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세력전
미국을 시작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치는 노블 나이트.
나를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쁘찡 연합.
길드가 아닌 집합체 형태로는 가장 큰 무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60층에 올랐다는 건 그 집단의 최고 전력이라는 말과 같았다.
물론 상위층에서도 연합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겠지.’
공략법과 지원, 어느 것 하나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을 테니.
이미 다 지나서 상위층에 있는데 뭐가 중할까.
그냥 연합에서 노는 게 재밌어서 있는 걸 거다.
실질적인 주요 전력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맞았다.
“일이 재밌게 되는군요. 설마 그쪽에도 60층에 오른 실력자들이 있었을 줄이야.”
“얘네는 시작에 불과하거든요? 조금만 있어 봐요. 엄청 올라올 테니까.”
난 씨익 웃으며 답했다.
투구를 쓰고 있어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결투를 승낙하죠.”
오필리아를 시작으로 노블 나이트 쪽에서 결투를 받아들였다.
누가 누구를 상대할 것인가.
선택은 그들의 몫이다. 동시에 여러 사람이 결투 신청을 하면 그중에서 하나를 뽑을 수 있으니까.
-우우웅!
-파아아앗!
빛이 퍼져 나간다.
결투장이 만들어지는 거겠지.
발밑으로 이어진 푸른빛이 나와 오필리아를 감싼다.
그래. 싸울 거면 진짜 대표들끼리 싸워야지.
자세를 잡으며 검을 움켜쥐는 찰나.
-우우우우웅!
“음?”
“뭐야?”
빛무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현상에 멀찍이 거리를 벌렸던 구경꾼들도 고개를 기울인다.
기어이 우리 모두를 집어삼킨 빛무리가 거대한 결투장을 만들었다.
[세력으로 인정되는 두 무리가 결투에 참여합니다.]
[시스템 판단, 세력전으로 진행됩니다.]
[패배 시 소속 집단과 닉네임이 패배의 전당에 오릅니다.]
[소수의 NPC들이 결투의 결과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머리 위로 떠오르는 알람.
시스템도 쁘찡 연합을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해 주는 건가.
게다가 세력전. NPC까지 관심을 기울인다. 지면 연합 이름까지 박제까지.
쁘찡 연합 쁘띠공듀 1패!
와! 이 악물고 싸워야지!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어느 때보다 집중한 눈으로 노블 나이트와 홀로그램을 살폈다.
기존에 겪었던 결투와는 결이 다르다.
[결투 시 사망해도 코인이 소모되지 않습니다.]
[대표를 정해 주십시오.]
[각 세력을 알릴 수 있는 기회!]
[세력전은 투기장 연합회를 통해 각 층 투기장에 송출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투기장 연합회?
알긴 안다. 예전 헬다잉 키친에서 만나 브루헴이 말해 준 NPC 세력 중 하나니까.
킬더레스가 대표로 있는 곳이기도 했고.
이런 것도 해?
시스템 딴에는 배려해 준 거다. 말마따나 새롭게 등장한 세력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우오오오!”
“재밌어지는데? 가자아아아!”
“야야! 커뮤니티 봐 봐. 투기장 있는 층에 시스템 메시지 떴단다!”
“이거 전 서버에 오른 거 같은데? 프랑스 쪽에도 뜨고 러시아에도 뜸.”
“진짜네? 브라질도 떴다.”
상상 이상으로 커져 버린 스케일.
혹시나 해서 커뮤니티를 살펴본 결과 확실한 거 같다.
-10층에 있는 사람! 방금 메시지 봄?
-쁘찡 연합 공중파 탔다아아아아!
-어디 다른 애들이랑 붙는다던데?
-속보) 미국의 노블 나이트랑 붙을 예정.
└그게 뭔데 ㅆ덕아.
└천조국 버전 쁘찡 연합이요 ^^ㅣ바라.
-이건 못 참지ㅋㅋㅋ 딱 기다려라.
-야야, 핥짝이랑 이블아이도 출전임.
└ㄹㅇ 개쩌네.
꽤나 상세한 정보까지 빠르게 퍼지는 중.
정보원이라도 있는 건가?
대단한 정보력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으히히, 내가 형님들이랑 말이야. 히히히.”
시시덕거리며 허공에 손짓하는 김정현을 볼 수 있었다.
이 자식이 커뮤니티에 퍼트리고 있었구만.
나중에 뒤통수 한 대만 세게 치고 싶다.
후우, 그건 나중에 하도록 하고.
“대표는 누구로?”
“누구기는 네가 해야지.”
내 물음에 핥짝이기 턱짓으로 날 가리킨다.
“아, 공블아이지. 무조건이라구. 히히히!”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두 녀석이 자연스럽게 나를 대표로 지목했다.
맞는 말이다. 뭐가 됐든 쁘찡 연합의 정신적 지주는 나니까.
둘의 반응을 본 김정현은 감탄할 뿐.
“역시 형님! 핥짝이도 인정한 강자! 섹시가이 김정현, 전 언제나 형님 편이었습니다.”
[쁘찡 연합의 대표가 정해졌습니다.]
[노블 나이트의 대표가 정해졌습니다.]
상대 쪽 대표는 말할 것도 없이 오필리아.
[결투 규칙은 동일합니다.]
[대표 간의 전투는 맨 마지막에 이루어집니다.]
[결투자 앞으로.]
-우우우웅!
빛과 함께 나와 오필리아를 가두는 장막이 생긴다.
개입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겠지.
동시에 거대한 결투장 내에 3개의 결투장이 더 생성되었으니.
“몸 한번 제대로 풀겠네.”
“핥짝앙, 호오오옥시라도 내가 죽으면 내가 아끼는 애정 베개는 너한테 줄게.”
“응, 그럴 일 없어. 죽어도 부활해. 코인도 안 깎여.”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라구!”
냥펀과 핥짝이는 평소처럼 뻘소리를 하고 앉았고.
“핥짝이 형님, 저한테 힘내라고 한마디만 해 주십쇼!”
“파이팅 하고 나의 응원은 분골쇄신해서 갚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반드시 승리하여 형님의 사인을 팬티에 새기겠습니다!”
“야, 이블아이! 얘 원래 이래?”
김정현은 나름의 각오를 굳히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개판인 우리와 달리 노블 나이트는 경건하다 못해 진중한 모습으로 나섰다.
생사결을 앞둔 기사처럼 차분한 모습으로 한 치의 빈틈도 만들지 않겠다는 분위기.
상반되는 분위기의 무리가 마주하는 것도 잠시.
“선빵 필승!”
-콰아아앙!
보물 주머니에서 꺼낸 압축된 돌덩이를 내리친 핥짝이를 선두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원거리 위주, 근접전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지닌 녀석.
돌덩이와 쇳덩이가 쉴 새 없이 땅에 박혔다.
온갖 쓰레기를 압축해 만든 구체가 폭발하듯 팽창하는 건 덤.
파편이 되어 날아오는 물건들을 방패로 막으며 상대방이 진격한다.
“흐아아압!”
기합과 함께 다섯 개의 보호 스킬이 발동된다.
탱커 쪽인가?
스킬뿐만이 아니다. 중갑 차림. 방어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게 느껴졌지만.
[압축 (S) Lv.4]
“오?”
언제 올렸는지 S급까지 올라간 압축 스킬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기괴한 소리를 내며 핥짝이의 손에 닿은 방어구가 우그러든다.
이어 발로 놈을 걷어찬 핥짝이가 단궁을 꺼내더니 그대로 쏘아냈고.
-피슉!
찌그러지며 벌어진 갑옷 틈으로 화살이 침투.
[해제 (S) Lv.2]
-콰가가가각!
화살이 삽시간에 나무 기둥 굵기의 물건으로 바뀐다.
심지어 팽창과 동시에 날카로운 가시들이 솟아났으니.
[가시 기둥 화살]
-프램버그에서 특별 생산한 화살이라 하기에는 양심 없는 물건.
-생산자: 거인도 이딴 무식한 건 안 쓸 텐데, 쯧쯧. 요즘 등반가들이란.
프램버그에서 머물며 새로운 물건을 얻은 모양이었다.
단번에 팔 하나가 날아간 노블 나이트가 기를 쓴다.
포션을 마시고 몸을 구르며 버티고는 있지만 이미 승세는 기운 상태.
난 시선을 돌렸다.
냥펀의 싸움이 기대됐다.
지금까지 냥펀의 전투는 본 적이 없던 만큼 어떤 식으로 결투를 이어 가는지 알아보면 좋았으니까.
-피이이이잉!
-까아아앙!
“…워, 뭐야 저게.”
핥짝이의 전투도 정신없었지만 이쪽은 더 화려하다.
황금빛 섬광이 물결치고, 폭음과 함께 불꽃이 치솟는다.
원인은 하나.
“오지 말라구! 으이이익!”
“이런 빌어먹을!”
냥펑 위로 펼쳐진 마법진.
[칭호, 화조국의 황금마차가 빛납니다!]
녀석의 칭호 효과가 발동되고 있었다.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일회용 아티팩트들.
폭발형이 있는가 하면, 전격이 쏟아지기도 하고, 상대방을 붙잡는 것도 있다.
그야말로 물량 공세.
저걸 다 어디서 모았대?
질리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더 가관은…….
-티잉
냥펀이 튕긴 금화.
그것이 상대방에게 날아갔고.
[골드 익스플로전 (S) Lv.4]
[칭호, 돈지랄의 효과!]
-모든 재화를 이용한 행위에 보정치가 들어갑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황금빛 폭발이 결투장을 휩쓸었다.
돈지랄이란 게 저런 거였나?
진짜 돈으로 지랄을 하네.
이마를 탁 치고 싶은 심정.
뭐가 됐든 선방하고 있다. 선방이 아니라 압도인가.
“크아아압!”
분노를 이기지 못한 녀석이 무리해서 안으로 파고들었지만.
[신의 가호 망토 (S)]
-신성력과 마기를 사용한 공격 외에 강한 저항력을 가짐.
-신의 가호를 뚫을 수 있겠습니까, 휴먼?
냥펀이 착용한 망토를 뚫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방어구가 저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찰나의 순간이기는 했지만 공격이 들어올 때 최소 6개의 방어구가 효과를 발휘한 걸로 봤다.
템빨이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 주는 녀석.
“오오오오오오! 잘한다!”
“쁘찡 연합이라 했나? 제정신이 아닌데?”
“옷차림부터가 제정신이 아니기는 했어!”
“자고로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했다.”
“쟤네는 미친놈들이고.”
경기를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환호한다.
그중에는 NPC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드물게 감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겠지. NPC 입장에서는 고작 60층에 올라온 녀석들이 상상 이상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거니까.
오필리아의 미간이 좁아진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노블 나이트가 밀리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들 역시 근성과 신념으로 버티고 있었으니.
“노블 나이트, 멋있다!”
“빌런한테 지지 마!”
“맞아! 연합 나쁜 놈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좀 져 주라!”
“힘내, 자식들아!”
그 굳건한 모습에 반한 이들 역시 노블 나이트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것보다 누가 빌런이야, 우르르 몰려와서 결투하자고 한 건 쟤네들인데.
혀를 차고 시선을 돌렸다.
핥짝이와 냥펀이야 무난하게 승리할 거 같고 남은 건 김정현.
하는 짓은 이상해도 1패밖에 하지 않았다.
과연 어떤 결투를 보여 줄까.
따지고 보면 나보다도 빨리 60층에 올라와 있던 인물 아니던가.
모르긴 몰라도 대단한 전투를…….
“악! 놔! 안 놔?”
“너나 놔라! 머리카락을 잡다니, 비겁하다!”
“크학! 이 새끼, 눈 찔렀어!”
믿은 내가 등신이지.
열심히 개싸움을 하고 있었다.
바닥을 구르며 치고받는 녀석들.
무기는 어따 갖다 버렸는지, 주먹질하고 머리카락 잡고 흙 뿌리고 난리가 났다.
어쭈, 깨물기도 하네.
“이것이 바로 60층의 클라스!”
“수준이 굉장하다!”
“원래 X밥 싸움이 제일 재밌는 법이라고.”
“이래서 우리가 미친개랑 안 붙지.”
익숙한 광경인 듯 외면하는 구경꾼들.
이 녀석 별명은 뭔가 했더니만 미친개였네.
겉보기에는 어이없지만 다 이유가 있다.
김정현이 가지고 있는 권능.
[S급 권능, 공평한 개싸움의 신이 발휘됩니다!]
-적의 능력치를 본인 기준으로 맞춥니다.
스펙 자체를 동일하게 만들어 버리는 기묘한 권능에.
[너도나도 무장해제 (S) Lv.5]
-상대방과 본인의 무장을 해제합니다.
무려 S급 5레벨까지 올린 무장해제 스킬.
태생 S급은 절대 아니다. 그랬으면 상대방 무장만 해제시켰지.
게다가 신기한 스킬을 하나 더 쓰고 있었는데.
[무능력자의 해피 존 (S) Lv.1]
-일정 범위를 스킬 사용 불가 지역으로 만듭니다.
이야, 무장해제에 스킬 사용 불가.
어떻게 보면 사기적인 능력이다.
저기, 공평한 개싸움의 신 권능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탈모맨이 저 스킬들을 가졌으면 최강자 반열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됐건 오로지 맨몸으로 싸우는 만큼 악바리 정신과 칭호 효과로 승부가 결정될 거 같다.
그렇게 10분 후.
“후우. 오늘도 섹시했다, 나 자신!”
기어이 상대방의 패배 선언을 들은 김정현을 끝으로 결투가 끝났다.
결과는 뭐, 연합의 연승 행진이고.
이제 남은 건.
“우리 둘뿐인가.”
“…이기고 있다고 자만하지 마세요. 대표전이야말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니까요.”
나와 오필리아.
두 대표끼리의 전투였다.