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벌레 타입
초대형 몬스터.
일반적인 대형 몬스터랑 비교해도 월등히 큰 덩치를 자랑하는 놈들이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감을 느끼게 하는 박력을 지녔다.
마치 거대한 벽이 다가오는 느낌.
고작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게 맞냐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존재.
다른 능력이 없더라도 덩치 하나만으로 위협적인 게 초대형 몬스터건만…….
“미치겠네.”
“그에에.”
그런 놈들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십여 마리가 몰려들어?
저 멀리 꾸물거리는 그림자를 보아하니 아직 전부 온 것도 아닌 거 같다.
나중에 가 봐야 알겠지만 최종적으로 모이면 20마리 정도는 되겠는데…….
방심했다.
아니, 예상도 못 했다.
재앙이라 불리는 네임드 몬스터가 군집체 몬스터일 줄이야.
난 에밀라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 역시 굳어 있었으나, 태평한 성격이라는 게 거짓말은 아닌지 조금은 느슨한 면이 있었다.
이미 여러 번 겪어 온 사람의 여유일지도 몰랐고,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일에 해탈한 걸 수도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에밀라가 그렇다는 거고 난 이 일을 처음 겪는다.
조그마한 정보라도 필요하다는 이야기.
“평상시에도 이 정도로 몰려드나요?”
“아니요. 가끔 많이 올 때도 있는데 이 정도 규모는 처음이에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있던 적 없는 규모의 공격.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나겠지.
유충을 죽임으로써 메스토카의 원한을 샀으니까.
이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해야 하나 싶었지만 적어도 지금이 그 타이밍은 아닌 거 같다.
“갑시다. 그냥 보고만 있을 건 아니잖아요.”
“그엑!”
“위험해요!”
망설임 없이 창가를 박차고 뛰어내렸다.
그새 사람이 더 늘었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들까지 모조리 나온 모양.
이제 좀 감이 잡히네.
12번 마을의 주민은 대략 서른 명이 좀 넘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숫자.
고작 서른 명이라고 하기에는 이들이 겪어 온 경험과 시간이 다르니까.
절반이 넘는 마을이 파괴되는 동안에도 버텨 낸 게 이들이다.
나도 도움을 주면 어떻게든 오늘 밤을 넘길 수 있겠지.
보아하니 낮에는 메스토카도 활동을 잘 안 하는 거 같으니까.
“이봐! 안에 들어가 있어. 여관 쪽에 방어 마법진 설치해 놨다고!”
“괜히 어슬렁거리다 죽지 말고!”
빠르게 전투를 준비하는 와중에도 내게 소리를 치는 NPC들.
그들의 말마따나 여관 주변에는 알 수 없는 마법진들이 둘러져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는데, 권능으로 살펴보자.
[대지의 수호 마법진]
-땅 속성 마법진이 펼쳐져 있습니다.
-마법적 구조로 물리 공격 및 마법 공격에도 강한 저항력!
-안전한 공간에서 티타임을 가지는 건 어떨까요?
확실히 날 보호하려던 목적인 게 맞네.
여관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했더니만, 감시하는 것만 아니라 마법진을 설치하고 있던 건가.
베이어드가 말했지, 내가 필요하다고. 한동안 마을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가만히 있는다고 이곳의 비밀을 알 거 같지는 않다.
여기저기 튀어 나가야 반응이 오지.
지금이 타이밍.
메스토카 무리가 덤벼드는 동안이라면 이들이라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다 떠나서.
“저도 등반해야죠. 도와야 뭘 할 거 아닙니까.”
얌전히 앉아서 구경하기에는 등반가라는 타이틀이 아깝다.
재앙 구간.
이미 바깥 세계에 재앙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멸망의 과도기에 접어든 지금 또 다른 재앙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고, 이렇게 된 이상 조금이라도 놈들에 대한 정보와 공략법을 찾아서 뿌리는 게 맞았다.
난 대로변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이어서 점프.
적당한 건물 위에 올라가 상황을 파악했다.
“준비 철저하네.”
각 건물 옥상에 올라 원거리 사격을 준비하는 이들이 8명 정도.
동서남북으로 4명씩 팀을 이루어 대기하고 있는 이들까지 24명.
체력 배분을 위한 걸까. 마을 내부에서 대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서 싸우던 사람이 지치면 교대해 줘야 할 테니까.
뭐, 직접적인 전투가 아니더라도 보조적으로 도와줄 수도 있고.
여관에서 본 에밀라도 그중 한 명.
언제 나왔는지 광장에 자리 잡고 간이 침상 여러 개를 펴놨다.
힐러였던 모양.
“죽을 거 같으면 바로 저한테 와요.”
“그러죠.”
나를 발견한 에밀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등반가가 이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하다.
마을에 들어오고부터 줄곧 내 안전을 신경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전투에 나서겠다는 걸 말리지는 않는 걸 보니 직접적으로 제한을 가하는 건 시스템적으로 막혀 있는 게 아닐까.
진짜 마음먹고 억압할 거였으면 팔다리 묶어서 여관에 던져 놨지.
-타앗!
발을 박차고 동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건 베이어드.
각자의 장비를 입고 대기하던 이들이 눈을 부릅뜬다.
“얌전히 안에 있으라고 했을 텐데.”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면서요. 아, 갑자기 목이 마르네. 물 마시러 나왔습니다.”
태연하게 말을 받자 베이어드가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면서도 뭐라 하지는 않고 시선을 돌린다.
-구구구궁
진동이 커지고 있다.
메스토카 덩치가 워낙 커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가까이에 있는 기분이다.
저 정도 속도면 30분 내로 근처까지 오겠는데.
“미리 말하지만 저놈들은 강해. 네가 그동안 겪어 왔던 몬스터와는 차원이 달라. 오만은 곧 죽음이야.”
“걱정 마세요. 더한 놈도 만나 봤으니까.”
재앙이라고 하지만 혼돈의 파편만 할까.
일반 몬스터는 6성까지.
그 위에는 재앙이라 불리는 네임드 몬스터가 있고.
그보다 위험하고 실질적으로 멸망으로 잡아끄는 것이 혼돈의 파편.
이들에게 있어서는 고작 61층에 올라온 애송이로 보일지도 몰랐지만 나 역시 어설프게 살아남은 건 아니다.
흥분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이길 방법을 찾는다.
그런 내 모습을 알아본 걸까 픽, 웃은 베이어드가 등에 메고 있던 도끼를 꺼내 쥐었다.
옆에 있던 3명의 NPC도 각자의 무기를 꺼낸다.
NPC들이 진심으로 전투에 임하는 건 오랜만에 보겠네.
49층 게일과 악마들과 함께한 이후로는 처음 아닌가?
문득 예전 생각이 나 혀를 씹고 있을 때 베이어드가 말을 걸었다.
“우리는 그리 멀리 나가지 못해. 활동 범위 밖으로 나가면 못 도와줘.”
“알고 있어요.”
NPC는 활동 구역이 정해져 있으니까.
저기, 마을 기준으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푸른 띠가 보인다.
원형으로 마을을 감싸는 선.
저기가 이들이 나올 수 있는 최대 범위겠지.
“메스토카를 상대할 때 조심해야 할 건 스타 버스트, 그 외에는 육탄 공격. 은근히 신경 쓰이는 건 몸에 기생하는 기생충을 조종하는 거. 그놈들 자폭한다.”
내가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부터는 빠르게 놈에 대한 정보를 말해 준다.
귀로는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눈으로는 권능을 통해 얻은 정보를 머리에 집어넣기 바빴다.
[메스토카]
-군집체 몬스터.
-재앙.
-강력한 힘과 단단한 몸!
-무거워서 날지는 못합니다.
-몸이 잘려도 꿈틀꿈틀!
-보유 스킬: 스타 버스트 (SS), 자폭충 (S), 베어 가르기 (AAA)…….
스킬이 꽤 많다.
과연 재앙이라 이건가?
객체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위협적인 건 동일했다.
약점은 없을까.
무게가 있으니 관절을 노리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곤충형 몬스터는 배가 크다.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고, 비교적 덜 단단하니까.
전체적인 모양은 사마귀랑 비슷하다.
어느덧 놈들이 윤곽이 선명하게 잡힌다. 대충 1킬로미터 정도 거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놈들이 일제히 멈춰 선다.
[메스토카가 유충 살해자를 마주합니다.]
그와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으며.
-우우우우우웅!
“이런 제기랄! 시작부터 저거라니!”
“유충 살해자? 자네 설마 유충을 죽였었나?”
“그딴 건 나중에 말하고 방어 준비나 해!”
우리를 둘러싼 메스토카가 일제히 입을 벌렸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별빛이 죽어간다.
마을이 워낙 밝은 탓에 별빛이랄 것도 별로 없기는 했지만.
위력이 줄더라도 수십 마리가 일제히 내뱉는 스타 버스트는 가히 재앙이나 다를 바 없었고.
-콰아아아아앙!
-카아아아앙!
세상이 번쩍인다 싶었을 때는 별의 힘을 담은 광선이 우리를 집어삼켰다.
무려 SS급 스킬.
도망칠 수도 없게 사방에서 몰아닥치는 공세는 가히 재앙과도 같았으나.
[퍼펙트 가드 (S) Lv.MAX]
[신목의 가호 (SS) Lv.MAX]
[죽음을 대신하는 목각인형 (S) Lv.MAX]
.
.
.
이들 역시 보통은 아니었다.
중첩되는 쉴드.
그 외 온갖 보호 스킬과 아티팩트가 놈들의 공격을 받아냈다.
-펑! 퍼버버벙!
-차아아앙!
쉴드가 깨져 나간다.
파편화된 마나의 결정이 폭발하며 흩어지고, 아티팩트는 그대로 불타 사라졌다.
순수한 파괴의 힘.
누군가는 세상이 사라지는 듯한 착각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콰앙!
난 오히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위험해!”
“이봐!”
옆에서 나를 말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내 몸은 앞으로 나간 상태.
무작정 뛰쳐나간 건 아니다.
놈들의 공격이 잦아들었음을 간파하고 돌진한 거지.
아직 스타 버스트의 여파가 남은 시점.
빛에 몸을 감추며 이동하기에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만큼 1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는 멀지 않다.
무모한 행동인가.
그럴 수도 있다.
있는데…….
“나도 궁금해.”
내가 저런 놈들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지.
조금은 알 거 같다.
탑이 왜 필드에 마을을 뒀는지.
등반가 혼자서 상대할 괴물이 아니니까.
애초에 여럿이서 상대하라고 있는 게 저놈들이니까.
맞는 말이다.
그편이 훨씬 이기기 쉽고 안전한 방법이니.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등반가는 줄어들 것이고, 탑에서 나가게 된다면 나를 도와줄 NPC도 없을 텐데?
미리 겪을 수 있을 때 겪어 봐야 한다.
머리가 깨지든 몸이 박살 나든 정면으로 부딪쳐 봐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한 코인.
그건 어디까지나 탑 안에서만 유효한 거였으니까.
[땅굴 이동 (A) Lv.2]
-쿠르릉
땅이 꺼지며 몸이 밑으로 떨어진다.
위로 계속 움직이면 들킨다.
곤충형 몬스터의 무서운 점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는 충분히 달라붙기 전까지는 사각지대가 없다는 것.
저 망할 겹눈은 앞뒤 할 거 없이 볼 수 있으니까.
그러니 모습을 숨겨야 한다.
땅굴로 이동하면 진동이 울리기는 하겠지만 저 덩치를 가진 놈들이니 걷기만 해도 나보다 시끄러울 터.
그뿐일까.
-쿵, 쿠궁
-우우웅
나로서는 놈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쉽다.
스타 버스트는 일조의 궁극기.
놈들도 시도 때도 없이 사용할 수는 없는 거였고, 일제 사격을 마친 놈들이 움직이는 게 진동을 통해 느껴졌다.
이동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섰다.
들린다.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궁, 구궁
가까워지고 있다.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니라 사방에서 진동음이 들렸지만 난 집중했다.
-구구궁, 궁
토굴에서 떨어지는 흙과 돌.
그것이 조금씩 늘어났고.
-쿵!
확실하게 내 위를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눈을 번뜩였다.
[디그 (D) Lv.5]
머리 위로 디그를 사용했다.
흙이 밀려나며 뻥 뚫려 버린 공간.
예상치 못한 함정에 놈의 다리가 밑으로 떨어졌고.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번뜩입니다!]
[절삭 (AAA) Lv.6]
[도축 (AAA) Lv.1]
그대로 검을 틀어박았다.
노린 건 관절.
다리마저도 사람 몸통보다 굵은 놈이다.
심지어 구조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외골격으로 저 덩치를 버티는 괴물.
상상 이상으로 단단한 갑피를 정면으로 뚫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관절은 다르지.
-뿌국!
반쯤은 억지로 때려 박은 검.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검을 쑤셔 넣었다.
-푸슈슈슈슉!
체액이 흘러나오는 타이밍.
[일렉트릭 쇼크 (AAA) Lv.3]
“키햐아아아악!”
그대로 쇼크를 일으켰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녀석.
딱딱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촉촉하다.
뭐,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지만.
“내가 속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말이야.”
어릴 때 하던 게임에서는 이렇게 말하더라고…….
-콰드드득!
전기로 지져 버린 놈의 다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벌레 타입은 불에 약하다.”
[파이어 밤 (S) Lv.6]
-콰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놈의 몸통 일부가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