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점프
쌍두귀와 눈이 마주치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거북이한테도 표정이 있다면 지금 저 표정은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정도가 되지 않을까?
펠라인 세트가 다 좋은데 어그로가 너무 잘 끌린다.
거리가 상당한데 바로 들켰잖아.
평소에는 오히려 좋았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몬스터가 알아서 덤벼들었으니까.
다만 이번에는 상대가 재앙이었다는 거였고…….
“일단 도망칠까?”
“그에에.”
겪어본 바 재앙이라는 존재는 무작정 덤벼도 될 만큼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메스토카, 무너지는 돌탑.
저 괴물도 덩치가 큰 게 다는 아닐 거다.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을지 짐작도 안 되는 게 문제지.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왜 저 NPC들은 쌍두귀의 뒤를 따르고 있는가.
늪지대에 빠져 죽은 이들은?
나보고 오지 말라는 이유는 뭐고.
저 멀리 보이는 빨간색 선은 정체도 모르겠다.
-파아아앙!
망설임 없이 발을 박찼다.
그걸로 부족해서 파이어 밤까지 터트려 몸을 띄웠다.
늪지대를 가로지르는 것보다는 폭발로 허공을 날아가는 게 더 빠를 거 같아서 말이지.
“그어어어어!”
“그아아아!”
멀리서 쌍두귀가 소리를 질렀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탈출했다.
뭐가 됐든 정보가 필요하다.
적어도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공략 준비를 하는 것이…….
“어?”
“그에?”
-쿠구구구구궁!
갑작스레 들려오는 굉음에 고개를 돌렸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소음.
난 등 뒤로 식은땀이 느껴지는 걸 느꼈고.
“그아아아!”
“아까까지만 해도 걸었잖아, 거북이 자식아!”
미친 듯이 내게 돌진하는 쌍두귀를 볼 수 있었다.
거의 멈췄다시피 움직이던 건 뭐였는데!
[Tip. 쌍두귀는 누군가가 자기보다 앞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얼씨구, 재앙이라는 놈이 까탈스럽네?
오랜만에 보는 팁 메시지라 그런지 설명 한번 친절하다.
“그어어어!”
-콰앙! 쾅!
-쏴아아아아
저기, 저 덩치에서 나왔다고 믿을 수 없을 속도로 내게 달려오는 걸 보니까 말이지.
발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늪이 솟구쳐 비처럼 쏟아졌고, 지축이 울려 지진이라도 난 거 같았다.
늪지대에도 파도가 칠 수 있구나.
듣도 보도 못한 광경에 넋이 나갈 것만 같았으나.
“그에에!”
덕춘이의 울음소리에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놈은 빠르다.
얼마나 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가속 능력은 대단하다.
놈과의 거리가 조금만 더 가까웠거나, 내가 이동을 늦게 했다면 따라잡혔을 수도 있다.
다르게 말하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던 난 충분히 거리를 벌릴 수 있다는 거고.
놀라서 멈칫한 거지 작정하고 움직이면 따돌릴 수 있다.
-콰아아앙!
-콰아앙!
연달아 터트린 파이어 밤.
붉은 불길이 내 몸을 밀어낸다.
세차게 부는 바람.
허공으로 떠오른 모습 그대로 놈을 살짝 흘겨봤다.
위에서 보니 더 커 보이네.
그런 쌍두귀의 뒤를 열심히 쫓아 달리는 NPC들.
그들 뒤를 따라오는 붉은색 선과 기회를 노리며 따라붙는 몬스터 무리.
일종의 경계선인가.
NPC도 그렇고 몬스터도 그렇고 붉은 선을 넘을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아무렴 어때.
알아보면 되지.
[무지개다리 (S)]
-촤아아아악!
난 시선을 멀리 던졌다.
그와 함께 뻗어 나가는 무지개다리.
빠르게 몸이 이동된다.
어떻게든 날 잡아보겠다고 쌍두귀가 아가리를 들이밀었지만.
-구구구궁!
애꿎은 무지개다리에만 부딪칠 따름이었다.
이동 시 파괴 불가 옵션이 있는 만큼 다리는 멀쩡했다.
“구어어어어어!”
등 뒤로 놈의 분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 *
무사히 탈출한 지 반나절이 흐른 시점.
난 자세를 낮춘 채 몸을 숨겼다.
상점에서 산 녹색 외투를 몸에 걸치고, 외톨이의 길까지 사용해 기척을 죽인 상태.
“아무래도 필드를 더 돌아다닌다고 답이 생길 거 같지는 않아.”
“그에에.”
쌍두귀와 멀어진 후 다시 한번 탐색에 나섰다.
어딘가 마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채.
마을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이가 존재할 수도 있는 거니까.
같은 등반가를 만날 확률도 제로는 아니고.
하지만 결과만 말하자면 못 만났다.
물론 필드가 넓은 만큼 다른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지만 왤까.
쌍두귀의 뒤를 쫓던 이들이 63층의 NPC들 전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단순히 내가 본 NPC가 그들뿐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NPC는 기본적으로 활동 범위가 정해져 있다.
쌍두귀의 뒤에 있던 이들은 놈의 이동 경로를 따라 계속 돌아다니는 중이고.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늪에 굴러다니는 장비들.
어쩌면 이것들 역시 등반가가 아니라 NPC의 물건인 게 아닐까?
-찰박
조금씩 빠져드는 발을 빼며 이끼가 가득한 나무를 기어올랐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쌍두귀를 쫓고 있다.
놈이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한 채.
몇 시간 동안 놈을 관찰한 결과 몇 가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첫 번째. 느리다.
진짜 느리다. 날 쫓아올 때는 대단한 박력을 보여 줬으면서 평소 움직일 때는 내가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움직인다.
놈의 덩치를 생각한다면 굉장히 느린 속도.
두 번째. 쌍두귀라는 이름에 걸맞게 두 대가리는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머리1이 뭔가를 뜯어먹는 동안, 머리2는 주변을 경계하는 형식.
사실 말이 경계지 누가 자신보다 앞서 있지 않을까 싶어 살펴보는 거라 보는 게 맞았다.
적어도 몬스터 중에서는 놈을 이길 존재는 없었으니.
다음으로 세 번째.
“뱀 꼬리도 제법 강하다 이거지.”
8개의 뱀으로 이루어진 꼬리.
살펴본바 독성 브레스는 기본이고 잘려도 재생된다.
본체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덤벼든다는 뜻.
NPC정도 되면 저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완전히 무시해도 될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 놓고 쉬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지.
쯧. 작게 혀를 찼다.
내가 이렇게 관찰을 통해 정보를 모으는 이유.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추월 불가의 거구巨龜, 쌍두귀]
-재앙.
-그의 뒤를 따르는 자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타락한 영물입니다.
-자세한 정보를 읽을 수 없습니다.
놈은 무려 영물이었다.
타락하기는 했지만 그 존재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고, 권능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메스토카의 경우 각 객체는 영물에 다다르지 못했으나 군집체로서 재앙으로 인정받았으니까.
단일객체로 재앙이라 불리는 쌍두귀는 영물과 동급일 만하다.
여기 킹갓개구리님처럼 말이지.
“어때 덕춘아, 싸움도 급이 맞아야 하는 건데 같은 영물끼리 한판 붙는 건? 응원은 해 줄게.”
“궤?”
내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덕춘이가 앙증맞은 주먹을 흔든다.
너무하네. 주인한테만 너무 강한 거 아니냐.
아, 알았어. 때리지 말고.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재앙에게 붙은 아명.
추월 불가의 거구.
뒤를 따르면 죽게 될 거라는 경고.
내게 오지 말라며 소리치던 NPC.
“정면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건가.”
머릿속으로 계산해 봤다.
내 화력이 놈의 방어력을 뚫을 수 있는지.
솔직히 말하면 못 뚫을 거 같다.
자신감을 떠나서 놈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NPC만 열 명이 넘는다.
그들이 찔러 대는데도 꿈쩍도 안 하는 놈이 저놈이니 내 공격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뒤만 공격이 안 통하는 걸 수도 있고.”
확인해 보자.
더 이상의 관찰은 의미가 없다.
직접 부딪치면서 알아내야지.
조금이지만 알 거 같다. 어째서 저놈이 재앙으로 분류되는지.
-파앗
갑옷을 가리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던졌다.
검을 뽑고 몸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컨디션 양호하고 장비 멀쩡하다.
출발하자.
-콰아아아앙!
-치이이익!
파이어 밤을 터트렸다.
일대 늪지가 증발하며 연기가 피어오른다.
굉음과 연기.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갑옷.
“그어?”
“그으으으?”
놈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거기 쌍대가리! 이쪽이다!”
-삐유우우우웅
잘 보이라고 오로라빔도 한 방 쏴줬다.
어쭈?
고개를 까딱여 공격을 흘린 녀석이 다리를 굽힌다.
이어 땅을 박차자.
-구구구구궁!
땅이 꺼지며 육중한 몸이 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저 덩치에 저 속도.
그냥 몸통 박치기만 해도 산을 무너트릴 거 같은데.
식은땀이 났지만 애써 털어 냈다.
“항상 시작이 중요하더라고.”
[중량 팔찌 (C)]
-꾸구구구국
마력을 한껏 불어넣어 무게를 늘렸다.
그에 따라 발이 늪지대에 빨려 들어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전투가 시작된 이상 그런 거 하나하나 따질 수는 없으니까.
놈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파직. 스파크가 튀어 오른다.
이곳은 늪지대.
“사이 좋게 지져져 보자고.”
[일렉트릭 쇼크 (AAA) Lv.7]
-파지지지지직!
전격이 우리를 감쌌다.
펠라인의 오른쪽 다리가 빛나며 힘을 더해 준다.
전격 속성의 강화.
늪지대라는 환경 요건.
게다가…….
-콰르르르릉!
인벤토리에 있던 뇌봉참검까지 꺼내 놈에게 던졌다.
화살처럼 날아간 검이 놈의 몸에 닿았다.
그와 함께 떨어지는 벼락.
“그오오오!”
놈이 괴성을 지른다.
그래, 물 속성은 전기 속성에 약하지.
보아하니 이 정도로는 턱도 없는 거 같다만.
잠깐 짜릿해할 뿐 바로 내게 달려든다.
던진 검은 놈의 피부에 박히지도 않았고 말이야.
아직 더 체크할 게 많다.
인벤토리에서 타락한 천사의 검을 꺼내 쥐었다.
오른손에는 절삭과 도축을 머금은 혼돈검이.
왼손에는 영혼 찢기를 담은 타락천사의 검이.
“구어어어어!”
놈이 거대한 몸통을 무기 삼아 들이박는 타이밍에.
-서걱
-찌이이이익!
나 역시 쌍검을 휘둘렀다.
손끝에 남은 여운을 즐길 틈도 없이 강렬한 통증이 몸을 덮쳤다.
-꽈아아아앙!
“크흑!”
[독자무강獨者武强 (S) Lv.5]
[강철의 의지 (S) Lv.4]
[강체强體 (S) Lv.5]
[물리 공격 내성 (S) Lv.4]
단번에 발휘되는 보호 스킬들.
더럽게 아프다.
그래도 구사일생은 발휘 안 됐네.
나도 자존심이 있지. 몸통 박치기 한 번에 빈사 상태가 될 수는 없지.
-빠지직!
-뿌득!
나무를 부수며 날아가길 한참.
늪지대에 반쯤 처박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역시 정면으로 들이박는 건 무리였나.
계속 이러다가는 몸이 남아나지를 않겠는데.
“씁.”
입술 터졌네.
비릿한 피 맛에 입술을 한 번 핥고 놈을 살폈다.
분명 베는 느낌이 들었다.
살가죽이 아니라 철판을 긁은 듯한 감촉이기는 했지만.
내가 확인하고자 한 건 두 개.
“그오오오!”
첫 번째는 물리적인 공격이 얼마나 통하는가.
혼돈검으로 베어 낸 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상처가 깊은가 하면.
“좀 애매하네.”
나름 유효한 타격인 거 같기는 하다만 덩치가 워낙 커서 티가 별로 안 난다.
도축으로 뜯어 버렸는데도 재생하려고 꾸물거리는 걸 보니까 물리적으로 덤비는 건 힘들 거 같고.
“확실히 태생 S급 스킬이 좋기는 해?”
“그에에.”
타락천사의 검으로 베어 버린 부분은 힘이 빠졌는지 불편한 움직임을 보인다.
영물도 영혼에 타격을 있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영혼 찢기로 관절을 부분을 끊어 버리든 머리를 쑤시든 해야 하나.
무리하면 못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뭐야.”
공략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찰나.
[영물의 격.]
[영혼 수복이 이루어집니다.]
-꾸그그극
영혼 찢기로 베어 버린 부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마 영혼에 가한 데미지를 회복할 줄이야.
지금까지 만났던 놈 중 저런 놈은 없었는데.
그래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한 모양.
완치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할 수 있을 때 더 딜을 넣어야지.
[버프 다이스 (AAA) Lv.4]
[5]
[과다출혈]
버프도 훌륭하군.
예상대로 놈의 전면부는 데미지가 들어갔고, 상처를 내는 것 또한 가능하다.
여기에 과다출혈 옵션이면 놈이라 하더라도 신경 쓰이겠지.
중간에 기회를 틈타 상처 안에서 파이어 밤을 터트리는 것도 좋을 거다.
오케이.
빠르게 작전을 짠 난 놈을 향해 달렸다.
아래부터 위까지. 차례로 썰어 주마.
-카앙!
검을 교차했다.
버프가 유지되는 동안 가능한 많은 상처를 내야 한다.
잠깐 동안은 쌍검을 유지할 생각.
-터엉!
놈의 지척까지 도달한 난 진각을 밟으며 검을 내뻗었고.
“구오오오!”
공격에 대비하듯 몸을 웅크렸던 놈이 한순간에 몸을 튕겼다.
물보라와 함께 풍압이 느껴진다.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거대한 몸뚱이.
“…저 덩치로 점프를 해?”
-쿠우우우웅!
믿기지 않았지만 진짜다.
어이가 없어 중얼거리는 동안 놈은 어느새 내 앞에 착지를 했고.
[추월 불가의 영역에 들어섰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놈의 뒤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