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267화 (267/740)

267화 알

난 잠시 눈을 끔뻑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오길래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만 기생충?

“기생충이요? 모르겠는데요.”

좀 작은 사이즈의 기생충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

보니까 기생충도 종류별로 있던데.

지렁이처럼 길쭉한 것도 있고, 비교적 통통한 굼벵이 같은 것도 있고.

짧지만 다리가 달려 있는 것도 있었다.

그것보다 기생충이 그렇게 위험한가?

폭발이 위험하기는 해도 심각한 정도는 아니던데.

슬쩍 다른 NPC들을 보니 분노 가득한 얼굴로 기생충들을 죽이고 있다.

단순 화풀이인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런 나를 바라보던 베이어드가 설명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작게 숨을 내쉰다.

“놈들이 뿌린 기생충 안에는 또 다른 기생충이 살고 있어.”

“기생충의 기생충이란 건가요? 별 게 다 있네요.”

“중요한 건 그 조그마한 기생충의 몸에 메스토카의 알이 심어져 있다는 거지.”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선뜻 이해가 안 된다.

메스토카 저 초대형 몬스터의 알이 그렇게 작나?

유충만 해도 사이즈가 말도 안 됐는데?

아니, 그건 그렇다 치자.

성장 속도가 미쳤을 수도 있지.

그 알을 왜 기생충이 가지고 있는데.

“메스토카가 왜 무서운지 알아?”

“저런 괴물이 수십 마리씩 돌아다니는데 당연히 무섭죠.”

“그것도 맞지만 부족해, 재앙이라 불리기에는 말이지.”

베이어드가 코를 찡그린다.

“재앙은 혼란을 부추기는 존재.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지치게 하며 의심하게 만들지. 개인의 작은 행동이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만들기도 하고.”

가만히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기생충 이야기가 재앙에 대한 거로 이어지다니.

말하는 것도 거창하다.

혼란을 부추기고, 개인이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게 말이지.

메스토카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사람들을 뭉치게 하지 않나?

서로 물고 뜯던 사이라도 강대한 적 앞에서는 뭉치기 마련이고, 메스토카는 그러기 충분한 괴물이다.

지금도 봐라.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놈들의 공격을 막아 내지 않았던가.

그런 내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을 품은 기생충. 다른 기생충들이 폭발하며 시선을 끌 때 그놈은 우리 몸으로 숨어들지.”

베이어드가 손가락으로 몸을 훑는다.

팔, 가슴, 배.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거겠지.

산란을 위한 기생충이라.

“동료 중에 괴물의 알을 품고 있다는 거 끔찍하지. 물론 여기까지는 그렇다 쳐, 뒤늦게 알아차려서 동료가 죽더라도 유충 하나 죽이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그의 말마따나 유충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다.

아니, 유충 주제에 5성급 괴물이니 위험하긴 하지.

일반인은 당연히 상대도 안 될 거고, 등급 낮은 헌터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할 거다.

땅을 파고들고 잡기도 힘들뿐더러, 유충 상태로도 스타 버스트를 쓸 수 있으니까.

모두가 잠든 밤, 유충이 밖으로 기어 나와 일대를 쓸어버리면 재앙도 그런 재앙이 없다.

하지만 NPC로 이루어진 마을에서 이렇게 과한 반응을 보일 정도는 아니다.

물론 최소 한 명의 동료는 잃는 것이니 뼈 아픈 일이기는 하다만…….

‘베이어드는 그것마저도 달관한 거 같은데.’

방금 말하지 않았던가.

끔찍한 일이지만 그렇다 칠 수 있다고, 동료가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거기서 튀어나오는 유충을 잡는 건 쉽다고.

이미 겪어 본 일이라는 거다.

냉정하다 못해 잔인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말을 아꼈다.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는 내가 뭐라 하는 건 건방진 처사니까.

난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고.

쓰게 웃은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 한 명, 감염된 한 명만 희생할 수 있다면 차라니 나.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

담담하게 그가 그동안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거다.

기생충의 몸에는 알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여러 개가 있다.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은 본인이 의식을 하든, 못 하든 다른 사람에게 접근한다.

그렇게 또 다른 사람에게 알이 심어지고, 그 사람은 또 누군가에게 접근한다.

시간이 흘러 알이 부화하고 유충이 일제히 자라나면?

그때는 뭐… 다 죽는 거지.

베이어드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하루아침에 유령도시가 된 곳도 있다고 한다.

“골 아픈 상황이네요.”

“그렇지.”

서로 등을 맡기고 싸우는 이들.

그중에 연인이 없을까.

전투하며 벌어진 상처로 기생충이 들어올 가능성은?

누군가의 부상을 치료하던 중에 감염되면?

하다못해 음식을 나눠 먹다가도 기생충이 넘어갈 수도 있다.

너무 많이 나간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보다 훨씬 많은 상황을 겪었을 베이어드가 말하길 간접적인 접촉으로 기생충이 옮겨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하니까.

대부분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통해 옮겨진다고 한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가능성.’

그거 하나만으로도 불신은 싹튼다.

이 자리, 메스토카와 싸운 이들 전원이 그 대상.

이제야 그가 말했던 재앙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한 가지 불안감이 싹텄으니…….

‘탑 밖에서 해치운 놈은 괜찮은 건가?’

메스토카를 해치운 건 독일과 프랑스도 마찬가지.

비록 한 마리기는 했지만 그놈도 알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들과 달리 메스토카에 대한 정보도 없으니 어쩌면 대규모 감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고, 그게 진짜라면…….

‘지금의 헌터 수준으로는 바로 멸망이야.’

고작 한 마리를 잡는 데 S급 헌터 두 명과 백 단위가 넘는 헌터들이 갈려 나갔다.

한 번 겪었으니 그때보다는 잘 싸우겠지만 그래 봤자 결과는 최악이겠지.

S급 헌터 중에 활동 중인 사람이 50명이 될까 말깐데.

그놈의 S급 헌터도 끽해야 60층대를 오른 자들이다.

자세히 따지자면 64층까지 오른 사람이 최고다.

“베이어드, 알이 부화할 때까지 잠복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 나름대로 추측해 봤는데 최소 일주일, 최대 4개월. 편차가 심해. 종족마다도 갈리고 환경에 따라도 달라지지.”

차이가 많이 나기는 하는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메스토카가 사냥당한 지 이미 1년 가까이 지났다.

내가 탑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으니 감염된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건 그거고.

난 몸을 펠라인 세트를 해제해 인벤토리에 넣었고.

이어서 상의까지 벗었다.

자잘한 생채기와 멍은 있었지만 큰 상처는 없다.

다른 기생충이 들어간 흔적도 없고.

“보다시피 전 감염이 안 된 거 같네요.”

감염됐으면 진작에 알았겠지.

권능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그와 동시에 난 베이어드를 살폈다.

[베이어드- NPC]

-12번 마을의 대표.

-사라진 부락, 켈리핀의 족장 출신.

-야만족이라 불리는 걸 싫어합니다.

역시나.

아직 NPC와의 격차가 있어 제대로 된 정보를 읽을 수 없다.

수준이 엇비슷하면 권능을 통해 감염됐는지 안 됐는지 살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 같다.

그럼 뭐, 나도 조심해야지.

몸에 벌레 들어가는 건 싫어서, 심지어 유충이다.

유심히 날 살피던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깨끗하군. 기생충이 들어갔으면 흔적이 남지. 간혹 회복 스킬로 상처를 가리는 녀석도 있다만 넌 회복 스킬이 없는 거 같더군.”

“예, 없습니다.”

스킬이 참 많은데 이상하게 회복 스킬은 안 나온다.

이러니까 힐러가 귀족 대접을 받지.

나야 포션도 있고, 덕춘이가 회복 능력이 있어서 상관없지만.

그건 그거고.

“아무튼 알을 품은 기생충을 보거든 반드시 말해 주게. 그것만큼은 반드시 없애야 하니까.”

“그러도록 하죠.”

“가능하면 저 친구도 좀 말리고, 영물이라 괜찮을 거 같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

“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느라 덕춘이를 잊고 있었다.

매번 같이 밥을 먹어서 그렇지 덕춘이는 영물인 동시에 개구리다.

몬스터를 먹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

전에는 히드라 셸도 먹지 않았던가.

메스토카라고 못 먹을 거 같지는 않다.

“야야, 그만해라. 누가 보면 내가 굶기는 줄 알겠다.”

“그에에.”

꼬물거리는 녀석을 잡아당기자 잠시 버티던 녀석이 그대로 끌려 나온다.

이미 얻을 건 얻었다는 걸까.

뭔가를 우물거리고 있었는데.

“저, 저기 있다!”

“그거 먹으면 안 돼!”

“빌어먹을!”

반응을 보니 확실하다.

덕춘이가 움켜쥐고 있는 건 하얀색 알.

남은 것도 입에 넣은 녀석이 날 올려다본다.

뭘 보고 있어, 이 녀석아!

“덕춘아, 지지! 뱉어! 먹는 거 아니야!”

“궤?”

“뱉으라고!”

“극! 엑! 엑!”

녀석의 배를 꾹꾹 눌러도 봤지만 뱉기는커녕 냉큼 씹어서 삼켜 댄다.

“그헤헤헤.”

다 먹었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듯 혓바닥을 내밀기까지.

태연하게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긁적인 녀석이 띠꺼운 얼굴로 몰려든 사람들을 바라봤다.

먹는 거 처음 보냐는 표정.

“세상에나… 뭘 하나 했더니만 알을 찾던 거였나.”

“베이어드 어쩝니까, 이거?”

“으으음… 보아하니 기생충 채로 먹은 게 아니라 알만 꺼내 먹은 거 같은데.”

“씹어먹었으니 괜찮지 않을까?”

“개구리가 이빨이 어디 있다고.”

감염이고 나발이고 탈 나는 건 아니겠지?

남들이야 뭐라 하건 말건 난 권능을 통해 덕춘이의 상태를 살폈다.

[덕춘 (카오스 개구리-A)]

-영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의 알을 섭취했습니다!

-더 먹다 보면 새로운 변화가 있을지도?

-특성: 산성 (S), 회복 (S), 독 (S), 화염 (S), 외갑 (S), 괴력 (AAA)

-고유능력: 뺨치기 (S), 폭식 (S)

상태가 바뀌었다.

덕춘이 자체 등급이 올라간 건 아니지만 화염과 외갑, 괴력의 등급이 한 단계씩 상승했다.

게다가 영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

저건 보나 마나 메스토카를 말하는 거 같은데.

“그에에.”

“그러고 보니 너 메스토카에 대해 알고 있었지.”

왜 알고 있나 했더니만 비슷한 종류다 이거냐.

하긴, 생각해 보면 맨드레이크도 영약이라 덕춘이에게 별 영향을 못 줬었다.

메스토카의 알도 비슷한 느낌인가.

덕춘이의 입장에서는 메스토카의 알이 영약 같은 걸지도 모른다.

설명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더 먹다 보면 변화가 생길 거라고.

그건 그렇다 치는데…….

“일단 이상은 없네요, 하하.”

난 자연스럽게 펠라인 세트를 다시 착용하며 덕춘이를 끌어안았다.

나야 안전한 거 알지만 이들은 모르잖아.

무작정 나를 믿기에는 메스토카에 당한 게 한둘이 아닌 사람들인데.

아니나 다를까 NPC들의 표정이 살벌하다.

역시 말로만 해서는 힘든 걸까.

만약 이들이 덕춘이를 요구한다면 바로 도망칠 예정.

싸우면 싸웠지 덕춘이를 내놓지는 않을 거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덕춘이가 감동을 받았는지 눈빛을 빛내며 입을 벌렸고.

“꺼윽.”

“…제발 눈치 좀 챙기자, 덕춘아.”

주인이 열심히 변호하는데 네가 그렇게 나오면 안 되지.

뭐라 나무랄 여유도 없다.

NPC들이 조금씩 내게 다가오고 있었으니.

이거 그냥 좋게 끝날 수 있을까?

슬쩍 뒤를 보니 이미 언제 왔는지 퇴로도 막혔다.

빠르기도 해라.

“그냥 못 본 거로 할까요? 아하하.”

“그러기에는 너무 대놓고 봤군.”

“잠깐 확인만 하겠네.”

어쩐다, 진짜 들이박아야 하나.

마음속에서 극단적인 결정을 고민하는 타이밍.

“멈춰요!”

“에밀라?”

마을에 대기 중이었던 에밀라가 달려왔다.

몸에 피가 잔뜩 묻어 있는 걸 보니 다른 곳에서는 환자가 발생한 모양.

그건 그렇다 치고.

내 앞으로 달려온 그녀가 마을 사람들을 가로막는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걸까.

“문제없을 거예요. 영물이잖아요. 그것도 카오스 속성. 메스토카의 알을 먹고 좋아졌으면 좋았지 감염될 일은 없어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나 드루이드예요, 꽤 신분 높은. 영물에 대해 저보다 잘 아는 사람 있나요?”

당당히 외친 그녀의 말에 NPC들이 입을 다문다.

드루이드가 영물에 대해 잘 아나?

모르겠지만 일단 내 편을 들어주니 가만히 있었다.

약간의 신경전이 흐르고.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 없지. 그래도 한동안은 격리해야 할 거야.”

베이어드가 등을 돌렸다.

대장 격인 그가 받아들였기 때문인가. 다른 이들도 하나둘 그를 따르려는데.

“덕춘아!”

“궥!”

찰나의 순간 내 품을 벗어난 녀석이 베이어드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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