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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70화 (270/740)

270화 편지

더덕이와의 만남. 보아하니 잘살고 있었던 거 같다.

적어도 환경 자체는 나와 돌아다닐 때보다 좋으니까.

노숙할 일도 없지, 밥 제때 나오지, 덕춘이한테 얻어터질 일 없지.

베이어드의 말에 따르면 우울해한다는 거 같은데.

어디 보자.

난 권능을 사용했다.

[더덕이- 맨드레이크]

-영약입니다!

-일정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언젠가는 영물의 반열에 올라갈지도?

-신선한 영혼을 먹고 싶어 합니다.

-현재 매우 반가워하는 중입니다.

컨디션 자체는 최상이다.

영물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하니 말 다 했지.

존재만 보면 메스토카랑 비슷하다는 거잖아.

메스토카는 영물이 되기 전에 타락한 녀석이니까.

지금 보니 주변에 있던 맨드레이크가 전부 물러서 있다.

“끼, 끼이!”

“끼아아!”

몇몇 맨드레이크가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끼?”

“끼이익!”

“끽! 끼이이!”

더덕이가 한번 노려보자 바로 도망간다.

오우, 카리스마 있어.

벌써 이곳에서 서열 정리를 마친 건가.

하기야 뭐, 덕춘이한테 두들겨 맞은 기간이 있는데 얘들은 귀엽지.

자고로 싸움도 해 본 놈이 잘하는 법.

그래, 똑같은 애들끼리 있으면 서열을 정해야지.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곳에 모여 있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다.

봐라. 61층이라는 한정된 공간, 그 안에 있는 마을. 서른 남짓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생기고, 대표를 정하고 그러지 않는가.

“끼익! 끼아아아!”

“잠시 딴생각했네. 그래그래, 앉아.”

“끽!”

“일어서.”

“끼악!”

“손.”

“끼익!”

“오케이. 잘했, 어?”

잠깐만, 너 왜 손 있냐.

여전히 뿌리 형태인 건 맞지만 손 같은 게 있다.

이전에는 두 갈래로 나뉜 뿌리가 메인이었다.

그래서 두 발로 돌아다니는 형식이었고.

안 그래도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멘드레이크인데, 지금은 거의 뭐 조그마한 사람?

형태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런 느낌에 가까웠다.

영물에 가까워지고 있다더니 외형에도 변화가 생기는 모양.

내심 놀라고 있는 타이밍.

“마, 말도 안 돼. 저렇게 훈련시킬 수 있었단 말인가!”

페더 역시 충격을 받았는지 몸을 부들거리고 있었다.

눈빛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더덕이는 컨디션이 좋다.

우울했던 이유는 아마도 나와 덕춘이와 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자! 오랜만에 먹자!”

“끼에에엑!”

[집착하는 망령 (AA) Lv.2]

내가 주던 특식. 망령을 먹지 못해서 기운이 빠진 것도 컸다.

맨드레이크는 시체와 피를 빨아 먹기도 하지만 영혼을 가장 좋아하거든.

“키햐아아악!”

“끼아아아악!”

기겁하는 망령과 파이팅 넘치게 덤벼드는 더덕이.

그래도 레벨이 좀 오른 망령이 더덕이와 손을 맞잡은 채 힘겨루기를 했으나.

“끼아아아악!”

스펙업을 한 건 더덕이도 마찬가지.

결국 호로록, 더덕이의 입에 들어갔다.

원통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는 건 덤.

하긴 내가 이 스킬을 속박용보다는 더덕이 먹이용으로 더 많이 쓰기는 했지.

어쩌겠냐. 스킬 주인 잘못 만난 팔자 탓을 해야지.

반면 더덕이는 만족스러운지 입맛을 다셨다.

생기가 돌다 못해 얼굴에 윤기가 흐를 지경.

우울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야 알겠군. 릴카가 말했던 전설의 맨드레이크 사육자가 바로 자네였어!”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그럼 전 가 볼게요.”

“끼익.”

왠지 귀찮아질 거 같아 더덕이를 품에 안고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예의도 바르지. 더덕이 역시 고개를 숙였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상황, 바로 가는 게 좋을 거 같다.

이 마을을 위해서라도 말이지. 이곳에 있으면 메스토카가 이 마을을 공격할 거다.

“안 돼! 조금만, 조금이라도 좋으니 내게 가르침을 주게나!”

“놔요. 왜 이래, 진짜!”

그런 내게 페더가 매달린다.

왜 이렇게 질척거려.

발로 그를 밀어내며 문밖으로 나왔다.

상처받은 얼굴로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게 처량하기 짝이 없다.

그래, 가는 길에 작은 팁은 줘야지.

“맨드레이크는 손바닥을 좋아합니다. 작은 손바닥이요.”

“작은, 손바닥?”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더 해 줄 말이 없다.

뺨을 때리라고 할 수는 없잖아.

하여튼 이걸로 페더와의 볼일은 끝.

하늘을 보니 해가 지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할 일도 남았고.

“이걸 전해 주라고 했었지.”

난 인벤토리에서 편지를 꺼냈다.

12번 마을의 NPC 테일러가 전해 주라고 했던 것.

NPC들끼리 아는 사이라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

당장 베이어드 역시 페더와 아는 사이지 않았던가.

안부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그런데…….

“넌 또 왜 그러냐.”

“끼이이익!”

더덕이가 편지 봉투를 가로채려고 버둥거린다.

61층에 들어서고 덕춘이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평소랑은 다른 행동을 보인다.

곤란하네. 진짜 뭐가 있나?

의심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메스토카 녀석의 알.

덕춘이가 찾아 먹을 정도였고, 그 결과 능력치가 올라갔다.

에밀라가 영약인 멘드레이크도 비슷한 행동을 할 거라고 말했고.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메스토카와 전투를 치르고 영물과 영약을 풀어 알을 처리한다.

이게 베이스였고 여기서 더 나아가…….

‘감염된 사람도 찾아낼지 모른다고 했었지.’

덕춘이가 메스토카 시체에서 알을 찾아냈듯이 사람 몸에 있는 알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

어쩌면 영물을 이용해 몸속에 있는 알을 빼낼 방법을 찾아낼 가능성도 있었다.

뭐, 치료하는 건 희망 사항에 가까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괜한 의심할 필요 없이 확정적으로 감염자를 분류할 수 있다는 거니까.

이 정도까지 정보가 모이니 한 가지 의심이 생긴다.

감염. 알. 영물. 덕춘이. 베이어드.

“설마 베이어드가 감염됐나?”

확실한 건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

전투도 직접 나서서 했고, 감염됐다던 동생을 본인 손으로 죽였다.

그 과정에서 감염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너무 오랫동안 대표를 유지했단 말이지.”

“끼이이?”

마을 사람들과 떠들며 정리한 내용.

감염자 몸속에 들어 있는 알. 그것이 부화하는 기간은 제각각이지만 최대 반년을 넘지 않았다.

이야기에 따르면 베이어드가 동생을 죽이고 대표가 된 지도 2년이 지났다고 했었나.

머리 아프네.

이 부분은 나중에 마을에 돌아가면 확인해 보도록 하고…….

“지금은 이 편지 봉투가 신경 쓰인단 말이지.”

“끼익! 끼이이익!”

지금도 더덕이가 날뛰고 있다.

설마라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든다.

편지는 개인적인 물건.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편지 내용을 살피지는 않겠지.

나도 그래서 인벤토리에 넣어 뒀던 거고.

한마디로 안에 뭐가 들었는지 신경 안 쓰고 전해 준다는 말.

하지만 만약에…….

진짜 만약에 안에 든 게 편지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기는. 메스토카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감염자가 발생하는 거지.’

후폭풍이 대단할 거다.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식중독에 걸리는 거나 마찬가지.

대비도 예상이 될 때 하는 거지,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엿을 먹인다면 당하는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의심 단계에 불과하지만.

어쩐다.

잠시 입맛을 다셨고.

그래, 미안하지만 조금만 봐 보자.

결정을 내렸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권능이 발휘되며 편지의 정보를 떠올렸으나…….

[테일러의 편지]

-NPC의 권능 ‘비밀특사 (SS)’에 의해 정보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대상이 지정한 존재 외에 개봉할 수 없습니다.

“더 수상해지는데?”

권능이 막혔다.

평범한 안부 인사를 하는 데 SS급 권능을 사용한다?

그럴 수도 있는데 왤까, 의구심만 늘어나는 건.

편지 개봉조차 다른 사람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난 다시 페더의 집으로 향했다.

-벌컥

“페더, 마을에 니옴이라는 NPC가 있나요?”

“엇? 아직 안 갔나?”

어정쩡한 자세로 맨드레이크 앞에서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다.

다 큰 양반이 뿌리식물이랑 잼잼을 하는 게 썩 보기 좋지는 않다만 지금은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

“크흠. 니옴이라 있지. 왜?”

“니옴과 마을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주세요. 중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왜 그래야 하지? 4시간 후면 해가 진다네. 자네가 왔으니 메스토카가 공격해 올지도 몰라. 대비할 시간이네.”

“맨드레이크 교육법 전부 알려 드릴게요.”

“하하하! 내 당장 데려오지!”

그 말과 함께 페더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런 양반이 어떻게 3번 마을의 대표가 된 걸까. 여기 괜찮나?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것도 잠시.

“뭔데? 왜 갑자기 모이라는겨?”

“페더가 오라던데요?”

“여기 좀 그런데… 고막 터진다고.”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확실히 12번 마을보다는 규모가 작다.

다 합쳐 봐야 스무 명 좀 넘을까?

“다 왔다네. 이 친구가 니옴이지.”

“날 찾았다면서?”

평범하게 생긴 남자.

갈색 곱슬머리가 인상적이다.

“12번 마을의 테일러를 아시나요?”

“테일러? 어, 알긴 하지.”

반응을 보니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닌 거 같다.

“니옴, 방 중앙으로 와요. 다른 분들은 충분히 거리를 벌리시고, 페더는 맨드레이크들을 니옴 옆에 대기시키세요. 더덕아, 너도 도와줘.”

“끼익!”

“더덕이가 아니라 엘리자베스다!”

중간에 페더가 발끈하기는 했지만 준비는 순조롭게 끝났다.

맨드레이크들이 자꾸 편지 봉투를 노리려 했지만 더덕이가 나서자 차마 덤비지는 못했다.

마을 사람들도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순순히 따라준다.

일단은 대표인 페더가 협조하고 있으니까.

졸지에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맨드레이크에 둘러싸인 채로 편지를 쥐고 있는 니옴.

“뭐야, 뭐야. 프로포즈라도 받는 건가?”

“아, 연애편지 그런 거? 이벤트였네.”

“하긴 직접 올 수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하지.”

“뭔 개소리야. 테일러는 남잔데.”

“엉?”

니옴은 입술을 깨물고 마을 사람들은 웅성거리고.

난 진지한 표정으로 니옴에게 말을 걸었다.

“최대한 봉투를 몸에서 떨어진 곳에서 뜯으세요. 중간에 맨드레이크들이 날뛸지도 모르니 놀라지 마시고요.”

“아니, 내가 왜 이렇게…….”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알았어, 하면 되잖아.”

내 단호한 목소리에 울상을 지은 니옴이 팔을 쭉 뻗더니 손끝으로 편지 봉투를 찢었다.

이어 봉투를 벌려 편지를 꺼내려는 타이밍.

“끼이익?”

“키아아아아악!”

“끼아아아아아아!”

“으, 으아악!”

니옴 주변에 있던 맨드레이크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가 넘어지며 봉투와 편지가 떠올랐고.

“저, 저건!”

“다들 떨어져!”

“빌어먹을 알이다!”

하얀 알들이 쏟아졌다.

몇 개 되지도 않았고 사이즈도 작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 NPC.

그 찰나의 순간에 알의 정체를 파악했다.

하얗게 얼굴이 질린 니옴.

무기까지 뽑아 든 마을 사람들.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날 분위기였으나 결과는 달랐다.

“끼에에엑!”

“키하앙!”

맨드레이크가 냉큼 알을 주워 먹었으니까.

상황 파악이 안 됐는지 눈만 껌뻑이는 사람들.

난 안으로 들어가 니옴을 일으켜 세웠다.

“영약인 맨드레이크는 메스토카의 알을 찾아낼 수 있고, 먹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천적 비슷한 걸지도 모르죠.”

따지고 보면 이전 메스토카 유충이 있던 곳에 더덕이가 같이 있었다.

유충은 더덕이가 있는 곳에 얼씬도 안 했고.

“61층을 클리어할 단서로 쓰세요. 뭐, 그건 그건데…….”

난 바닥에 떨어진 편지를 집어 들었다.

아무런 내용도 없다.

그냥 빈 편지지.

꾸드득, 편지지를 움켜쥐었다.

“테일러 이 새끼는 뭐 하는 놈이지 궁금해지네요.”

덤으로 내가 떠난 12번 마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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