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264화 (264/740)

264화 메스토카

60층대는 재앙의 구간.

이 재앙이라는 게 단순히 자연재해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독일과 프랑스를 개판으로 만들었던 괴물 메스토카.

그 괴물이 나왔다는 건 이후에 다른 층에도 그에 준하는 네임드 몬스터가 나온다는 거니까.

단순히 몬스터라 칭할 수 있을까?

저렇게 메시지로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녀석인데.

NPC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그 무언가도 아니다.

그나마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42층에서 실험 대상이 돼 주었던 데미 데몬 정도?

NPC도 아닌 것이 시스템으로 말을 걸어왔었지.

후, 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다 하다 몬스터한테 협박을 다 받아 보네.”

“그에에에.”

미묘한 기분이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61층을 깨려면 메스토카를 잡아야 하는 거 같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메스토카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어.”

인류에게 모습을 드러낸 재앙은 총 3마리.

먼저 별을 삼키는 거귀충, 메스토카.

S급 헌터 2명과 54명의 A급 헌터, 그 외 100명이 넘는 B급 이하 헌터들이 희생되어 잡아낸 녀석.

독일과 프랑스의 연합해 사냥한 만큼 관련 자료는 있다.

아무리 정부가 서로를 견제한다지만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괴물에 대한 거까지 비공개로 하지는 않았으니까.

수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현재 헌터 수준으로도 잡을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메스토카를 제외한 남은 두 재앙은 결국 잡지 못했으니까.

심해의 파괴자, 레비아탄.

스리랑카 칼루타라에서 처음 발견된 초대형 몬스터이자, 아직도 바다를 누비며 파괴를 일삼는 괴물이다.

바다 어디서 나올지 몰라 공격하기도 찾아내기도 힘들다.

그리고 막상 찾아내도 답이 없지만.

놈을 처치하기 위해 아시아 6개국이 합동 작전을 펼쳤지만 실패한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지금에 와서는 마주치지 않기를 빌며 해상 무역을 하고 있다던가.

마지막 세 번째 재앙이 있기는 한데…….

‘그건 뭐,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중부 아프리카 일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는 자취를 감췄다.

워낙 갑작스러웠고, 목격담이 괴담이나 다를 바 없어 미스터리 취급을 받는 중.

잡다한 생각이 이어졌지만 중요한 건 그거다.

“메스토카 정도면 할 만하다 이거지.”

솔직히 내 자랑 같지만 60층에 있던 녀석들 여럿이랑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

펠라인 세트를 6개까지 모은 마당에 못 할 것도 없지.

“게으으.”

어째서인지 덕춘이는 다른 생각인 거 같지만.

그러고 보니 얘도 메스토카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나?

유충 잡을 때 위험 신호 보낸 것도 덕춘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긴장감은 유지하는 게 좋을 터.

우선은 마을로 향하자, 저곳에 가야 정보도 얻고 할 테니까.

호기심도 살짝 생기고.

마을이 있는 필드라.

난 걸음을 옮겼다.

다행인가.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메스토카의 공격은 없었다.

* * *

-치이이익

“어이, 거기 불씨 꺼졌는지 확인 잘해!”

사그라들고 있던 모닥불에 물을 끼얹은 남자가 소리쳤다.

해가 뜰 때까지 이어지던 축제가 완전히 끝났다는 증거.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피곤함에 하품을 하면서도 거리를 치우고, 조명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으음?”

“오? 등반가인가 본데?”

그런 이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언덕에서 봤을 때는 가까워 보였는데 막상 걸어 보니 거리가 꽤 되어 이제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심장.

마을에 모여 있는 이들 전원이 NPC였다.

그 때문인지 외딴곳에 있는 마을임에도 방벽이 세워져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방벽이 중요할까, 이미 마을 구성원 전원이 전투 병기나 다를 바 없는데.

“안녕하세요, 이번에 처음 61층으로 올라왔습니다.”

“그에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60층대 역시 오픈 필드.

규모가 광범위했고, 이곳 같은 마을이 또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있더라도 언제 발견할지 장담할 수 없고.

굳이 노숙할 필요 없이 이곳에서 지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반응을 보아하니 날 경계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렇겠지. 나 말고 여러 사람이 들렀을 테니.

“61층에 온 걸 환영하지, 베이어드다. 그쪽은?”

“이블아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엑.”

“이건 설마… 멸망의 징조와 함께 다니는 등반가는 오랜만이군.”

처음이 아니라 오랜만이라고?

“저 말고도 카오스 속성 영물을 데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나요?”

“있었지. 물론 자네 세계 사람은 아니야.”

그가 손사래를 친다.

다른 세계에 탑이 생성됐을 때 만났다는 건가.

그렇다는 건 이 NPC 아니, 이 마을이 꽤 오래됐다는 걸 뜻하는데.

가늠이 안 된다.

NPC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늙어 죽지 않는다는 것.

이 사람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걸까.

“거기 서 있지 말고 들어와. 빈 건물이 제법 많으니 적당한 곳에 머물면 될 거야.”

툭. 어깨를 두드린 베이어드가 턱으로 마을을 가리킨다.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날 바라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심드렁한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문 채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다.

확실히 프램버그랑은 다르다.

그곳과 달리 이곳에는 노인이나 어린이가 없으니.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마을 구성원 모두의 얼굴이 어둡다는 것 정도.

적대적이라고 해야 하나, 묘한 적의가 느껴졌지만 나를 향한 거 같지는 않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감상은 그러했다.

“여긴 뭐라고 불러야 하죠? 마을 이름이라도 있을 텐데.”

“이름은 딱히 없어. 그냥 12번 마을이라고 불리고 있지.”

“이런 마을이 여러 개 있다는 거네요.”

“서른 개 정도 있었나?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는군. 이제는 절반도 채 안 남았을 거야.”

“절반도 안 남았다고요?”

난 그를 바라봤다.

남은 수가 절반도 안 된다는 건 마을이 사라졌다는 뜻.

대체 왜? NPC로 이루어진 마을이 왜 사라져.

어떤 좋은 일이 있어 설까, 아니면 안 좋은 일이 벌어졌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에 가까울 것 같은데.

“차차 알게 될 이야기지, 급할 거 없어. 미리 말하는데 한동안은 마을을 벗어나지 말게나. 우린 자네가 필요하거든.”

그의 말에 정리를 하던 NPC들이 슬금슬금 모여든다.

여차하면 무력을 쓸 거 같은 태세.

직접적으로 압박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긴장하기에는 충분했다.

조금은 기분이 나쁠 만한 상황이었으나 굳이 마찰할 필요는 없겠지.

나도 한두 명도 아니고 열댓 명의 NPC들이랑 싸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뭐, 싸워야 한다면 싸울 생각이지만.

일단은 이들에게 맞춰 주자.

61층부터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로 공략이 이어질 거 같으니.

스윽, 마을 사람들을 훑고 적당한 건물 입구로 몸을 틀었다.

2층 여관처럼 보이는 건물.

나무틀로 만들어진 창문이 반쯤 뜯겨나가 살짝 음산하기는 했으나 다른 폐가보다는 상태가 좋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하나.

‘원래 마을 주민은 더 많았겠군.’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빈집이 많을 리가 있나.

힌트는 이미 받았다.

절반으로 줄어든 마을.

NPC가 저절로 사라졌을 리는 없으니 어떤 사고로 죽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재앙.

마을.

경계심 있는 NPC.

메스토카와 관련이 있는 거겠지.

-끼이이익

문을 열자 낡은 경첩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들린다.

여전히 아닌 척하면서 날 지켜보는 이들.

“말한 대로 이곳에 자리를 잡죠.”

“필요한 게 있으면 아무나 붙잡아서 말해. 대단한 건 없지만 등반가 한 명 놀고먹을 정도는 되니까.”

난 베이어드에게 고개를 까딱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꽤 오랜 기간 방치되었는지 바닥에는 부러진 테이블과 의자가 널브러져 있고 선반 위에는 먼지가 쌓여 있다.

주방으로 쓰였을 게 분명한 화로는 차갑게 식은 상태.

뭔가를 만들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썩고 말라비틀어져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구석에 있는 건.

“핏자국인가.”

희미하지만 까맣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보인다.

이상한 일이군.

마을 밖도 아니고 안에 핏자국이 있다니.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아서?

저 사람들을 뚫고 들어올 만한 괴물이었다면 여관 전체가 날아갔겠지.

메스토카는 초대형 몬스터니까.

남은 선택지 몇 개 없는데.

사람의 핏자국이 아니거나 마을 사람들끼리 다툼이 있었거나.

-츠즈즈즈즉

난 눈에 힘을 줬다.

모르겠으면 알아보면 그만.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핏자국의 주인이 누구냐.

권능을 통해 드러나는 정보를 읽었고.

[NPC, 듀레이의 피]

-베이어드에게 죽은 듀레이의 흔적.

“…어쩌면 메스토카만 조심해서 끝날 일이 아니겠는데.”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베이어드.

가장 먼저 나를 반긴 NPC이자, 분위기로 보건대 12번 마을의 대표인 녀석.

혹시나 했지만 진짜 NPC끼리의 싸움이 있었을 줄이야.

살짝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계단을 올랐다.

어디선가 몰래 날 지켜보고 있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니.

태연한 척 움직였지만 생각은 빠르게 이어졌다.

‘베이어드는 다른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지. 그 말은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 듀레이라는 NPC의 죽음을 묵인했다는 거야.’

어쩌면 동조했을 수도 있다.

이유는 모른다.

의심이 생겼기 때문일까 직접 물어볼 생각도 들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듀레이가 죽을 만한 짓을 벌였을 가능성도 있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뭐 하나 제대로 정리되는 게 없네.

“일단은 지켜볼까.”

태평한 소리일지 몰라도 이게 맞다.

확실한 게 없으면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지.

난 61층의 클리어 조건을 다시 살폈다.

[61층]

[별을 삼키는 거귀충- 메스토카]

[재앙을 이겨 내시오.]

클리어 조건은 ‘메스토카를 사냥하시오’가 아니다.

재앙을 이겨 내는 거지.

즉, 방법을 하나로 정의 내리지 않았다는 거다.

사냥을 할 수 있으면 하고, 어떻게 피할 방법이 있으면 피하고.

-끼이익

그나마 멀쩡한 침대가 있는 곳을 숙소로 정하고 창문틀에 몸을 붙였다.

NPC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거리를 쓸며 내가 들어온 여관을 지키는 이도 있었으며, 들어올 때만 해도 없던 보초가 마을 외곽을 순찰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내가 나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인가.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모든 장비를 착용한 채로 오감을 집중했다.

어떤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자자! 서둘러!”

“거긴 땔감 모아 뒀으니까 동쪽으로 가!”

“옥상 완료, 재료는 먼지 묻으니까 건물 안에 넣어 두고.”

NPC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밤이 찾아오고 있다.

노을마저 지나가 어두컴컴한 광경 아래 부지런히 움직이는 NPC의 모습은 힘차고 역동적이었다.

어젯밤 하던 일을 계속하는 건가.

피곤하지도 않나. 연달아 밤에 축제를 벌이는 것도 일일 텐데.

그렇다고 낮에 아예 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 거 같고.

상념에 빠져 있는 타이밍.

-자박자박

인기척이 들렸다.

슬며시 검집에 손을 올리며 소음이 울리는 곳을 바라보자 한 여인이 호롱불을 들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몸 일부가 나무줄기 같은 거로 되어 있는 거로 봐서는 드루이드인 모양.

[에밀라- NPC]

-61층 12번 마을의 주민.

-드루이드입니다.

-은근히 태평한 성격.

-등을 긁어 주면 좋아합니다!

권능이 발휘되었지만 썩 쓸모 있는 정보는 안 보인다.

무장 상태로 바라보는 게 민망했는지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에밀라라고 해요.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 있나요?”

“이제 곧 밤이 되잖아요, 읏차.”

-화르르륵

호롱불을 이용해 에밀라가 초에 불을 붙인다.

복도뿐만이 아니라 모든 방에 있는 조명은 모조리.

이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밝군요.”

이곳뿐만 아니라 NPC들이 사는 건물, 폐가 할 것 없이 모든 곳에 불빛이 들어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촛대가 없으면 발광석을, 발광석도 없으면 빛나는 무언가를 매달아 두기까지.

멀리서 바라봤을 때보다 훨씬 밝은 풍경.

어느 건물 옥상에는 마법진이라도 설치했는지 빛 기둥이 쏘아지고 있었다.

꼬마전구 같은 것이 건물과 건물을 이어 반짝이고, 모닥불에 모인 사람들은 간단한 음식을 나눈다.

잠시 시선이 팔린 타이밍.

에밀라가 옆으로 다가와 창틀에 몸을 기댄다.

“예쁜 광경이죠?”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 이러는 건 아니에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마을에서 뿜어지는 빛에 밤인데도 하늘이 밝게 보일 지경.

“별빛을 가리려고 이러는 거지.”

-쿠구구구구궁

멀리서부터 진동음이 들린다.

어느 방향이라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

“메스토카를 상대할 때는 별이 빛나서는 안 되니까요.”

시선을 멀리 던지자 거대한 무언가가 몰려들고 있다.

설마?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메스토카]

-별을 삼키는 거귀충.

-재앙.

-군집체 몬스터입니다.

-당신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문 하나가 풀렸다.

우리 세계에 나타난 3개의 재앙.

그중 어째서 메스토카만 사냥에 성공했는가.

“…무리 중 하나만 나타났던 거였어.”

-땅땅땅땅!

“다들 준비해! 놈들이 왔다!”

“제기랄, 어제는 조용하더니만.”

“등반가가 왔잖아. 예정된 일이지.”

“빨리 움직여!”

멍청하게 말을 내뱉은 내 귓가에 요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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