인들도 대단하지만…….
“다들 모였군요.”
“회의를 시작합시다.”
잠시 경치에 눈길이 팔린 사이, 히포토스는 원형 회의장 의자에 앉았다.
옆의 의자를 당겨 앉으라고 손짓하길래 곁에 앉았다.
대림원 전체가 나선다기에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진짜 각 부족의 대표들이 전부 모인 모양.
‘내 자리가 왜 있는 거지?’
살짝 의문이 들었으나 오래지 않아 풀렸다.
준비된 의자는 아홉.
이곳에 모인 부족은 총 여덟.
늑대, 고양이, 호랑이, 개, 너구리, 토끼, 곰, 새.
어디에도 여우는 없었다.
붉은 여우 수인 릴카의 동족은 어디에 있는가.
가슴이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탑에 있다 보면 포커페이스에도 요령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쪽이 베히가를 수습한 등반가군요. 모두를 대표해 고마움을 전합니다.”
맞은편에 있던 견인족이 고개를 숙였다.
다른 이들도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고 나 역시 그에 맞춰 예를 표했다.
“바로 본론으로 돌아가죠. 우리는 베히가를 죽인 배신자를 찾을 겁니다, 등반가 씨.”
“이블아이입니다.”
“예. 이블아이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와 함께 생성되는 퀘스트창.
[대림원의 배신자– 돌발 퀘스트]
-아랑족의 전사, 베히가의 죽음.
-범인은 수인입니다.
-대표들을 도와 범인을 찾아내시오.
-보상: 수인족의 친구 (칭호), 야수의 심장 (S), 발톱 단지 (???), 소원권
심플하다.
야수의 심장은 스킬 아니면 영약인 거 같고, 수인족의 친구는 얻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은 두 개는 모르겠지만.
‘발톱 단지는 뭐야, 소원권은 또 뭐고.’
등급 불명의 아이템과 두루뭉술하기 짝이 없는 소원권.
저런 걸 보상으로 내세우는 건 처음 본다.
제대로 퀘스트에 등록이 된 걸 보니 사기는 아닌 거 같은데.
나쁜 건 아니겠지.
난 퀘스트를 승낙했다.
짝짝. 박수를 치는 견인족.
“빠르게 진행합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범인은 우리들 사이에 숨어 살아 숨 쉴 테니까요.”
“상상만 해도 역겹군. 피로 손을 씻어야겠어.”
“끔찍한 일이야. 동족을 살해하다니.”
견인족의 발언에 호인족과 웅인족이 반응을 보인다.
조인족은 팔짱을 낀 채 침묵하고 있었고, 토인족은 커다란 귀를 까딱이며 습관적으로 다리를 떨었다.
분개하는 듯 보였지만 왤까, 공기 중으로 퍼지는 흥분의 기운은.
“이블아이 씨, 현장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줄 수 있을까요?”
“말보다는 직접 가 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미리 듣고 보는 것도 좋으니까요.”
봐라, 분노한 거치고는 곧장 수사에 착수하지도 않는다.
내게 이름을 알려 주지도 않고, 보통 통성명은 하지 않나?
단순히 예의가 없다기보다는 다른 쪽에 신경이 쏠려서 잊은 느낌이다.
“그러죠. 숲 초입이었습니다. 64층에 진입한 후…….”
난 미리 모르토와 짜 두었던 대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진실에서 몇 가지만 꾸몄으니 디테일이 살아 있다.
내 말에 집중했는지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렸다.
망자를 위한 관심이라기에는 개인적인 열망들이 가득했다.
“…이렇게 된 겁니다.”
“고생하셨군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들 내 이야기에 심취해 나를 경계하는 이는 없었다.
얕보인 탓인지 처음부터도 그렇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걸로 계획은 순탄히 진행되었다.
그들 사이에 껴 사건을 조사할 명분을 만드는 것.
태연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며 그들에게 물었다.
“혹시 짐작 가는 사람 없습니까? 베히가에게 원한이 있다든가, 사이가 안 좋은 부족이 있다든가.”
“아니, 없어. 베히가는 모두와 친하게 지냈으니까.”
“그렇고말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실행하지는 않았겠지. 그를 죽이면 우리 모두가 일어설 걸 알고 있을 테니까.”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찢어 죽여야겠어.”
“그 정도로 끝내려고? 손끝부터 씹어 버릴 생각인데.”
“천박하기는, 나라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내장을 꺼낼 수도 있어.”
“누가 찾을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구나. 흐흐흐.”
대화가 이어질수록 주제가 변질된다.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처단할까로.
“아, 히포토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베히가의 유족은 처벌에 동의했겠지?”
“물론, 그들도 피를 원해.”
“그래, 피! 복수는 언제나 피를 부르지! 다들 일어나. 숲으로 간다!”
호인족을 시작으로 대표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나 역시 따라 일어서며 코를 훔쳤다.
어째서인지 피 냄새가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