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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82화 (282/740)

282화 도우시죠?

쉐핀에게 돌탑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모쿠토와 대화해 추가적인 내용을 살폈고, 직접 보고 당하며 사실 검증까지 마쳤다.

나라고 아무런 대비책 없이 활동한 건 아니었다.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두었으며, 재앙을 피할 방법을 떠올렸으니까.

일단 구사일생으로 버틸 수 있다는 건 확인됐고, 남은 방법은 이거.

[안개 질주 (S) Lv.2]

-스아아아아!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안개 질주를 사용했다.

시선을 돌리면 돌탑은 무너진다. 그럼 무너져도 되는 몸이면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안개화는 시스템상 사망 판정이다.

즉, 모쿠토에게 물었던 질문의 대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말.

자, 어떻게 될 거냐.

안개화 된 난 돌탑을 확인했고.

-쿠르르릉

돌탑이 무너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 계속 있나 했더니만 그건 아닌 모양.

보고 있던 사람이 죽으면 그냥 무너지는 형식인가.

돌탑이라는 것 역시 누군가 보고 있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거고.

[안개화가 종료됩니다.]

“이번 재앙은 나한테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네.”

그냥 돌탑을 보자마자 안개 질주로 회피하면 그만이다.

마력 소모가 심해서 몇 번이고 쓸 수는 없지만 돌탑도 곧장 생성되는 건 아니니까.

툭. 무너진 돌덩이들을 걷어찼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평범한 돌들.

머리를 긁적였다.

성과가 별로 없다.

돌탑이 유지된다면 그 상태로 가려 버리면 되는 거였는데.

그런 거였다면 너무 쉽긴 하지.

나 같은 경우야 덕춘이가 돌탑 위치 말해 주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보는 사람이 없으면 돌탑도 그 자리에 계속 있지 않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잠깐만, 그렇네?”

돌탑이 가진 규칙 하나를 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돌탑은 무조건 자신을 볼 사람이 있는 곳에 나타난다.

당연하지. 사람이 올 수 없는 극지방이나 심해에 생성돼 봐라. 재앙이고 나발이고 돌탑이 있는지도 모를걸?

어디든 생성될 수 있지만 아무 데서나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거 잘하면 이용할 수 있겠는데?

-쾅! 콰앙!

“이봐!”

재앙 극복의 실마리를 잡은 것도 잠시.

모쿠토가 얼음벽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를 한 번 보고, 무너진 돌탑을 보고.

“어떻게?”

“방법이 다 있습니다, 그것보다…….”

난 허공을 바라봤다.

시스템 창이 떠올라 있다.

[시선 품앗이– 퀘스트 종료]

[NPC, 호호문과 벤이 퀘스트 조건을 어겼습니다.]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퀘스트 실패.

정확히 말하면 퀘스트 강제 종료.

퀘스트를 준 NPC가 도주하면서 클리어 불가능 판정이 난 거다.

돌탑이 무너져서 의미를 잃기도 했고.

모쿠토의 경우야 끝까지 남아 있어서 별다른 페널티를 받지 않았지만 도망친 둘은 어떻게 됐으려나.

“이 쓰레기 놈들.”

모쿠토 역시 시스템 메시지를 읽었는지 얼굴을 구겼다.

배신자들이 페널티를 받았으면 좋아할 만도 하건만 표정이 어두웠으니…….

“멍청한 놈들 때문에 마을 사람들 전체가 피해 보게 생겼군.”

“그쵸. 퀘스트로 뒤통수치는 마을에 누가 옵니까.”

신뢰를 잃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필드에 마을이 여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봐라.

[8번 마을 부정행위 적발]

[등반가는 퀘스트 수락 시 주의하시오.]

아예 대놓고 알림이 떠올랐다.

62층에 나 말고 등반가가 몇 명이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8번 마을로 오지는 않겠지.

“미안하군. 나도 설마 놈들이 그럴지는 몰랐어. 지금쯤이면 마을 안에서도 사실을 알았겠지.”

“모쿠토가 미안해할 건 아니죠.”

“상도덕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후우, 빌어먹을. 드디어 방법을 찾았나 했더니만, 다음 등반가가 올 때까지 손가락이나 빨아야겠군.”

“62층도 그겁니까? 등반가와 마을이 합쳐서 재앙을 극복하는 거? 클리어하면 마을 사람들은 안전지대로 가고요.”

“보편적으로는 그렇지.”

“보편적으로요?”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건가?

일단 나 혼자 괜찮은 거로는 클리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

당장 지금도 안개 질주로 재앙을 회피했는데 포탈이 생기지 않았잖아.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겨 낼 방법을 찾으라는 거다. 적어도 재앙 때문에 생겨나는 혼란과 의심을 잠재워야 한다.

61층, 메스토카 알을 찾아내고 제거할 방법을 알아냈던 것처럼.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필요하다.

나뿐만 아니라 이들도 재앙에서 벗어났다는 증거니까.

난 지그시 모쿠토를 바라봤고.

“남은 방법이야 당연한 거 아닌가? 문제가 되는 재앙 자체를 없애 버리는 거지. 부수거나 기능을 잃게 만들거나. 드물지만 그런 짓을 한 괴물들이 종종 있었거든.”

“62층에도 있었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없어. 직접 해 보지 않았나, 안 부서지는 거.”

그건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힘으로 파괴시키는 건 말이 안 된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혼돈 수치를 이용하는 방법?

보니까 재앙이라는 것도 혼돈 수치의 영향을 받는 거 같던데, 지금보다 혼돈 수치가 더 높아지면 직접적인 타격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재앙의 능력에 벗어날 수도 있고.

하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니 패스하자.

건방진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안 되면 안 되는 거다.

62층에 나보다 혼돈 수치가 높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어쩌면 내가 여기 있는 NPC들보다도 더 높을 거다.

그러니 혼돈 수치를 이용한 방법은 패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따로 있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

그러기 위해서는 미끼가 좀 필요하지.

난 얼굴을 구긴 채 구시렁거리는 모쿠토를 바라봤다.

“제기랄, 안 그래도 등반가가 잘 안 오는데 낙인까지 찍히다니. 앞으로 몇 년은 아무것도 못 하겠군. 또 집에 박혀 있어야 하나.”

“무슨 소리죠?”

“무슨 소리라니… 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었나?”

“아니, 왜 다른 사람을 기다리냐고요.”

콕콕.

나를 가리켰다.

“내가 있는데.”

“자, 자네!”

눈을 크게 뜬 모쿠토. 설마 내가 여기서 해결을 보겠다고 할지는 몰랐다는 걸까.

그럴 수도 있다.

거하게 뒤통수를 맞았는데 남아 있을 이유가 없지. 기분이 나빠서라도 떠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크게 신경 안 쓰거든. 괘씸한 거 맞다. 엿 먹은 만큼 되돌려 줄 거다.

복수는 복수인데 이건 기회잖아.

‘언제 등반가가 올지 모르는 마을, 근처 유일의 등반가. 그런 나한테 빚까지 졌지. 그 말은 뭐다?’

나에게 무조건 협조적으로 나와야 한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갑시다. 어쩌면 모쿠토가 알려 준 방법이 정답일 수도 있어요.”

조금은 바꿔야겠지만.

난 마을로 안내하라며 손짓했고.

“고맙군! 고마워! 나만 따라오게!”

모쿠토는 입꼬리를 올리며 앞장섰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흐르고 우리는 8번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8번 마을- 부정행위자 보유 마을]

시스템도 참 친절하지. 마을 위에 홀로그램도 다 띄워 주고.

다른 건 몰라도 탑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하다.

그러게 잘했어야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시스템 의도대로 안 움직여서 버그 메시지를 받은 건 나뿐일 거다.

아무튼.

“내가 돌아왔다! 호호문, 벤! 이 개자식들 어딨어!”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그러데이션으로 분노가 차오른 모쿠토가 거칠게 마을 입구를 걷어찼다.

화가 머리까지 치민 게 보자마자 주먹다짐을 할 것처럼 보였으나.

“…그, 뭐냐. 어? 적당히 했어야지. 그래야 나도 때리지.”

마을 광장의 풍경을 본 모쿠토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본 건 우리뿐만이 아니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도 봤을 거고,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내는 건 금방이었을 터.

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말뚝.

그곳에 매달린 사람이 둘.

피떡이 될 때까지 얻어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어떻게 알아볼 수는 있었다.

왼쪽이 호호문, 오른쪽이 벤.

저거 살아는 있나?

“야야, 덕춘아. 그러는 거 아니야. 내려와.”

“궤?”

덕춘이도 궁금했는지 말뚝 위로 올라가 두 NPC를 쿡쿡 찌르고 있다.

“으, 으으.”

“으그그.”

미약한 신음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살아는 있는 모양.

한 대씩 뒤통수를 때린 덕춘이가 다시 내게 돌아오고.

“모쿠토, 자네 괜찮나?”

“욕봤다. 그것보다 저쪽은 무지개?”

“입 다물어. 무지개가 중요해? 아하하하! 잘 왔네, 등반가 양반. 이쪽으로 와.”

“저기 아까 메시지가 뜨긴 했는데 괜찮아. 다 해결됐어. 저기 썩을 놈들은 다 잡아 뒀다고.”

“좋아하는 음식 있나? 알록달록한 걸 좋아하나 본데 내가 잡탕을 기가 막히게 끓이거든.”

“닥쳐, 베그닐. 어디 그딴 개밥을 들이밀어. 피자 좋아하나? 조각마다 색깔을 다르게 해 줄 수 있는데.”

한동안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등반가의 등장에 화색이 도는 이들.

알록달록한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장비 자체가 이렇게 생긴…….

됐다, 일일이 설명하는 게 더 구차하다.

그들 앞에 선 모쿠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들이 뒤통수친 등반가가 이 자라네. 나도 이 친구 덕에 살았지.”

“저, 저 친구가?”

“아니, 왜 여기를?”

웅성거림이 커진다.

뒤통수를 맞았으면 떠나는 게 보통.

NPC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등반가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그럴 경우 시스템 항의를 통해 제약을 가할 수 있으니까.

항의는 어디서든 할 수 있다. 굳이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

“왜 오기는요. 62층 클리어하려고 온 거지.”

조금은 삐딱하게 선 채 마을 사람들을 확인했다.

그리 많지는 않네. 저기 말뚝에 매달린 놈들까지 합치면 21명?

쉐핀이 있는 곳보다는 낫다. 거긴 쉐핀 혼자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이 전부입니까?”

“그렇지. 밖에 나돌아다니면 위험하잖나.”

그렇겠지.

“돌탑을 잡아낼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몇 가지 정보를 확인하기는 해야겠지만.”

스윽. 마을 사람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도우시겠습니까? 아니면 저는 돌아가도록 하죠. 이번 일에 대한 것도 커뮤니티에 알릴 거고요. 이래 보여도 나름 영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안 그래도 61층 공략법을 올리지 않은 상황.

공략 올리는 김에 ‘여러분! 제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아세요? 흑흑!’ 한 마디면 ‘우리 공듀 님’하면서 사람들이 벌 떼같이…….

아, 벌써 정신이 아찔하네. 분명 정신 보호 S등급인데 왜 손이 떨리지.

입술을 잠시 씹고 그들의 선택을 기다렸다.

목적은 같다.

내가 없으면 못 해도 몇 년간은 등반가를 만날 일도 없을 거다.

그렇기에 이미 답은 나와 있는 상황.

“그러지.”

“우리가 뭘 하면 되겠나?”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 건 정해 놨다.

그 전에 확인할 게 좀 있어서 그렇지.

이건 쉐핀이 적어 준 쪽지에도 안 나와 있는 거라.

“모쿠토, 아까 이렇게 말했죠? 한동안 집에 박혀 있어야겠다고.”

“그렇지?”

생각해 보면 쉐핀도 집 안에 있었다.

혹시나 창문을 통해 돌탑을 볼까 커튼까지 다 쳐 둔 상태로.

여기서 짐작해 볼 수 있는 것 한 가지.

“돌탑이 집 안에는 생기지 않는군요?”

“적어도 62층에서는 그렇지.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해 줘야 하니까.”

탑 밖에서는 집 안에도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거 끔찍하네. 샤워하고 나왔더니 거실에 돌탑이 떡하니 있으면 좀 무서울 거 같은데.

무섭기만 하겠나, 개운한 몸으로 죽게 생긴 건데.

여튼 원하던 정보는 얻었다.

“지금부터 작전 설명합니다.”

난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내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썩어 갔다.

* * *

8번 마을에서 작전이 시작된 지 3일 차.

“그에에엑!”

여유롭게 빈집에 앉아 차를 마시던 내게 덕춘이가 달려왔다.

“잘됐나 보네.”

그럼 가 보실까.

돌탑을 봉인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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