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기생충
폭발과 함께 터져 나가는 메스토카.
단번에 죽을 거라는 생각은 없다.
그 정도였으면 재앙이 아니라 일반 몬스터로 분류됐겠지.
고작 다리 하나가 날아갔을 뿐이다. 몸통에도 데미지를 입은 것 같기도 하지만.
내부부터 타들어 가며 신경 쪽에도 문제가 생긴 모양.
-빠그그그극
열기에 키틴질이 조금이지만 녹았다.
좀 더 떨어진 곳에도 변형이 일어났고.
단단한 외갑 안에 있던 근육이 열기에 쪼그라들어 다리가 오므려지기까지.
확실하네.
벌레 타입에는 불 속성이 제격인 거.
뭐, 그렇게 따져도 예상보다 효과가 대단하지만…….
이유는 별거 없다.
[메스토카의 체액]
-일정 온도 이상으로 올라갈 시 불타오릅니다.
-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메스토카의 살덩이]
-익으면 강력하게 수축합니다.
-질겨서 못 먹을걸요?
놈의 몸에 이런 약점이 있던 탓이지.
외부적인 공격에는 강하지만 내부로 열기를 침투시킨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다는 것.
설명대로 체액에 독성이 섞여 있는지 체액에 닿은 부위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독 내성 스킬도 반응을 보이고.
나도 독 내성이 상당한 터라 그거까지는 상관없는데.
“키햐아아아악!”
“화가 많이 난 거 같지?”
“그에에에.”
단번에 다리가 날아간 녀석이 괴성과 함께 발을 굴러 댄다.
곤충형 몬스터답게 놈의 다리는 3쌍.
앞다리야 톱날로 이루어진 만큼 실질적으로 땅을 딛고 있는 건 4개지만.
하여튼 놈을 완전히 무너트리려면 다리 하나는 더 분질러야 한다.
“읏차!”
-쿵! 쿠구구궁!
땅을 구르며 놈의 발에 밟히지 않게 피했다.
초대형종.
다리 하나만 해도 어지간한 고목보다 두꺼웠고, 놈의 무게는 얼핏 잡아도 톤 단위.
덩치를 생각해 본다면 코끼리보다 많이 나갈 테니 10톤 이상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실수로라도 밟히고 싶지 않다.
아무리 나라도 무사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래도 걱정 마라.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건 놈한테도 좋기만 한 게 아니니까.
날지도 못할뿐더러 저거 봐라.
-끼기기긱
-끼이익
다리 하나 사라졌다고 하중을 견디는 게 버거워 보이지 않는가.
좀 더 부러트리기 쉽겠는데.
“여전히 빠르지만 말이야.”
난 다시 앞으로 굴렀다.
머리 위로 놈의 다리가 지나간다.
풍압만으로도 몸이 붕 뜰 수준.
[중량 팔찌 (C)]
아티팩트로 무게를 늘리지 않았다면 진짜 날아갔을 거다.
무식하기 짝이 없네.
난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내 존재를 눈치챈 건 이 녀석 하나뿐만이 아니다.
적진 한가운데 있는 거나 마찬가지.
절반 정도는 마을 향해 달려갔고, 내 주변에는 8마리 정도가 남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놈들을 동시에 상대하기는 버겁다.
굳이 놈의 발밑에서 안 나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기는 한데.
“키햐아악!”
놈도 그걸 눈치챘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깔고 뭉갤 속셈.
-쿠우우우웅!
지축이 흔들리고 땅이 꺼진다. 단순히 주저앉는 행위 하나로.
그대로 깔려 줄 생각은 없지만.
[땅굴 이동 (A) Lv.2]
바로 밑으로 몸을 빼냈다.
유충일 때는 잘만 땅속에서 기어 다니던 녀석들이 다 크니까 아무것도 못 하네.
피식 웃으며 다시 위로 길을 뚫었다.
놈이 몸으로 깔아뭉갰다는 게 어떤 의미냐.
뭐긴 뭐야.
-구구구궁
-푸화아아악!
놈의 약점인 배가 알아서 찾아왔다는 거지.
땅을 뚫는 것과 동시에 파이어 밤.
검을 내뻗은 그대로 추진력을 받아 놈의 배를 찔렀다.
단순히 찌르는 수준으로는 안 되지.
저 덩치를 생각하면 생채기나 다를 바 없는데.
그러니…….
“안쪽까지 헤집어 줘야지.”
[오로라 빔 (S) Lv.3]
-콰드드드득!
질기면서도 축축한 뭔가가 뜯기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놈의 몸에서도 온갖 체액과 살덩이가 쏟아졌고.
“키햐아아아아악!”
고통을 참지 못한 놈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징그러운 녀석.
보통은 이 정도로 데미지를 입었으면 죽는 게 정상인데 말 같지도 않은 생명력으로 버티고 있다.
아니, 이미 죽은 건데 신경이 살아 있어서 발버둥 치는 건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위험한 건 마찬가지니까.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시간을 끌며 버티고 싶지만 아무래도 안 될 거 같다.
왜냐…….
“동료애도 없는 새끼들.”
-카가가가가각!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한 걸까.
나를 둘러싸고 있던 놈들이 바닥에 있는 동료가 꿈틀거리든 말든 그대로 톱날을 휘둘렀다.
그 단단한 외갑을 부수고 내게로 날아드는 일격.
피할 수 있나?
저 덩치에서 이런 속도가 가능한 건 별개로 치고…….
‘범위가 너무 넓잖아!’
초대형종의 위상이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사방에서 톱날을 휘두르는 건 사실상 피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다시 땅으로 파고들 생각도 했지만.
-후두두둑
놈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수많은 기생 벌레들이 땅을 파고 들어갔다.
베이어드가 말한 자폭 기생충이 이것들이겠지.
나도 권능으로 스킬을 살폈으니 확실하다.
별수 없다. 피할 수 있는 만큼 피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개 질주로 도망치는 수밖에.
-콰아아아앙!
망설일 것도 없이 폭발을 일으켰다.
몸에서 힘을 빼 반발력에 몸을 싣고 옆으로 튕겨 나갔다.
-콰가가각!
그런 내가 있는 자리에 박히는 톱날.
어지간한 관광버스보다 커다란 앞다리가 땅을 부순다.
파편이 어지럽게 날아오르고, 그거에 정신이 팔릴 틈도 없이 다른 톱날이 날아든다.
-쿠웅!
중량 팔찌를 이용해 단번에 무게를 늘려 방향을 틀었다.
땅으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프로즌 브레이크.
-쩌저저적!
얼음이 생성되며 몸이 미끄러진다.
최대한 변칙적으로.
놈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과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보고 피하긴 힘들다.
공격 범위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지금도 마찬가지.
-쿠우우우웅!
“크학!”
어떻게 피한다고 피했는데 완전히 피하는 데 실패했다.
굳이 따지자면 스쳤다는 표현이 옳았지만 체감되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독자무강獨者武强 (S) Lv.4]
[강철의 의지 (S) Lv.3]
[강체强體 (S) Lv.4]
[물리 공격 내성 (S) Lv.3]
패시브 스킬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위력.
펠라인 세트의 방어력도 한몫했다.
-쿵, 쿠구구궁
바닥에 처박혀 한참을 굴렀다.
정신이 아찔하다.
쉽지 않네.
이게 바로 재앙.
6성급 몬스터 따위랑은 비교도 할 수 없다.
난이도가 한 번에 너무 뛴 거 아닌가.
이러니까 사람들이 60층대를 못 뚫고 나가떨어지지.
뭐, 어떻게 올라갈 수 있으니까 상위층 헌터들이 있는 거겠지만.
60층 안전지대에서도 62층까지 오른 놈들도 더러 있었고.
머리를 흔들며 집중했다.
아픈 소리 할 때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놈들은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으며.
-우우우우웅!
몇 놈은 스타 버스트를 쏘려고 아예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으니까.
잠깐만…….
“아가리를 벌려?”
놈들을 물리적으로 때려 부수는 건 힘든 일.
잡으려 한다면 내부에 열을 가하는 게 베스트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깔릴 걸 각오하고 관절을 부수든 배에 접근해 찢어 버려야 한다.
하지만 저렇게 입을 벌려 준다면 말이 다르지.
-콰앙!
난 전력으로 발을 박찼다.
폭발을 일으켜 가속도를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고 그것마저 부족하다 느꼈을 때는…….
[펠라인 세트 효과! (6/7)]
[펠라인 세트 스킬을 사용합니다.]
여섯 세트를 맞추며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SS급 공격 스킬인 홍예참과 얻은 스킬.
보호에 무지개 반사가, 버프에 아스트랄 레인보우가 있다면 이동기에는…….
[무지개다리 (S)]
-갑시다! 무지개 너머로!
-하늘 위든, 바다 아래든, 눈에 닿는 곳이라면 갈 수 있습니다!
-지정 대상만 탑승 가능.
-이동 중 파괴 불가.
-하루 10번 사용 가능.
그래, 이거지.
무지개에 미친 펠라인이라면 이런 스킬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촤아아악!
나를 시작으로 뻗어 나가는 무지개다리.
목적지는 스타 버스트를 쓰려고 힘을 모으는 녀석.
한참을 뒹굴었기 때문일까 거리가 제법 됐지만.
“그에에에에!”
“왜 이렇게 빨라!”
처음 사용해 본 무지개다리는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키, 키헤에엑?”
반짝이는 일곱 빛깔 무지개.
그걸 타고 날아오는 나.
놈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듣고 싶지 않다.
저 멀리, 다른 메스토카 떼와 전투를 벌이던 NPC들도 얼빠진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왤까.
왜 화가 나지?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악물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건 덤.
그래, 이게 다 이놈들 때문이다.
이놈들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 스킬을 사용할 일도 없었으니까.
“그에에.”
그치?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궤?”
뭔 개소리냐는 표정이었지만 무시했다.
가끔은 보고 싶은 데로 볼 줄도 알아야지.
어느새 지척.
강렬한 에너지를 머금은 메스토카를 향해 검을 뻗었다.
단단한 외피가 걱정이다?
그럼 외피를 공격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영혼 찢기 (S) Lv.4]
-찌이이익!
무지개다리로 연결된 녀석.
내 검이 놈의 턱을 통과했다.
“그에에엑!”
[뺨치기 (S)]
그와 동시에 덕춘이가 놈의 뺨을 후려갈겼으니.
쩌억.
놈은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고.
[파이어 밤 (S) Lv.6]
난 그대로 놈의 입안에 폭발을 일으켰다.
한두 번으로는 성에 안 찬다.
고작 그 정도로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괴물도 아니고.
-콰아아아아앙!
상체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지만 그래 봤자 전체 크기에 비하면 작은 부분.
머리를 잃었음에도 놈의 거대한 몸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앞이 보이지 않아 마구잡이로 톱날을 휘두르고 온몸에서 기생충을 뱉어내 자폭시키기까지.
-푸스스스
이건 어떻게 피할 수가 없어서 안개 질주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제 겨우 한 마리 잡은 건가.
사실 잡았다기보다는 발을 잡았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지만.
징그러운 놈들.
마을 쪽은 상황이 괜찮다.
내가 놈들의 시선을 끌어 준 덕분에 메스토카 무리가 분산됐으니까.
이미 저쪽은 거의 끝난 상황.
과연 NPC는 NPC다. 넷이서 함께 움직인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안개화가 종료됩니다.]
[망자귀환 (AAA) Lv.5]
“나도 좀 더 분발해야 하나.”
망자귀환에 이어 버프 다이스도 사용했다.
[버프 다이스 (AAA) Lv.1]
[2]
[통증 강화]
눈금이 낮기는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통증 강화. 말 그대로 1만큼 아플 거 10만큼 아프게 해 주는 거니까.
실질적으로 데미지를 주는 건 아니지만 상대방을 위축시키는 데는 충분하지.
어차피 메스토카 이 녀석은 생명력이 질겨서 잡는 데 오래 걸린다.
이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용케 살아남았군.”
“지금부터는 우리도 도와주지.”
NPC들 하나둘 모여든다.
온몸에 핏물과 체액을 뒤집어쓴 이들.
조금은 지쳐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날카로웠다.
승산이 기울었음을 안 걸까.
[메스토카가 밤은 오늘만이 아니라고 전합니다.]
[복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은 메스토카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쫓아가 공격해 볼까도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힘들기도 하고, 놈이 말한 것처럼 밤은 오늘만 찾아오지 않는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밤은 다시 올 터.
달아올랐다고 무리하기보다는 체력을 회복하고 재정비를 하는 게 옳았다.
베이어드를 비롯한 NPC도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고 말이지.
“다들 물러난 거 같으니 박멸 작업을 시작하지. 다들 서둘러. 조금이라도 자고 싶으면 말이야.”
“마을에서 대기 중인 애들도 데리고 와!”
“움직이자고!”
메스토카 무리가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나서야 긴장을 푼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직도 꿈틀거리는 메스토카를 확인 사살하고, 나머지는 땅을 파헤치며 놈들이 뿌린 기생충을 죽였다.
중간중간 자폭하는 기생충 때문에 폭음이 들려왔지만 다들 익숙한 듯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나도 도와줄까, 그럼 조금이나마 빨리 끝날 거 같은데.
덕춘이 이 녀석은 메스토카 시체를 뒤적거리고 있다.
뭐가 있나? 모르겠다. 때 되면 돌아오겠지.
투구를 벗고 머리를 긁었다.
그런 내게 다가오는 베이어드.
“확실히 다른 등반가들이랑은 다르군, 강해.”
“다른 NPC만 할까요.”
“겸손은 됐어. 그런 거로 살아남을 곳은 아니니까. 그보다 하나만 묻지.”
베이어드의 분위기가 돌변한다.
그가 살벌한 눈빛으로 도끼를 움켜잡았다.
“혹시 놈들이 뿌린 기생충 중에 유독 작은 것을 본 적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