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두 상처
숲속, 인기척을 가린 채 돌아다니던 난 피 냄새를 맡았고 그 흔적을 쫓았다.
어쩌면 본능적인 행동.
위험 요소를 발견하면 직접 확인하고 대비하고자 하는 경향 때문인지도 몰랐다.
우연이라고 봐도 좋았고, 필연적인 결과라 말해도 일부는 수긍했을 거다.
이곳은 탑.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으며, 재앙은 혼란을 부추기니까.
-텁
어깨에 올라탄 덕춘이의 입을 가렸다.
실수로라도 소리를 낼까 싶어 한 행동이지만 영특한 개구리님은 소리를 낼 생각이 없었는지 슬며시 내 손을 밀어냈다.
하긴, 그동안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이런 일로 소리를 낼까.
내가 보고 있는 광경.
숲속 공터, 부러진 나무가 주변 시야를 미묘하게 가린 곳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털이 뒤덮인 몸, 풍성한 꼬리.
위로 솟았을 귀는 힘을 잃고 축 처졌다.
그의 꿰뚫린 복부를 타고 핏줄기가 흘러넘쳤다.
내장이 살짝 터졌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으나 그보다 진한 혈향에 코끝이 얼얼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막대한 출혈량.
동맥에 펌프질이라도 한 건가, 대출혈 같은 스킬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털 사이로 얼핏 보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는데 믿기 힘든 것이라도 봤는지 눈을 부릅뜬 채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야 있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는데.
‘하필이면 사건이 터진 직후네.’
이름 모를 수인의 시체 옆에는 또 다른 수인이 서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시체를 바라보는 남자. 너구리 수인인가? 잘 모르겠다, 수인은 많이 못 만나 봐서. 동물에 대해 해박한 것도 아니고.
작게 떨고 있는 손에는 피가 가득했다. 얼굴까지 피가 튀어 뺨이 붉다.
충격을 받은 건지 눈동자가 방황한다.
고작 B등급 은신 스킬을 사용한 나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고.
모든 신경이 저쪽으로 쏠렸다는 거지.
본인이 죽이고 본인이 놀란다?
그것도 이렇게 잔인하게 죽여 놓고?
이상하다.
‘다른 사람이 있던 흔적은 없는데.’
저 정도 출혈량이면 옆에 있던 사람한테도 피가 튀었어야 정상이다.
피가 거의 뿜어졌다 싶을 정도니까 만약 누군가 있었다면 그쪽에는 피가 튄 흔적이 끊겨 있어야지.
바닥을 적시기 전에 살인자가 피를 뒤집어썼을 테니까.
없다.
아무리 봐도 없다.
불규칙하게 퍼진 핏방울.
유일한 흔적은 너구리 소년.
소년이 맞나? 어려 보이기는 하지만 수인이라 그런지 함부로 나이를 정하기 힘들었다.
모든 정황은 저 녀석이 했다고 가리키고 있는데 뭘까, 이 찝찝함은.
“거, 거기 누구야!”
살짝 고민하는 타이밍,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아, 들켰나.
움직이지는 않았는데.
내가 실수를 했다기보다는 저 녀석이 정신을 차렸다고 보는 게 맞겠지.
NPC에게 이 정도 은신 스킬은 별 의미가 없을 테니까.
난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지나가다 범죄 현장을 목격한 등반가 이블아이입니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양손을 들었다.
상대는 눈을 찡그렸다.
친절하게 자기소개까지 해 줬구만 왜 인상이야.
내가 턱으로 시체를 가리켰다.
그가 움찔한다. 찔리는 게 있기는 한가 봐.
“이건 사고야.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설득력이 없다.
그렇게 말한다 한들 누가 수긍을 할까.
살해는 그럴 수 있다. 사람도 사람을 죽이는데 수인이라고 못할 건 없지.
NPC도 마찬가지. 탑 숭배 집단만 봐도 그러지 않던가.
놈들은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망설임 없이 공격을 해 왔다.
정체가 탄로 나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집단이니까.
‘어쩌면 이 녀석도 숭배자일지도 모르겠군.’
떠보지는 말자, 괜히 경계할 수도 있으니.
놈이 다른 NPC를 선동해 날 공격할 수도 있고.
60층대는 NPC와 협동하는 경우가 많다. 가능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말.
함께 지내는 동료와 처음 보는 등반가. 누구의 말을 믿을지는 뻔했다.
“흐음.”
머리를 긁적였다.
이래저래 생각했을 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숭배자는 아닐 거 같다.
내가 본 녀석들에 비하면 좀 어설픈 느낌이라.
‘놈들이었다면 살해 후 발발 떨고 있지도 않았겠지.’
내 존재를 알아차리기 전, 시체를 보며 떨던 모습은 진짜였다.
사고였다는 말이 진실일 수도 있겠지. 다만 모든 가능성은 열어 둘 거다.
들었던 손을 내리고 앞으로 다가갔다.
뒤로 한 발 물러섰던 녀석이 이빨을 드러낸다.
꼴에 수인이라고 이빨이 제법 날카롭다. 콱 씨, 뽑아 버릴라.
으르렁거리는 놈을 무시하고 바닥에 쓰러진 늑대 수인의 시체를 살폈다.
음, 늑대 수인이 아니라 늑대 인간인가? 됐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복부 말고 상처가 하나 더 있군.”
난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늑대 인간의 몸을 돌렸다.
목 뒤, 두 개의 자상이 남아 있다.
자상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거의 파였다시피 한데.
손가락 두 개로 깊게 파 버리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때마침 너구리 수인의 손은 피로 범벅.
뒷목와 복부. 둘 다 치명적인 상처다.
“목, 배. 어디 먼저 찔렀지?”
“무슨 소리를, 등반가가 건방지게!”
“순서를 묻는 거다, 등신아. 얼굴은 사람인데 뇌는 동물인가?”
“이 자식이!”
놈이 달려들더니 양어깨를 붙잡는다.
야성을 지닌 눈동자가 날 응시했으나 큰 감흥은 없었다.
좀 더 차분히 가라앉았으면 모를까 흥분해 감정도 컨트롤 못 하는 놈이 덤벼 봤자 짜증만 날 뿐이다.
“왜? 물어뜯기라도 하게?”
대답은 없었다. 작게 고개를 흔들고 툭, 놈의 팔을 쳐 냈다.
“순서를 물었다고, 너구리 자식아.”
목과 배를 순서대로 두들겼다.
순서가 중요하다. 놈이 미친놈인지 어떤 놈인지 파악할 수 있는.
배를 먼저 찔린 거면 차라리 낫다.
목 뒤의 상처는 사망 후에 놈이 놀라 힘 조절을 못 해 추가로 난 상처일 수 있으니까.
최악이더라도 확인 사살이고.
반대로 목 뒤를 뜯고 배를 쑤신 거라면.
‘보복이지.’
확인 사살이라기에는 너무 잔인하다.
사고라고 볼 수조차 없다.
원한이 없다면, 천성이 잔인하지 않다면 저렇게까지 못한다.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수인이 특출나게 잔인한 종족이라면 또 다르겠다만 릴카를 떠올리면 그런 것도 아닌 거 같은데.
그거야 뭐, 개인차가 있겠지만.
애초에 릴카는 수인 무리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서 일반적인 경우로 보기도 힘들고.
대충 짐작이 간다.
대림원은 수인으로 이루어진 집단일 것이다.
‘릴카는 차원에 버려진 아이고.’
녀석의 계승자가 됐을 때 떠올랐던 메시지.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릴카와 대림원은 껄끄러운 사이기는 하나 서로를 적대하거나 증오하지는 않는다.
만약 진짜 릴카가 원한이 깊었다면 대림원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뭔가를 요구했을 거다.
특정 인물을 없애 달라든가, 그들의 사과를 받아 낸다든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좀 신경 쓰일 뿐.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릴카는 탑에 들어오고 가장 먼저 인연이 닿은 NPC라서.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던 때, 너구리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불안한지 주변을 살피던 녀석이 입술을 깨물더니 날 올려다본다.
적대감으로 가득했던 눈이 조금은 맑은 빛을 띠었다.
“솔직히 말하면 날 도와줄 거야?”
“봐 보고.”
“거절은 안 하는군. 그래, 한낱 등반가가 거부할 리가 없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았지만 구태여 수정해 주지는 않았다.
원하는 건 기브 앤 테이크.
무리한 걸 요구하지 않는다면 나도 적당히 맞춰 줄 생각이다.
이놈한테 호감이 있어서는 아니고…….
‘대림원과 연결된 녀석 중 이용할 수 있는 놈이 있으면 좋지.’
어찌 됐든 난 등반가.
대림원은 NPC로 이루어진 집단인 만큼 그들과 섞이기 힘들 가능성이 있다.
외지인에게 열려 있어 봤자 얼마나 열려 있을까.
놈의 약점을 알게 된 상황. 칼자루를 쥘 수 있으면 쥐는 게 좋았다.
녀석이 날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을 변호해 줘.”
변호?
난 눈살을 찌푸렸다.
살인을 눈감아 달라는 건가.
“내가 죽인 게 아니야, 진짜로. 봐 봐.”
침을 삼킨 너구리가 늑대 수인의 시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목 뒤를 뜯어버린 두 개의 선.
그가 검지와 중지를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상처에 겹쳤다.
작다.
동일 인물이 한 짓이라기에는 상처에 비해 너구리의 손이 작았다.
“너한테 피가 묻어 있던데.”
“배를 찌른 건 맞아. 하지만 베히가는 나보다 강하다고! 이런 공격도 못 막을 리 없어!”
“결과적으로는 못 막았지만 말이야.”
놈의 말을 믿어도 이상하고, 믿지 않아도 이상하다.
“너 말고 이 자리에 있던 사람이 있나?”
“아니, 없었어.”
“목에 난 상처는 누가 낸 건데.”
“모르겠어.”
NPC의 눈조차 피해 낼 고수가 있다는 걸까.
아니면 녀석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찝찝한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모양은 잡혔다.
목에 치명상을 입은 늑대 수인이 원래라면 막았을 너구리의 공격을 막지 못해 배가 뚫렸다.
일종의 사고.
녀석이 충격을 받아 벌벌 떤 것도 그 때문이겠지.
이렇게 연결하면 이어지기는 한다.
여전히 중간중간이 비어 있는 반쪽짜리 추측이지만.
“나랑 베히가는 대련을 자주 했어. 그건 다른 사람들도 잘 알아. 오늘도 평소랑 같았다고. 어째서 이런 일이…….”
작게 중얼거리는 녀석.
후우. 숨을 내뱉었다. 베히가가 죽은 수인의 이름인가.
입을 벌리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은 늑대 수인의 눈을 감겨 주었다.
이어 어깨로 들었으나 키가 커서 그런지 발이 땅에 닿았다.
피가 모두 빠져서인지 생각보다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들어.”
“어, 어어.”
후다닥 뒤에 붙어 베히가의 다리를 받치는 녀석.
몸에 피가 묻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변호를 해 달라고 했지?”
“응.”
“그러면 정식 퀘스트로 요청해.”
봉사하는 것도 아니고 맨입으로 살인 사건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네가 범인일 경우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는 조건으로.”
“내가 아니라니까!”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언제 봤다고 벌써 믿음이 있어. 상황 보고 하는 거지.”
초면이다. 첫인상이 좋지도 않았다.
서로 원하는 바가 있어 같이 행동하는 부분은 있겠으나 의리는 없다.
내게는 여전히 수상한 놈이니까.
“이름이 뭐지?”
“모르토.”
“그렇군. 멍때리지 말고 퀘스트나 줘.”
“쯥. 알겠어.”
[모르토의 변호자- 돌발 퀘스트]
-모르토는 알 수 없는 사고에 휘말렸다.
-같이 휘말린 당신, 그를 도와 결백을 증명하라.
-특약: 모르토가 범인일 시 퀘스트 파기.
-보상: 너구리 가면 (AAA), 너구리굴 이용권.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특약도 제대로 넣었군.
난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너구리굴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얻으면 알 수 있겠지.
그럼 가는 길도 심심한데.
“어떻게 말을 할지 정해 보자고. 거기에 하나 더.”
난 모르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원 들어주는 연못에 관한 것도.”
착각일까. 녀석의 눈이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