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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88화 (288/740)

288화 63층 클리어

탑을 오르면서 위기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는 능력이 올라간 걸까.

아니면 워낙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겪다 보니 사고가 트인 걸까.

예전이었다면 떠오르지 않을 방법이 머리를 스쳤다.

조금은 허무맹랑한,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간단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60층대는 재앙의 무대.

많지는 않지만 재앙을 극복하고 위로 올라간 사람들이 있다.

나라고 못 할 건 없지.

‘재앙을 극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재앙이 불러오는 불화와 혼란을 이겨 내거나 원인 자체를 무력화시키거나.

62층에서는 후자의 방법을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그러기 힘들 거 같다.

쌍두귀를 무력으로 없애 버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NPC들이 증명했으니까.

나도 직접 공격해 봤고.

“여러분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난 움직이기 시작한 쌍두귀를 따르며 사람들을 불렀다.

“놈을 때려잡는 건 불가능하죠? 약점도 딱히 없고요.”

“이미 온갖 짓을 다 해 봤지. 정면에서라면 모를까 뒤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어.”

“한 번은 땅굴을 파서 배를 찔러도 봤는데 배딱지도 장난 아니게 튼튼하더군.”

“불로 구워 버리려고 한 적도 있었다만 글쎄, 별 반응 없던데.”

오케이, 지지고 찌르고 다 해 봤다는거군.

그럼 다음 질문.

“쌍두귀의 뒤에만 있으면 안전한 건가요? 좌우로는 얼마든지 가도 된다든지…….”

“아, 그건 상관없어. 쌍두귀와 사망선 사이라면 필드 반대편에 있어도 괜찮지.”

“우리가 굳이 뒤꽁무니에 붙어 있는 건 쌍두귀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거든.”

그렇겠지.

괜히 멀찍이 떨어져 있다 쌍두귀의 위치를 놓쳤다가는 사망선에 걸리든지 했을 테니까.

쌍두귀가 갑작스럽게 전력 질주를 할 수도 있고, 몸을 틀어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어느 정도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 마지막으로…….

“혹시 놈을 추월하면 죽는 겁니까?”

직접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괜히 여기서 죽으면 61층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건 좀 귀찮잖아.

괜히 60층에 갔다가 결투 신청을 받을 수도 있고.

질 거 같지는 않지만 굳이 하고 싶지도 않다. 가뜩이나 연합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는 와중에.

“죽지는 않지. 그냥 가로막혀 있어.”

“직접 가 보면 무슨 뜻인지 알 걸세.”

다행이다.

죽는 건 아니구나.

혹시나 쌍두귀에 접근조차 못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NPC들이 나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만에 하나 탑 추종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여기 모인 모두가 그럴 리는 없겠지.

-파앗

난 발을 박찼다.

뱀 꼬리는 아직 재생 중.

빠르게 놈의 꽁무니를 박차고 위로 올라탔다.

놈의 몸체 3분의 1을 지날 때까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추월 불가의 영역입니다.]

[추월할 수 없습니다.]

[혼돈의 부족합니다.]

절반 정도를 지나칠 때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가지 않는 몸.

갑작스레 몸이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랄까.

빠져나갈 수는 없었으나 난 입꼬리를 올렸다.

두 가지 정보를 알아냈다.

적어도 놈의 절반 정도는 접촉할 수 있다는 것.

추월 불가의 영역이나 무너지는 돌탑처럼 상식을 벗어나는 신비는 혼돈 수치가 충분히 높다면 극복 가능하다는 것.

뭐, 후자는 가능한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난 가능성이 있다.

당장은 무리라 아쉬울 뿐.

아무튼 원한 정보는 모두 얻었다.

“키햐아아악!”

“크아아악!”

-서걱!

그새 재생해 아가리를 들이미는 뱀 꼬리를 잘라 버리며 뒤로 돌아왔다.

반복되는 하루.

벗어날 수 없는 영역.

지루하면서도 지치는 일상을 보내는 이들의 표정에는 체념의 빛이 감돌았다.

“다음 등반가는 언제 올지 모르겠군.”

“아예 메뉴얼을 만드는 건 어떨까? 쌍두귀보다 우리가 먼저 찾아낸 다음 신호를 보내는 거지.”

“이제 막 63층에 오른 녀석이 정면이라 한들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아쉬워. 오늘 만난 녀석이 강하기는 했는데. 쯧.”

이들은 쌍두귀를 사냥하는 걸 공략법으로 생각하는 모양.

나 같아도 그럴 거 같기는 한데.

“여러분들, 굳이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요? 뒤에서 해결하면 되죠.”

내게 시선이 몰린다.

몇몇은 호기심을 보이고, 몇몇은 짜증이 나는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했든 우리가 안 해 봤을 거 같아?”

“방법이 있었다면 진작에 했겠지.”

“워워, 다들 진정해 봐. 우리랑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잖아.”

“이야기나 들어 보자고.”

작은 소란이 벌어졌으나 이내 내 의견을 들어 보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이들 입장에서는 작은 희망이라도 쥐고 싶은 게 사실이니까.

난 기억을 되짚었다.

탑을 오르고, 장비 제작을 얻고, 릴카의 교육을 받으며 다양한 물체와 아이템을 알게 됐다.

그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는데.

“부유석을 아시나요?”

“알지. 난 그쪽 에필테 출신이거든.”

내 물음에 헤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필테가 뭔데.

다른 세계에 대해서 알 턱이 있나.

“아, 그 에필테? 꽤 유명하지.”

“그쪽 출신 별로 없을 텐데. 거기 사람인지는 몰랐구만.”

“자네는 잘 모르는 거 같다만, 부유성이라고 보면 돼.”

“허공에 떠오른 수많은 섬. 그곳에서 살아가며 왕국을 이룬 아르케 대륙의 지배 세력.”

“말 안 듣는 나라가 있으면 하늘에서 벼락을 때렸다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에 떠다니는 왕국이라는 거 같다.

이제는 이상하지도 않다. 천계, 마계, 정령계도 있는데 부유성 정도야 귀엽지.

난 죽 NPC들을 훑었다.

“띄웁니다.”

“응?”

“거북이 띄우자고요.”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어 고개를 기울이던 이들이 입을 벌렸다.

이제야 이해했나 보군.

난 그들에게 설명을 시작했고, 모든 계획이 확립됐을 때…….

“작전, 거북이 풍선. 시작합시다.”

모두가 의욕을 불태웠다.

* * *

나는 돈이 많다.

뜬금없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냥펀을 통해 화조국에 포션과 장비를 팔았고, 몬스터를 사냥해 얻은 부산물은 상점창에 처분했다.

개인 거래를 통해 포인트를 벌어들였고, 헬다잉 키친에 식재료를 보내고 대가를 받았다.

자금 루트가 여러 개며 그중 두 곳은 내게 우호적이다.

냥펀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슷한 층수를 오르는 이들 중 나보다 포인트가 많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지금, 난 아낌없이 포인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쁘띠공듀]: 냥펀, 냥냥펀! 물건은 준비됐나요?

[냥냥펀치]: ㅇㅇ, 준비는 끝났음. 근데 진짜 괜찮아? 이거 엄청 많은데.

[쁘띠공듀]: 후. 후. 후 걱정 마세욧! 다 계획이 있답니다.

[냥냥펀치]: 또 무슨 짓을 하려구…….

[쁘띠공듀]: 나중에 알게 되면 깜짝 놀랄거라구욧!

[냥냥펀치]: 콘셉트를 유지하는 게 더 놀라…….

가뿐히 냥펀의 뒷말을 무시하고 커뮤니티를 껐다.

띠링. 정신 보호 레벨이 올랐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이들.

“준비된 건가?”

“예. 곧 약속한 물량이 도착할 거예요. 화조국과 직접 거래한 거니 문제없을 겁니다.”

“오오오! 훌륭하군.”

“꼭 성공해야 해. 우리도 없는 포인트를 모은 거라 두 번은 힘들거든.”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 공략은 나 혼자 원맨쇼를 할 생각이 없다.

처음 시도하는 공략, 모두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일.

나 혼자 독박 쓸 생각은 없었고 모두의 포인트를 모아 화조국과 거래할 수 있었다.

릴카의 계승자가 되면서 상인 자격을 얻었기에 더욱 수월했지.

이미 거래하고 있는 사이기도 했고.

아무튼.

-치지지지직

“옵니다.”

우리가 긴장하는 찰나, 하늘에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이제 곧 저기서 우리가 주문한 부유석이 쏟아질 거다.

“다들 작전 기억했죠?”

“물론이지.”

“오랜만에 힘 좀 써야지. 흐흐흐.”

자신감 넘치는 이들.

좋다, 그럼…….

“덕춘아, 고.”

“그에엑.”

내 신호에 맞춰 덕춘이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추월 불가 영역을 통과해 쌍두귀의 앞으로 점프.

“그어어?”

“그아아아악!”

쌍두귀가 분노했다.

-촤아아아악!

동시에 마법진이 확장되며 마법 무게추가 달린 부유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덕춘이가 놈의 시선을 끄는 사이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쌍두귀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자리를 이탈하면 일이 꼬이니까.

“꼬리 제압조, 출발!”

“부유석 담당도 움직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NPC들.

전투에 자신 있는 이들 여섯이 뱀 꼬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브레스를 뿜어 대는 놈들을 제압하기 시작.

제거하는 게 아니다. 제압하는 거지.

단순히 잘라내는 건 어렵지 않지만 우리의 목적은 그게 아니다.

“키햐아아악!”

“케히이익!”

악을 쓰며 몸부림치는 뱀 꼬리.

하지만 아무리 강력해 봤자 재앙의 본체도 아니고 꼬리에 불과하다.

이미 상위층 이상을 오른 NPC 여섯 명이 작정하고 달려든 이상 제압은 시간문제.

“하나로 잘 묶어야 합니다!”

“알고 있어!”

“자네는 할 일을 다 하게! 여긴 우리한테 맡겨!”

그동안 쌓인 것을 풀듯 거칠지만 집요하게 뱀 꼬리를 잡던 이들이 소리쳤다.

좋았어. 이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덕춘이 역시 시선을 잘 끌어 주고 있었으며.

“앞에도 쏴!”

“몸뚱이는 못 나가지만 스킬은 아니지!”

뱀 꼬리 제압조 역시 중간중간 스킬을 날려 쌍두귀가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었다.

생명체는 못 나가지만 스킬이나 투사체는 쌍두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모양.

오랫동안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확인했을 터.

“우리도 서두릅시다!”

“가자!”

“실력 좀 보여 줘 보실까.”

난 나머지 인원을 데리고 쏟아진 부유석을 가공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양이 필요할지 몰라 되는 대로 구매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썼다가는 난리가 나겠지만.

최악의 경우 전원 사망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왜냐…….

“헤센, 여기 1차 부유석 띠 완성이요!”

“옮겨!”

“끼워!”

[마법 무게추가 해제됩니다.]

-스아아아아!

“그어어어?”

우린 놈을 공중에 띄워 풍선처럼 들고 다닐 생각이거든.

다만 부유석의 힘이 너무 강해 위로 솟구치면 곤란하다.

녀석의 뒤에 생성되는 사망선이 위로 올라와 대지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잘라 버릴 테니까.

다르게 말하자면…….

‘적당한 수준으로 떠오르면 아무도 안 죽는다는 거지.’

앞이란 무엇인가. 뒤는?

고개를 돌렸을 경우, 몸의 기울기 등등 여러 요건이 있었고, 그에 따라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쌍두귀의 경우는 단순했다.

머리가 달린 곳이 앞.

꼬리가 있는 곳이 뒤.

“부유석 A급 다섯! B급 셋! D급 이하로 균형 맞춰!”

“추가 들어갑니다!”

-쿠궁, 구구구궁

“올라간다!”

“꼬리 꽉 잡아!”

절대 떠오르지 않을 거 같았던 쌍두귀의 몸이 떠올랐다.

몸통을 촘촘하게 감은 부유석.

밧줄처럼 하나로 묶인 뱀 꼬리.

우리는 놈의 꼬리를 끌어당겨 고정시켰고.

“그어어어어!”

“그아아아아아!”

놈은 풍선처럼 하늘로 떠올랐다.

두꺼운 팔다리를 휘저어 댔으나 그뿐.

부유석은 섬조차도 띄워 올린다.

헤센이 있던 에필테는 부유섬 위에 지어진 왕국이고.

물량만 충분하다면 이 거대한 거북이 역시 공중에 뜨게 할 수 있다.

놈이 점프하지 않았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방법.

난 입꼬리를 올렸고.

“사망선이 내려간다!”

“와아아아아!”

쌍두귀의 앞이 하늘을 향하자 놈의 뒤를 따라오던 사망선 역시 땅 밑으로 들어갔다.

놈이 떠 있는 이상 밑으로 십여 킬로미터를 파고 내려가지 않는다면 사망선에 닿을 일은 없을 것이다.

녀석은 굶어 죽는 그 날까지 허공에 떠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녀석은…….

“평생 다른 뭔가를 추월하지 못하겠지.”

놈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

쌍두귀는 놈들을 쫓으려 팔을 휘저었지만 헛된 꿈에 불과했고.

“그어어어어───!”

평생을 땅을 기어 다니던 타락한 영물은 길게 울부짖었다.

두 쌍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기다란 목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점점 굳어져 돌이 되었고 거세게 흔들리던 몸 역시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을 옭아맨 부유석과 하나가 된 쌍두귀는 구태여 붙잡지 않아도 허공을 부유했으며.

[추월 욕망에 삼켜진 영물, 쌍두귀의 의지가 사라집니다.]

[제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63층 클리어]

추월 불가의 거구. 쌍두귀의 또 다른 이름이 드러났다.

추월 불가의 능력을 지녔으나 동시에 추월하지 못하면 죽는 신세.

죽지 않기 위해 앞으로 달렸던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대가로 내놓더라도 앞서고 싶었던 것인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월광의 옥토선생이 쌍두귀의 죽음을 반깁니다.]

누군가는 알고 있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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